작년 12월로 긴 회사생활을 마감했다. 희망퇴직. 근속연수를 보니 24.7개월. 꺅! @..@
생각할 시간을 길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갑작스럽게 덜컥 사직서를 내버렸다. 며칠 머리 터지게 고민한다고 한 것 같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좀 어이없다. '나갈래'라는 맘을 한번 먹고 나니 다른 쪽으로 설득하는 사람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같고 오히려 그들의 말에 반박할 이유들을 찾아내면서 내 결정을 합리화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집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그만두면 안 됐는데, 어쩐지 그런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결정이라는 게 참 우습다.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건 이성적으로 하는 행위 같지만 지극히 감정적이고 찰나적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도 나름 퇴사할 경우의 장점 단점 리스트를 쭉 써 봤었단 말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것조차 한쪽으로 쏠려서 해석한 것 같다는. ㅋ
'그만 둘까?'라고 물었다가 남편이 '그래도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답하면 '대체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거야? 회사 사정이 지금 별로라니깐? 3년 후에 위로금도 없이 그만둬야 하면 어쩔 거야?'라고 따져놓고는 남편이 '그만 둬.'라고 하면 '그럼 앞으로 어쩔건데. 대책이 있어?'라고 신경질을 내면서 미친 x처럼 남편을 몰아붙였음. 어쩌라고. ㅋㅋㅋ
이제서야 말렸던 사람들의 말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회사가 몇년 전부터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데 그 때 심란하다고 글을 썼더니 다정한 서재친구님이 '아이들 뒷바라지 하는 거 재미없다'며 버티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도 다시 생각난다.
하필이면 퇴사하자마자 맞은 아이들의 방학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겠지 싶었는데 개학을 하고도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도 나는 어쩐지 후회하고 있는 것 같다. 일을 좋아한 건지, 나만의 책상이 필요한 건지, 아이들의 문제(공부공부! 내신내신! 어휴)를 싹 잊고 싶은 건지, 어디론가 매일 단장하고 나가는 루틴이 필요한 건지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일주일 정도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간식도 챙겨주고 좋더니만, 한 달이 지나고서는 돌아서면 밥, 간식, 청소 등등이 몰아치는 집에서의 일에 그만 질려버렸다. ㅠ.ㅠ 회사 다니면서도 안 한건 아닌데 왜 이런 일들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손가락 관절염은 설마 석 달 동안 집안일을 하느라 생긴건 아니겠지? 무릎 관절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 흔히 발생하는 노화현상이라고는 하더라만 그렇다고 내가 매일 쓸고닦고 반질반질한 집을 유지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말이다. 왜 하필이면 이런 시점에 나를 찾아와서 더 우울하게 만드는지.
오래 일했으니 당분간은 좀 편히 쉬라고 하는데도 나도 참 나를 가만히 못 두는 스타일인가보다. 그렇다고 또 막 의지력을 갖고 뭘 실천하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오락가락 양가적인 감정으로 보내고 있는 2022년의 봄날들이다. 이런 봄날 평일에 바깥 산책하는 게 회사 다니던 시절에 부러워하던 거 아니었나? 여기저기 도서관도 다녀보며 여유롭게 책 읽고 싶다던 것도 회사 다니던 시절에 부러워하던 거 아니었나? 사람 참 간사하다.
(물론 이런 일들을 하고 다니지만 왜 행복감은 다르게 느껴질까. 대부분은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일상이라 그런 걸까? 뒤늦게 '슈츠'를 달리는 중인데 시즌 9.... @@.)
이러다 실업급여 받는 기간 끝나고 나면 뭐든 하겠다고 나설 것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