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3.5.25. 마늘밭



사람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지 모르나, 시골이 오히려 서울보다 일자리가 많고, 일삯이 높다. 게다가 시골은 ‘일철·놀이철’이 뚜렷하고, 일철과 ‘일날(근무일)’은 제대로 몰아치면서 하되 놀이철과 ‘쉼날(휴무일)’을 칼같이 챙긴다. 왜 그러겠는가? 이른바 몸쓰기(노동강도)가 센 시골일인 터라, 함부로 덧일(추가근무)을 안 시킨다. 낟알이며 숨붙이(해산물·농산물)를 바로 다뤄서 건사해야 할 적에는 덧일을 해야 하는데, 시골에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부터 앞장서서 덧일과 밤일을 할 뿐 아니라, 일을 시키는 사람이 가장 오래 길게 힘들게 덧일과 밤일을 한다. 또한, 시골일은 워낙 몸쓰기인 터라, 일을 시켰으면 제대로 쉬고 제대로 먹이고 제대로 일삯을 준다. 생각해 보라. 시골에서 일을 시키고서 일삯이나 쉼날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낫’이 춤추지 않겠는가?


바닷가 ‘김 공장’은 여섯 달 일하고 여섯 달 쉬는 얼거리인데,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거의 다 차지하는 일자리로 바뀐 지 벌써 오래인데, ‘여섯 달 바짝’ 일하면 5000만 원 남짓 번다. 시골일과 서울일은 아주 다르다. 서울일은 ‘나흘일(주4일노동)’이 되겠으나, 시골일은 ‘이레일(주7일노동)’이다. 다만, 시골은 ‘일철은 늘 이레일’이되, 이 일철을 마치면 ‘이레쉼(주7일휴가)’이다. 봄가을에 허벌나게 바쁜 마늘밭을 본다면, ‘하루삯 20만 원’이다. 앞으로 더 오를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서울내기는 ‘시골에서 일하는 때’를 잘 알아야 하는데, 마늘밭 일손이란, 으레 새벽 서너 시부터 한다. 참으로 바쁜 일철에는 새벽 두 시부터 한다. 이렇게 일손을 부리기 때문에 시골에서 찾는 일자리는 일삯이 높고 쉼날을 넉넉히 베푼다.


서울일(도시 거주자 노동)을 생각해 본다. 짐짓 서울일은 ‘나흘일’이나 ‘닷새일’로 보이지만, ‘전기·물·통신·인터넷이 24시간 내내 안 끊기’도록 ‘이레일’을 돌아가면서 맡는 일꾼이 많다. 서울이라는 얼거리가 돌아가도록 참말로 ‘숨은일꾼’이 숨돌릴 짬조차 없이 돌아간다. 이와 달리 시골은 새벽 두 시부터 일을 해야 하더라도, 해가 떨어지면 다 일찍 잔다. 일철에는 토·일요일이나 공휴일조차 없되, 일철을 지나면 그저 이레쉼에 한달쉼이다.


이른바 참살림(웰빙)은 시골에서 누리고 짓기에 수월하다고 느낀다. 바싹 일하고 넉넉히 쉬는 길이 참살림이지 않을까? 석 달 일하고서 석 달 쉬는 얼거리야말로 참살림이지 않을까?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는, 또 여섯 달 일하고서 여섯 달 쉬는, 한 해 일하고서 한 해 쉬는, 이렇게 일할 적에 일삯을 두둑히 받는 시골이야말로 ‘앞날을 그리고 꿈꾸는 젊은이한테 환한 빛줄기’이지 않을까? 이런 시골일이 몸에 익어야 ‘아기를 낳아 돌볼’ 수 있다. 아기돌봄은 ‘이레일 + 한해일(1년 365일 근무)’이다. 아기돌봄은 갓 태어난 아기가 열다섯 살 즈음 이르도록 그야말로 ‘이레일 + 한해일’이다. 간추린다면, ‘아기돌봄 = 열다섯해 날마다일’일 텐데, 어버이로서 열다섯 해를 ‘이레일 + 한해일’로 살아내고 보면, 이다음부터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치사랑’을 베풀더라. 아이들이 베푸는 ‘치사랑’을 하루만 누려도 지난 열다섯 해 ‘이레일 + 한해일’이 눈녹듯이 사라지면서 기쁨눈물이 샘솟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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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 숲노래 사랑꽃

숲집놀이터 289. 경력단절



숱한 엄마는 ‘경력단절’을 걱정한다. 애써 오래도록 배움터랑 일터를 다녔으나, 아기를 낳느라 그만 일터를 쉬면서 ‘예전 배움터에서 익힌 길’을 써먹지 못 하고 잊어버린다며 걱정을 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서 하루하루 무엇을 배우고 익히면서 새롭게 피어나고 거듭나고 깨어나는지 으레 놓치는 듯싶다. 아기는 엄마아빠한테 따로 나뉜 씨앗으로 흐르다가 엄마몸에서 열 달을 고이 자면서 자란다. 아기라는 몸을 입으려고 ‘두 씨앗’에서 ‘한 씨앗’으로 바뀌고, ‘한 씨앗’이던 몸을 내려놓고서 ‘아기’로 나아간다. 열 달이 지난 뒤에는 ‘아늑한 엄마몸’을 떠나서 밖으로 나온다. 갓 태어난 뒤로는 젖을 빨다가 젖떼기밥으로 건너가고, 이내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선 끝에 걸음마를 뗀다. 바야흐로 모든 나날이 ‘옛길을 끊고서 새로 나아가는 하루’이다. 온누리 어느 곳에서도 “사랑으로 아기를 품어서 돌보는 살림”을 못 가르친다. 엄마하고 아빠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받는 두 사람은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짓는 숲빛살림”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살림을 깨닫고 익히려면 ‘옛길은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아줌마·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바뀐 ‘엄마·아빠’는 아주 마땅히 옛날하고 다르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일멎이(경력단절)’에서 ‘일꾼·살림꾼’으로 피어났다. 그래서 ‘아줌마·아저씨’는 일터도 마을도 나라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꿀 줄 아는 눈길과 손길과 발걸음으로 자라난 ‘어른’으로 선다. ‘아줌마·아저씨’는 아주 빠르게 새일과 새길을 익힐 줄 안다. ‘아줌마·아저씨’는 낯선 일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웃고 노래하며 일할 줄 안다. 왜 이럴 수 있겠는가? 바로 아기를 맞이하는 ‘일멎이(경력단절)’를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겪었거든. ‘아줌마·아저씨’는 “아기를 낳아서 돌본 눈부신 새일·새길(경력)을 갈고닦은” 터라, 오히려 누구보다도 일을 훨씬 잘 하거나 한결 알뜰살뜰 여미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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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세계관 世界觀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 → 한 줄기 큰뜻을 이루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세계관을 새로 만듭니다 → 이리하여 삶넋을 새로 엽니다

 세계관이 좀 더 확대된 느낌을 줍니다 → 눈길을 더 틔운 듯합니다

 그들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들이 어떻게 보는지 알아야 할 듯싶습니다


  ‘세계관(世界觀)’은 “[철학] 자연적 세계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를 나타낸다지요. ‘마음·생각·뜻’이나 ‘넋·얼·빛·길’로 고쳐씁니다. ‘삶넋·삶길·삶빛·삶’이나 ‘살림넋·살림길·살림빛·살림’로 고쳐쓰고, ‘숨·숨결·숨빛·숨꽃’이나 ‘눈·눈길·눈빛·눈망울·눈썰미’로 고쳐씁니다. ‘바라보다·보다·쳐다보다’나 ‘눈여겨보다·느끼다·읽는눈’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혹은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은 어떤 것인가

→ 또는 그가 바라는 삶길은 무엇인가

→ 또는 그가 나아가는 길은 어디이가

《홀로 서기》(서정윤, 청하, 1987) 머리말


우리의 세계관, 인생관은 객관적 사실과 진리에 맞는가 틀리는가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가 결정된다

→ 우리 눈길, 넋은 두루 맞는가 틀리는가에 따라 바름결을 판가름한다

→ 우리 생각, 삶길은 참다운가 아닌가에 따라 옳은지를 따진다

《참된 삶을 위하여》(채희석, 현장문학사, 1989) 18쪽


사물의 이치를 분별할 나이가 되면 학교교육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관을 주입시킵니다

→ 둘레를 알아차릴 나이가 되면 배움터에서 그들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 삶을 헤아릴 나이가 되면 배움자리에서 그들 삶길을 들이붓습니다

《시와 혁명》(김남주, 나루, 1991) 29쪽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여성의 인권만을 쟁취하기 위한 세계관이 아니라

→ 사람들이 잘못 아는데 순이만 돌보자는 뜻이 아니라

→ 사람들이 엉뚱히 보는데 순이살림만 지키자는 길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여전사》(김연호, 아이공, 2005) 6쪽


본질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세계관의 차이다

→ 아무래도 숲을 보는 눈빛이 다르다

→ 처음부터 숲을 헤아리는 눈이 다르다

《자유인의 풍경》(김민웅, 한길사, 2007) 18쪽


난 이 세계관을 아직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죠

→ 난 이 눈길을 아직 하나도 모른단 말이죠

→ 난 이 눈빛을 아직 도무지 모른단 말이죠

《여름눈 랑데부 2》(카와치 하루카/김유리 옮김, 삼양출판사, 2012) 86쪽


냉전의 세계관은 서로 마주보고 귀를 막은 채 자기만 옳다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 서로 귀를 막은 채 저만 옳다 소리치는 차가운 눈빛입니다

→ 서로 귀를 막은 채 저만 옳다 소리치는 겨울빛입니다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이임하, 철수와영희, 2013) 184쪽


세상의 점점 더 많은 모습을 이해하게 되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동그라미의 세계관’이다

→ 온누리를 더 많이 읽자 새롭게 ‘동그라미 마음’이 나타났다

→ 둘레를 차츰 더 많이 알며 새롭게 ‘동그라미 넋’이 보였다

→ 이곳을 더 많이 헤아리면서 새롭게 ‘동그라미 살림’을 보았다

→ 이 별을 더 많이 느끼자 새롭게 ‘동그라미 눈망울’을 틔웠다

《우주 산책》(이정규, 이데아, 2015) 43쪽


과학적 세계관 속에 애니미즘의 기미가 스며들었다

→ 밝꽃에 숲빛이 스며들었다

→ 샅샅이 보는 눈에 들빛이 스며들었다

→ 꼬치꼬치 눈길에 바람빛이 스며들었다

《신을 찾아서》(바버라 에런라이크/전미영 옮김, 부키, 2015) 311쪽


저 시리어스한 세계관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어

→ 저 아슬아슬한 넋은 영 못 따라가겠어

→ 저 아찔한 생각은 도무지 못 따라가겠어

→ 저 만만찮은 삶은 좀처럼 못 따라가겠어

《드래곤볼 슈퍼 5》(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18)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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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책잡다 責-


 공연히 책잡으려 들지 마라 → 굳이 다그치려 들지 마라

 민망한 듯이 책잡는다 → 창피한 듯이 탓한다

 책잡힐 줄은 몰랐다 → 꾸짖을 줄은 몰랐다

 책잡힐 말을 하다 → 타박 들을 말을 하다


  ‘책잡다(責-)’는 “남의 잘못을 들어 나무라다”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나무라다·다그치다·닦다’나 ‘꾸중·꾸짖다’로 고쳐씁니다. ‘꼬투리·탓하다’로 고쳐쓰고, ‘따지다·잡다’나 ‘호통·타박·핀잔’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ㅅㄴㄹ



벌써 지나간 일이라 책잡을 것도 없다

→ 벌써 지나간 일이라 나무랄 일도 없다

→ 벌써 지나간 일이라 탓할 일도 없다

《論語新解》(김종무 옮김, 민음사, 1989) 66쪽


당신 책잡을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 그대 나무랄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 이녁 다그칠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마

《와, 같은. 5》(아소 카이/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3)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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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판 오르페우스의 창 17
이케다 리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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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3.

발바닥이 없고 손바닥이 없는


《오르페우스의 창 17》

 이케다 리에코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9.15.



  《오르페우스의 창 17》(이케다 리에코/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은 막바지에 다다른 여러 사람들 마음하고 발걸음을 보여줍니다. 손아귀에 힘을 거머쥐었다고 여기는 쪽이 있고, 손아귀에 움켜쥐었다고 여긴 힘을 잃었다고 여기는 쪽이 있습니다. 새롭게 갈아엎겠노라 바라는 쪽이 있고, 오랜 틀을 이으려는 쪽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창’을 아예 모르지만 ‘아이 눈길’을 바라보는 쪽이 있는데, 이들은 이 그림꽃에 안 나옵니다. ‘꽃망울’과 ‘잎망울’을 늘 살피는 쪽이 있으며, 이들도 이 그림꽃에 안 나옵니다.


  우리는 으레 ‘러시아 혁명’처럼 이름을 붙이지만, 참으로 갈아엎은(혁명) 이들은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힘꾼이나 돈꾼이 아닙니다. 벼슬·글·힘·돈으로 살아가던 이들은 ‘시늉’을 하는 허수아비예요. 낫과 호미와 쟁기를 쥔 수수한 사람들은 늘 갈아엎습니다.


  땅을 갈아엎으면서 씨앗을 심는 수수한 사람이 온누리를 바꿉니다. 힘이나 돈이나 이름을 물려주는 힘꾼이나 돈꾼이나 이름꾼은 언제나 담벼락을 높고 단단히 세워서 끼리끼리 놉니다. 들숲바다에서 씨앗 한 톨을 사랑하는 수수한 사람은 딱히 담벼락이 없이 울타리도 가볍게 놓고서 해바람비를 듬뿍 받아들이고 나눠요. 이리하여 시골사람과 흙사람과 들사람과 숲사람과 바닷사람은 ‘갈아엎기’조차 안 하는 살림길을 스스로 배우고 넉넉히 익히면서 널리 나누는 길을 걸어요.


  몇몇 우두머리나 임금이나 붓꾼이나 벼슬꾼이 러시아를 이끌거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하고 다른 모든 이웃나라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살림을 지핀 작은 사람들이 온누리와 이 별을 즐겁게 사랑으로 아름다이 이끌거나 지켜 왔어요.


  《오르페우스의 창 17》에 이르러 “어째서 당신들은 그토록 죽음을 서두르는 건가요?” 하고 피눈물로 외치는 말이 나옵니다. 아니, 열일곱걸음에 앞서도 꾸준히 이런 피울음이 둘레에서 흘렀을 텐데, 힘·돈·이름만 쳐다보는 이들은 사람·사랑·숲하고 내내 등진 채 싸우기만 했습니다.


  참다이 갈아엎으려면 싸움이 아닌 사랑을 할 노릇입니다. 온통 갈아엎고 싶다면 서울을 떠나서 시골에서 오순도순 들숲바다를 품을 노릇입니다. 빛나는 어깨동무(평화·평등·자유)를 이루고 싶다면 그야말로 힘·돈·이름을 몽땅 내려놓고서 아기를 안고서 자장노래로 재우고, 아이들하고 맨발로 들숲바다에서 뛰놀면 됩니다.


  길은 누구한테나 스스럼없고 수월하고 수수하면서 아름답습니다. 길을 안 보려 하니 안 보일 뿐입니다. 씨앗 한 톨을 심는 길이 ‘갈아엎음(혁명)’입니다. 총칼로 마구 죽이는 짓은 ‘갈아엎음’이 아닌 ‘앙갚음(보복)’입니다. 앙갚음은 앙갚음으로 이을 뿐입니다. 씨앗을 심어서 낟알을 거두고 열매를 맺어야, 이 낟알과 열매를 둘레하고 나누면서 사랑으로 온누리를 다독이면서 일으키는 참누리(참다운 누리)를 이루게 마련이에요.


  발바닥이 없으니 걸아다니지도 않다가, 그만 죽이고 죽습니다. 손바닥이 없으니 남한테 시키기만 하다가, 그만 어떻게 살림을 지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죽이고 죽습니다. 들사람(민중)은 늘 발바닥으로 걷고, 손바닥으로 짓습니다. 숲사람(민중)은 언제나 발바닥으로 풀꽃나무를 느끼고, 손바닥으로 해바람비를 받아들입니다. 우두머리도 발바닥하고 손바닥이 없고, 벼슬아치하고 붓꾼하고 돈꾼하고 이름꾼도 발바닥하고 손바닥을 잊은 채 “담벼락 안쪽”에서 끼리끼리 헤매는 판입니다.


ㅅㄴㄹ


#池田理代子 #オルフェウスの窓


“나 혼자만 도망치라고요? 말도 안 돼!” “단념하세요. 당신만이라도 구하지 못하면 제가 온 의미가 없습니다.” (6쪽)


“시대의 흐름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요구하지 않아. 너도, 나도, 결국은 상당히 서툰 인간이었던 것 같구나.” (32쪽)


‘우는 건 언제나 여자. 권력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전쟁을 계속하는 남자들의 끝없는 시선 뒤에서,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아내가, 그리고 연인이, 누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려왔을까.’ (84쪽)


“좋아. 이제부터 철저한 보복이다. 이번 쿠테타에 참가한 장교들은 모조리 총살해!” (131쪽)


‘바보 같은 짓을! 어째서 당신들은 그토록 죽음을 서두르는 건가요? 죽는다고 대체 뭐가 해결되죠? 이기적이에요!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를 살아서 끝까지 지켜볼 용기도 없는 건가요, 겁쟁이들 같으니!’ (1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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