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 숲노래 사랑꽃
숲집놀이터 289. 경력단절
숱한 엄마는 ‘경력단절’을 걱정한다. 애써 오래도록 배움터랑 일터를 다녔으나, 아기를 낳느라 그만 일터를 쉬면서 ‘예전 배움터에서 익힌 길’을 써먹지 못 하고 잊어버린다며 걱정을 한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서 하루하루 무엇을 배우고 익히면서 새롭게 피어나고 거듭나고 깨어나는지 으레 놓치는 듯싶다. 아기는 엄마아빠한테 따로 나뉜 씨앗으로 흐르다가 엄마몸에서 열 달을 고이 자면서 자란다. 아기라는 몸을 입으려고 ‘두 씨앗’에서 ‘한 씨앗’으로 바뀌고, ‘한 씨앗’이던 몸을 내려놓고서 ‘아기’로 나아간다. 열 달이 지난 뒤에는 ‘아늑한 엄마몸’을 떠나서 밖으로 나온다. 갓 태어난 뒤로는 젖을 빨다가 젖떼기밥으로 건너가고, 이내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선 끝에 걸음마를 뗀다. 바야흐로 모든 나날이 ‘옛길을 끊고서 새로 나아가는 하루’이다. 온누리 어느 곳에서도 “사랑으로 아기를 품어서 돌보는 살림”을 못 가르친다. 엄마하고 아빠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받는 두 사람은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짓는 숲빛살림”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살림을 깨닫고 익히려면 ‘옛길은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제 ‘아줌마·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바뀐 ‘엄마·아빠’는 아주 마땅히 옛날하고 다르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일멎이(경력단절)’에서 ‘일꾼·살림꾼’으로 피어났다. 그래서 ‘아줌마·아저씨’는 일터도 마을도 나라도 아름답게 사랑으로 가꿀 줄 아는 눈길과 손길과 발걸음으로 자라난 ‘어른’으로 선다. ‘아줌마·아저씨’는 아주 빠르게 새일과 새길을 익힐 줄 안다. ‘아줌마·아저씨’는 낯선 일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웃고 노래하며 일할 줄 안다. 왜 이럴 수 있겠는가? 바로 아기를 맞이하는 ‘일멎이(경력단절)’를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겪었거든. ‘아줌마·아저씨’는 “아기를 낳아서 돌본 눈부신 새일·새길(경력)을 갈고닦은” 터라, 오히려 누구보다도 일을 훨씬 잘 하거나 한결 알뜰살뜰 여미곤 한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