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13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윤동주 글

 전광하·박용일 엮음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7.



  중국에 우리 한겨레가 무척 많이 삽니다. 처음부터 한겨레가 많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나라를 잃고 집을 잃고 논밭까지 잃고 아이들마저 잃은 슬픈 사람들은 이웃나라로 건너갔습니다. 러시아하고 일본에도 한겨레는 숱하게 건너갔고, 때로는 끌려갔습니다. 맨몸으로 걸어갔어요. 맨손으로 땅을 일구었어요. 윤동주 님은 ‘명동촌(용정시)’에서 1917년에 태어납니다. 그무렵 한겨레는 고되게 일하면서도 저마다 꿈을 품었고, 먼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어질게 배워서 참하게 일어설 새길을 그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윤동주 님 노래는 여러 동무와 이웃과 뒷내기 손길로 태어났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석 자락을 꾸려 스스로 하나, 이양하 님한테 하나, 정병욱 님한테 하나 남겼고, 이 가운데 전남 광양 어머니집 독에 고이 숨긴 정병욱 님 꾸러미가 1945년까지 살아남았다지요. 2002년에 흑룡강에서 펴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를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한겨레로서 ‘한말’을 ‘한글’로 담은 글자락이고, 예전 북녘말씨하고 연변말씨를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 중국은 뜬금없이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윤동주 님을 ‘중국 역사’로 끼워맞추려 합니다. 어처구니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찾아서 누리는 나날이라면, 나라지기부터 앞장서서 ‘한겨레 한노래’를 편 옛자취를 제대로 밝힐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6.4.

다듬읽기 218


《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

 이매진

 2015.2.28.



  《책이 좀 많습니다》(윤성근, 이매진, 2015)는 그닥 안 알려졌다고 여기는 책벌레하고 만난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책을 읽는 줄 헤아린다면, 글쓴이 눈에 뜨이는 책이 아니라, 이웃이 풀어내거나 들려주고 싶은 책을 복판에 놓고서 줄거리를 여미어야 어울릴 텐데 싶더군요. 모든 책은 갈래만 다를 뿐, 속내는 매한가지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갈래를 바라보고 걸어가면서 언제나 나란한 빛과 씨앗을 얻고 나누고 심고 베풀고 펴면서 일구는 책밭입니다. 한 자락을 읽건 즈믄 자락이나 하늘만큼 읽건 안 대수로워요. 어느 책을 읽든지 “책을 마주하는 손길과 매무새와 눈빛”을 바라볼 수 있다면, 책 하나로 풀어낼 살림살이는 가없이 넓고 깊습니다. 굳이 넓고 깊이 안 들어가도 될 테지만, 책밭 어귀에서 서성이다가 끝맺는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책을 덮고서 다시 살피자니 책이름부터 “책이 좀 많습”이군요. 이미 부피와 크기로 보려는 눈인 탓에 여러모로 어지럽고 섣부르게 다가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남자 혼자

→ 흰웃옷을 차려입은 사내 혼자

→ 흰웃도리 차려입은 돌이 혼자

6쪽


이해 못 할 정도로 괴짜 소리를 듣는

→ 알쏭달쏭한 녀석 소리를 듣는

→ 알 길 없는 도깨비 소리를 듣는

7


평범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애서가들이 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 수수한 사람 사이에 글사랑님이 얼마나 많은 줄 조금 어림할 수 있었다

→ 둘레에서 책사랑님이 얼마나 많은 줄 조금 헤아릴 수 있었다

8


이렇게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지 않았을까

→ 이렇게 책이 많으면 어릴 때부터 책벌레이지 않을까

→ 이렇게 책이 많으면 어릴 때부터 글사랑이지 않을까

13


문고본을 모으는 책장이 따로 있고

→ 손바닥책 모으는 시렁이 따로 있고

→ 작은책을 모으는 칸이 따로 있고

16


한번 관심이 생기면 거기에 관련한 책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 눈여겨보면 이와 얽힌 책은 속이 풀릴 때까지

→ 눈이 가면 이 갈래 책은 마음이 풀릴 때까지

17


한적한 곳에 컨테이너로 만든 서재를 갖고 있는

→ 한갓진 곳에 모둠칸으로 연 책칸이 있는

→ 기스락에 모둠집으로 꾸민 책마루가 있는

25


한 질을 선물로 주셨죠

→ 한 꾸러미를 주셨죠

→ 한 꿰미를 주셨죠

→ 한 묶음을 주셨죠

→ 한 동을 주셨죠

→ 한 보따리를 주셨죠

35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 참 안 어울리지 않은가

71


짧은 복도를 지나면 바로 거실 겸 주방이 나온다

→ 골마루를 지나면 마루인 부엌이 나온다

→ 골마루를 지나면 마루이자 부엌이다

105


이제는 헌책방도 대형이 되고 있다

→ 이제는 헌책집도 큼직하다

→ 이제는 손길책집도 크다

112


최성희 씨에게 공부라는 것은 삶의 리듬이나 마찬가지다

→ 최성희 씨는 삶가락으로 배운다

→ 최성희 씨는 삶결 그대로 익힌다

→ 최성희 씨는 살아가는 대로 배운다

125


책상 위에도 많은 책이 위태롭게 쌓여 있다

→ 책상에도 책이 잔뜩 아슬아슬 쌓였다

135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책장은 전희정 씨가 특히 좋아하는 책들로 채웠다

→ 둘레를 모두 차지하는 책칸은 전희정 씨가 아주 반기는 책으로 채운다

159


인포그래픽을 전문으로 보여주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 알림그림을 잘 보여주는 어느 누리집에서

→ 그림빛을 두루 보여주는 어느 누리집에서

184


책 읽기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할까

→ 책을 읽으려면 얼마나 다부져야 할까

→ 책을 읽자면 얼마나 배짱이어야 할까

→ 책읽는 뚝심은 어느 만큼이어야 할까

→ 책읽는 뱃심은 어느 만큼이어야 할까

220


농사일을 하며 근처에 있는 대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 논밭일을 하며 둘레 새배움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 흙을 일구며 가까운 새길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280


각별한 애정이 있다

→ 남달리 즐긴다

→ 몹시 반긴다

28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에서도 보고픈 1
아케가타 유우 지음, 반기모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6.4.

만화책시렁 653


《꿈에서도 보고픈 1》

 아케가타 유우

 반기모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6.15.



  마음이 맞는 사람을 언제 만날는 지 알 길이 없게 마련이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머잖아 만납니다. ‘머잖아’는 “조금 뒤”일 수 있고, 이튿날일 수 있고, 이태 뒤나 열 해 뒤일 수 있습니다. 서른 해나 쉰 해 뒤일 수 있어요. 이 몸을 내려놓고서 다시 태어나고서일 수 있습니다. 안 서두르는 마음이라면 즈믄 해가 걸리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알기에 기나긴 삶이건 짤막한 삶이건 모두 즐겁게 맞이합니다. 《꿈에서도 보고픈 1》를 읽으며 조금 알쏭했는데, 일본에서 “月とすっぴん(달과 민낯)”으로 나온 책을 좀 엉뚱하게 옮겼습니다. “달과 맨얼굴”이라는 이름하고 “꿈에서도 보고픈”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겉으로 꾸미는 얼굴로 일하거나 지내면서 지친 두 사람이 천천히 달빛으로 물들어 가는 줄거리인데, 마냥 보고픈 짝사랑인 듯 잘못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서로 마음에 두는 사이라면 아무 이름을 안 붙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본 끝에 문득 이름을 붙이는 둘입니다. 두고두고 지내는 동안 시나브로 이름 하나 떠오를 테지요. 순이돌이로만 짝을 맺어서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순이순이’로 어울리든 ‘돌이돌이’로 어울리든, 서로 마음을 열면서 하루가 빛날 적에 삶이 즐겁습니다.


ㅅㄴㄹ


‘내일은 시호랑 공원에서 커피 마셔야지. 좋아하는 잡화점에 가고, 새로 생긴 도너츠 가게에 들렀다가, 그리고.’ (90쪽)


“저 할아버지, 어렸을 때 자주 놀아주셨어. 못 알아봤나 봐. 나를. 난 이제 도쿄사람이 되었구나.” (127쪽)


#月とすっぴん (달과 민낯) #アケガタユウ


+


《꿈에서도 보고픈 1》(아케가타 유우/반기모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1)


사과를 많이 받았으니까 콩포트를 만들어야지

→ 능금을 많이 받았으니까 졸임을 해야지

→ 능금을 많이 받았으니까 졸여야지

13쪽


어른의 맛이 나

→ 어른맛이 나

→ 어른스런 맛이야

19쪽


와아∼ 외근 정말 좋아!

→ 와아! 바깥일 즐거워!

→ 와아! 나오면 신나!

24쪽


네게 있어 좋은 피사체는 어떤 거야?

→ 너는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어?

→ 너는 누구를 찍고 싶어?

→ 너는 어떤 보임꽃을 찍고 싶어?

64쪽


나 찍는 거 즐거워?

→ 나 찍으면 즐거워?

→ 나 찍으며 즐거워?

69쪽


도쿄는 아직 낯설다. 식빵 같은 창문이 나란히 나란히

→ 도쿄는 아직 낯설다. 네모난 칸이 나란히 나란히

→ 도쿄는 아직 낯설다. 같은 미닫이가 나란히 나란히

83쪽


잘 만들어졌거든

→ 잘 나왔거든

→ 잘 빚었거든

9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년 9월에 아기를 돌보면서 쪽틈을 내어

겨우 남겨 놓은 글을

2024년 6월에 새삼스레 돌아본다.

이렇게 재미난 글을 써놓은 적이 있네.

혼자 웃으면서 되읽었다.


..


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08.9.11. 신변잡기



  틈틈이 써 놓은 글을 띄우는 누리새뜸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일하는 아무개 씨가 무어라 무어라 한다. 내가 쓴 글에 ‘기저귀 빨래’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기저귀를 빨래하는 이야기를 담는 글은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가 아니라’고 톡톡 자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버지 육아일기’를 안 받겠다고 확확 자른다.


  가만히 이 말을 듣는다. 대꾸할 값어치를 못 느껴서 대꾸를 안 하기로 했다. 야구 경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늘 야구 이야기를 쓰겠지. 정치꾼을 취재하는 사람이라면 늘 똑같은 정치꾼 말과 몸짓을 쓰겠지.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늘 손빨래에 밥살림에 집살림 이야기를 쓰겠지. 책숲(도서관) 일꾼이라면 책숲살림을 꾸리는 하루를 늘 똑같이 쓰겠지.


  글감은 누구나 똑같게 마련이다. 똑같은 글감을 풀어내는 하루가 다르고, 똑같은 글감마다 다 다르게 흐르고 서리고 감도는 삶과 하루가 다 다르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는 “최종규 씨가 쓰는 글은 ‘신변잡기’입니다.” 하고 덧붙인다. 그래서 “네, 저는 늘 ‘신변잡기’만 쓸 텐데, 이제는 글을 띄우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하고 여쭌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는 “아니요, 글을 쓰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고 도리도리한다.


  한자말 ‘신변잡기’란 무엇이겠는가? 온누리 어느 글이든 신변잡기이다. 왜냐하면, 스포츠이든 정치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모두 ‘우리 둘레(신변)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잡기)’이다. 더 커다란 일이 없고, 더 작은 일이 없다. 그저 우리 둘레에서 겪고 스치고 마주하는 일을 적을 뿐이다.


  그러면 나는 왜 굳이 ‘기저귀 빨래’를 글로 옮기는지 돌아볼 노릇이다. ‘기저귀 빨래’를 글로 옮기더라도 몇 해 못 쓴다. 아기가 똥오줌을 가리는 나이부터는 ‘기저귀 빨래’ 이야기를 더 쓰고 싶어도 못 쓴다. ‘기저귀 빨래’ 이야기는 아기를 돌보면서 날마다 끝없이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사람이 바로 아주 짧은 한때에만 쓸 수 있다.


  나는 빨래틀(세탁기)을 안 쓴다. 1995년에 우리 어버이가 살던 집을 박차고 나온 날부터 2008년 여름까지 늘 손으로 빨래를 한다. 앞으로도 손빨래를 할 생각이고, 빨래틀을 들일 마음조차 없다. 나처럼 빨래틀을 안 들이고서 손으로만 조물조물 주무르거나 삶아서 햇볕에 말리는 이웃이 더러 있다. 다만 요새는 아주 드물다. 나는 쇳덩이(자가용)를 몰지 않는다. 종이(운전면허증)조차 안 땄다. 걸어다니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린다.


  그러니 나는 손빨래를 하는 이야기를 쓰고, 걸어다니는 이야기를 쓰고, 두바퀴로 짐을 실어나르는 이야기를 쓴다. 손빨래를 하는 동안,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 온누리 모든 어머니가 모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살림하던 일을 떠올린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기저귀 빨래’ 이야기에는 숱한 어머니가 겪고 마주해야 하던 ‘살림살이’ 이야기가 저절로 깃든다. 기저귀 한 자락을 삶고 헹구고 말리고 다림질까지 하면서 여러 집안일을 도맡는 하루에서 무엇을 배우고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는 살림을 짓는가 하는 줄거리를 늘 다르게 풀어낸다. 기저귀가 마르는 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살피면서, 저절로 하늘 이야기하고 바람 이야기를 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기저귀가 잘 안 마르니, 비내음 이야기를 쓴다. 얼핏 보면 늘 똑같이 ‘기저귀 빨래’라는 글감이되, 모든 줄거리와 이야기는 늘 다르다.


  나는 예전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살 적에는 늘 신문배달 이야기를 썼다. 군대에서 썩는 동안에는 몰래몰래 군대 이야기를 써서 모았다.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는 책마을 뒷모습 이야기를 썼다. 두바퀴로 온나라를 굽이굽이 나들이를 할 적에는 자전거 이야기를 썼다. 책숲마실을 다닐 적에는 책숲마실 이야기를 꼬박꼬박 남긴다. 낱말책을 여미는 일을 하면서, 말과 삶과 넋이 얽힌 실타래와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이야기를 적는다.


  기저귀 빨래는 날마다 하면서 즐겁다. 날마다 새롭게 하는 빨래요, 하루에도 끝없이 새삼스러이 맡는 빨래이다. 기저귀 빨래는 하늘이 내려준 빛이요, 보람이라고 느낀다. 온누리 모든 빨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면서 옹근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기저귀 빨래이지 싶다.


  조금 앞서, 아기가 내 허벅지에 앉아서 놀다가 오줌을 누었다. 왕창 누었다. 바지가 옴팡 젖었다. 그런데 내 옷부터 갈아입지는 못 한다. 아기 옷부터 갈아입히고, 이불을 걷어내어 새로 깔고, 바닥을 훔치고, 이러는 동안 아기 옆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시원하게 쉬를 눈 아기한테 “잘 했구나, 잘 했어. 오줌 누니 시원하지? 시원하니까 또 웃고 놀면서 자라렴!” 하고 이야기한다. 오줌이 흥건한 기저귀와 이불을 빨래하는 곁에 아기를 누이고서 활짝 웃는 낯으로 손빨래를 새로 한다. 이러면서 노래를 끝없이 이어서 부른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언젠가 기저귀를 뗄 날까지 기저귀 빨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몇 해 동안 바지런히 남길 이 이야기는 먼먼 뒷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될 무렵, 아이한테 물려줄 즐거운 살림글로 피어나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08.8.29. 내 글쓰기



  마음에서 살아숨쉬는 이야기로 서지 않는다면 붓을 들거나 셈틀 글판을 두들길 수 없다. 머리에 환하게 그린 듯이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먼저 곰삭여 내지 않았다면 어떤 이야기도 써낼 수 없다. 찰칵찰칵 찍어 놓아야 쓰는 글이 아니다. 밑글로든 찰칵 담은 그림으로든, 아무것이 없더라도 가만히 헤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쓰는 글이다. 종이보다는 마음에 담아야 쓰는 글이다. 두툼한 책뭉치를 잔뜩 쟁이지 않더라도, 온몸으로 살아낸 살림살이를 사랑으로 녹여내었으면 얼마든지 쓰는 글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