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다락방

 


  조그마한 헌책방 하나 있습니다. 조그마한 헌책방에 책시렁 조그맣게 갖추고 조그마한 사람 하나 깃들어 조그마한 책손을 마주합니다.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릅니다. 책손이 천천히 늘고, 책이 조금씩 늡니다. 열 해가 흐르고 스무 해가 흐릅니다. 책방을 조금씩 넓히고, 책손 또한 시나브로 늘어납니다. 이제 헌책방지기는 조그마한 꿈을 하나 엽니다. 조그마한 헌책방 곁에 조그마한 다락방을 꾸밉니다. 한 해 걸려, 두 해 걸려, 세 해 네 해 차근차근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고 붙이고 세우면서 ‘헌책방 옆, 시 다락방’을 일굽니다.


  2007년 여름부터 문을 연 ‘헌책방 옆, 시 다락방’이 일곱 해째 접어듭니다. 지난 일곱 해 동안 조그마한 헌책방 조그마한 헌책방지기는 조그마한 손길로 요모조모 가꾸고 돌보면서 일합니다.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에 빛이 드리우기를 바라는 꿈을 다락방에 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에 씨앗이 자라기를 바라는 꿈을 헌책방에 얹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아름답지요. 책을 쓰는 사람도 아름답고요. 책을 짓는 사람과 책을 지키는 사람과 책을 만지는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책방지기는 책을 살리면서 아름다운 넋 됩니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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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예쁜, 의미도 큰 곳이군요.
언제 친구와 인천 아벨서점, '헌책방 옆, 시 다락방'에 즐겁게
다녀와야 겠어요.~^^

파란놀 2013-06-09 15:22   좋아요 0 | URL
이곳 시다락방 정식 이름은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이고, 말하기 좋게 '시다락방'이라고만 하는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기에, "헌책방 옆 시다락방"이 된답니다~

다달이 마지막주 토요일 낮 두 시에 시낭송회를 열어요. 언제 짬 나면 나들이를 해 보셔요~~~

카스피 2013-06-1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죠.예전에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같을적에 보니 문이 닫혀 있어서 문을 닫은줄 알았는데 계속 운영하고 있나 보네요^^

파란놀 2013-06-11 00:22   좋아요 0 | URL
일찍 닫거나 아직 안 열어서 문이 닫혔겠지요 ^^;;;
 

책아이 8. 2013.6.8.

 


  밥보다 책에 폭 빠진 아이가 자꾸자꾸 묻는다. 책에 적힌 글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 궁금해서 묻겠지. 그림으로 살피며 어떤 이야기인지 얼추 헤아리기는 하지만, 막상 글을 못 읽으니 속내를 살피지 못해 궁금할 테지. 아이한테 그림책뿐 아니라 만화책도 읽어 주어야겠다고 느낀다. 차근차근 읽어 주고, 똑똑히 읽어 주면서, 아이가 마음속으로 이야기꾸러미 일구도록 도와야겠다고 느낀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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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7. 2013.6.7.

 


  인천 큰아버지네 마실 마치고 고흥집 돌아온 큰아이, 집에서 맨 먼저 한 일은 ‘도라에몽’ 만화책 집어서 읽기. 집에 오자마자 ‘도라에몽’ 만화책 그토록 보고 싶었니? 다음에 마실 갈 적에는 ‘도라에몽’ 만화책 한 권 꼭 챙길까?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밥 차리기 힘들어, 너희들 잘 먹는 짜장면 끓였는데, 너는 짜장면 그릇도 안 쳐다보고 ‘도라에몽’ 만화책에 폭 빠졌구나.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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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14:35   좋아요 0 | URL
아유~얼마나 책이 재미있으면
짜장면을 앞에 두고도 저렇게, 책에 콕 빠져있을까요~? ^^
음, 근데 저도 짜장면 먹고 싶네요. ^^;;

파란놀 2013-06-09 15:23   좋아요 0 | URL
오늘은 즐겁게 집에서 볶아서 함께 드셔 보셔요~~

도라에몽은...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만화예요 @.@
 

[시로 읽는 책 7] 시골 흙일꾼 삶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은 모두 흙일꾼
  새내기도 헌내기도, 초보도 원로도 없이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흙 만지는 삶.

 


  시골에서 지내며 둘레를 살피면, 시골마을 어르신은 ‘나이 여든’이건 ‘나이 일흔’이건 아무렇지 않게 흙일을 합니다. 흙 만진 지 쉰 해가 넘었건 예순 해가 넘었건 이녁 스스로 ‘전문가’라든지 ‘고수’라든지 ‘원로’라고 여기지 않아요. 그저 흙일꾼(농사꾼)이에요. 이와 달리, 도시에서는 모두 전문가요 고수요 원로예요. 시를 쓰거나 기자로 일하거나 법을 다루거나 정치를 하거나 컴퓨터를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사회운동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온통 ‘-가(家)’나 ‘작가(作家)’ 같은 이름 얻으려 애써요. 스스로 ‘님’이 되어요. 기자님, 판사님, 대통령님, 간호사님, 요리사님, …… 되지요. 농사꾼더러 농부님처럼 가리키는 분이 더러 있지만, 참말 농사꾼 들은, 또 아이들 보살피며 사랑하는 살림꾼(주부) 들은, ‘님’도 ‘-가’도 ‘작가’도, 또 ‘선생님’도 바라지 않아요. 농사꾼과 살림꾼한테는 이런저런 높임말이랑 꾸밈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흙을 만지고 물을 만지며 숨결 푸르게 북돋우는 자리에 서면, 누구라도 빙그레 웃으며 가장 맑은 넋 되는구나 싶어요.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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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517) 눈물의 2 : 눈물의 아우성이요

 

진짜는, 터지는 억장으로 토해 내는 한 맺힌 절규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김수정-아기공룡 둘리 (7)》(예원,1990) 7쪽

 

  ‘토(吐)해’는 ‘뱉어’나 ‘쏟아’로 다듬습니다. ‘한(恨)’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응어리’나 ‘아픔’으로 손보면 한결 낫고, ‘절규(絶叫)’는 ‘울부짖음’이나 ‘부르짖음’으로 손봅니다. 가만히 따지면, ‘진(眞)짜는’도 그대로 둘 만한 한편, ‘참말은’으로 손볼 수 있어요. “터지는 억장(億丈)”도 “터지는 가슴”으로 손볼 만합니다. 한자말 ‘억장’은 “썩 높은 것”을 뜻한다고 해요. 관용구처럼 “억장이 무너진다”처럼 쓰는데, “가슴이 무너진다”나 “마음이 무너진다”고 쓸 수 있어요.

 

 눈물의 아우성이요
→ 눈물겨운 아우성이요
→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눈물지는 아우성이요
→ 눈물어린 아우성이요
 …

 

  슬프거나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눈물을 왈칵 쏟아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눈물바다’가 아닌 ‘눈물의 바다’처럼 말하는 분이 드물게 있습니다.


  사람들 아픔을 먹고 자란다고 하면서 ‘눈물꽃’이나 ‘눈물나무’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때에도 ‘눈물꽃-눈물나무’처럼 알맞게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사이에 토씨 ‘-의’를 넣어서 ‘눈물의 꽃-눈물의 나무’처럼 적으려고 하는 분이 꼭 있습니다.

 

 눈물바다 / 웃음바다 (o)
 눈물의 바다 / 웃음의 바다 (x)

 

 웃음이나 눈물을 학문으로 파고드는 분들은 으레 “눈물의 미학”이나 “웃음의 해학”이니 하고 읊조립니다. “아름다운 눈물”이나 “익살스러운 웃음”처럼 읊조리는 일은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말하는 학문이면서도 ‘아름다움’이 아닌 ‘美學’이라 말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리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거나 드러내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퍽 어렵습니다.


  학문과 삶은 따로따로인지, 학문은 삶에 터잡지 않아도 되는지, 학문은 삶하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삶이 없이 어떤 문화나 역사나 예술이 있을까 싶습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말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눈물의 외침입니다 (x)
 눈물로 외칩니다 (o)

 

  어쩌면, 뿌리 잃고 떠도는 모습이 우리 삶일까요. 뿌리 없이 맴도는 모습이 우리 삶인가요. 뿌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우리 삶인지요. 4341.8.10.해./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말은, 터지는 가슴으로 뱉어내는 응어리 진 울부짖음이요. 눈물나는 아우성이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9) 눈물의 4 : 눈물의 밥

 

피곤에 전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의 밥을 먹는다
 곽재구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1990) 32쪽

 

  ‘피곤(疲困)’ 같은 낱말은 스스로 쓰고 싶을 때에 씁니다. 이런 낱말 안 쓰고 싶다면, “피곤에 전”은 “고단한”으로 손봅니다.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친구”는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나 “우리 형제 우리 동무”로 손질합니다.

 

 눈물의 밥을
→ 눈물밥을
→ 눈물어린 밥을
→ 눈물 나는 밥을
→ 눈물 흘리며 밥을
→ 눈물 뚝뚝 밥을
 …

 

  말로 빚는 예술을 가리켜 시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빚는 한국예술이란 한국문학이 되겠지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눈물밥’도 ‘웃음밥’도 없어요. 그러나, 말로 빚는 예술인 시인 만큼, 시를 쓰는 우리들은 ‘눈물밥’이나 ‘웃음밥’ 같은 낱말 즐겁고 아름답게 빚을 수 있습니다.


  ‘사랑밥’이나 ‘꿈밥’ 같은 낱말 빚을 수 있어요. ‘이야기밥’이나 ‘노래밥’ 같은 낱말 일굴 수 있어요. 아름다운 생각 길어올리면서 새말 빚어요. 생각이 밥이 되어 ‘생각밥’ 되고, 마음을 살찌우기에 ‘마음밥’ 되지요. 들에서는 나락이 익어 몸을 살찌우는 밥 되고, 시를 쓰는 우리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글밥 짓습니다. 4346.6.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고단한 방석모와 방패 / 한쪽으로 치워놓고 / 우리들 형제 우리들 친구들이 / 빗속에서 눈물밥을 먹는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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