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빚기
― 설레며 찍는 사진

 


  사진을 찍는 마음 가운데 하나는 설렘입니다. 무언가 설레면서 뭉클 움직이는 마음이 될 때에 불현듯 사진기에 손을 뻗어 살그마니 단추 눌러 찰칵 소리 노랫가락처럼 일으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기 단추를 눌러 찰칵찰칵 소리를 낼 적에는, 마치 어떤 거룩한 노래가 흐르는 듯하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찍는 사진이든 남이 찍는 사진이든 똑같아요. 아이들 씩씩하게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쉬잖고 찰칵찰칵 찍을 적에는 내 사진기 찰칵 소리는 아이들 까르르 웃음소리 사이에 어우러지는 노랫가락이로구나 싶지요.


  설레니까 사진을 찍습니다. 기쁨으로 설레니까 사진을 찍습니다. 설레면서 사진을 읽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사진책 하나 장만해서 첫 쪽을 넘기기 앞서, 이야 어떤 이야기로 내 마음 콕콕 건드릴까, 하고 생각하면서 설렙니다. 기쁨으로 설레니까 사진책을 장만하고, 사진책을 선물하며, 사진책을 나눕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온통 설렘입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나한테 찾아올까 생각하며 설렙니다. 밤에 잠들며 다음날에는 또 어떤 일이 나한테 스며들까 헤아리며 설렙니다. 어제를 돌아보며, 어제는 참 이랬지 저랬지 곱씹으면서 설렙니다. 새로운 이야기 싱그럽게 설레고, 익숙한 이야기 새삼스레 설렙니다. 어쩌면, 설렘이란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요, 사랑을 바라는 마음인지 모릅니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비손하기에, 찬찬히 사진기를 붙잡아 사진 한 장 즐거이 찍는지 모릅니다.


  내 설렘을 당신한테 바칩니다. 네 설렘을 내가 고마이 받습니다. 내 설렘을 당신한테 선물합니다. 네 설렘을 반갑게 맞아들입니다.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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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1. 2013.6.10.

 


  도라에몽 만화책을 보는 누나 곁에 앉은 작은아이도 도라에몽 만화책을 손에 쥔다. 녀석들 보게나, 둘이 나란히 앉아 도라에몽 만화잔치이네. 그런데, 작은아이는 또 책을 거꾸로 펼친다. 얘야, 너 언제까지 책 거꾸로 볼 생각이니? 뭐, 네 마음이다만, 나중에 글 깨치고 그림 알아볼 무렵에는 늘 책 ‘똑바로’ 펼쳐 보겠다만.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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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3-06-14 18:12   좋아요 0 | URL
누나를 따라하고 싶었나봐요^^

파란놀 2013-06-14 21:36   좋아요 0 | URL
네, 무엇이든 따라한답니다~
 

아이들 눈길을 끄는 자리에

 


  초등학교 어린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책방 앞에 한동안 서서는 무언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발길을 돌리는데 눈길은 이 아이가 바라본 어느 책에 그대로 꽂힌다.


  아이는 어느 책을 바라보았을까. 아이는 어느 책에 눈길이 사로잡혔을까.


  아이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익히고 받아들이는 하루를 누릴까.


  아이가 지나가고 나서 내가 이 앞에 서 본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눈부신 무지개 빛깔이 내 눈을 어지럽힌다. 히유. 아이들 책을 차분한 빛깔로 꾸미기는 어려울까. 아이들 마음을 푸르게 보듬을 만한 맑고 밝은 빛깔과 무늬로 엮기는 힘들까. 번쩍거리는 무늬 아닌, 따사로우면서 아름다운 무늬로 아이들 책을 만들어, 아이도 어른도 다 함께 즐겁게 삶 읽도록 북돋우면 좋을 텐데.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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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는 책방

 


  헌책방은 으레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책숨 잇습니다. 헌책방이라는 데가 한국에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무렵 북녘에서 남녘으로 온 뒤 씩씩하게 헌책방 길장사부터 해서 가게를 차려 오늘날까지 꾸리는 분들이 아직 몇 분 계십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막 헌책방이든 동네책방이든 마을카페이든 무엇이든,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가 될 곳을 마련해서 꾸리려 할 적에,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 바로 앞에 가로세로 1미터쯤 빈터를 마련해서 나무 한 그루 심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열 해가 지나면 자그맣게 그늘이 지겠지요. 스무 해가 지나면 퍽 넓고 시원한 그늘이 이루어지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웬만한 비바람 막아 주겠지요. 마흔 해가 지나면 멀리에서도 알아볼 만큼 우람하게 자라 ‘왜 거기, 큰나무 있는 헌책방’ 하는 이름 얻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나무가 있는 헌책방’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책방문 열고 들어가기 앞서 나무부터 올려다보면서 아! 하고 한 마디 뱉겠지요. 예순 해가 지나고 일흔 해가 지나면, 나무와 함께 헌책방은 조그맣게 지역문화재가 될 테고, 널리 사랑받는 이야기마당 되리라 느껴요.


  나무가 있어 종이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어 글을 쓰고는, 글을 엮어 책을 묶어요. 책과 나무는 늘 한몸이에요. 책방과 나무는 언제나 이웃이에요. 헌책방과 나무는 노상 한마음이에요.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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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가 있는 책방, 참 좋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나무와 헌책방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을 듯 해요.
저 서점 앞의 나무는 은행나무 같은데 또 가을에는 얼마나 노랗게 아름다울까요? ^^
'가을 우체국 앞에서'처럼, ^^;;

파란놀 2013-06-14 10:05   좋아요 0 | URL
네, 가을에는 책방잔치를 하는데, 그때 낮에 노란나무 사진 찍으면,
사진을 찍는 내 마음도 설렌답니다!

oren 2013-06-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한 그루 덕분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그런 고마운 나무를 한 그루도 제대로 심고 가꾸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가끔씩 시골에 갈 때마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를 보노라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어릴 땐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하고, 신발에 흙이 묻었을 땐 가끔씩 그 신발로 나무의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그런데도 나는 널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구나. 그런데도 너는 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가만히 반겨주고 있구나 싶은...'

파란놀 2013-06-14 10:06   좋아요 0 | URL
나무는 아이들이 놀아 줄 때에 아주 좋아해요.
그러면서 가만히 말을 마음으로 건네지요.

oren 님은 어릴 적에 나무한테서 좋은 기운
많이 받아들여서 오늘 하루도
즐겁게 살아가시는구나 싶습니다 ^^
 
적막 창비시선 256
박남준 지음 / 창비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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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안고 노래한다
[시를 노래하는 시 49] 박남준, 《적막》

 


- 책이름 : 적막
- 글 : 박남준
- 펴낸곳 : 창비 (2005.12.7.)
- 책값 : 8000원

 


  나무를 살포시 안으면 스스럼없이 노래가 나옵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나무 곁에 서면 됩니다. 아름다운 노래 한 가락 짓고 싶으면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내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나무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를 가만히 쓰다듬으면 시나브로 시가 나옵니다. 시를 쓰고 싶으면 숲속에서 살아가거나 숲 곁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고운 시 한 줄 쓰고 싶으면 천 평이든 오천 평이든 시골자락 땅뙈기를 마련해서 해마다 나무를 씨앗으로 한 톨 두 톨 심으면 됩니다. 다섯 해 지나고 열 해 지나면 빈 땅뙈기에 푸른 물결 넘실거리겠지요. 푸른 물결이 일으키는 바람을 마시면 마음속에서 저절로 시가 샘솟겠지요.


.. 한때 밭둑을 이루었을 키 작은 돌담의 경계들과 / 죽은 나무의 잔재들 저만큼에 실개천을 가로지르는 / 그 다리, 저문 하루의 일손을 놓고 집으로 돌아가며 / 발목을 적시지 않고 건넜을 앉은뱅이 다리 하나 ..  (쓰러질 수 없는 다리)


  아이를 포근히 안으면 따스한 기운 번집니다. 내 기운이 아이한테 번지고, 아이 기운이 나한테 번집니다. 포근히 안으니 따스한 기운입니다. 살며시 안으면 살가운 기운입니다. 너그러이 안으면 넉넉한 기운입니다. 즐거이 안아 활짝 웃는 기운입니다.


  아이한테 해 줄 일이란 딱 한 가지, 사랑입니다. 아이한테서 받을 것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돌봅니다. 아이는 어버이를 사랑스레 바라보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부릅니다.


  고개를 돌려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한테 사랑스러운 눈길 보냅니다. 이윽고 나무도 나한테 사랑스러운 손길 뻗습니다. 살포시 드리우는 푸른 그늘로 나를 부릅니다. 푸른 잎사귀를 만지도록 이끕니다. 푸른 내음을 마시면서 푸른 생각 빛내도록 나를 잡아당깁니다.


  여름비 똑똑 떨어지는 유월 아침에 작은아이 안고 마당에 내려서며 후박나무 그늘로 갑니다. 후박잎에 내려앉은 빗방울 하나 또르르 굴러 내 콧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코로 킁킁 빗물 하나 들이켭니다. 내 콧속에 깃든 찌꺼기 있으면 이 빗물로 씻기를 마음속으로 빕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내 코는 늘 갑갑하고 막혔습니다. 인천이라는 도시를 떠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일하고 지내는 동안 내 코는 언제나 답답하고 맹맹거렸습니다. 인천도 서울도 떠나 시골자락에 깃들어 살아가며 내 코가 막힌 적 없었다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바람이 내 코를 다스리고, 물이 내 몸을 간질입니다. 바람이 내 코를 틔우고, 물이 내 마음을 쓰다듬습니다.


.. 나 언젠가 쓰러져 거름으로 돌아가고 / 그 자리 흰나비 한 마리 날아오르고 ..  (나비가 날아간 자리)


  흙은 빗물을 받아 촉촉합니다. 풀은 빗물로 잎 씻으며 한결 푸릅니다. 그러면, 우리들 사람도 빗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닦을 때에 그예 촉촉하면서 푸른 살결 될까요. 수도물 아닌 빗물을 헤아리고, 플라스틱병에 담긴 먹는샘물 아닌 시냇물 살피면, 이 나라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몸이 안 아프고 머리가 안 어지러우며 마음이 안 힘들 수 있을까요.


  빗물을 머금는 흙은 풀과 나무를 살찌웁니다. 풀은 빗물 머금은 흙과 함께 살아가며 푸른 숨결 건사합니다. 사람은 풀을 뜯어서 먹으며 배를 채웁니다. 곧, 사람은 흙과 빗물 먹는 셈입니다. 풀 먹는 고기, 이를테면 소를 잡아서 먹는다 할 적에도 흙과 풀과 빗물을 먹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살아가며 가장 정갈하게 지켜야 할 한 가지를 꼽자면, 흙을 지켜야 합니다. 흙이 흙답고, 흙이 풀을 얼싸안으며, 흙이 나무를 북돋우고, 흙이 사람들 살림집을 이루도록 해야지 싶어요.


  흙집에서 살아야지요. 흙밥을 먹어야지요. 흙일을 해야지요. 흙노래를 부르고, 흙글을 쓰며, 흙그림을 그려야지요.


.. 아들의 밥그릇 다 비워지도록 / 아버지의 밥그릇 그대로 남네 / 제가 좀 덜어 먹을게요 / 얘야 한 번은 정이 없단다 / 한 술 두 술 세 숟갈 ..  (학생부군과의 밥상)


  비오는 유월 여름 아침은 조용합니다. 빗소리만 감돕니다. 멧새도 들새도 빗방울에 몸 적시지 않으려는 듯, 어디에선가 비를 그으며 가만히 쉬는구나 싶습니다. 밤새 신나게 노래하던 개구리도 아침에는 코코 잡니다. 개구리 잡아먹는 뱀도 잠자리에 들까요. 도룡뇽은, 가재는, 민물새우는, 미꾸라지는, 모두들 어떤 유월 여름 아침 맞이할까요.


  딱정벌레가 풀줄기를 타고 오릅니다. 거미줄에 빗방울 아롱아롱 무늬집니다. 빗속을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갑니다. 잠자리도 어딘가에서 날개를 말리겠지요. 파리와 모기도 비 안 맞는 데를 살펴 찰싹 달라붙으며 다리쉼 하겠지요.


  퍼뜩 멧새 한 마리 포롱 날아와 노래를 남깁니다. 우리 집 뒤꼍 감나무에 앉았나, 뽕나무에 앉았나, 이웃집 옻나무에 앉았나, 어느 나무에 앉았으려나.


  조그마한 새는 조그마한 나무에도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새는 조그마한 나무 조그마한 나뭇가지에도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작은 새한테는 작은 나무가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작은 새한테는 작은 꽃과 작은 열매가 고마운 밥입니다. 작은 새한테는 작은 시골과 작은 숲이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 새떼들이 돌아오지 않는 하늘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 그 땅은 버려진 땅, 버림받은 하늘이다 / 무섭고도 끔찍하다 을숙도의 하늘에는 ..  (을숙도 그 옛날 영화)


  그리 멀지 않던 옛날, 이렇게 비 내리는 유월 여름에, 멧골짝 범은 어떤 하루를 누렸을까 떠올려 봅니다. 멧골짝 곰은, 멧골짝 여우와 늑대는, 멧골짝 토끼와 사슴과 노루는, 저마다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그려 봅니다.


  이제 이 땅에서 거의 사라지거나 죽고 만 짐승들인데, 고작 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모두들 이 땅에서 아름답게 어우러져 살아갔어요. 백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이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범이며 곰이며 여우며 늑대며 토끼며 사슴이며 노루며, 숲에 깃들어 시골사람과 시골벗 되어 살아왔어요.


  아마 그때에는 풀과 나무도 오늘날보다 가짓수 훨씬 많았겠지요. 온 마을은 풀밭이었을 테고, 나무숲이었겠지요. 고을마다 사람들 알맞춤한 숫자로 어깨동무했을 테고, 쓰레기란 하나 나올 수 없이, 흙빛 얼굴과 흙빛 손발 되어 흙빛 사랑 나누며 살았겠지요.


.. 쥐가 몸을 바꿔 거듭난 앵두 / 앵두는 쥐를 먹고 나는 앵두를 먹고 / 앵두를 먹으며 생각해봐야겠네 / 내 몸에 들어와 나를 이루는 것들 ..  (쥐와 앵두가 묻기를)


  박남준 님 시집 《적막》(창비,2005)을 읽습니다. 박남준 님 시집은 나무그늘에서 읽어야 제맛이 나겠다고 느낍니다. 나무숲에 깃들어 읽어도 참맛 느끼겠구나 싶어요. 곁에 나무가 없다면, 둘레에 아파트와 시멘트와 자동차만 있다면, 마음속으로 나무를 떠올리며 읽을 때에 글맛 누리겠다고 봅니다.


  나무가 없으면 조용합니다. 나무가 없으면 새도 벌레도 나비도 개구리도 뱀도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람도 못 살아요. 오늘날 도시에는 나무가 제대로 없어도 ‘여 보라구, 나무 없어도 다 잘 살잖아?’ 할는지 모르는데요, 도시에 나무가 없어도, 도시를 둘러싼 시골에 나무가 있으니, 도시사람이 목숨을 버틸 수 있어요. 도시를 둘러싼 시골에 나무가 없을 때를 생각해 봐요. 그러면, 도시는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하게 메마른 사막 되어 모두 죽고 말아요.


  그러나, 나무가 없다고 꼭 조용하지는 않다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무가 없으면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소리’가 죽어버려서 조용하지만, ‘목숨 없는 기계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해요. 자동차가 시끄럽고, 가게 스피커가 시끄럽습니다. 손전화가 시끄럽고 컴퓨터가 시끄럽습니다. 기자들이 시끄럽고 학자들이 시끄러우며, 정치꾼과 공무원이 시끄럽습니다.


.. 사과나무라면 사과꽃을 피우겠네 / 감나무라면 홍시를 꽃등처럼 내달겠지 / 고운 꽃의 향기라면 바람 불러모아 구석구석 나누겠네 / 가지마다 익어간 열매들로 어느 가난한 아이의 배를 채우겠네 ..  (삼월 눈 속에 차를 마시다)


  사람들은 으레 ‘국회의원 없어야 나라가 평화롭고 살 만하다’ 하고 말합니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보탭니다. ‘국회의원에다가 공무원까지 함께 없어야, 또 경찰과 군인이 나란히 없어야, 또 의사와 판사와 변호사가 같이 없어야, 또 노동자까지 아울러 없어야 나라가 평화롭고 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1850년대에 공무원 없었어요. 1750년대에 국회의원이든 누구이든 없었어요. 1050년대에 의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따로 없어도 즐겁게 살았어요. 서기 50년에 기원전 500년에, 단군이 왔다고 하는 4336년 앞서, 경찰이든 군인이든, 그리고 노동자조차 없이 모두 즐겁게 어깨동무했어요.


  참말 노동자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을 팔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흙 품에 안겨서 흙과 풀과 나무를 만지며 밥과 옷과 집을 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월급쟁이에 얽매인 굴레가 아니라, 숲에 깃들어 숲을 노래하고 사랑하면서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도시에서는 ‘노동자’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르지만, 도시에서도 텃밭을 일구고 가꾸며 돌보면 돼요. 톱니바퀴 되는 노동자 아니라, 도시와 제도권과 경제와 정치와 학교와 스포츠 모두 훌훌 내려놓고, 내 땅에서 내 삶을 내 손으로 가꾸면서, 흙맛 햇살맛 바람맛 물맛 누리는 아름다운 하루 갈무리해야지 싶어요.


  모두 시인이 되어야지요. 모두 하느님이 되어야지요. 모두 노래꾼이 되어야지요. 모두 일꾼 되고 놀이동무 되면서 예쁜 ‘사람’으로 삶을 살찌워야지요.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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