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있는 책방
헌책방은 으레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책숨 잇습니다. 헌책방이라는 데가 한국에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무렵 북녘에서 남녘으로 온 뒤 씩씩하게 헌책방 길장사부터 해서 가게를 차려 오늘날까지 꾸리는 분들이 아직 몇 분 계십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막 헌책방이든 동네책방이든 마을카페이든 무엇이든,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가 될 곳을 마련해서 꾸리려 할 적에,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 바로 앞에 가로세로 1미터쯤 빈터를 마련해서 나무 한 그루 심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열 해가 지나면 자그맣게 그늘이 지겠지요. 스무 해가 지나면 퍽 넓고 시원한 그늘이 이루어지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웬만한 비바람 막아 주겠지요. 마흔 해가 지나면 멀리에서도 알아볼 만큼 우람하게 자라 ‘왜 거기, 큰나무 있는 헌책방’ 하는 이름 얻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나무가 있는 헌책방’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책방문 열고 들어가기 앞서 나무부터 올려다보면서 아! 하고 한 마디 뱉겠지요. 예순 해가 지나고 일흔 해가 지나면, 나무와 함께 헌책방은 조그맣게 지역문화재가 될 테고, 널리 사랑받는 이야기마당 되리라 느껴요.
나무가 있어 종이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어 글을 쓰고는, 글을 엮어 책을 묶어요. 책과 나무는 늘 한몸이에요. 책방과 나무는 언제나 이웃이에요. 헌책방과 나무는 노상 한마음이에요.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