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3.6.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름 내내 들딸기밭은 붉게 물든다. 비가 멎은 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으로 가서 들딸기밭을 휘 돈다. 도서관을 한결 보기좋게 손보려면 할 일이 많지만, 여름날에는 아이들 먹일 들딸기 따느라 바쁘다. 한두 시간쯤 가볍게 들딸기 따면서 보낸다.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논다. 누나가 빨간가방 등에 메자, 작은아이는 탬버린가방을 가로질러 멘다. 자동차 거의 안 다니는 찻길을 걱정없이 달리고 뛰고 걷는다. 도서관 어귀에 이웃마을 어느 집에서 마늘을 잔뜩 깔아 놓았다. 도서관 들어갈 길목을 다 막는다. 우리 식구들이 이 폐교 건물에 책을 두는 줄 뻔히 다 알 텐데, 왜 이렇게 마늘을 죽 깔았을까. 저 옆으로 깔아도 되고, 이쪽 아닌 건너편에 깔아도 된다. 다른 사람 집 대문 앞에 마늘을 깔 수 있겠나.


  도서관 창문을 열다가 풀개구리 한 마리 본다. 창틀에 바싹 붙어서 쉰다. 너희한테도 이곳이 좋은 삶터가 될 테지. 풀밭에서 놀고, 건물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마. 우리 몰래 들어왔다가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면 문이 모두 닫혀 네가 나가지 못한단다. 알지?


  여름햇살 눈부시다. 여름햇살 뜨겁다. 나무그늘 없다면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타죽겠다. 옛사람들 집을 지으며 지붕에 흙을 그토록 많이 얹는 까닭 알 만하다. 지붕에 흙을 두껍게 덮어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겠구나. 오늘날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빼곡하게 긁어모으느라(?) 시멘트와 쇠붙이를 써서 딱딱하게 층을 가르는 집을 세울 수밖에 없을 텐데, 시멘트와 쇠붙이를 써서 짓는 집이란 더위와 추위 모두 견디지 못한다. 그저 더 많은 사람 때려넣으려고 짓는 시멘트집이라고 느낀다. 다시 말하자면, 아파트나 빌라처럼 시멘트로 때려짓는 집이란, 사람 살 데가 못 되는구나 싶다. 도시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바닥과 벽과 지붕을 흙으로 다져야지 싶다. 누구나 어디에서라도 흙집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비로소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즐겁게 나리라 느낀다.


  흙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흙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사람을 살리는 흙이고, 사람이 다시 북돋우는 흙이다. 책 한 권이 있다면, 이 책은 바로 흙을 이야기할 때에 빛이 나겠지. 아니, 모든 책은 흙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흙을 아낄 수 있어야 하며, 흙을 사랑할 수 있어야겠지.


  흙내 나는 책이 살갑다. 흙빛 감도는 책이 반갑다. 여름날 도서관에서 아이들한테 들딸기 따서 먹이며 흙책을 떠올린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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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저도 벼리와 보라랑 함께 저 길을 시원하니 달려가
'여름 도서관'에서 빨간 들딸기도 먹고 재밌게 놀고 싶네요.
언제 놀러 갈 기회가 있겠지요.~? ^^

파란놀 2013-06-15 14:33   좋아요 0 | URL
좋은 날씨에 좋은 날 잡으셔서
나들이 하실 수 있으리라 믿어요~
 

글쓰기와 글읽기

 


  동시쓰기를 다룬 책 하나 읽으며 깨닫는다. 동시를 쓰거나 어른시를 쓰거나 산문을 쓰거나 소설을 쓰거나 편지를 쓰거나, 아무튼 글을 쓸 때에는 ‘쓸거리’가 있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에는 글로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쓴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 도란도란 입으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글이란 마음속에 품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뜻에서 쓴다.


  이야기 있는 사람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이 말을 듣고 글을 읽는다. 이야기 들려주고 싶으니 말을 하며 글을 쓴다.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이 강의를 찾아서 듣고 책을 찾아서 읽는다.


  ‘쓸거리’를 억지로 쥐어짜면 글 또한 억지스럽기 마련이다. ‘말할거리’를 억지로 쥐어짜면 말 또한 억지스러울밖에 없다. 이야기가 샘솟지 않는다면 말을 말아야 하고 글을 안 써야 옳다. 이야기가 샘솟을 때에 즐겁게 말을 하고 글을 써야 아름답다.


  교수나 교사라 해서 늘 말을 술술 풀어내야 하지 않다. 작가나 기자라 해서 늘 글을 꾸준하게 써내야 하지 않다. 할 이야기가 있을 때에 말을 하고 글을 써야 옳다. 4346.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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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2. 2013.6.13.

 


  큰아이가 마룻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다. 여름이니 마룻바닥이 가장 시원하다. 마당에서 놀면 햇볕이 뜨겁다. 방은 살짝 어둡다. 마루라는 데는 드러누워 쉬기에도 좋고, 책을 펼쳐 읽기에도 좋다. 큰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마룻바닥에 붙은 스티커들 깨닫는다. 큰아이가 ‘예쁘라’고 붙였기에 그대로 두는 스티커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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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8. 2013.2.19.

 


  긴 겨울 마치고 고흥 시골마을에 봄기운 물들던 날, 꽃밭에서 막 돋은 돗나물 뜯어서 달걀말이를 한다. 아이들은 달걀 가운데에는 삶은달걀 가장 좋아하고, 다음으로는 달걀말이. 삶은달걀은 달걀만 먹지만, 달걀말이에는 풀을 송송 썰어서 섞는다. 싱그러운 봄맛이 살며시 스민다. 봄에는 모든 밥이 풀밥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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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5 12:30   좋아요 0 | URL
앗, 계란말이!
오 돗나물 넣어서도 계란말이를 하시는군요.
저도 오늘 저녁에 한 번 돗나물 계란말이, 해봐야 겠어요.~
차리신 밥상이 참 맛나보여요. 갑자기 급 허기가 져서 점심 먹어야겠네요. ^^;;;

파란놀 2013-06-15 14:3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아무 풀이나 다 넣는답니다. 부추도 넣고 민들레도 넣고 모시풀도 넣고~ 그냥 가까이 있는 풀은 다 넣어요. 때로는 쑥도 뜯어서 넣고요~
 

꽃밥 먹자 7. 2013.6.13.

 


  달걀을 삶는다. 우리 아이들은 달걀부침을 하면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삶은달걀만 달걀로 알고, 달걀부침은 달걀로 알지 않는다. 게다가 볶음밥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 볶음밥을 하며 달걀을 풀면 ‘달걀을 쓴 줄’ 하나도 모른다. 아무튼 달걀을 삶으면 큰아이는 저 스스로 까고 싶다 말한다. 뜨거운데 괜찮겠니? 기다려. 식혀서 줄 테니. 두 살이었나 세 살 적부터 달걀까기를 한 큰아이는 찬찬히 깐다. 얼른 먹고 싶은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 붙어 앉아서 덥석덥석 벗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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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15 05:55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삶은 달걀만 달걀 원래의 모양을 하고 있군요. 달걀부침이나 볶음밥 속에 들어간 달걀은 이미 그 모양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의 눈이란 참 정직하고 순수해요.

파란놀 2013-06-15 07:16   좋아요 0 | URL
다 녹아들었다 말해도... '달걀이 아니라'고 하니...
그 말이 맞기도 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