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헌책방

 


  책은 불도 싫어하고 물도 싫어합니다. 책은 따스함과 시원함은 좋아하지만, 불과 물은 반기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책이 된 나무도 흙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갈 적에 숲에 불이 나거나 큰물이 지면 달갑지 않아요.


  들풀도, 벌레도, 사람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불을 여러모로 살려서 문명과 문화를 일구는 사람이라 하지만, 불길 치솟는 전쟁과 싸움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가뭄이 들거나 큰물이 질 때면 사람들 삶터 또한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냇바닥을 시멘트로 바꾸고 냇둑 또한 시멘트로 높이 쌓는 일이 사람들 삶터를 지키지 않아요. 시멘트 울타리 세우는 댐에 물을 가두어 시멘트관으로 물줄기 이어 도시를 먹여살리려 한대서 사람들 삶터를 살찌우지 못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숲을 살찌우고 사람을 살찌웁니다. 맑게 흐르고, 구비구비 흐르는 물줄기가 흙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지요.


  비가 내리는 날 헌책방골목은 빗물에 젖습니다. 헌책방골목 길바닥은 깔끔한 돌로 바꾸었으나, 지붕은 따로 없어, 비 내리는 날이면 가게마다 해가리개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잇습니다. 해가리개 사이사이 빗물이 흐르고, 빗물이 길바닥에 덜 튀도록 양동이를 댑니다. 빗물이 덜 튀어야 책이 덜 다치겠지요. 비 내리는 날에는 하는 수 없이 비닐로 책을 덮고, 비닐로 책을 덮으면 책이 잘 안 보이며, 책이 잘 안 보인대서 비닐을 함부로 걷으면 책들이 빗물에 젖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으면 골마루가 책더미에 쌓여 드나들기 어렵습니다. 헌책방은 책을 들이고 내놓는 품을 들이면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비가 안 오면 시골마을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책을 걱정합니다.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하는 책손은 어느 곳에서 발걸음 멈추고 우산을 끌까요.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누리는 책손은 어느 책 하나 살포시 가슴에 안으며 빗물내음과 함께 책내음을 마실까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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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9. 2013.6.24.

 


  혼자서 젓가락질 씩씩하게 잘 할 줄 아는 산들보라는 혼자서 책을 쩍쩍 펼칠 줄 안다. 그런데 아직 책읽기를 한다기보다 책놀이만 하는 터라, 으레 거꾸로 쥐어서 펼친다. 책을 들여다보는 재미보다는 책을 손에 쥐어 휘리릭 펼치는 놀이를 좋아한다. 혼자서 책 거꾸로 쥐며 놀면서 빙그레 웃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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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 책 (도서관일기 2013.6.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나한테도 더는 없는 ‘두꺼운 책’을 얻었다. ‘두꺼운 책’을 얻은 값을 곧 부쳐야 할 텐데, 이달에는 못 부칠 듯하고, 다음달에는 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책 기쁘게 보내 주신 분한테 마땅히 책값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책값 치를 만한 글삯벌이 곧 들어오리라 믿는다.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음주에 《이오덕 일기》 예쁜 판으로 나온다고 연락해 준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참 오래 걸렸다. 내가 이오덕 선생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던 2006년부터 《이오덕 일기》를 내놓으려고 하다가 어영부영 한 해 두 해 흘렀고, 2011년부터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시금 힘을 그러모아 애쓴 끝에 비로소 빛을 본다. 책이 나오기 앞서 만든 가제본은 도서관으로 옮겨놓는다. 다음주에 선보일 고운 옷 입은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은 어떤 모습일까. 그 책들을 받으면, 한 권씩 느낌글을 모두 쓸 생각이다. 느낌글 다섯 꼭지를 다 쓰고 나면, 이 책들도 도서관으로 옮겨놓을 수 있겠지. 책시렁 한 칸 비워야겠다.


  내 ‘두꺼운 책’ 꽂을 책시렁도 비운다. 이 ‘두꺼운 책’은 두께만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이야기와 알맹이도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궁금하다. 새책방에서는 진작에 다 팔리고 출판사에도 남은 책이 없다 했으니, 이럭저럭 이야기와 알맹이 깃든 책이었을까. 2쇄를 찍지 못한 채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졌으니, 이번에 얻은 이 책들 아니고는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선물하거나 빌려줄 수 없다. 이 ‘두꺼운 책’ 2000권은 어떤 2000 사람 손길을 거쳐 어느 자리로 갔을까. 저마다 어떤 마음밥 구실을 하려나.


  도서관 둘레 들딸기를 따서 아이들 먹이려 했더니, 이웃마을 누군가 조그마한 알맹이까지 모조리 훑었다. 뽕나무에 맺힌 오디까지 샅샅이 훑었다. 어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 낮밥으로 들딸기랑 오디를 먹이려 했는데, 이만저만 아이들이 서운해 하지 않는다. 미안하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새밥 지어 차릴게. 오늘은 도서관 일 하지 말고 집으로 가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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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6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 정말 좋습니다. ^^
어느 사람이 그렇게 욕심 사납게 그렇게 들딸기와 오디까지 싹 다 따갔을까요...
그렇게,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하시던 전우익 선생님의 책 제목이 떠오르는
아침이네요. 벼리와 보라가 서운해하는 마음이 표정에 다 나와 있군요.. 에궁..

파란놀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아마 장날에 내다 팔 생각이었든지,
술을 담그려고 했겠지요...

분꽃 2013-08-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책방에서 보낸 1년" 이 책을 읽고 제가 종규님을 알게 되었네요.
알라딘에서 이책을 보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두꺼은 책을 썼을까?' 놀랐고,
또 '이 책을 낸 출판사도 참말 대단하다' 하고 두 번 놀랐네요.
종규님을 알게 된 고마운 책입니다~
 


 곰팡이떡 된 대형사진 (도서관일기 2013.6.2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바야흐로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서재도서관 들어서는 길은 풀숲이 된다. 아직 그리 키 높이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키로 살피면 제법 우거진다. 이 풀들 조금은 베어서 길을 터야겠지만, 한동안 그냥 둘까 싶기도 하다. 나는 풀이 우거져도 벨 마음이 없다. 풀이 우거지도록 두고 싶으며, 사람이 지나갈 자리만 조금 베거나 뽑으면 된다고 느낀다. 아니, 사람이 지나갈 자리조차 풀을 안 베고 슥슥 밟고 지나가도 된다. 어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만 한 풀숲은 스스로 씩씩하게 헤치면서 다니도록 해 주고 싶다. 그야말로 아무것 아닌 풀숲인걸. 풀잎을 느끼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자랄 때에 ‘풀아이’가 되지 않겠는가.


  더운 여름에 비가 잦으니 도서관에 후덥지근한 기운이 감돈다. 얼른 창문부터 연다. 엊그제 제법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비는 그닥 새지 않았다. 그런데 큰 포스터 건사하는 큰 종이가방 아래쪽에 곰팡이가 피었다. 아니, 언제 여기에 이런 곰팡이가 피었지? 깜짝 놀라 안에 든 포스터를 꺼낸다. 2004년 무렵에 30인치 크기로 목돈 들여 만든 사진 스무 장 남짓 떡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진다. 하이고, 이 사진들 값이 얼마인데. 수십만 원이 한꺼번에 날아가네. 포스터는 어떤가 하고 살피니, 포스터 있는 자리까지 곰팡이와 물기가 스미지 못했다. 비싼 사진들이 떡이 되면서 포스터는 지킨 듯하다.


  떡이 된 사진을 떼려다가 그만둔다. 필름으로 뽑은 마지막 대형사진이라 다시는 이 사진을 만들 수 없다. 이 사진을 다시 만들자면 이제는 수백만 원이 든다. 그나마 사진은 어찌저찌 다시 만들 수 있겠지. 외려 포스터는 다시 얻을 수 없잖은가. 행사 포스터, 광고 포스터, 2002년 월드컵을 하면서 신문사에서 길에 뿌린 축구선수 포스터, 재개발 철거하는 동네에 나붙은 포스터, 사진전시회 포스터, …… 그야말로 온갖 포스터를 열 해 남짓 그러모았는데, 이 포스터를 곰팡이와 물기에서 건졌으니 고맙다 여겨야지 싶다.


  건지기는 했으나 포스터에도 곰팡이 기운 조금씩 올라오려 한다. 마른 물수건으로 곰팡이를 턴다. 2004년부터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골목책잔치 하며 붙인 포스터를 본다. 이 포스터 다치면 안 되지. 2004년에 부산 보수동에서 사진잔치 벌이며 쓴 포스터도 보고, 황새울 사진전시회 포스터도 본다. 2005년치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시회 포스터를 본다. ‘조아세’에서 2004년치 달력으로 만들었던 ‘친일신문 조선일보’ 알리는 자료를 본다. 어느새 열 살 묵은 이런 달력도 포스터와 함께 건사했었네.


  그나저나 커다란 포스터는 어떻게 두어야 좋을까. 넓은 책상에 포스터를 올려놓고 누구나 손으로 만져서 살피도록 하면 될까. 나이 먹은 포스터에 테이프를 발라 벽에 붙일 수는 없고, 하나하나 비닐을 씌우려 한대도 커다란 비닐 얻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고. 앞으로 열 해쯤 더 묵혀 ‘포스터 나이 스무 살’쯤 될 때에 사람들 앞에 선보일까. 아무튼 이 포스터 잘 건사하는 길도 생각해야겠다.


  오늘도 사진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인천에서 동시 쓰는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부쳐 준 누런봉투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손글씨 봉투를 붙이니 보기 좋네, 하고 혼자서 생각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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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6-2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불, 그리고 책벌레는 책보존에 치명적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본 영화에서는 고서 희귀본을 모아놓는 방은 습도와 온도거 조절되는 밀실이더군요.ㅎㅎ 고생하시네요.

파란놀 2013-06-26 09:3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만큼 넉넉한 데에
이럭저럭 책을 두었으니
앞으로 잘 돌보면서 건사해야지요~
 

산들보라 언제나 누나 곁에

 


  누나가 집에서 놀면 집에서 놀다가, 아버지가 마당으로 내려오면 슬쩍 아버지를 따라와서 놀고, 누나가 마당으로 내려오면 다시 누나 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면서 논다. 누나가 신을 꿰면 저도 신을 꿰고, 누나가 맨발이면 저도 맨발이다. 누나가 물총을 들면 저도 물총을 들어야 하고, 모든 몸짓 말짓 누나 따라쟁이 되어 논다.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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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6 07:56   좋아요 0 | URL
맨발에 가방을 멘 보라.. ㅎㅎ
그래서 벼리가 보라를 더 잘 챙겨주나 봅니다.^^
참으로 어여쁜 오누이에요.~

파란놀 2013-06-26 09:33   좋아요 0 | URL
언제나 둘이 사이좋게 잘 놀아서 예쁘고 고맙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