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떡 된 대형사진 (도서관일기 2013.6.2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바야흐로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서재도서관 들어서는 길은 풀숲이 된다. 아직 그리 키 높이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키로 살피면 제법 우거진다. 이 풀들 조금은 베어서 길을 터야겠지만, 한동안 그냥 둘까 싶기도 하다. 나는 풀이 우거져도 벨 마음이 없다. 풀이 우거지도록 두고 싶으며, 사람이 지나갈 자리만 조금 베거나 뽑으면 된다고 느낀다. 아니, 사람이 지나갈 자리조차 풀을 안 베고 슥슥 밟고 지나가도 된다. 어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만 한 풀숲은 스스로 씩씩하게 헤치면서 다니도록 해 주고 싶다. 그야말로 아무것 아닌 풀숲인걸. 풀잎을 느끼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자랄 때에 ‘풀아이’가 되지 않겠는가.


  더운 여름에 비가 잦으니 도서관에 후덥지근한 기운이 감돈다. 얼른 창문부터 연다. 엊그제 제법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비는 그닥 새지 않았다. 그런데 큰 포스터 건사하는 큰 종이가방 아래쪽에 곰팡이가 피었다. 아니, 언제 여기에 이런 곰팡이가 피었지? 깜짝 놀라 안에 든 포스터를 꺼낸다. 2004년 무렵에 30인치 크기로 목돈 들여 만든 사진 스무 장 남짓 떡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진다. 하이고, 이 사진들 값이 얼마인데. 수십만 원이 한꺼번에 날아가네. 포스터는 어떤가 하고 살피니, 포스터 있는 자리까지 곰팡이와 물기가 스미지 못했다. 비싼 사진들이 떡이 되면서 포스터는 지킨 듯하다.


  떡이 된 사진을 떼려다가 그만둔다. 필름으로 뽑은 마지막 대형사진이라 다시는 이 사진을 만들 수 없다. 이 사진을 다시 만들자면 이제는 수백만 원이 든다. 그나마 사진은 어찌저찌 다시 만들 수 있겠지. 외려 포스터는 다시 얻을 수 없잖은가. 행사 포스터, 광고 포스터, 2002년 월드컵을 하면서 신문사에서 길에 뿌린 축구선수 포스터, 재개발 철거하는 동네에 나붙은 포스터, 사진전시회 포스터, …… 그야말로 온갖 포스터를 열 해 남짓 그러모았는데, 이 포스터를 곰팡이와 물기에서 건졌으니 고맙다 여겨야지 싶다.


  건지기는 했으나 포스터에도 곰팡이 기운 조금씩 올라오려 한다. 마른 물수건으로 곰팡이를 턴다. 2004년부터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골목책잔치 하며 붙인 포스터를 본다. 이 포스터 다치면 안 되지. 2004년에 부산 보수동에서 사진잔치 벌이며 쓴 포스터도 보고, 황새울 사진전시회 포스터도 본다. 2005년치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시회 포스터를 본다. ‘조아세’에서 2004년치 달력으로 만들었던 ‘친일신문 조선일보’ 알리는 자료를 본다. 어느새 열 살 묵은 이런 달력도 포스터와 함께 건사했었네.


  그나저나 커다란 포스터는 어떻게 두어야 좋을까. 넓은 책상에 포스터를 올려놓고 누구나 손으로 만져서 살피도록 하면 될까. 나이 먹은 포스터에 테이프를 발라 벽에 붙일 수는 없고, 하나하나 비닐을 씌우려 한대도 커다란 비닐 얻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고. 앞으로 열 해쯤 더 묵혀 ‘포스터 나이 스무 살’쯤 될 때에 사람들 앞에 선보일까. 아무튼 이 포스터 잘 건사하는 길도 생각해야겠다.


  오늘도 사진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인천에서 동시 쓰는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부쳐 준 누런봉투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손글씨 봉투를 붙이니 보기 좋네, 하고 혼자서 생각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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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6-2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불, 그리고 책벌레는 책보존에 치명적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본 영화에서는 고서 희귀본을 모아놓는 방은 습도와 온도거 조절되는 밀실이더군요.ㅎㅎ 고생하시네요.

숲노래 2013-06-26 09:3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만큼 넉넉한 데에
이럭저럭 책을 두었으니
앞으로 잘 돌보면서 건사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