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도 앞으로 달린다



  아버지가 앞으로 달려나오니 두 아이가 아버지를 앞지르려고 애쓴다. 사름벼리는 어느새 앞으로 확 달려나온다. 아버지만큼 달리지 못하는데다가, 누나까지 제 옆에서 안 달리고 앞으로 치고 나오니 산들보라는 아주 우는 얼굴이 된다. 괜찮아. 우리는 고작 5미터만 이렇게 달렸어. 앞으로는 너희가 앞으로 나가렴.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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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가 앞에 가겠어



  언제나 앞장서겠다고 하는 산들보라를 제치고 아버지가 앞으로 가니, 산들보라가 잔뜩 찡그린다. 왜? 왜? 왜 너만 앞장서서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늘 너희 궁둥이만 보면서 다녀야겠니? 아버지가 한 번 앞장선다고 그렇게 찡그려야 하겠니?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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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0) 성미의 1


일을 눈앞에 두고 편히 쉬지 못하는 성미의 목수지만 이런 계절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108쪽


  편히 쉬지 못하는 성미의 목수

→ 느긋이 쉬지 못하는 목수

→ 가만히 쉬지 못하는 목수

 …



  이 보기글에서는 “쉬지 못하는 성미‘인’ 목수”처럼 적으면 됩니다. 한자말 ‘성미’를 쓰고 싶다면, 토씨를 ‘-인’으로 붙여야 알맞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에서는 ‘성미’를 굳이 안 넣으면서 이야기를 풉니다. “쉬지 못하는 성미인 목수”라 하지 않고 “쉬지 못하는 목수”라 적으면, 목수가 ‘어떤 성미’인지 고스란히 드러나요.


  “너는 참 서두르는구나”나 “너는 참 까다롭구나”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됩니다. “너는 참 서두르는 성미로구나”나 “너는 참 까다로운 성미로구나”처럼 말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 예부터 한국사람은 이렇게 말을 하며 살았습니다.


  “네 성미가 참 고약하구나”처럼 말을 할 수 있지만, 예부터 한국사람은 “너 참 고약하구나”라든지 “참 고약하구나”처럼 말을 하며 살았어요. ‘성미’와 비슷한 다른 한자말 ‘성격·성향’도 굳이 안 넣으면서 말을 하는 한국사람입니다. 4347.10.2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일을 눈앞에 두고 느긋이 쉬지 못하는 목수지만 이런 철엔 달리 어찌할 길이 없었다


‘편(便)히’는 ‘느긋이’나 ‘가만히’로 손보고, ‘계절(季節)’은 ‘철’로 손보며, “방도(方道)가 없었다”는 “길이 없었다”나 “어찌할 길이 없었다”나 손봅니다.



성미(性味) : 성질, 마음씨, 비위, 버릇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 까다로운 성미 / 조급한 성미 / 성미가 고약하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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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0) -의 : 불의 춤


손톱만 한 불은 점차 장작의 나무껍질로 옮겨 붙고 마침내는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를 집어삼키는 원시의 불길로 치솟아올랐다. 불의 춤에 시선을 빼앗긴 채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89쪽


 불의 춤에

→ 불춤에

→ 불이 빚는 춤에

→ 불이 추는 춤에

 …



  나무가 춤을 추면 ‘나무춤’입니다. 새는 ‘새춤’을 추고, 꽃은 ‘꽃춤’을 춥니다. 불이 추는 춤이라면 ‘불춤’입니다.


  보기글은 여러모로 꾸밈말을 넣으려 하면서 자꾸 ‘-의’를 붙입니다. “손톱만 한 불은 차츰 장작으로 옮겨 붙고, 마침내 두꺼운 통나무를 집어삼키는 시뻘건 불길로 치솟아올랐다”처럼 적으면 되지 싶어요. ‘장작’과 ‘나무껍질’을 잇달아 적을 까닭은 없지 싶어요. 더욱이, ‘장작’은 나무입니다. “장작의 나무껍질”처럼 적는 말은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애써 ‘껍질’을 밝히고 싶다면 “장작 껍질”쯤으로 적을 노릇입니다.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라 적습니다만, 통나무를 보며 허리를 따지지 않아요. 통나무는 아직 켜지 않고 통째로 있는 나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통나무를 놓고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라 말할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정 꾸밈말을 붙이려 한다면 “두꺼운 통나무”라고만 하면 됩니다. 4347.10.2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손톱만 한 불은 차츰 장작으로 옮겨 붙고 마침내는 두꺼운 통나무를 집어삼키는 시뻘건 불길로 치솟아올랐다. 불춤에 눈길을 빼앗긴 채 앉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점차(漸次)’는 ‘차츰’으로 다듬고, “장작의 나무껍질”은 “장작 나무껍질”이나 “장작”으로 다듬습니다.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는 “두꺼운 통나무 허리”나 “두꺼운 통나무”로 손보고, “원시(原始)의 불길”은 “오래된 불길”이나 “시뻘건 불길”로 손봅니다. “앉아 있노라면”은 “앉노라면”이나 “앉으면”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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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만화읽기'라는 꼬리말을 붙이면서 쓴 글이

이제 400꼭지가 된다. 396째 글을 아직 안 썼지만,

401째 글을 먼저 썼기에, 꼭 400째 글이 된다.


만화책 이야기를 꾸준히 쓰는 이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만화책을 깊이 읽거나 이야기하려는 이웃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도 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만화읽기 이야기를 띄울 텐데,

'별점 등록'을 하는 누리집에 올린 글로 살피자면,

'별 다섯'을 붙이는 작품이 아니라면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별 다섯을 붙였어도 굳이 다시 읽지 말자고 느끼는 작품이 있다.

만화읽기 느낌글로 올린 글에서

'별 셋'이나 '별 둘'이나 '별 하나'를 붙인 책은

추천하고 싶지 않고 소개하고도 싶지 않은 작품이다.


'별 다섯'을 붙인 책만

둘레에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할까.


오늘도, 시골집에서

밤별을 잔뜩 누리면서

만화책 이야기를 하나 썼다.

밤에 별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사니까,

나 스스로 별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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