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0) -의 : 불의 춤
손톱만 한 불은 점차 장작의 나무껍질로 옮겨 붙고 마침내는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를 집어삼키는 원시의 불길로 치솟아올랐다. 불의 춤에 시선을 빼앗긴 채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소연-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모요사 펴냄,2014) 89쪽
불의 춤에
→ 불춤에
→ 불이 빚는 춤에
→ 불이 추는 춤에
…
나무가 춤을 추면 ‘나무춤’입니다. 새는 ‘새춤’을 추고, 꽃은 ‘꽃춤’을 춥니다. 불이 추는 춤이라면 ‘불춤’입니다.
보기글은 여러모로 꾸밈말을 넣으려 하면서 자꾸 ‘-의’를 붙입니다. “손톱만 한 불은 차츰 장작으로 옮겨 붙고, 마침내 두꺼운 통나무를 집어삼키는 시뻘건 불길로 치솟아올랐다”처럼 적으면 되지 싶어요. ‘장작’과 ‘나무껍질’을 잇달아 적을 까닭은 없지 싶어요. 더욱이, ‘장작’은 나무입니다. “장작의 나무껍질”처럼 적는 말은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애써 ‘껍질’을 밝히고 싶다면 “장작 껍질”쯤으로 적을 노릇입니다.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라 적습니다만, 통나무를 보며 허리를 따지지 않아요. 통나무는 아직 켜지 않고 통째로 있는 나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통나무를 놓고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라 말할 일은 없으리라 느껴요. 정 꾸밈말을 붙이려 한다면 “두꺼운 통나무”라고만 하면 됩니다. 4347.10.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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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만 한 불은 차츰 장작으로 옮겨 붙고 마침내는 두꺼운 통나무를 집어삼키는 시뻘건 불길로 치솟아올랐다. 불춤에 눈길을 빼앗긴 채 앉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점차(漸次)’는 ‘차츰’으로 다듬고, “장작의 나무껍질”은 “장작 나무껍질”이나 “장작”으로 다듬습니다. “통나무의 두꺼운 허리”는 “두꺼운 통나무 허리”나 “두꺼운 통나무”로 손보고, “원시(原始)의 불길”은 “오래된 불길”이나 “시뻘건 불길”로 손봅니다. “앉아 있노라면”은 “앉노라면”이나 “앉으면”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