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나는 언제나 엄청난 (2014.2.7∼8.)

 


  이틀에 걸쳐서 그림을 그린다. 2월 7일 저녁에 그림을 그리다가, 큰아이가 너무 졸려 하는 티가 나서, 그만 자고 이튿날 다시 그림을 그리자고 말한다. 오늘은 무엇을 그릴까? 새롭게 그려 볼까? 새롭게 그리는 그림이란 무엇일까? 내 마음속에 없는 빛을 그리면 새로운 그림이 되는가? 내 마음속을 새롭게 읽으면 새로운 그림이 되는가? 후박잎을 몇 그린 뒤, 잎사귀 안쪽에 별을 그려 넣는다. 그러고는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라는 말마디를 적어 본다. 그리고 ‘부자’라는 낱말을 갈음할 다른 낱말을 하나씩 적어 본다. 숲, 빛, 꽃, 물, ……. 모두들 우리 가슴속으로 곱게 스며들어 맑게 빛날 수 있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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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2-11 11:32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좋습니다!!!!^^
저는 그림에 영 소질이 없는지라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울 때가 있어요~

숲노래 2014-02-11 11:35   좋아요 0 | URL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면 돼요.
잘 그린다 못 그린다 같은 경계는 없으니까요.
즐겁게 그리는 그림이
가장 아름다워요~
 

입이 하나 늘다

 


  떠돌이 개는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눌러앉을 모양이다. 다른 데로 가지도 않는다. 가끔 집 둘레를 한 바퀴 어슬렁거리고, 마을도 한 바퀴 어슬렁거리는 듯한데, 이때에 먹이를 얻어먹는지 어쩌는지 알 길이 없다. 마을고양이는 갑작스레 나타는 개 한 마리 때문에 먹이가 줄고 쉼터도 빼앗긴다. 그동안 우리 집 평상이며 섬돌이며 옆밭이며 뒤꼍이며 마루 밑이며 모든 곳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할 뿐 아니라 아무 데나 똥을 누던 마을고양이는 떠돌이 개가 컹컹 짖는 소리에 꼼짝을 못 하고 내빼기만 한다. 그런데, 개는 쥐를 잡지 않으니,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에 얼씬을 못하면 쥐가 우리 집에 몰리지는 않으려나.


  눌러앉으려는 떠돌이 개를 못 본 척할 수 없으니 끼니마다 먹이를 챙긴다. 그렇다고 하루 세 끼니를 주지는 않는다. 우리 식구가 하루 두 끼니 먹는 대로 떠돌이 개한테도 두 끼니를 준다. 국을 끓여 밥하고 비빈 뒤 소시지를 몇 점 썰어서 얹는다. 처음에는 밥이며 소시지를 모조리 비우더니, 이튿날부터는 소시지만 날름 집어먹는다. 쳇, 뭐 이런 놈 다 있나, 배불렀나 하고 여기며 그대로 둔다. 남은 밥그릇 비우지 않으면 다음 끼니를 줄 마음이 없다. 떠돌이 개는 처음에는 소시지만 집어먹지만, 한 시간쯤 뒤 밥을 살살 핥아먹는다. 아무렴, 몇 조각 먹는대서 배가 차겠니.


  네 식구 밥을 차리다가, 새로 늘어난 입에 맞게 밥을 더 차려야 하니, 다섯 식구 밥차림이 된다. 손님이 찾아올 적에 수저 하나 더 얹으면 한 사람 더 먹는 셈이니 품이 더 들 일이란 없다. 떠돌이 개 한 마리한테 더 주는 밥도 손님한테 내주는 밥하고 똑같겠지.


  그나저나 너는 어디에서 이리로 왔니. 너는 어쩌다가 살 집을 잃고 떠돌이 되어 우리 마을에 깃들고, 우리 집에 눌러앉니. 4347.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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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4-02-11 12:20   좋아요 0 | URL
찡합니다.

숲노래 2014-02-11 12:28   좋아요 0 | URL
차츰 포근해지는 날씨에
이 개도 추위를 잘 견디면서
즐겁게 지내리라 믿어요.

그나저나 여름에는 그 복슬복슬 털로
더위를 타겠군요 @.@
 

아이들 곁으로

 


  아이들이 자면서 크게 숨을 쉰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곯아떨어졌다가 깊은 밤에 문득 눈을 뜨고는 조용히 일어나 일을 하면서 아이들 숨소리를 듣는다. 깊은 밤이 아니라면 홀가분하게 일을 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잘 적에 나도 아이들 사이에서 새근새근 자면서 틈틈이 이불깃 여미어 주면 훨씬 즐겁지만, 어버이로서 내 일감을 잘 다스리고 건사해야 집살림을 꾸릴 수 있다. 아이들한테 살짝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잘 봐주리라 믿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잠자리에서 나지막하게 읊는다. “아버지, 일 다 하고 올 거지?” 그럼, 일 다 마치고 너희 둘 사이에 누워서 토닥토닥 가슴 두들기고 이불깃도 여미어 주지. 아무렴. 일하는 틈틈이 이불깃 여미어 주기도 하잖니. 뽀뽀도 하고. 어제 하루는 고흥에 모처럼 눈송이 쌓여서 즐겁게 놀았지? 꿈속에서도 눈놀이를 즐기렴.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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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7 05:35   좋아요 0 | URL
아이가 그새 많이 컸네요..~~^^

숲노래 2014-02-07 09:23   좋아요 0 | URL
날마다 무럭무럭 새록새록 자랍니다~~
 

[시골살이 일기 44] 새하얀 눈밭
― 해마다 한 번 찾아오는 빛

 


  지난밤에 달무리가 지더니 이튿날 눈밭이 됩니다. 지난밤 한쪽 하늘은 별빛이 초롱초롱하고 다른 한쪽 하늘은 달무리로 뿌얬는데, 그예 이튿날 눈보라가 날립니다. 다른 고장으로 치면 눈보라란 이름을 붙이기 멋쩍지만, 고흥에서는 눈보라라 할 만한 눈발입니다. 밤부터 아침까지 눈이 그득그득 내려서 쌓입니다.


  다만, 워낙 포근한 고흥인 터라, 고무신이 폭 잠길 만큼 눈이 내리더라도, 아침 열한 시를 지나 열두 시가 되면서 거의 다 녹고, 낮 한 시가 되니 언제 눈이 내렸느냐는 듯이 모두 녹아 사라집니다.


  고흥에서 살아가며 한 해에 꼭 한 차례씩 눈밭을 만납니다. 두 차례나 세 차례도 아닌 한 해에 꼭 한 차례입니다. 그리고, 이 눈밭은 열두 시를 넘기면서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언제 눈발이 퍼부었느냐는 양, 아무 자국이 안 남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맞으면서 놉니다. 눈을 맞으면서 놀다가 춥다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눈이 녹고 나니 햇볕이 쨍쨍 비추고,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마당으로 나가서 놉니다. 군데군데 조금 남은 얼음조각을 들고 입에 넣기도 하고 한참 손에 쥐면서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마을에 자가용 끄는 사람이 없으니, 눈이 오건 말건 아무도 안 쓸고 안 치웁니다. 쓸 까닭이나 치울 까닭조차 없도록 눈은 스스로 내려서 스스로 재빨리 녹아 사라집니다. 눈이 오면 모두들 대청마루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을 구경할 테지요. 하얗게 쌓이는 고운 빛을 바라보며 논과 밭과 숲과 들을 넉넉히 덮는 반가운 눈을 노래하겠지요.


  한 차례 내린 뒤 바로 녹은 눈은 새봄을 재촉합니다. 겨우내 딱딱하게 언 땅이 보드랍게 풀립니다. 눈 내려 녹은 자리마다 푸른 빛이 감돕니다. 4347.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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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색칠책

 


  아이들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가까이하면 아름다운 빛과 넋과 이야기를 받아먹는다. 아이들이 ‘흉내내기 색칠책’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고운 빛과 넋과 이야기를 캐내기보다는 ‘똑같이 흉내내기’로 나아가곤 한다. ‘흉내내기 색칠책’이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날개 펼쳐서 마음껏 그림놀이 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색칠책을 던지면 아이들 넋이 흔들릴 만하지만, 수많은 놀잇감 가운데 하나로 삼도록 하고는, 아이가 다른 놀이로 폭 빠져들도록 보금자리를 돌보면, 색칠책쯤은 아무것 아닐 수 있다.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손이 얼도록 눈놀이를 하면, 마당에서 까르르 노래하면서 뛰어놀면, 꽃삽이나 호미로 흙을 쪼면서 흙투성이 되도록 놀면, 세 식구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면, 색칠책쯤이란 ‘시골에도 지나다니는 자동차 한 대’일 뿐이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라치면, 두 아이는 모두 자동차가 자전거 옆으로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고약하다면서 코를 싸쥔다. 나도 자동차 배기가스가 고약하다고 느끼는데, 아이들은 더 짙게 느끼는 듯하다. 다른 어른들은 어떨까? 자동차를 모는 어른은 자동차 배기가스를 얼마나 느낄까?


  멧새가 지저귀고 풀벌레가 노래하는 고운 바람을 품에 안는 아이라면, 어떤 책을 손에 쥐어 넘기더라도 고운 빛을 스스로 가꿀 수 있으리라 느낀다. 구름이 흐르고 별이 반짝이는 소리를 가슴에 담는 아이라면, 책 하나 없이 지내더라도 맑은 노래를 스스로 일굴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들 눈높이를 살피는 일이란, 어른이 무릎을 꿇고 앉는 눈높이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서 어른들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며 사랑하는 길을 찾을 때에 ‘아이들 눈높이’가 된다. 4347.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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