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왔어요

 


  닷새 동안 바깥잠을 자면서 마실을 다닌 끝에 시골집에 왔어요. 아침 아홉 시 반에 서울 강남 버스역을 떠난 시외버스는 네 시간 반을 달려 고흥 버스역에 닿았어요. 아이들은 처음에는 안 자려고 하다가 작은아이부터 잠듭니다. 큰아이도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버스를 타니 고흥에 낮에 닿는군요. 읍내 가게에 들러 먹을거리를 장만한 뒤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닿아 짐을 풀고, 이불을 마당에 넙니다. 자동차 소리만 가득하던 도시를 벗어나 바람소리가 흐드러지는 시골에 있으니 숨통을 틉니다. 부엌과 마루와 방을 비질하고 보일러를 돌립니다. 아이들 옷가지는 이튿날 빨기로 하고 오늘은 내 옷가지만 빨래합니다. 옷을 마당에 널고 기지개를 켭니다. 큰아이는 마당 평상에서 만화책을 펼치고, 작은아이는 마당을 휘저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두 아이는 홀가분하게 뛰어놉니다. 해가 기울 무렵까지 큰아이는 만화책만 손에 쥡니다. 왜 뛰어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큰아이가 혼자서 손닦개를 가지고 나오더니 “코피 나.” 하고 말합니다. 그렇구나, 큰아이는 몸이 몹시 힘든 탓에 뛰어놀지 않고 책만 손에 잡는구나. 큰아이더러 얼른 자리에 누우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밥상에 펼치고, 네 식구가 함께 먹은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로 합니다. 작은아이는 안 자겠다면서 한참 칭얼칭얼 웁니다. 그렇지만 자기 싫다는 울음이라기보다 몸이 너무 힘들어 쏟아지는 울음이로구나 싶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몸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견디지 못할 적에 이렇게 울었거든요. 곁님이 작은아이를 품고 다독다독 토닥이니 스르르 잠듭니다. 큰아이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누워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사르르 잠듭니다. 시골집은 깜깜합니다. 시골마을은 조용합니다. 깜깜하고 조용한 시골집에서 네 식구가 새근새근 꿈나라를 누빕니다. 네 시간 반 즈음 드러누워 허리를 편 뒤 살며시 일어납니다. 방바닥에 불을 넣고, 이튿날 아침에 먹을 쌀을 씻어서 불립니다. 아이들 쉬통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서 비운 뒤 별빛 가득한 하늘을 보니, 참말 시골집에 돌아왔네 하고 깨닫습니다. 4347.3.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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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11 01:33   좋아요 0 | URL
이 새벽,,,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그 평화로움이 저에게까지 느껴져요,,,

숲노래 2014-03-11 02:28   좋아요 0 | URL
저 스스로 이제 겨우 기운을 차려
지난 하루 돌아보면서
느긋해진 까닭에
착한시경 님한테도
따스한 마음이 옮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늘 평화롭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
 

[아버지 그림놀이] 피어나는 사랑 (2014.3.7.)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와 또래인 아이가 있는 이웃한테 찾아간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잘 어울리면서 논다. 이웃 아이하고 이웃 어머니한테 선물을 하려고 그림을 그린다. 어떤 말빛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그릴까 하고 헤아리다가, 잎과 꽃과 별 세 가지를 가슴에 담으면서, 찬찬히 피어나는 사랑으로 꿈을 꾸는 나날이 되기를 바란다. 별비가 내리고 꽃내음이 퍼지는 무지개가 온 집안에 감돌 수 있기를.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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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두 아이



  인천 큰아버지 집에 가는 길에 시외버스에서 두 아이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는 제법 커서 혼자 창틀에 기대어 잔다. 작은아이는 아직 작아 아버지 무릎에 드러누워 잔다. 한 시간 반 즈음 시외버스에서 두 아이를 재운다. 시외버스를 다섯 시간 가까이 탄 아이들은 세 시간 반을 놀고 한 시간 반을 잔다. 큰아이 일곱 살 작은아이 네 살이 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하며 퍽 수월하다. 아이들이 한 살을 더 먹으면 두 아이 마실이 더 수월할 테고, 곧 두 살을 더 먹으면 두 아이 마실은 훨씬 수월하겠지.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큰다. 스스로 씩씩하며 스스로 즐겁다. 스스로 웃고 스스로 노래한다.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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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질 소리 통통

 


  서로 툭탁거리며 놀던 아이들도, 떼를 쓰던 아이들도, 이래저래 엉겨붙던 아이들도, 내가 부엌으로 가서 밥과 국을 끓이며 도마질 통통 소리를 내면 어느새 조용하고 얌전하다. “밥 해요?” 하고 물으면서 “맛있는 밥 한대.” 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웃는다. 밥과 국이 끓는 소리가, 밥과 국이 익는 냄새가 너희들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니? 오이를 썰려고 내놓았더니 “오이 크게 잘라 주셔요.” 하고 말한다. 오이를 반으로 잘라 두 아이한테 하나씩 건네니 어느새 아삭아삭 다 베어 먹는다. 밥과 국이 다 되어 밥상에 올린다. 수저를 큰아이한테 건넨다. 큰아이는 수저를 밥상에 놓고 기다린다. 국부터 떠서 아이들 앞에 놓는다. 그런 뒤 다 같이 “잘 먹겠습니다.” 노래를 한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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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버스에서 둘 다 잠들 적에

 


  읍내마실을 한다. 여권을 만들어야 하기에 사진을 찍고 군청에 다녀와야 한다.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동안 한 시간 가까이 흐른다.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부친 뒤 군청에 가서 여권을 신청하고는 여권 수수료를 내기까지 또 한 시간 가까이 흐른다. 아이들은 사진관이든 군청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저 신나게 뛰어논다. 읍내 가게에 들러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한 뒤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군내버스를 기다리면서 또 잘 논다. 그러고는 군내버스에서 하나둘 색색 잠든다. 낮잠을 건너뛰고 아주 잘 놀았지? 너희들이 버스길에서 잠들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군내버스는 읍내에서 마을 어귀까지 20분. 아이들이 깊이 잠들까 싶을 무렵에 내려야 한다. 군내버스가 봉서마을을 돌 무렵 가방을 들쳐멘다. 버스가 선 뒤 작은아이를 안는다. 다른 손으로는 큰아이 손을 붙잡는다. “벼리야, 내리자!” 일곱 살 큰아이는 아버지 말에 퍼뜩 눈을 뜨고는 뚜벅뚜벅 걸어서 버스에서 내려 준다. 무척 졸린 몸이지만 집까지 잘 걸어 준다. 큰아이가 힘들리라 알기 때문에 안아 주고 싶으나 두 아이를 나란히 안기는 벅차다. 작은아이만 왼손으로 안고 큰아이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걷는다. 씩씩하게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는 큰아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네 아버지는 네 대견하고 씩씩한 모습에 힘을 얻어 새삼스레 기운을 내면서 살림을 꾸릴 수 있다고 할 만해. 너도 알지? 괜찮아. 집까지는 걸어가지만, 너도 오래도록 포옥 안고 쓰다듬어 주잖아.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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