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40] 창호종이문으로 빛살
― 아침맞이

 


  시골집 아침은 소리와 빛 두 가지로 찾아듭니다. 동이 틀 무렵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살포시 깃듭니다.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살포시 깃들 무렵이면 집 둘레로 멧새가 찾아들어 아침노래를 부릅니다.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는 사월부터 팔월까지 제비가 깃들고, 제비가 집을 비우는 구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여러 텃새가 살짝 깃들어요. 겨우내 딱새 두 마리가 제비집에 깃들었고, 겨울이 끝나는 이월 즈음부터 참새 세 마리가 제비집에 깃듭니다. 초피열매나 후박열매를 먹으러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오는 멧새가 많은데, 이들은 열매뿐 아니라 나비 애벌레가 있으면 콕콕 집어서 먹습니다. 우리 집 풀밭이나 나무에는 풀벌레와 애벌레가 많으니 온갖 새들이 아침저녁으로 수없이 찾아들어 먹이를 찾으면서 고운 노래를 베풉니다.


  울림시계가 없어도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지만, 숱한 새들이 찾아들어 노래를 부르니, 새벽에 안 일어날 수 없기도 합니다. 몸이 고단한 날은 조금 늦게까지 이부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새가 얼마나 곱게 노래를 들려주는가 가만히 들으면서 창호종이문으로 빛살이 차츰 짙어지는 결을 바라보곤 합니다.


  날이 밝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날이 환하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 무렵에는 날이 저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불을 켜야 하는 밤에는 이제 깜깜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불을 켜는 밤에는 아이들을 재워야겠네 하고 돌아보고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곱씹습니다. 얘들아,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니? 얘들아, 오늘 하루도 마음껏 뛰놀면서 쑥쑥 자랐니?


  여름을 지나 가을이 깊고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면 창호종이문으로 스미는 빛살이 줄어듭니다. 저녁이 일찍 찾아오고 아침이 더디 찾아옵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서 여름 문턱으로 다다르면 창호종이문으로 스미는 빛살이 늘어납니다. 저녁이 한결 길고 아침이 일찍 찾아옵니다.


  포근히 젖어드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따사로이 감기는 아침을 누립니다. 기쁘게 여는 새 아침을 노래합니다. 4347.3.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동백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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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3-25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지문으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일어나는 아이들은 참 행복할것 같아요~ 엎드려 책을 보는 아이 모습이 참 예뻐요^^

숲노래 2014-03-25 08:08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시골집이 요런 종이 한 장으로 밖과 안을 갈랐으니, 겨우내 참 추웠겠네 싶어요. 도시 아파트와 견주면 이런 시골집은 무척 춥다고 할 만하고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빛과 볕과 살을 더 깊이 누리거나 느끼기에 철흐름을 읽고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아서 좋기도 해요~
 

뻑적지근한 다리

 


  닷새에 걸쳐 바깥마실을 하고 돌아온 첫날, 몸이 이럭저럭 괜찮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리에 힘이 붙지 않는다. 무거운 책짐을 짊어지면서 꽤 오래 돌아다니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깥마실을 할 적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모든 고단함이 확 밀려든 듯하다. 아침에 우리 집 풀을 뜯어서 아이들한테 차리기는 했지만, 저녁은 밥을 따로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하면서 씩씩하게 놀고 잘 지낸다. 작은아이는 낮잠 한 숨 잤으며, 큰아이는 저녁에 잠자리에 눕혀 자장노래를 부르니 이내 곯아떨어졌다. 오늘 하루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면 이튿날 아침부터 다리에 새롭게 힘이 붙을까.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내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자란다. 나는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란다. 잠자리에서 큰아이가 “아버지 좋아요.”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말을 받아서 “아버지 좋아요.” 하고 나란히 말한다. 나도 “사름벼리 좋아요. 산들보라 좋아요.” 하고 말한다. 꿈나라에서도 다 같이 신나게 놀자.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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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작은아이가 ‘장난감’을 찾는다. 응? 웬 장난감? 온 집안이 너희 장난감으로 넘치잖아? 자는방에 너랑 누나가 갖다 놓은 장난감도 있잖아? “쉬 마렵니?” “응.” “그럼 바지 내리렴.” 작은아이 오줌을 받은 통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바지 올리고.” 풀밭에 작은아이 오줌을 뿌린 뒤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빛이 그득하다. 별자리를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서양이름으로 된 별자리를 읊다가, 이 나라 옛사람은 저 별마다 어떤 이름을 붙였을까 그려 본다. 나라마다 겨레마다 별자리를 다르게 가리켰겠지. 나라와 겨레마다 별자리 이름이 서로 다르겠지. 모두 같은 별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이며 살아왔겠지. “보라야, 안아 줄까?” 작은아이가 졸린 듯해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말없이 고개를 폭폭 가슴에 처박는다. 싱글싱글 웃기도 하고 손가락놀이를 한다. 문득 손가락을 쥐어 내 코에 댄다. 음, 그렇구나. “자, 손발 씻으러 가자. 벼리야, 너도 손발 씻자.” 작은아이 양말을 벗기고 소매를 걷는다. 작은아이부터 발과 손을 씻긴다. 작은아이는 바지를 내려 주고 소매는 스스로 내리라고 말한다. 큰아이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소매를 걷을 줄 알며, 다 씻고 나서 스스로 천으로 물기를 훔친 뒤 다시 소매를 내릴 줄 안다. “아버지, 양말은? 빨아?” “얼마나 신었어?” “많이.” “그럼 빨자.” “보라 꺼는?” “보라 양말 저기 있잖아.” “없어.” 큰아이가 방으로 콩콩 달려가더니 “보라야, 양말 줘, 빨아야지.” 작은아이는 그새 제 양말을 가져가서 혼자 신은 듯하다. 그렇구나. 작은아이도 이제 혼자 양말 신고 벗는 재미를 익혔구나. 발을 씻고 웬 양말을 다시 신니. 잠자리에 눕힌 뒤 작은아이더러 “자, 잘 때에는 양말을 벗자.” 하고 이야기하니 스스로 벗는다. 이불을 여민다. 빨래를 방에 옷걸이에 꿰어 넌다. 모두 잘 자렴. 즐겁게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새롭게 놀자. 4347.3.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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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고무신

 


  여관에 묵으며 몸을 씻는다. 웃옷과 양말과 머리띠를 빨래한다. 하얀 고무신도 빨래한다. 노란 빛깔 반소매 웃옷을 비비고 헹구는데 새까만 물이 끝없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여러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녔더니 땟국이 짙게 배었나 보다. 하얀 빛깔 고무신에서도 까만 땟물이 끝없이 나온다. 내 발도 지난 사흘 동안 얼마나 애써 주었다는 소리일까. 비비고 빨고 다시 비비고 또 헹군다. 까만 땟물이 그칠 때까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다 마치고 옷걸이에 꿰어 널며 생각한다. 이튿날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집 아이들 신도 빨아야겠네. 작은아이 하얀 고무신도 빨고, 큰아이 예쁜 신도 빨아야겠네.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찾아왔으니, 새봄에 신을 신들도 새로 빨아서 햇볕에 말려야겠네. 4347.3.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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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바닷가 놀이순이 (2014.3.15.)

 


  바닷가로 나들이를 간다. 큰아이가 작은 나무작대기로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나 그려 주세요.” 하고 말한다. 그래, 그리지. 이렇게 넓은 그림판이 있으니 말이야. 커다란 대나무를 들고 척척 머리카락부터 그린다. 바람에 나부끼는 큰아이 머리카락을 한 올 두 올 그린다. 얼굴과 눈을 그리고, 입과 코를 찍는다. 팔을 척 벌리는 모습으로 그린다. 두 다리도 껑충 뛰는 모습으로 그린다. 바닷가에서도 마당에서도 언제나 훨훨 날고 껑충껑충 뛰는 놀이순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다. 다 그리고 재미 삼아 뽕뽕뽕을 그려 넣는다. 아이 이름 넉 자를 적는다. 커다랗게 사랑무늬를 넣고, 옆에 제비 한 마리를 넣는다. 그러니까, 아이가 껑충 뛰어 제비와 함께 날아다니며 논다는 뜻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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