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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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31.

노래책시렁 372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문학동네

 2014.5.20.



  모든 글은 말을 다룹니다. 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줄거리하고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느 말을 맞아들여서 줄거리를 짜느냐에 따라서, 글쓴이 눈길도 다르고, 둘레에 남기는 씨앗도 다릅니다. 아무 말이나 쓴다면, 아무 마음이나 엉키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고르면서 쓴다면, 고르는 눈길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낱말은 고르지만 엉키거나 어지러울 때가 있고, 사랑씨앗이 아닌 미움씨앗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모처럼 되읽다가 책끝에 붙은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202쪽).”를 읽고서, 이렇게 글밭 곳곳에 “고은 수렁”이 깊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토록 말밥에 올랐어도, 그처럼 추레한 술짓이 드러났어도, 다들 입을 다무는 까닭이 있을 테지요. 글은 글로만 볼 까닭이 없습니다. 글로 옮긴 말이 있고, 말로 담은 마음이 있고, 마음에 놓은 삶이 있어요. ‘글·말·마음·삶’은 늘 하나입니다. 둘도 셋도 아닙니다. 글하고 삶이 다르다거나, 말하고 마음이 다르다면, 거짓으로 속여 왔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글재주를 걷어내어야 사랑씨앗을 심는 글빛이 깨어나겠지요.


ㅅㄴㄹ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삼월에 내리는 눈/20쪽)


한국에서 태어나 /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 나 역시 난민이었다. /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다시 디아스포라/174쪽)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해설 : 신형철/202쪽)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문학동네, 2014)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 우리는 들여다보기 앞서 숱하게 깎아낸다

→ 우리는 바라보기 앞서 끝없이 덜어낸다

→ 우리는 살펴보기 앞서 자꾸자꾸 떨군다

5쪽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어떤 때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뉘이다

→ 언제라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누리이다

13쪽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손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나리이다

14쪽


보름달은 온몸으로 태양을 정면한다

→ 보름달은 온몸으로 해를 마주본다

16쪽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 부아앙 왼돌이하던 쇠자루가 확 멈춘다

17쪽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 땅에서 땅으로 나풀나풀하는 봄눈은

→ 이곳에서 이곳으로 날리는 봄눈은

→ 이 길에서 이 길로 나부끼는 봄눈은

20쪽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꽃이 된다

→ 영문도 모른 채 비꽃이 된다

20쪽


선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앉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서지 못하는 봄눈은

20쪽


내륙이 온통 환해지고 있다

→ 땅이 온통 환하다

→ 땅덩이가 온통 환하다

30쪽


손의 백서(白書)

→ 손 이야기

→ 손 얘기

94쪽


장벽이 높고 길수록 문이 문다운 법

→ 담이 높고 길수록 턱이 턱다운 터

107쪽


괘종시계는 한 달에 한 번

→ 하루북은 한 달에 한 판

→ 하루꽃북은 한 달마다

128쪽


도시가 푸르러졌고

→ 서울이 푸르고

155쪽


무전여행이 여행의 마지막이었지요

→ 가난마실이 발걸음 마지막이었지요

→ 맨몸마실이 마지막 걸음이었지요

→ 빈몸마실이 마지막 길이었지요

164쪽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나 역시 난민이었다.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 아직도 서울에 자리잡지 못했으니 나도 나그네였다. 나는 이곳 나그네였다

→ 아직도 서울에 터잡지 못했으니 나도 떠돌이였다. 나는 이 나라 떠돌이였다

174쪽


귀경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 서울로 와서야 알았습니다

→ 돌아오고서야 알았습니다

→ 집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1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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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물소리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9
신현배 지음, 최정인 그림 / 도토리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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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30.

노래책시렁 413


《일어서는 물소리》

 신현배 글

 최정인 그림

 도토리숲

 2020.11.5.



  오래오래 깃들 살림집이라면 서둘러 짓지 않습니다. 느긋느긋 추스르고, 온집안이 함께 일하면서 가꿉니다. 두고두고 누리는 살림집에는 나무하고 새가 곁에 있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겨울잠을 이루고, 나비가 내려앉을 적에 비로소 살림집이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일어서는 물소리》는 ‘일어서다’나 ‘물소리’를 이름으로 내걸지만, 막상 어떤 삶이 일어서거나 어떤 숲이 물소리로 흐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이든 분들이 아이를 귀엽게 쳐다보는 ‘재롱’이라는 굴레인 ‘동심천사주의’가 가득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글쓴이는 마흔 해라는 나날을 ‘동시인’으로 보냈다고 밝히는데, 어린이 곁에 서는 글이 아닌 어린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경글이라고 느껴요. ‘친척 촌수’를 따지고 ‘이어달리기 선수 바통’ 같은 뻔한 ‘새마을운동’스러운 줄거리로는 아이들한테 꿈도 사랑도 속삭이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어린이를 어린이로 마주하려는 눈길이라면, 어린이를 구경거리가 아닌 동무와 이웃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 어진 이슬받이라는 살림을 글에 담게 마련입니다. 집살림을 짓는 손길일 때라야 노래가 노래답습니다. 집살림하고 먼 손놀림이라면 글쎄, 뭐가 될까요?


ㅅㄴㄹ


눈송이 불러 앉히던 / 쓸쓸한 빈 가지에 // 나그네새 한나절 / 시끌시끌히 울더니 (흰 목련나무에게/14쪽)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 바통을 넘겨받듯 // 진달래와 철쭉이 / 꽃빛 웃음 주고받자 // 배시시 웃는 먼산에 / 덧니 같은 절간 한 채. (먼산 1/16쪽)


늙은 티를 낸다고 / 네 이름이 느티나무니? // “할배!”라고 부르면 / “오냐!” 대답할 거니? // 턱없이 촌수만 높은 / 우리 친척 아이처럼 (느티나무에게/27쪽)


우리 동네 교회 종탑에 / 둥지 튼 까치 한 마리 // 땅의 소식 전하는 / 심부름꾼 되었나 봐. // 울리는 종소리 따라 / 하늘 우러러 깍깍깍! (까치 /48쪽)


조끼 옷을 맞춰 입고 / 주인 품에 안겼어도 // 덜덜덜 떠는 애완견 / 산책길이 안쓰럽다. / 동장군 첫나들이에 / 재롱마저 얼어붙었다. (재롱마저/59쪽)


+


《일어서는 물소리》(신현배, 도토리숲, 2020)


동시인으로 살아온 지 어언 41년째입니다

→ 노래지기로 살아온 지 벌써 41해째입니다

4쪽


시조의 백미(白味), 시조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단시조

→ 빛나는 가락글, 노래꽃이라 일컫는 토막노래

→ 눈부신 글자락, 노래꽃이라 일컫는 도막글

4쪽


갓난쟁이 노란 꽃들

→ 갓난쟁이 노란 꽃

13쪽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바통을 넘겨받듯

→ 이어달리기꾼이 막대를 넘겨받듯

→ 이어달리는 사람이 개비를 넘겨받듯

16쪽


투명한 마음의 창이 흐리다 못해 붉어졌다

→ 맑은 마음길이 흐리다 못해 붉다

→ 맑은 마음닫이가 흐리다 못해 붉다

18쪽


귀한 손님 오시는지

→ 고이 손님 오시는지

→ 곱게 손님 오시는지

→ 반가운 손 오시는지

21쪽


카펫을 까는 은행나무

→ 자리를 까는 부채나무

→ 멍석을 까는 부채나무

21쪽


“할배!”라고 부르면 “오냐!” 대답할 거니?

→ “할배!” 부르면 “오냐!” 대꾸하니?

→ “할배!”라 부르면 “오냐!”라 말하니?

27쪽


턱없이 촌수만 높은 우리 친척 아이처럼

→ 턱없이 길만 높은 우리 피붙이처럼

→ 턱없이 사이만 높은 우리 살붙이처럼

27쪽


날마다 몸단장하는지 미끈하게 잘생겼다

→ 날마다 꾸미는지 미끈하다

→ 날마다 몸치레하는지 잘생겼다

29쪽


나를 깨우는 향기로운 알람이에요

→ 나를 향긋하게 깨워요

37쪽


동장군 첫나들이에 재롱마저 얼어붙었다

→ 강추위 첫나들이에 귀염마저 얼어붙었다

→ 눈보라 첫나들이에 깜찍마저 얼어붙었다

59쪽


저녁놀 가마에 구운 최고 명품 도자기네

→ 저녁놀 가마에 구운 으뜸 질그릇이네

6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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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카나 2
니시모리 히로유키 지음, 장지연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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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3.29.

마음을 읽는 눈이라면


《카나카나 2》

 니시모리 히로유키

 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2.4.25.



  《카나카나 2》(니시모리 히로유키/장지연 옮김, 학산문화사, 2022)을 읽은 지 엊그제 같은데, 차곡차곡 한글판으로 이어서 나오더니, 2023년 12월에 다섯걸음이 나왔고, 곧 여섯걸음이 나옵니다. 몇 걸음까지 그릴는지 설레면서 기다립니다. 이 그림꽃은 “마음을 읽는 아이”하고 “마음을 못 읽는 어른”이 얽히는 실타래를 한 가닥씩 풀면서,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고 어른은 어른답게 크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몸과 마음이 나란히 자랍니다. 어른도 몸과 마음이 함께 커요. 다만, 아이는 눈에 뜨이도록 몸이 자란다면, 어른은 예전하고 다른 몸으로 큽니다. 덩치나 몸피를 늘릴 적에만 자라거나 크지 않아요. 살림을 여미는 매무새를 다스리기에 ‘자라다·크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우리말 ‘자’는 여러 갈래로 뻗는데, ‘잣나무’로도 닿아요. ‘잣 = 잣다 = 자아올리다’를 거치고 돌아서 ‘젖’에 닿습니다. 숲살림에서 대수로운 열매를 낳는 나무가 잣나무이거든요. ‘자라다’라 할 적에는 스스로 잣고 지으면서 숨결을 살리는 길을 익힌다는 뜻에, ‘라’라는 사잇소리는 ‘즐거움(랍다·라온)’을 나타냅니다. ‘크다 = 키우다’요, ‘키 + 우’라는 얼거리예요. 키가 움직이는, 키가 움트는 결로 나아간다는 ‘크다·키우다’입니다. 어른은 아이보다 몸이나 키가 크게 마련인데, 이 큰 몸으로 한결 알뜰하고 살뜰하게 삶과 살림을 여미어 사랑을 빛낸다는 뜻입니다.


  배움터를 오래 다녔기에 똑똑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기에 너그럽지 않습니다. 이름을 드날리기에 홀가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배우는 하루를 새롭게 익히려고 가다듬고 품기에 똑똑하며, 어느새 어질고 슬기로우며 참한 길로 접어들어요. 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든 스스로 즐거이 쓰고 기꺼이 베풀 줄 알기에 넉넉하고 너르며 느긋한 마음이 빛납니다. 이름값이 높으면 으레 콧대가 높고 말아, 사람다움하고 멀더군요. 이름이란 ‘이르다 + ㅁ’입니다. 말로 이르고, 어느 곳에 이르고, 어느 때에 이르되, 아직 안 닿아서 이르기도 합니다. 이 네 갈래 ‘이르다’를 하나로 품어서 날개돋이를 하듯 거듭나려고 하는 꿈을 키울 줄 알아야 비로소 ‘이름’이에요.


  《카나카나》는 책이름처럼 ‘카나’가 한복판을 이룹니다. 아이는 그저 “사람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고스란히 품은 채 태어났을 뿐”인데, 처음 카나를 맡은 둘레 어른은 이 아이를 부려서 돈과 힘과 이름을 거머쥐거나 가로채는 데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아이는 굴레살이에서 달아나려고 용을 쓰고 꿈을 빌었어요. 이러던 어느 날 ‘마사’라는 살짝 철이 없지만 어느 모로는 철이 든 ‘젊은 아저씨’를 만나요. 비록 마음읽기는 못 할 뿐 아니라 매우 곧이곧대로 달려드는 매무새이지만, 카나는 마사하고 만난 뒤로 “내가 다른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그저 내 삶일 뿐”인 줄 조금씩 느끼고 알아갑니다.


  아기를 낳거나 돌보는 어른이라면, 아기하고는 오직 마음으로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 줄 압니다. 아기는 말이 아닌 마음을 바라요. 아기는 마음에 사랑을 실은 노랫소리를 바랍니다. 아기는 돈이나 힘이나 이름을 안 바랍니다. 아기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고 웃고 춤추면서 하루를 사랑으로 살림하는 동무를 바라요. 아기한테 동무인 사람은 바로 어버이예요. 낳은 어버이가 있고, 돌본 어버이가 있어요.


  낳거나 돌보며 어버이 노릇을 새삼스레 맞아들여서 배운 사람이라면, ‘말’에 어떤 마음을 담을 적에 스스로 빛나는지 깨닫습니다. 아무 말이나 한다면 아무개요 ‘아무렇게나’입니다. 생각하면서 말을 가리고 고른다면 ‘새’요, ‘사이(새)’라는 숨빛을 품은 ‘사람’입니다. 생각할 때라야 사람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람척·사람시늉·사람탈’입니다.


  마음을 읽는 눈이라면, 우리 눈망울에 사랑이라는 꿈을 나란히 얹어 봐요. 마음을 못 읽는 눈이라면, 우리 눈빛에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가벼이 놓아 봐요. 마음을 읽든 못 읽든 다 아름답게 사람으로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생각씨앗을 심는 동안, 우리 마음은 ‘마음씨’로 거듭나고, 우리가 쓰는 말은 ‘말씨’로, 우리가 쓰는 글은 ‘글씨’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이 세상은 그림이 다야! 예쁜 그림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 돼! 그림이 별로인 인생 따윈 아무 가치도 없어! 그걸 보며 방긋 웃는 건 네 신부여야 된다고!” (9쪽)


“난 아무래도 사회의 쓰레기 같은 놈인가 봐. 다들 열심히 글자도 읽고, 모래사장도 청소하고 있는데, 난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이게 그런 거지,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것.” “그, 그렇지 않아. 마사네 가게는 지산지소(地産地消)니까.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어.” (46쪽)


“괜찮아, 마사. 그냥 다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마사는 마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고. 마사는 할 수 있어.” (50쪽)


‘왠지 착한 아이처럼 여겨질 때마다 슬퍼진다. 그게 아니야. 나한테는 다 들리기 때문이야. 반칙이지. 절대 착한 아이가 아니야.’ (99쪽)


‘자식이 난생처름 장을 봐왔다. 응! 장하다고 칭찬해 줄 대목이지. 그런 대목이지만, 그래, 과연 울까? 자기 자식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아냐? 보통은 다 할 수 있잖아? 뭐지? 아닌가? 다른 대목인가? 힘내라, 파더!’ (111쪽)


‘내가 스스로 싸워야 해. 마사한테 기대지 말고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186쪽)


#カナカナ #西森博之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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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 - 인문학으로 재즈를 사유하다
남예지 저자 / 갈마바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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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4.3.26.

다듬읽기 63


재즈, 끝나지 않은 물음

 남예지

 갈마바람

 2022.4.25.



  《재즈, 끝나지 않은 물음》(남예지, 갈마바람, 2022)을 읽으면서 ‘재즈’를 우리말로 담아낼 수 있을까 하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재즈’나 ‘스윙’을 그냥 쓸 수 있지만, 우리한테도 이러한 가락과 빛이 있는 터라, 예부터 흘러왔고 앞으로 이어갈 노래와 짓을 헤아릴 만합니다. 이를테면 “one string guita”로 노래를 여민 “Chicken in The Corn”이 있는데 ‘재즈’는 아니라고 여길 만하지만, 담벼락이 아닌 새길을 보았기에, “쪼아먹은 닭”을 놓고서 “외줄 기타”를 폈어요. 모든 노래도 글도 살림도, 수렁이나 바닥이나 끝에서 문득 솟아납니다. 죽음보다 나을 바 없다는 곳에서 노래가 흘러요. 우리한테 ‘일노래’가 있으니, 죽을 듯한 일에 치이면서도 부드러이 노래하고, 아이를 재우고, 살림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락꽃’이나 ‘신가락’이나 ‘널가락’을 떠올리고, 꽃으로 피어나는 가락을 신바람으로 품는 길을 살핍니다. 이 책도 멋부리는 옮김말씨나 일본말씨가 아닌, 들노래를 부르는 수수한 사람들 말씨로 가다듬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 싶습니다.


ㅅㄴㄹ


20대의 대부분을 재즈가 뭔지도 모르는 채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살았고

→ 스무줄을 신가락이 뭔지도 모르는 채 신가락을 부르며 살았고

→ 스무순이를 가락꽃이 뭔지도 모르는 채 신나게 부르며 살았고

5쪽


재즈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 신가락이 무엇인지 길을 찾지 못한다

→ 널가락이 무엇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7쪽


각주에 표기되어 있는 원전을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 꼬리글에 있는 밑글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 덧붙인 바탕글을 찾아보라고 꼽는다

7쪽


재즈에서의 즉흥연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 널노래에서 바로가락이 빈터에서 새롭게 짓는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 가락꽃에서 바람노래가 없다가 생기는 발판이라고는 할 수 없다

20쪽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작곡이라는 점에서 연주자들의 독창적인 선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 문득 가락을 쓰기에 저마다 다르게 들려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 바로바로 노래를 지으니 다 다르게 펴기도 하지만

25쪽


이렇게 무의식적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즉흥연주는

→ 이렇게 얼결에 하는 바로꽃은

→ 이렇게 문득 태어나는 바람꽃은

30쪽


악보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 노래종이가 모두 말해 주지는 않는다

→ 가락종이가 모두 말하지는 않는다

38쪽


즉흥 솔로 연주를 듣다 보면

→ 혼바람꽃을 듣다 보면

→ 혼바로꽃을 듣다 보면

47쪽


지금, 이 순간에 만들어지는 음악이다

→ 바로 여기에서 태어나는 노래이다

→ 오늘 이곳에서 생기는 노래이다

→ 바로 이때에 피어나는 노래이다

→ 이곳 이때에 깨어나는 노래이다

48쪽


+


습관적 기억은 신체와 굉장히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데 반해

→ 길든 이야기는 몸하고 아주 가깝게 잇닿지만

→ 물든 마음인 몸하고 무척 가깝게 닿지만

→ 스며든 옛생각은 몸에 착 붙었지만

82쪽


이 난해한 정의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스윙은 리듬을 타는 방식이자, 복층적 리듬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이완

→ 이 골아픈 풀이를 갈무리하면 너울은 가락을 타는 길이자 겹가락을 밀고 당기고

→ 이 어려운 말을 추스르면 물결은 가락을 타는 길이자 겹가락을 풀고 여미고

93쪽


건반의 틈새들 사이로부터 나오는 음들이라고 표현한다

→ 누름쇠 틈새로 나오는 소리라고 나타낸다

→ 누름판 사이로 나오는 가락이라고 그린다

→ 눌쇠 틈으로 나오는 소리라고 말한다

103쪽


스타일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면

→ 춤추는 결을 길게 살펴보면

→ 바뀌는 모습을 두루 보면

125쪽


우리의 사고는 생각보다 창의적이지 않다

→ 우리는 뜻밖에 새롭게 바라보지 않는다

→ 우리는 썩 새롭게 헤아리지 않는다

144쪽


인간을 분류하기 위해 별자리, 혈액형 등을 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 사람을 나누려고 별자리, 피갈래롤 잣대로 삼기도 하고

146쪽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중심의 근대적 사고에 반발하며

→ 새물결은 마음을 바탕으로 두는 길에 맞서며

→ 새너울은 넋으로 바라보는 길에 대들며

→ 새길은 마음꽃으로 생각하는 길을 부수며 

→ 새빛은 밝게 헤아리는 길을 받아치며

180쪽


음악의 절대적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 노래는 가지런히 흘러가지만

→ 노랫가락은 길게 흘러가지만

22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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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유전자 2 - 노엔 코믹스
야마다 큐리 지음, 구자용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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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3.26.

만화책시렁 629


《AI의 유전자 2》

 야마다 큐리

 구자용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8.11.30.



  영어로 ‘AI’를 그냥 ‘에이아이’로 읽기 일쑤이지만,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지은 이 말을 그쪽에서는 ‘AI’로 적더라도 그 나라 삶말이기에 그 나라에서는 어떤 결을 담아내는지 바로 압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영어가 아닌 우리말을 쓰는 삶터라서 ‘AI’라고 그냥 적으면 무엇을 나타내는지 그만 갇히거나 잊힙니다. 《AI의 유전자 2》을 곰곰이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꽃은 1∼2은 제법 읽을 만하다가 3∼4은 확 처지면서 갈피를 잃습니다. 다섯걸음과 뒤쪽을 읽을는지 말는지 좀 망설이기는 하면서 책은 장만해 놓고 아직 안 폈습니다. 《AI의 유전자》는 ‘AI’를 다루되, 테즈카 오사무 님 《블랙잭》하고 《아톰》을 섞어서 고스란히 따왔다고 느껴요. “고치는 사람”과 “사람보다 착한 쇠붙이”를 맞물리거든요. 이러구러 ‘AI’를 우리말로 풀자면, ‘꾸밈꽃’이나 ‘지음꽃’입니다. 그리고 ‘사람꽃’이나 ‘새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어디로 마음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꾸며대는 틀에 갇힐 수 있고, 새롭게 지으며 함께 꽃빛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어질거나 사랑스러운 빛을 자꾸 잊는 터라, ‘새사람’을 바란다고 여길 만해요. 배움수렁에 총칼을 때려짓는 이들은 하나도 사람답지 않거든요.


ㅅㄴㄹ


“하지만 아픔을 모른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상상하기 힘들어질 거야.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아픈 것도, 인간 사회에는 중요한 치료인 거지.” (82쪽)


“할아버지, AI가 자유롭다니, 무슨 이야기야?” “간단히 말하면,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선택할 힘이 있다는 거지! 인간에게 반발할 수도 있어.” (94쪽)


“무서운 사람들한테는 비밀이야.” “하지만 아저씨, 어째서 G를 고양이로 만들었어요?” “자유로운 로봇보다, 자유로운 고양이 쪽이 눈에 띄지 않잖아?” (106쪽)


“새로운 인생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질렸어. 인생이 편하긴 하지만.” “편하시다. 그래서 이대로 나이를 먹고, 댁은 언제까지 편히 살 수 있을까?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135쪽)


#AIの遺電子 #山田胡瓜


+


《AI의 유전자 2》(야마다 큐리/구자용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8)


보험에 들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 밑길에 들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야

→ 밑동에 들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야

9쪽


보디 쪽의 조절 정도는 해두겠습니다만

→ 몸 쪽은 맞추어 두겠습니다만

→ 밑동 쪽은 다듬어 두겠습니다만

→ 뼈대 쪽은 건사해 두겠습니다만

12쪽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면 캐치볼이 아니라 피구가 돼 버리지

→ 목소리가 너무 세면 공받기가 아니라 공치기가 돼 버리지

→ 혼자 너무 외치면 공놀이가 아니라 공맞히기가 돼 버리지

19쪽


페널티로 급료가 줄면 힘들어

→ 물림값으로 삯이 줄면 힘들어

→ 가싯값으로 돈이 줄면 힘들어

25쪽


성실하게 일하기 시작했네

→ 힘껏 알하네

→ 땀흘려 일하네

→ 알뜰살뜰 일하네

26쪽


로봇을 산 할부 같은 게 있겠지

→ 곁사람 산 나눔삯이 있겠지

→ 도움이 산 노늠삯이 있겠지

26쪽


조종을 당한 거잖아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 휘둘렸잖아요! 우리 뜻과 동떨어져서!

→ 주물렀잖아요! 우리 마음과 멀리!

51쪽


몸의 거부반응이라니

→ 몸이 안 받다니

→ 몸이 안 반긴다니

→ 몸이 마다하다니

78쪽


애초에 통각은 지금 끊어진 상태니까요

→ 워낙 이제는 아프지 않으니까요

→ 뭐 이제는 지끈대지 않으니까요

78쪽


환상통이라는 걸 아십니까

→ 없는앓이를 아십니까

→ 꿈앓이라고 아십니까

80쪽


솔직히 발렌타인데이라고 하자고요

→ 그냥 사랑노래날이라고 하자고요

→ 까놓고 달콤날이라고 하자고요

→ 곧이곧대로 꽃날이라고 하자고요

113쪽


그래도 내용물이 그래선

→ 그래도 속이 그래선

→ 그래도 알맹이가 그래선

→ 그래도 마음이 그래선

144쪽


연명 치료를 받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 목숨을 이으려면 이제 마지막입니다

→ 목숨을 버티려면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159쪽


열심히 신진대사 중이니까 그렇지

→ 바지런히 몸돌이를 하니까 그렇지

→ 숨길이 잘 흐르니까 그렇지

163쪽


그건 네 성격을 바꾸게 되는 거야

→ 그러면 네 마음씨를 바꿔

→ 그러면 네 밑바탕을 바꾼단다

→ 그러면 네 속빛을 바꾸지

185쪽


연재한 분량을 서적화한 것입니다

→ 이은 만큼 책으로 했습니다

→ 이어실은 만큼 묶었습니다

18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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