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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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31.

노래책시렁 372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문학동네

 2014.5.20.



  모든 글은 말을 다룹니다. 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줄거리하고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느 말을 맞아들여서 줄거리를 짜느냐에 따라서, 글쓴이 눈길도 다르고, 둘레에 남기는 씨앗도 다릅니다. 아무 말이나 쓴다면, 아무 마음이나 엉키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고르면서 쓴다면, 고르는 눈길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낱말은 고르지만 엉키거나 어지러울 때가 있고, 사랑씨앗이 아닌 미움씨앗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모처럼 되읽다가 책끝에 붙은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202쪽).”를 읽고서, 이렇게 글밭 곳곳에 “고은 수렁”이 깊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토록 말밥에 올랐어도, 그처럼 추레한 술짓이 드러났어도, 다들 입을 다무는 까닭이 있을 테지요. 글은 글로만 볼 까닭이 없습니다. 글로 옮긴 말이 있고, 말로 담은 마음이 있고, 마음에 놓은 삶이 있어요. ‘글·말·마음·삶’은 늘 하나입니다. 둘도 셋도 아닙니다. 글하고 삶이 다르다거나, 말하고 마음이 다르다면, 거짓으로 속여 왔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글재주를 걷어내어야 사랑씨앗을 심는 글빛이 깨어나겠지요.


ㅅㄴㄹ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 난분분하는 봄눈은 난데없이 피어난 눈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삼월에 내리는 눈/20쪽)


한국에서 태어나 /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 나 역시 난민이었다. /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다시 디아스포라/174쪽)


우리가 이 시를 읽고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떠올렸다면 이것이 두 시인 중 누구에게도 결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해설 : 신형철/202쪽)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문학동네, 2014)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 우리는 들여다보기 앞서 숱하게 깎아낸다

→ 우리는 바라보기 앞서 끝없이 덜어낸다

→ 우리는 살펴보기 앞서 자꾸자꾸 떨군다

5쪽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 어떤 때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뉘이다

→ 언제라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누리이다

13쪽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손이다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비나리이다

14쪽


보름달은 온몸으로 태양을 정면한다

→ 보름달은 온몸으로 해를 마주본다

16쪽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 부아앙 왼돌이하던 쇠자루가 확 멈춘다

17쪽


지상에서 지상으로 난분분 난분분하는 봄눈은

→ 땅에서 땅으로 나풀나풀하는 봄눈은

→ 이곳에서 이곳으로 날리는 봄눈은

→ 이 길에서 이 길로 나부끼는 봄눈은

20쪽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의 꽃이 된 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빗방울꽃이 된다

→ 영문도 모른 채 비꽃이 된다

20쪽


선뜻 착지하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앉지 못하는 봄눈은

→ 선뜻 내려서지 못하는 봄눈은

20쪽


내륙이 온통 환해지고 있다

→ 땅이 온통 환하다

→ 땅덩이가 온통 환하다

30쪽


손의 백서(白書)

→ 손 이야기

→ 손 얘기

94쪽


장벽이 높고 길수록 문이 문다운 법

→ 담이 높고 길수록 턱이 턱다운 터

107쪽


괘종시계는 한 달에 한 번

→ 하루북은 한 달에 한 판

→ 하루꽃북은 한 달마다

128쪽


도시가 푸르러졌고

→ 서울이 푸르고

155쪽


무전여행이 여행의 마지막이었지요

→ 가난마실이 발걸음 마지막이었지요

→ 맨몸마실이 마지막 걸음이었지요

→ 빈몸마실이 마지막 길이었지요

164쪽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했으니 나 역시 난민이었다. 나는 내국 디아스포라였다

→ 아직도 서울에 자리잡지 못했으니 나도 나그네였다. 나는 이곳 나그네였다

→ 아직도 서울에 터잡지 못했으니 나도 떠돌이였다. 나는 이 나라 떠돌이였다

174쪽


귀경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 서울로 와서야 알았습니다

→ 돌아오고서야 알았습니다

→ 집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17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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