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비밀 봄나무 과학교실 19
찰스 시버트 지음, 몰리 베이커 그림, 이수영 옮김 / 봄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고래를 사랑해 보셔요
 [환경책 읽기 38] 찰스 시버트·몰리 베이커, 《고래의 비밀》

 


- 책이름 : 고래의 비밀
- 글 : 찰스 시버트
- 그림 : 몰리 베이커
- 옮긴이 : 이수영
- 펴낸곳 : 봄나무 (2011.11.30.)
- 책값 : 1만 원

 


  작은 배로 고기를 낚는 바닷마을이 온 나라에 두루 있습니다. 예부터 고기낚이 하던 이들은 작은 마을 작은 뱃사람이었습니다.


  작은 연장으로 흙을 일구던 들마을이 온 나라에 골고루 있습니다. 예부터 흙일 하던 이들은 작은 마을 작은 흙사람이었습니다.


.. 눈을 감고 여러분이 먼 옛날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 고래는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기 전부터 끝도 없는 세월에 걸쳐 진화해 왔어요. 그러니 고래의 노래는 사람의 노래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죠 … 여태껏 변함없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게 많으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고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또 고래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거의 알 수 없어요 ..  (12, 52∼53, 105쪽)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로 갑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구비구비 멧길과 들길을 거쳐 바닷가로 갑니다. 시골집에서 또다른 깊은 시골로 마실을 갑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사람이면서 이웃 시골로 마실을 갑니다. 버스삯만 치르면 이웃 시골 마실을 언제라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군내버스를 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읍내나 면내로 마실을 나온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요, 우리 식구는 집에서 이웃 시골로 마실을 다니는 길입니다.


  고흥 읍내부터 군내버스를 타고 도화면 지죽리로 가는 길은 오십 분쯤 걸립니다. 이 길을 자가용으로 달린다면 이십오 분쯤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고흥군 지죽리 바닷마을에서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나오는 데에도 오십 분이고, 고흥읍에서 순천시까지 한 시간이라 한다면, 예전에는 시외로 나오는 길이란 까마득했겠지요. 시골사람이 바깥으로 나들이 다니는 일이란 생각조차 못했겠지요.


.. 고래 고기는 가톨릭을 믿는 유럽에서 금요일마다, 그리고 붉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사순절 동안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되었어요. 고래 혓바닥은 주로 부자들이 먹는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고, 서민들은 베이컨처럼 소금에 절인 고래 고기를 먹었어요. 고래 지방을 끓여서 얻은 기름으로는 컴컴한 저택과 마을의 광장, 농부들의 오두막에 불을 밝혔어요. 고래기름은 여러 도구와 초기 기계류, 무기류의 윤활유나 비누를 만드는 데도 쓰였어요. 고래뼈, 고래수염, 그리고 고래가죽은 울타리 기둥이나 채찍, 낚싯대, 구두를 만드는 데 쓰였고요 ..  (33∼34쪽)

 


  버스에서 바라보는 이웃 시골 모습은 무척 살갑습니다. 온통 푸른 빛깔이고, 그예 누런 빛깔이며, 한가득 파란 빛깔입니다. 푸나무와 흙과 하늘이 세 갈래 빛깔로 곱에 얼크러집니다. 온누리로 드리우는 햇살은 해맑은 기운을 베풉니다.


  들바람이 붑니다. 흙바람이 붑니다. 한참 달리던 버스는 바닷바람 부는 곳에서 멈춥니다. 구멍가게 하나 따로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마을에 섭니다. 군내버스는 퍽 높다라니 놓인 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는 언제쯤 놓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열 해는 지났을까, 스무 해는 지났을까. 그리 멀지 않던 예전에는 뭍 아닌 섬이었을 텐데, 그무렵 이곳 바닷마을 사람들은 무얼 누리고 무얼 생각하며 살았을까요. 온 나라에 흔한 밥집도 닭집도 술집도 없는 고즈넉한 바닷마을에서 물고기 낚으며 살림을 꾸리고, 논밭 작게 일구며 밥을 먹던 사람들은 무얼 얻고 무얼 나누며 살았을까요.


  자동차 없고 경운기도 없던 때에는 바닷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마실을 다녔을까요. 다리가 놓이지 않던 때에는 섬과 뭍은 어떤 사이였을까요. 바닷마을 사람들이 낚은 물고기는 바닷마을 사람보다 뭍마을 사람들이 훨씬 많이 사다 먹을 텐데, 뭍마을 사람들은 바닷마을 사람들은 어떤 이웃으로 헤아릴까요.


.. 고래잡이배들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공장이 되었어요. 증기기관을 달아 포경선은 훨씬 빨라졌고, 폭약을 쓴 작살도 새롭게 설치되었어요 … 종류와 나이에 상관없이, 다 큰 고래부터 새끼 고래까지 모든 고래가 포획되었어요. 그즈음엔 고래를 썰어서 부위에 따라 나누는 일이 갑판에서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뭍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고래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죠 … 사람이 벌이는 산업에는 소음이 끝이 없어요. 소음 공해가 심각한 오늘날엔 과학자들이 물속에 청음기를 넣어도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대요. 사람이 만들어 낸 소음만 가득 차 있다는군요 ..  (39, 43, 98쪽)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바다는 너른 어버이 품이라고 느낍니다.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흙은 너른 어버이 품이라고 느낍니다. 바닷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릴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흙마을 사람들이 흙에 쓰레기를 버릴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바닷마을 한쪽에 건설회사 일꾼과 지자체 일꾼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화력발전소를 짓고 싶어 합니다. 7조 원을 들여 화력발전소를 짓고는, 3500억 원에 이르는 돈을 지역발전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발전소를 지으면 열폐수를 바다에 얼마나 버려 갯벌과 바다를 얼마나 죽일는지는 안 밝힙니다. 발전소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바람이 얼마나 더럽혀질는지는 안 밝힙니다. 발전소와 엄청난 송전탑에서 전자파가 얼마나 나와 논밭과 들판이 어떻게 어지러워질는지는 안 밝힙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들 많이 살아가는 아파트가 있는 크고작은 도시 한복판이나 언저리에 발전소를 짓는 일이 없습니다. 가장 곱고 가장 깨끗하며 가장 푸른 빛깔 뽐내는 시골마을에 발전소를 짓습니다. 화력발전소이든 원자력발전소이든, 어떤 발전소라 하더라도 시골마을에 짓습니다. 물이 맑고 바람이 맑으며 풀이 맑은 시골에 발전소를 지으려 합니다.


  발전소를 짓는 까닭은 전기가 모자라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시골마을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쓰기에 전기가 모자라지 않습니다. 시골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뿐더러, 시골사람은 전기 없어도 살림을 잘 꾸립니다. 전기가 모자란 까닭은 도시사람 때문입니다. 도시에 수없이 선 아파트는 전기 없으면 끔찍한 죽음터가 됩니다. 도시 한복판에 전기가 없으면 금세 무시무시한 죽음터가 됩니다. 오직 도시사람 때문에 전기를 더 만들어야 한다지만, 막상 도시사람 스스로 도시에 발전소를 짓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도시사람은 외칩니다. ‘시골사람이 시골에 발전소 같은 기간시설을 안 들이겠다고 말하는 일은 지역이기주의(님비)’라고.


  시골사람으로 살아가고, 이웃 시골마을로 마실을 다니며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쓸 전기를 도시에 발전소 지어 얻지 않는 일이야말로 지역이기주의일 뿐 아니라 시골따돌림이요 폭력이구나 싶습니다.


.. 고래 수가 얼마나 많으며 종마다 얼마나 많이 사냥할 수 있는지 알아내 고래 사냥을 도우려고요. 하지만 이때도 고래에 관해서 더 자세히 알고자,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방법만큼은 고래 사냥 못지않게 무지막지했다고 해요 … “고래가 사람을 용서하고 있는 것 같아요.” 프로호프 박사는 말해요. “용서란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몹시 강렬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고래들이 사람이랑 적극적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거죠. 말이 안 된다고요? 잘 모르는 생각이에요. 고래가 사람과 사귀고 싶어 할 만큼 영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고래와 시간을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  (49, 63쪽)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거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먹습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낚은 물고기를 먹습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돌보는 나무를 얻어 종이를 빚고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듭니다. 도시사람은 시골마을 땅뙈기에 구멍을 파서 물을 뽑아올려 돈을 치르고는 사다 마십니다. 도시사람은 시골 논밭이나 멧자락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으며, 큰도시와 큰도시 사이를 재빠르게 오갑니다. 도시사람은 시골마을 몇 군데를 통째로 없애 공항을 지으며 나라밖 마실을 다닙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자락에서 캐낸 광물로 물건을 만들고 문명을 빚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어린 나날과 푸른 나날을 보냈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도시란 어떤 곳’이라고 가르치거나 알려주거나 보여준 어른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도시에서 ‘도시와 시골은 어떤 사이’라고 옳게 들려주거나 밝힌 어른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도시에서 낳았으니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랄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숱한 어버이가 도시에서 일거리를 얻어 도시에서 돈벌이를 하기에, 오늘날 숱한 아이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랄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은 무엇을 볼까요. 무엇을 들을까요. 무엇을 배울까요. 무엇을 생각할까요. 무엇을 느낄까요. 무엇을 사랑할까요.


  도시 아이들이 믿으며 아끼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도시 아이들이 좋아하며 즐기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 대왕고래는 지구의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큰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해요 … 고래는 소리의 변화를 감지해서 바다의 깊이를 알아내요. 뭍이 가까워지면 바닷물의 깊이가 얕아지는데, 이때 소리는 높고 빨라져요. 뭍에서 멀어질수록 물은 깊어지고 소리 또한 낮고 느려지고요 … 고래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소리뿐 아니라, 거기 영향을 미치는 다른 세상의 소리도 무엇이든 기억해요 ..  (54, 86쪽)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합니다. 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합니다. 문화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합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든, 스포츠를 하는 사람이든, 모조리 도시에서 합니다.


  시골에도 공무원은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 공무원이 왜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 읍사무소와 면사무소는 꼭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에 있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 궁금합니다. 시골 아이들이 더 큰 도시로 나아가 학교를 다니다가는 더 큰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왜 시골 어른들은 시골 아이들한테 바닷일과 흙일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않을까요. 왜 시골사람은 시골사람으로 태어나 자라는 삶을 학교에서나 교과서에서나 인터넷에서나 방송에서나 책에서나 듣거나 보거나 배울 수 없을까요.


  시골마을에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물처리장이나 쓰레기처리장이나 이것저것 들어서야 한다면, 시골마을은 아주 더러워지거나 무너지거나 어지러워집니다. 이렇게 시골마을이 더러워지면, 시골에서 먹을거리 마실거리 입을거리 쓸거리를 얻는 도시는 ‘더러워진 쌀과 나물과 고기와 열매와 물’을 얻어야 합니다. 도시에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도시까지 길게 뻗으면, 막상 바보가 될 사람은 도시사람입니다. 시골 논밭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낸다든지, 시골 멧자락에 구멍을 뚫거나 멧등성이를 밀어 고속철도를 낼 때에는, 시골이 더러워지고 무너지기 때문에 ‘도시사람이 마실 맑은 바람’에다가 맑은 푸성귀와 맑은 물이 몽땅 더러워지고 무너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끝없이 달리는 자동차가 내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자라는 쌀이 맛있을 수 없습니다. 새벽이든 밤이든 멈추지 않는 기차와 비행기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자라는 배와 포도와 딸기와 복숭아가 맛있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배기가스와 매연이 시골을 더럽히고, 시골에 세운 발전소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 시골을 다시금 더럽힙니다.


  게다가, ‘시골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요,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도시를 지키’고 ‘도시 정치꾼과 경제꾼을 지키’는 군대가 시골을 그지없이 더럽힙니다.


.. 오늘날 고래들은 어디를 가도 사람이 내는 소음에 시달려요. 어마어마하게 큰 유조선의 엔진 소리, 여가용 보트의 모터 소음, 군 음파탐지기의 새된 메아리 들이 고래의 세상을 시끄럽게 채우고 있어요. 넓은 세상이지만 마치 안방에 모여 앉은 것처럼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던 고래들을 우리가 방해하는 거예요. 얼마 안 가서 우리 때문에 고래들이 모두 미칠지도 몰라요 … 카나리아제도에서 고래를 구하려 했던 이들이 밝혀낸 건 그날 가까운 바다에서 군사 훈련이 있었다는 거예요. 수많은 함선이 첨단 수중 음파탐지기를 사용했다는 것도요. 1885년 이래, 카나리아제도를 이루는 섬의 해안에서 부리고래가 발견된 일이 네 번 더 있었어요. 모두 죽어 가는 모습이었고, 한결같이 군사 훈련과 관계가 있었어요 ..  (91, 94쪽)

 


  찰스 시버트 님 글과 몰리 베이커 님 그림이 어우러진 이야기책 《고래의 비밀》(봄나무,2011)을 읽습니다. 고래에 얽힌 속이야기를 몇 가지 밝히는 《고래의 비밀》을 읽습니다. 고래는 바다에서 즐겁고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하며 살았습니다만, 바로 사람 때문에 즐거움을 빼앗기고 아름다움을 잃습니다. 도시 물질문명 때문에 고래들이 죽어나고, 도시를 지킨다는 군대 때문에 고래들이 삶터를 빼앗깁니다.


  도시 때문에 제비가 살 집이 없습니다. 도시 때문에 박쥐가 살 터가 없습니다. 도시 때문에 개구리도 뱀도 사마귀도 메뚜기도 삶터를 빼앗깁니다. 도시 때문에 쑥부쟁이도 달개비도 감나무도 느릅나무도 삶자리를 잃습니다.


  고래를 살리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고래를 생각하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고래를 사랑하거나 고래와 어깨동무하는 길은 아주 쉽습니다.


  이와 달리, 고래를 죽이는 길도 아주 쉽습니다. 고래를 모른 척하는 길도 아주 쉽습니다. 고래를 괴롭히거나 고래를 윽박지리는 길 또한 아주 쉽습니다.


  도시에서 돈벌이를 하며 살림을 꾸리는 이들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한결같이 보내면 고래는 금세 죽고 아주 고단하며 곧 사라집니다. 도시에서 학력과 자격증을 늘리며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세울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고래는 차츰 죽고 몹시 슬프며 머잖아 사라집니다.


  내 삶을 사랑해 보셔요. 고래를 사랑해 보셔요.


  내 삶을 곱게 보살펴 보셔요. 고래를 곱게 보살펴 보셔요. (4345.5.16.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 같은 사진은 어떤 내음일까
 [찾아 읽는 사진책 94] 서순정, 《일본의 작은 마을》(살림Life,2009)

 


  2009년 11월에 처음 나온 서순정 님 여행사진책 《일본의 작은 마을》(살림Life,2009)을 내가 언제 장만했는가 곰곰이 떠올려 봅니다. 지난해였는지 그러께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이 여행사진책을 애써 장만한 그무렵 내 보금자리를 새 곳으로 옮겨야 했기에, 이 책은 다른 책들하고 한데 묶이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 곳으로 옮긴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조금씩 책짐을 끌르며 갈무리를 하다가 뒤늦게 알아보고는 뒤늦게 천천히 읽습니다.


  서순정 님은 “도쿄에만 빠져 있다 교토를 알게 되니 단박에 그 엄격하고 단정한 모습에 매료되었다. 도쿄가 일본의 전부인 양 도쿄밖에 몰랐던 내가 새로운 일본을 알게 된 것이다(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도쿄가 ‘모든 일본’이라 할 수 없지만, 도쿄마실만 하면서 ‘일본마실’을 했다고 여긴다 해서 잘못되거나 틀리거나 어긋났다 할 수 없습니다. 꼭 도쿄부터 훗카이도와 류우큐우까지 골고루 돌아야 ‘모든 일본마실’을 다 했다 하지는 않거든요. 나 스스로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곳을 내가 다닐 수 있는 만큼 다니면 가장 좋은 마실이 돼요.


  한국에서 마실을 다닐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만 해도 즐겁습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을 해도 즐겁고, 춘천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을 누려도 즐겁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살아가며 인천마실을 즐길 테고, 춘천마실이나 대전마실이나 부산마실을 즐기겠지요. 그런데, 서울마실을 하더라도 서울 시내 모든 구와 동을 골고루 다닐 수 있지만, 어느 구와 동 한두 군데를 더 샅샅이 돌아다닐 수 있어요. 어떻게 다니든 ‘내가 좋아하는 다리품을 팔면서 내가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면 가장 좋은 마실입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잘 정비되지도 않은 허름한 배경에 흐르는 물은 풍성하지 않지만, 그 깨끗하고 말간 물빛은 감동이다(16쪽).”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은 이런저런 시설을 잘 갖춘 모습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이래저러 허름하거나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푸른 들판 넓게 펼쳐진 숲과 멧자락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아기자기한 골목동네가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다 다른 삶터는 다 다른 결로 다 다른 아름다운 빛입니다.


  다 다른 삶터를 돌아다니는 ‘다 다른 사람 가운데 하나’인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사진빛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그래서, “관광지의 유람선은 시시하다. 시답잖은 유람선을 타고 슬쩍 돌아본 후나야 마을의 진가는 마을을 걸어다녀 봐야 알 수 있다 … 여행자에게는 창이 되는 이 공간이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그늘진 거리보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이곳에 빨래를 널기도 하고, 오징어나 생선을 말리기도 하고, 가을이면 예쁘게 깎아 둔 감을 껍질과 함께 걸어 두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당연하고 의례적인 광경이지만 여행자에겐 아기자기한 감동이다(108, 110쪽).” 하고 느끼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내가 아기자기하게 가슴 뭉클히 느끼면 즐겁습니다. 내가 햇살 고운 하루를 느끼면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감알 마르는 내음을 느끼면 기쁩니다. 내가 천천히 걸어다니며 이 길을 아끼고 저 길을 어루만질 수 있으면 어여쁩니다.

 

 


  다만, “사실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 전체 일정을 자동차로 움직였다. 자전거를 타고 비에이의 초원을 달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 그 아쉬움은 튼튼한 두 다리로 메운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자전거보다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보게 한다(247쪽).” 하고 읊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자동차로 움직인다고 나쁠 까닭은 없습니다. 자전거로 움직인다고 더 좋을 까닭은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 본다고 가장 좋을 까닭은 없어요.


  자동차로 달릴 때에는 자동차로 달리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누리면 됩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나누면 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두 다리가 느끼는 삶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삭히면 돼요.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없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갈 때에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야 가장 좋을까요. 어쩌면, 헤엄을 쳐서 바다를 가르며 일본으로 건너간다면, 그 누구도 겪거나 느끼지 못한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사랑을 느낄 테지요. 조각배 한 척 스스로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널 때에도 대단히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사랑을 느낄 만합니다. 그러니까, 헤엄을 치든 배를 젓든 비행기를 타든, 온 하루를 내 삶으로 받아들여 즐기면 넉넉합니다. 자동차로 달릴 때에는 자동차로 달리는 길을 누리면 됩니다. 굳이 꺼리거나 숨기거나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달리고, 얼마든지 쉬며, 얼마든지 다시 달리고, 얼마든지 다시 쉬면 좋아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드세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아주 보드랍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봄에는 봄내음 가득 묻은 꽃빛과 풀빛을 싣고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여름철 싱그러운 푸른 빛깔 온통 실으며 붑니다. 여름바람에는 따스한 날씨를 찾아 한국으로 날아온 제비들 노랫가락이 살포시 실립니다.


  나는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도, 보드랍게 부는 바람도, 꽃내음 실은 바람도, 나뭇잎 간질이는 바람도, 아주 조용한 바람도, 햇살을 살포시 실은 바람도 좋습니다. 구름을 움직이는 바람도 좋고, 빗줄기를 흔드는 바람도 좋아요. 어느 한때 가장 좋다거나 가장 빛난다 하는 바람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바람 같은 사진은 어떤 내음일까 생각해 봅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스치는 바람’과 같다고 하는데, 알래스카에서 ‘바람 같은 이야기’를 느끼며 글이랑 사진으로 적바림한 호시노 미치오 님은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적바림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서순정 님이 두루 돌아보았다 하는 일본땅 작은 마을은 어떤 삶 어떤 이야기로 아로새겨지는가 곱씹어 봅니다.


  ‘더 많은 작은 마을’을 더 오래 더 자주 더 깊이 더 넓게 돌아다닌다 해도 즐겁고 좋습니다. 몇몇 작은 마을을 한두 번 슬쩍 들렀다 해도 즐겁고 좋습니다.


  굳이 이 마을 저 마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아요. 꼭 이 마을 저 마을 맛집 밥집 멋집을 알려주거나, 차편을 밝혀야 하지 않아요. 이 마을에서 느낀 고운 사랑을 곱게 적바림하면 넉넉합니다. 저 마을에서 나눈 맑은 꿈을 맑게 아로새기면 흐뭇합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를 왜 적어야 할까 생각합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는 왜 작고 얼마나 작으며 어떻게 작을까 헤아립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가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푸근하면 내 가슴으로 어떻게 스며들어서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푸근할까 곱씹습니다. ‘총정리’가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표준 교재’나 ‘표준 지침서’ 같은 이야기는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닥 어여쁘지 않아요. 해맑은 날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기를 들어 바라보는 각도와 손짓과 몸짓에 따라 셔터값이랑 조리개값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사진으로 담기는 모습 또한 그때그때 바뀌어요. 서순정 님은 서순정 님 나름대로 ‘어느 한길로만 곧게 다니지’ 않았을 테고, 서순정 님처럼 또는 서순정 님과 다르게 일본 작은 마을을 사랑하며 돌아다닐 사람들은 ‘서순정 님이 다닌 길을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다닐’ 까닭이 없겠지요. 그러니까, 스스로 가장 좋았다고 느끼고 가장 사랑스럽다고 여긴 대목만 기쁘게 들려주면 아기자기하게 빛나겠지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분 스스로 가장 즐기며 누린 이야기가 그닥 드러나지 않고, ‘길잡이책이 되려는 매무새’가 짙게 보여 퍽 아쉽습니다. (4345.5.14.달.ㅎㄲㅅㄱ)

 


― 일본의 작은 마을 (서순정 글·사진,살림Life 펴냄,2009.11.16./12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사랑할 내가 심는 나무
 [만화책 즐겨읽기 148]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3)》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예전 시골집에서 오늘 살아가는 시골집으로 옮기며 살구나무 두 그루도 파서 옮길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무였으니 옮겨도 될 만하다 싶었는데, 그냥 두고 왔습니다. 아쉽거나 안쓰럽기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새롭게 살아갈 터에서는 새롭게 누리는 우리 아이들 두 나무 새 씨앗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적 나무를 옳게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듣던 얘기는 많아, 나도 내 나무 한 그루 건사하고 싶었습니다. 예부터 가시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 했어요. 가시내가 무럭무럭 자라 시집을 갈 무렵 오동나무 또한 무럭무럭 자라, 옷장 하나 짤 만큼 우람하게 자란다 하더군요. 그렇다고,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어른들이 오동나무 심는 모습은 못 보았어요. 더 먼 옛날, 사람들이 흙에 기대어 흙집 짓고 흙밥 먹던 때에나 오동나무를 심었다 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그러면 가시내 말고 사내가 태어나면 무슨 나무를 심나요?’ 하고 물으면, 딱히 무어라 말이 없습니다. 사내가 태어날 때에 사내더러 아끼거나 사랑할 만한 나무를 굳이 어느 한 가지로 삼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 “음, 그러니까, 린 학교 입학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 거야.” “기념.” “그러니까, 추억 같은 거지.” … “난 비파가 좋아!” “비파?” “응! 이거! 급식 때 나온 비파 씨앗이야.” “씨앗을, 심겠다고?” “비파 맘대로 먹게.” (11, 14∼15쪽)
- “야, 코우키! 놀고만 있으면 생활 시간 끝나버리잖아! 빨리 앉아서 그림 그려! 쟤네들 따라서 딴짓 하면 안 돼!” (152∼153쪽)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며 늘 ‘내 나무’는 어떤 나무로 심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 집도 내 땅도 없는 주제라 할 테지만, ‘내 나무’를 꿈꾸었습니다. 오동나무? 감나무? 배나무? 이런 나무 저런 나무를 떠올립니다. 그러다가 이내 입시지옥 생각으로 빠지며 나무 생각을 잊습니다. 한창 학교 수업을 받거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다가 나무를 생각하곤 했는데, 내 꿈생각은 오래 갈 수 없었습니다.


  2008년에 첫째가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도시에서 살림집을 거느리느라 ‘내 나무’는커녕 ‘아이 나무’조차 바라지 못합니다. 2011년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 세 식구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에, 이제 세 식구 나무를 생각할 만합니다. 먼저 ‘두 아이 나무’를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우리 시골집을 떠올리도록 할 만한 나무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한 끝에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마련해서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어요. 그런데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심고 나서 여섯 달 뒤에 새터로 옮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커서 어른이 될 무렵 ‘우리 집은 살구나무 두 그루 예쁘게 자라는 집’이라 말하고 싶었으나, 이 꿈이 깨집니다. 이 꿈이 깨지니, 딱히 살구나무까지 파내어 새터로 옮기고 싶지 않더군요.

 


- ‘솔직히 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딱히 위험하지도, 멀지도 않은 길을 린이 걸어다니는 것뿐인데.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유치원에 혼자 걸어서 다녔고, 그것도 린보다 먼 거리였던데다가 자전거 타고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51쪽)


  오늘 살아가는 우리 시골집은 여러 나무가 함께 살아갑니다. 이 시골집에서 예전에 살던 홀로 남은 할머니하고 어깨동무하던 나무들입니다. 딸아들 모두 도시로 보내고 시골에 남은 할머니는 나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후박나무하고 동백나무하고 감나무하고 무슨 이야기를 속삭였을까요. 뒤꼍 뽕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매화나무와 옻나무와 탱자나무와 모과나무하고는 어찌저찌 이야기꽃 피웠을까요.


  봄을 맞이한 나무들이 새잎을 틔우고 새꽃을 피울 때, 곁에서 나뭇가지와 잎사귀와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을 건넵니다. 참 예쁘구나, 참 곱구나, 참 좋구나. 너희는 어쩜 이리도 어여쁜 꽃과 푸른 잎을 달며 튼튼하게 잘 자라니.


  후박나무 꽃봉우리 터질 때, 둘째를 번쩍 안아 휘휘 위로 던져 올리며 후박꽃 내음을 맡도록 했습니다. 좋은 마음 고운 생각 맑은 꿈을 서로서로 싱그러이 북돋우며 이곳에서 다 함께 즐겁게 살자고 바랍니다.


  문득, 옛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무렵인데, 내 나무 한 그루 심을 데 없던 도시였지만, 길과 골목마다 모든 아이들이 제 이름을 걸고 나무 하나 심도록 할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꼭 멀디먼 멧자락을 찾아가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 예쁘게 심고 예쁘게 돌보면 넉넉하리라 생각했어요. 메마른 도시라 한다면, 푸른 기운 넘실거리며 사랑스러운 도시가 되도록 아이들이 새롭게 나무를 심어 스스로 ‘내 나무’를 돌보고 사랑하도록 하면 좋으리라 꿈꾸었어요. 이렇게 하면, ‘내 나무’를 돌보던 아이들이 커서 고향을 떠난다 하더라도, 어릴 적 돌보던 ‘내 나무’를 그리며 고향을 찾아갈 테고, 나중에 아이를 낳아 아이들 손을 잡고 어린 나날 ‘내 나무’ 우람하게 자란 모습을 올려다보며 굵직한 줄기에 온몸을 맡기며 나무내음을 맡을 수 있어요.

 

 


- “박스를 다루는 업무는 우리 회사에서 누구나 항상 하는 일입니다. 바쁠 때는 부장님도 상품을 포장하고 짐을 나르기도 합니다. 음, 뭐, 확실히 지루한 업무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건 단순작업이 아닙니다. 고객에게 가는 출고, 고객에게서 오는 반품, 거래처에서 오는 입고, 거래처로 보내는 출고, 촬영용 샘플, 회의용 샘플, 겉보기에는 똑같은 갈색 박스들이지만, 내용물의 의미는 제각각 다릅니다.” (86쪽)
- “으이그 이것아! 여기 일은 여자들한테 무리야.” “어머! 요새는 모집공고에 성별 구분 하면 안 된다고요!” “여자라도 남자 못지않게 팔힘이 있고, 피부 같은 거 신경 안 쓰면 상관없어.” (95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셋째 권을 읽으며 자꾸자꾸 나무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둘레 어른들이 나무 이야기를 자꾸자꾸 되새겨 주니 참 부럽도록 좋겠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그리며 나무를 바라보며 자라는 아이는 언제나 나무 한 그루 소리와 내음과 빛깔과 무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겠지요. 나무를 이루는 작은 씨앗을 생각하고, 작은 씨앗으로 큰 나무 이루어질 앞날을 그리며, 크게 자란 나무에서 다시 얻을 씨앗을 바라는 아이는, 늘 좋은 사랑과 착한 믿음을 고이 건사하겠지요.


- ‘슬프도다.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번다. 애 키우려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수입도 준다. 다들 대체 어떻게 잔고를 맞추고 있는 거지? 내 경우엔 확실히 월급이 줄긴 했지만, 입사 9년차 기본급은 챙겨 받고 있으니까, 린 하나쯤이야 별 문제 없이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엄마 혼자 버는 집은 사정이 어떨까?’ (119쪽)
-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이 녀석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린의 어머니처럼 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123쪽)

 

 


  나무 한 그루는 어미나무가 맺은 씨앗이 흙에 떨어져 새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사랑으로 맺은 씨앗이 얼크러져 새로 자랍니다. 씨앗 한 알에는 온누리 뭇사랑이 깃듭니다. 씨앗 한 알은 지구별을 아름다이 어루만집니다. 씨앗 한 알에서 새 삶이 열리고, 씨앗 한 알부터 새 이야기 펼쳐집니다.


  나무와 살아가는 아이는 나무와 함께 꿈을 꿉니다.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며 무럭무럭 크는 나무는 아이와 함께 사랑을 맺습니다. 봄을 맞고, 여름을 누리며, 가을을 즐기다가는, 겨울을 기다립니다. 봄에는 봄 이야기를 맺고, 여름에는 여름 이야기를 피우며, 가을에는 가을 이야기를 엮다가는, 겨울에는 겨울 이야기를 일굽니다.


- “린. 네가 키운 용담꽃 갖고 가면 할아버지도 좋아하시겠지만.” “그치? 그치?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네가 오는 거 자체를 제일 좋아하실 거야. 분명히. 그게 1위야.” (169쪽)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많지 않다. 외할아버지 집은 외삼촌 집으로, 내 집은 나와 린의 집으로, 변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208∼209쪽)


  어떤 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살림을 꾸릴 때에 내 하루가 즐거울는지 생각합니다. 내 둘레 어떤 나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으로 사랑하거나 아낄 때에 내 꿈이 빛날는지 헤아립니다.


  나한테서 좋은 생각이 솔솔 퍼져 내 둘레 나무들한테 스며듭니다. 내 둘레 나무들한테서 좋은 내음이 살살 퍼져 내 몸으로 깃듭니다. 손바닥을 나무줄기에 댑니다. 볼을 나뭇잎에 댑니다. 손가락을 꽃잎에 댑니다. 이마를 나무열매에 댑니다. 콩닥콩닥 뛰는 숨소리를 느낍니다. 콩닥콩닥 노래하는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신나게 들길을 걷다가 우뚝 서서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쁘게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살짝 멈추어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할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사랑할 나무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4345.5.14.달.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8.12.22./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비의 소원 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소피 블랙올 그림, 시린 임 브리지스 글, 이미영 옮김 / 비룡소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을 키우는 생각과 말과 몸짓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8] 소피 블랙올·시린 임 브리지스, 《루비의 소원》(비룡소,2004)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은 때때로 ‘가르치기’가 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때에는 가르치기하고 동떨어지리라 느낍니다. 학교에 보내는 일이란 말 그대로 ‘학교 보내기’이지 ‘가르치기’는 아니니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어버이들은 으레 ‘동무라도 잘 사귀’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성적이 잘 나와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금 손꼽히는 큰 회사에 돈 많이 받으며 다닐 수 있기’를 바라곤 합니다.


  예나 이제나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좋다 나쁘다 그르다 옳다 하고 가르자는 소리가 아니라, 학교란 무슨 뜻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어버이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익히’고 ‘어떤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가 헤아려 봅니다. 동무들과 착하게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랄까요. 이웃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내 삶을 아끼고 이웃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학교에서 익힐 수 있기를 바랄까요.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곱고 튼튼히 돌보는 매무새를 학교에서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랄까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깨끗한 먹을거리를 얻고,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정갈한 옷가지를 얻으며, 스스로 나무를 다듬어 살림집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이어받을 수 있기를 바랄까요.


.. 중국에서 빨간색은 축하의 색이에요. 아이들은 설날에 행운의 돈이 들어 있는 빨간색 봉투를 받고, 신부들은 결혼식 날 빨간색 옷을 입어요. 그런데 루비는 날마다 빨간색 옷을 입겠다고 우겼어요. 엄마가 사촌들처럼 수수한 색 옷을 입혔을 때도, 루비는 새까만 머리에 빨간색 리본을 매곤 했지요 ..  (7쪽)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여느 어른들은 어떤 꿈을 품을까 헤아려 봅니다. 교사가 되기까지 여느 어른들은 대학교를 비롯해 초·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교사가 되려는 사람한테 대학교와 나라와 정부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교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교사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교과서 지식을 잘 집어넣을 때에 교사다운가요. 아이들이 삶을 삶다이 꾸리는 길을 스스로 찾도록 돕거나 이끌 때에 교사다운가요. 교과서란 어떤 지식을 담고, 교과서를 빚은 어른들은 어떤 넋이었을까요. 교과서 지식으로 치르는 시험은 아이들 삶을 어떻게 흔들까요.


  이모저모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오늘날 한국땅 학교란 무슨 뜻이거나 무슨 보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아이들이 어떤 꿈·사랑·이야기를 배우면서 스스로 좋은 넋과 착한 얼과 참다운 슬기를 빛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남자 애들만큼 공부를 잘 하려면 루비는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남자 아이들은 공부가 끝나면 자유롭게 놀 수가 있었지만, 여자 아이들은 요리와 집안일을 배워야 했거든요. 사실 엄마들은 여자 아이는 이런 것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여자 아이들은 하나둘 공부를 그만두었어요. 루비만 빼고 모두 그랬지요 ..  (12쪽)

 


  우리 집 두 아이를 학교나 시설에 맡기지 않으면서 내가 더 뛰어나거나 슬기롭거나 빼어나거나 훌륭하게 무언가를 가르치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니, 나는 아직 우리 집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두 아이가 얼마나 더 홀가분하게 놀며 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얼마나 더 풀과 흙과 들과 멧자락을 껴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내가 얼마나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꿈을 키우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찬찬히 사랑하며 누릴 한삶으로 엮자고 생각합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바쁘면서, 하루하루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아이들이 천천히 씩씩하게 자라면서 저희 삶터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내 몸가짐이 이리 흔들리거나 저리 고꾸라지곤 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고, 요런조런 일로 나 스스로 더 기쁘게 내 일감을 갈무리하지 못하곤 합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면서, 아이들 손을 잡거나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우거나 품에 안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부터 싱긋 웃으면 아이들도 웃고, 나부터 얼굴 찌푸리면 아이들도 얼굴 찌푸립니다. 나부터 노래하면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나부터 풀내음 맡으면 아이들도 풀내음 맡습니다.


  제비집을 올려다보며 날마다 인사합니다. 빨래를 널고 개면서 옷가지 결을 쓰다듬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과 별한테 손을 흔듭니다. 바람이 건드리는 나뭇잎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나 또한 내 삶입니다. 나 스스로 내 나이 마흔이거나 예순이거나 여든이거나 새롭게 느끼며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깨달으면서 새롭게 즐기는 하루입니다.

 


..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를 써 보라고 했어요. 루비는 이렇게 썼지요. “아, 슬프다! 여자로 태어난 이 몸, 그보다 더한 불행은 남자만을 위하는 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  (15쪽)


  소피 블랙올 님 그림과 시린 임 브리지스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4)을 읽습니다. 빨간 옷을 좋아하는 그림책 ‘루비’는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한집안 다른 사내들처럼 배우기에만 온마음을 쏟을 수 없습니다. 루비는 가시내이기 때문에 사내들과 달리 집안일을 함께 배워야 합니다. 루비한테 주어진 집안일을 날마다 맡아야 합니다. 루비는 루비 마음대로 이것저것 신나게 배울 수 있지만, 이것저것 신나게 배우려면 날마다 주어진 집일을 치러야 합니다.


  곰곰이 돌이킵니다. 루비네 집안은 살림이 넉넉하니까 ‘집안 어린 사내’들이 가정교사한테서 느긋하게 배운 다음 홀가분하게 놀 수 있습니다. 루비네 집안 살림이 가난하다면, 가정교사는커녕 제도권학교조차 못 다닐 만합니다. 가난한 집 어린 사내들이라면 어버이하고 함께 들일을 하거나 바닷일을 하거나 장사일을 하거나 함께하겠지요. 이때에는 어린 사내들뿐 아니라 어린 가시내들도 제도권학교는커녕 글을 배우거나 책을 읽을 엄두를 못 내리라 느낍니다.

 


.. 할아버지가 부드럽게 말했어요.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 루비가 자신의 빨간색 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남자 애들은 대학에 가고 여자 애들은 결혼하게 된다는 거예요.” (17, 21쪽)


  돈이 넉넉한 집안이라서 더 넉넉히 배울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집일이나 돈벌이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하겠으나, 그만큼 어버이와 함께하는 겨를이 적구나 싶어요. 돈이 적은 집안에서는 집일이나 돈벌이를 오래오래 살펴야 한다 하겠으나, 그래도 어버이와 함께하는 겨를이 많을 수 있어요. 저잣거리 장사를 하더라도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꽃 피울 수 있겠지요. 들판에서 논밭을 일구더라도 어머니 아버지하고 나란히 서서 일노래 부르며 땅을 갈 수 있어요.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하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살결을 스치고 어버이 손을 맞잡으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목소리를 듣고 어버이 품에서 따스함을 느끼면서 배운다고 느낍니다.

 


.. 루비는 (설날) 행운의 빨간 봉투를 열 때 온 가족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겠어요? 그건 돈이 아니었어요. 돈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었지요 ..  (24쪽)


  그림책 루비는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림책 루비는 다른 자매들이나 이웃 자매들과 달리 ‘시집살이’ 아닌 ‘대학살이’를 합니다. 더 넓다는 누리를 누리고, 더 깊다는 학문을 파고듭니다. 더 너른 나라를 돌아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꿈을 키우는 생각과 말과 몸짓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루비네 집안이 가난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텐데, 가난한 루비네 집안이라 한다면 루비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삶을 꾸리면서 또다른 배움길을 걸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비가 배움길을 못 걷고 살림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루비는 집안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또다른 배움자리를 찾아 또다른 배움빛을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루비한테는 돈도 이름도 무엇도 대수롭지 않아요. 루비한테는 날마다 좋은 생각과 기쁜 꿈과 맑은 사랑이 대수롭습니다. 루비한테는 제도나 사회나 문화가 대단하지 않아요. 루비한테는 고운 이야기와 환한 웃음꽃과 싱그러운 눈빛이 대단하게 자리해요. 따스한 바람이 봄날 시골마을 들판을 골고루 보듬으며 산들산들 붑니다. (4345.5.13.해.ㅎㄲㅅㄱ)

 


― 루비의 소원 (소피 블랙올 그림,시린 임 브리지스 글,이미영 옮김,비룡소 펴냄,2004.3.15./8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해선 사진집 - 사진으로 남은 1950-60년대
이해선 지음 / 눈빛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마다 고마운 삶, 즐겁게 사진찍기
 [찾아 읽는 사진책 93] 이해선, 《이해선 사진집》(눈빛,2005)

 


  1905년에 태어나 1983년에 숨을 거둔 이해선 님이 빚은 사진들로 꾸린 《이해선 사진집》(눈빛,2005)을 읽습니다. 오랜 나날 사진과 함께 살아온 이해선 님이지만, 막상 당신 이름 석 자를 아로새긴 사진책은 1980년에 처음 냈습니다. 이때에 내놓은 사진책 두 가지는 ‘비매품’이었고, 2005년에 이르러 비로소 누구나 쉽게 찾거나 만날 수 있는 판으로 태어납니다.


  사진일을 하거나 사진공부를 하는 이라면 여러모로 ‘이해선 님 비매품 사진책’을 구경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일을 하거나 사진공부를 하더라도 ‘이해선 님 비매품 사진책’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으며, 따로 누가 건네어 보여주지 않는다면 살펴보거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2005년에 빛을 본 《이해선 사진집》에 실린 머리글을 읽습니다. “백오 선생께서는 흑백사진은 사물이 지닌 모든 고유색을 흑백만의 추상세계로 바꾸어 표현하기에 좋다며 흑백사진만을 고집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호도 ‘백오(白烏)’로 지으셨습니다(5쪽/안준천).”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새깁니다. 이해선 님이 사진을 하던 지난날 한국에서는 무지개빛 필름을 쓰기 아주 힘들었습니다. 매우 비쌌거든요. 비싸다고 못 쓸 무지개빛 필름은 아닙니다만, 매우 비싼 필름을 함부로 쓰기는 참 만만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무지개빛으로도 찍고 흑백으로도 찍는데, 어느 빛을 살펴 찍더라도 내 빛을 헤아리며 찍을 수 있어야 이른바 ‘빛그림’이라 하는 사진을 이룹니다. 돈이 있어 무지개빛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스며드는 빛살을 내 마음으로 아로새기며 새 빛으로 엮으려는 사랑이 없다면 사진을 이루지 못해요. 이때에는 빈 껍데기 복사품만 만들어요. 돈이 없기에 까망하양 빛깔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스스로 제 까망하양 빛깔을 빛살과 빛무늬와 빛결과 빛내음과 빛소리와 빛느낌을 살리지 않는다면, 애써 사진기를 놀린다 하더라도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누리는 빛입니다. 햇볕을 먹는 민들레는 스스로 민들레로 자랍니다. 햇볕을 받는 제비꽃은 스스로 제비꽃으로 자랍니다. 햇볕을 누리는 엉걸퀴는 스스로 엉겅퀴로 자랍니다. 햇볕을 즐기는 해바라기는 스스로 해바라기로 자랍니다. 햇볕을 머금는 벼는 스스로 벼로 자랍니다. 저마다 다른 씨앗은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 햇볕을 받아먹으며 스스로 자랍니다. 저마다 다른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목숨에 걸맞게 햇볕을 나누어 받으며 스스로 자라요. 같은 졸참나무라도 생김새와 키와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다릅니다. 같은 뽕나무라도 잎사귀와 꽃과 열매가 달라요. 한 형제나 자매라 하더라도 사진을 배워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다른 이야기를 빚을 테지요. 한 학교에서 같은 교수한테서 사진을 배우더라도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눈길과 손길로 사진을 보여줄 테지요.


  사진은 무지개빛으로 이루지 않습니다. 사진은 까망하양으로 이루지 않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으로 이룹니다. 무지개빛으로 바라보며 담겠다면 무지개빛 무늬와 결과 소리와 내음을 살포시 내 느낌으로 담습니다. 까망하양으로 바라보며 싣겠다면 까망하양 무늬와 결과 소리와 내음을 가만히 내 느낌으로 실어요.


  이해선 님은 이해선 님이 받아들이는 빛을 이해선 님이 사랑하는 사진으로 빚습니다. 누군가 이해선 님하고 똑같은 기계와 필름을 쓴다 하더라도, 누군가 이해선 님하고 똑같은 셔터값과 조리개값으로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 하더라도, 이해선 님이랑 다른 사람은 다른 사진을 빚어요. 다른 빛그림을 이루어요. 다른 빛살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이해선 사진집》 끝자락에 실린 붙임글을 읽습니다. “선생께서는 성의없이 찍어 온 사진은 용서하지 않았다. 육십대의 제자가 가져온 사진이라도 생각없이 쉽게 찍어 온 사진은 집어던지며 호통을 치곤 하셨다(150쪽/안장헌).”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새깁니다. 이해선 님은 사진모임 지도위원이라든지 사진공모 심사위원 자리를 으레 맡았다고 하지만, 사진학과 강의를 펼치며 수강생을 모은다든지 사진교재를 빚는다든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아마추어 사진길’을 걸었다 할 텐데, 사진에 아마추어와 프로가 따로 있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에 아마추어와 프로가 따로 없고, 집살림에 아마추어와 프로가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나 스스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삶이면서, 날마다 새롭게 누리는 고마운 삶입니다. 더 솜씨있게 펼치는 사진이라든지 더 빼어나게 선보이는 살림은 없어요. 더 재주있게 찍는 사진이라든지 더 훌륭하게 쓰는 글은 없어요.


  언제나 내 삶만큼 이루는 사진이요 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삶 그대로 사진이나 글을 이룹니다. 내가 못마땅해 하거나 나 스스로 어딘가 어수룩하거나 모자라다고 여긴다면, 내 사진과 글은 나부터 느끼기에 어수룩하거나 모자랍니다. 내가 즐기면서 내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삶이라면 내가 즐기면서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사진과 글이 돼요.


  다른 사람 생각이나 눈길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비평이나 비판이나 평가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으로 이루는 삶이듯, 내 생각으로 이루는 사진입니다. 내 마음에 따라 누리는 삶이요 하루이듯, 내 마음에 따라 누리는 사진이요 빛입니다.

 

 


  사진책 《이해선 사진집》을 찬찬히 되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1950∼60년대 모습’을 아련히 떠오르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아마, 어느 대목에서는 이런저런 옛모습을 되새기도록 이끌리라 봅니다. 그러나,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이해선 님이 1950년대를 살아가며 1950년대 한삶을 사진으로 갈무리할 때에는 1950년대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곳 삶을 사랑하며 찍은 사진이지, 쉰 해나 예순 해 뒤에 살아갈 사람들이 ‘옛모습을 되새기도록(추억하도록)’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1960년대에는 1960년대대로 이무렵 삶을 사랑하고 즐기며 찍은 사진입니다. 그날그날 하루를 즐깁니다. 그때그때 삶자리를 누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제 손길은 오늘 하루 이 아이들이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진으로 담는 손길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고 자라 앞으로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 될 무렵 ‘옛다, 네 옛모습(추억)이다. 잘 보렴.’ 하고 갑작스레 툭 던지는 선물이 아니에요. 어버이로서 이 아이들과 하루하루 즐겁고 사랑스럽다 느끼기에 찍은 삶, 곧 ‘현실’이자 ‘현장’이며 ‘웃음빛’입니다.


  웃음빛을 눈빛으로 느껴 사진빛으로 앉힙니다. 눈물빛을 마음빛으로 되새겨 글빛으로 영글어 놓습니다. 날마다 고마운 삶이라 웃습니다. 날마다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재미난 삶이라 춤춥니다. 날마다 신나게 춤추며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빛나는 삶이라 노래합니다. 날마다 흐뭇하게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4345.5.13.해.ㅎㄲㅅㄱ)

 


― 이해선 사진집 (이해선 사진,눈빛 펴냄,2005.10.21./35000원)

 

 

 

 

이해선 님 사진책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셔요.

 

 

 

아이들 놀이를

잘 담은 사진들이

아주 좋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좋아하는 모습을

담으면 모두 사진입니다.

 

 

 

가난한 삶이든 넉넉한 삶이든

스스로 좋아하며 누리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