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작은 마을 - 앙증맞고 소소한 공간,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서순정 지음 / 살림Life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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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같은 사진은 어떤 내음일까
 [찾아 읽는 사진책 94] 서순정, 《일본의 작은 마을》(살림Life,2009)

 


  2009년 11월에 처음 나온 서순정 님 여행사진책 《일본의 작은 마을》(살림Life,2009)을 내가 언제 장만했는가 곰곰이 떠올려 봅니다. 지난해였는지 그러께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이 여행사진책을 애써 장만한 그무렵 내 보금자리를 새 곳으로 옮겨야 했기에, 이 책은 다른 책들하고 한데 묶이며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 곳으로 옮긴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조금씩 책짐을 끌르며 갈무리를 하다가 뒤늦게 알아보고는 뒤늦게 천천히 읽습니다.


  서순정 님은 “도쿄에만 빠져 있다 교토를 알게 되니 단박에 그 엄격하고 단정한 모습에 매료되었다. 도쿄가 일본의 전부인 양 도쿄밖에 몰랐던 내가 새로운 일본을 알게 된 것이다(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도쿄가 ‘모든 일본’이라 할 수 없지만, 도쿄마실만 하면서 ‘일본마실’을 했다고 여긴다 해서 잘못되거나 틀리거나 어긋났다 할 수 없습니다. 꼭 도쿄부터 훗카이도와 류우큐우까지 골고루 돌아야 ‘모든 일본마실’을 다 했다 하지는 않거든요. 나 스스로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곳을 내가 다닐 수 있는 만큼 다니면 가장 좋은 마실이 돼요.


  한국에서 마실을 다닐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만 해도 즐겁습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을 해도 즐겁고, 춘천에서 살아가며 서울마실을 누려도 즐겁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살아가며 인천마실을 즐길 테고, 춘천마실이나 대전마실이나 부산마실을 즐기겠지요. 그런데, 서울마실을 하더라도 서울 시내 모든 구와 동을 골고루 다닐 수 있지만, 어느 구와 동 한두 군데를 더 샅샅이 돌아다닐 수 있어요. 어떻게 다니든 ‘내가 좋아하는 다리품을 팔면서 내가 사랑하는 하루를 누리’면 가장 좋은 마실입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잘 정비되지도 않은 허름한 배경에 흐르는 물은 풍성하지 않지만, 그 깨끗하고 말간 물빛은 감동이다(16쪽).”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곳은 이런저런 시설을 잘 갖춘 모습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이래저러 허름하거나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푸른 들판 넓게 펼쳐진 숲과 멧자락이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어느 곳은 아기자기한 골목동네가 좋다고 느낄 만합니다.


  다 다른 삶터는 다 다른 결로 다 다른 아름다운 빛입니다.


  다 다른 삶터를 돌아다니는 ‘다 다른 사람 가운데 하나’인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사진빛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그래서, “관광지의 유람선은 시시하다. 시답잖은 유람선을 타고 슬쩍 돌아본 후나야 마을의 진가는 마을을 걸어다녀 봐야 알 수 있다 … 여행자에게는 창이 되는 이 공간이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그늘진 거리보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이곳에 빨래를 널기도 하고, 오징어나 생선을 말리기도 하고, 가을이면 예쁘게 깎아 둔 감을 껍질과 함께 걸어 두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당연하고 의례적인 광경이지만 여행자에겐 아기자기한 감동이다(108, 110쪽).” 하고 느끼며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내가 아기자기하게 가슴 뭉클히 느끼면 즐겁습니다. 내가 햇살 고운 하루를 느끼면 사랑스럽습니다. 내가 감알 마르는 내음을 느끼면 기쁩니다. 내가 천천히 걸어다니며 이 길을 아끼고 저 길을 어루만질 수 있으면 어여쁩니다.

 

 


  다만, “사실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 전체 일정을 자동차로 움직였다. 자전거를 타고 비에이의 초원을 달리는 이들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 그 아쉬움은 튼튼한 두 다리로 메운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자전거보다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보게 한다(247쪽).” 하고 읊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자동차로 움직인다고 나쁠 까닭은 없습니다. 자전거로 움직인다고 더 좋을 까닭은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 본다고 가장 좋을 까닭은 없어요.


  자동차로 달릴 때에는 자동차로 달리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누리면 됩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나누면 됩니다.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두 다리가 느끼는 삶을 내 깜냥껏 내 빛으로 삭히면 돼요.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없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갈 때에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야 가장 좋을까요. 어쩌면, 헤엄을 쳐서 바다를 가르며 일본으로 건너간다면, 그 누구도 겪거나 느끼지 못한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사랑을 느낄 테지요. 조각배 한 척 스스로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널 때에도 대단히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사랑을 느낄 만합니다. 그러니까, 헤엄을 치든 배를 젓든 비행기를 타든, 온 하루를 내 삶으로 받아들여 즐기면 넉넉합니다. 자동차로 달릴 때에는 자동차로 달리는 길을 누리면 됩니다. 굳이 꺼리거나 숨기거나 싫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달리고, 얼마든지 쉬며, 얼마든지 다시 달리고, 얼마든지 다시 쉬면 좋아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드세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아주 보드랍게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봄에는 봄내음 가득 묻은 꽃빛과 풀빛을 싣고 붑니다. 바람이 붑니다. 여름철 싱그러운 푸른 빛깔 온통 실으며 붑니다. 여름바람에는 따스한 날씨를 찾아 한국으로 날아온 제비들 노랫가락이 살포시 실립니다.


  나는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도, 보드랍게 부는 바람도, 꽃내음 실은 바람도, 나뭇잎 간질이는 바람도, 아주 조용한 바람도, 햇살을 살포시 실은 바람도 좋습니다. 구름을 움직이는 바람도 좋고, 빗줄기를 흔드는 바람도 좋아요. 어느 한때 가장 좋다거나 가장 빛난다 하는 바람이란 따로 없다고 느낍니다.


  바람 같은 사진은 어떤 내음일까 생각해 봅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스치는 바람’과 같다고 하는데, 알래스카에서 ‘바람 같은 이야기’를 느끼며 글이랑 사진으로 적바림한 호시노 미치오 님은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적바림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서순정 님이 두루 돌아보았다 하는 일본땅 작은 마을은 어떤 삶 어떤 이야기로 아로새겨지는가 곱씹어 봅니다.


  ‘더 많은 작은 마을’을 더 오래 더 자주 더 깊이 더 넓게 돌아다닌다 해도 즐겁고 좋습니다. 몇몇 작은 마을을 한두 번 슬쩍 들렀다 해도 즐겁고 좋습니다.


  굳이 이 마을 저 마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아요. 꼭 이 마을 저 마을 맛집 밥집 멋집을 알려주거나, 차편을 밝혀야 하지 않아요. 이 마을에서 느낀 고운 사랑을 곱게 적바림하면 넉넉합니다. 저 마을에서 나눈 맑은 꿈을 맑게 아로새기면 흐뭇합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를 왜 적어야 할까 생각합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는 왜 작고 얼마나 작으며 어떻게 작을까 헤아립니다. 작은 마을 이야기가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푸근하면 내 가슴으로 어떻게 스며들어서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푸근할까 곱씹습니다. ‘총정리’가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표준 교재’나 ‘표준 지침서’ 같은 이야기는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닥 어여쁘지 않아요. 해맑은 날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기를 들어 바라보는 각도와 손짓과 몸짓에 따라 셔터값이랑 조리개값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사진으로 담기는 모습 또한 그때그때 바뀌어요. 서순정 님은 서순정 님 나름대로 ‘어느 한길로만 곧게 다니지’ 않았을 테고, 서순정 님처럼 또는 서순정 님과 다르게 일본 작은 마을을 사랑하며 돌아다닐 사람들은 ‘서순정 님이 다닌 길을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다닐’ 까닭이 없겠지요. 그러니까, 스스로 가장 좋았다고 느끼고 가장 사랑스럽다고 여긴 대목만 기쁘게 들려주면 아기자기하게 빛나겠지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분 스스로 가장 즐기며 누린 이야기가 그닥 드러나지 않고, ‘길잡이책이 되려는 매무새’가 짙게 보여 퍽 아쉽습니다. (4345.5.14.달.ㅎㄲㅅㄱ)

 


― 일본의 작은 마을 (서순정 글·사진,살림Life 펴냄,2009.11.16./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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