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집 27. 겨울 들빛 누리기 2013.11.23.

 


  사람들은, 아니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울 빈들’이 어떤 빛인지 모른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고 볼 일이 없다. 요새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겨울 빈들 빛깔을 느끼지 않거나 생각하지 않기 일쑤이다. 옛날 같으면 가을걷이 마친 논을 바지런히 갈아서 보리를 심느라 ‘겨울 빈들’ 빛깔을 누리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요새는 시골사람도 먹고살 만하니까 겨울 빈들을 그대로 놀린다 할 수 있다. 아니, 이제 시골에는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으니 마늘심기조차 하기 벅차 그대로 빈들로 둔다고 할 만하다.


  우리 집 논은 아니지만 겨울 빈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문만 열면 들판이니까. 가을걷이가 끝나고 꽁댕이만 남은 논배미에 새잎 푸릇푸릇 돋는다. 누렇게 바랜 볏꽁댕이 사이로 푸른 잎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풀이란 이렇게 대단한 숨결이요 목숨인 줄 다시 깨닫는다. 어쩌면, 이대로 이 볏포기는 쑥쑥 자라지 않을까. 겨울 빈들은 누렇기만 하지 않다. 겨우내 더 자라지는 않지만, 누렇게 시든 볏포기 사이로 푸릇푸릇 올라온 앙증맞은 새잎 푸른 빛이 올망졸망 넘실거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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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33. 호미돌이 되어 (2013.11.23.)

 


  호미를 들고 널판 콕콕 찍던 작은아이가 아버지 눈에 뜨인다. 어라, 아버지가 나를 지켜보았네? 멋쩍게 웃고는 호미를 어깨 위로 올리며 가만히 섰다가 슬금슬금 흙땅으로 걸음을 옮긴다. 늘 파며 노는 마당 한쪽을 호미로 콕콕 찍는다. 그래그래, 호미로 나무를 찍지는 말자. 호미로 널판이나 평상을 찍지는 말자. 호미는 풀을 콕콕 쪼아서 잘게 부수는 연장이란다. 흙을 파야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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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25 11:23   좋아요 0 | URL
아유~^^ 순하고 예쁜 호미돌이 보라!
치마돌이 보라! ㅎㅎㅎ

숲노래 2013-11-25 11:47   좋아요 0 | URL
누나 옷을 물려받으니 치마돌이가 됩니다 ^^;;
 

꽃아이 20. 2013.11.17.

 


  꽃을 보면 아이 예뻐 하면서 좋아하는 큰아이가 꽃그림 큼지막하게 박히고 꽃무늬 커다랗게 붙은 옷을 입고 글을 읽는다. 글씨쓰기를 하며 놀다가 “나 글 읽을 수 있어요!” 하면서 아야어여를 읽는다. 꽃옷을 입은 꽃순이는 꽃다운 목소리로 글을 읽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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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3. 동생 옷 입히기 (2013.10.29.)

 


  나들이 가는 길에 동생 겉옷 지퍼를 올려 준다. 큰아이는 동생이 양말 신겨 달라 하면 양말을 신겨 주고, 신을 꿰어 달라 하면 신을 꿰어 준다. 옷도 잘 입혀 준다. 생각해 보면, 작은아이는 스스로 옷을 입고 벗을 나이인데, 누나가 여러모로 잘 챙기니 단추도 스스로 못 꿰고 지퍼도 혼자서 못 올린다. 따사로운 손길을 받으니 즐겁기는 할 텐데, 산들보라야 이제는 너도 스스로 해야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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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32. 마을길에서 (2013.11.7.)

 


  마을길 거닐면서 논다. 시골아이는 시골마을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면서 놀이가 된다. 빈들에서 흐르는 바람을 마신다.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는 억새가 흩날리는 노래를 듣는다. 고즈넉하게 내리쬐는 늦가을 햇살을 먹는다. 아이들더러 비키라며 빵빵거리는 얄궂은 어른들 자동차한테 안 시달릴 수 있는 호젓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고샅길은 아주 즐거운 놀이터가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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