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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읽을 책

 


 이제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섯째 권을 읽기로 한다. 여섯 권 한 질을 장만한 지 꽤 되었으나 드디어 여섯째 권을 읽는다. 첫째 권을 읽으며 이 책을 ‘빨리’ 읽을 수 없겠다고 곧바로 느꼈다. 이른바, 읽고 나서 느낌글 하나 쓰며 지나가면 될 책이 아니니까. 더욱이 여섯 권을 읽으면 여섯 권 모두 다른 느낌글을 써야 하는 책이니까. 느낌글을 쓴다는 일은 숙제하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 우리 식구들하고 어떤 삶을 즐거이 지으면서 고운 사랑씨앗 이 터에 심는가 하는 길을 찾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일이 되니까.

 

 엊저녁 옆지기는 나한테 여섯째 권을 얼른 읽으라고 다시 이야기한다. 그래, 이제 여섯째 권 읽기를 굳이 더 미룰 까닭이 없다. 여섯째 권을 읽으면서 다섯째 권을 읽으며 받아들이고 받아먹은 사랑밥을 차근차근 풀어내어 우리 삶짓기에 걸맞을 느낌글 하나로 그려야지. 다른 어느 책보다 먼저 읽을 책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그릇을 차분히 닦아세우려고 조금 더 천천히 읽겠다 다짐했으니, 이 다짐에 걸맞게 즐거이 받아쥐어야지.

 

 그런데, 여섯째 권을 손에 쥐어 첫 쪽을 펼치면서, 새삼스럽지 않게 이런 생각 하나 떠오른다. 나 스스로 내 삶을 하루라도 더 일찍 더 아름다운 결로 거듭나도록 애쓰려 했다면, 이러한 다짐 그대로 아나스타시아 여섯 권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식구들 삶짓기도 한결 빨리 이룰 수 있지 않았겠는가. 나 스스로 ‘나는 내 마음그릇이 요만큼뿐이야.’ 하고 틀을 세우는 바람에 내 책읽기는 스스로 이러한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겠는가.

 

 기쁘게 읽자. 기쁘게 읽고 기쁘게 글을 쓰자. 기쁘게 읽고 기쁘게 글도 쓰면서 기쁘게 삶을 일구자. 즐거이 땀을 흘려 새로 갈면서 일구고, 신나게 땀을 쏟아 멋지게 새로 샘솟을 사랑을 알뜰살뜰 짓자.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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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교육을 헤아리는 책읽기

 


 지난 2011년 12월 24일,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는 버스길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연말특집’이라며 ‘시청자 의견 대상’을 뽑으며, 대상으로 뽑힌 사람한테 텔레비전을 준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대상으로 뽑힌 아주머니는 “아이 교육 때문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 망가져도 그냥 있었는데, 이번에 좋은 선물로 텔레비전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기’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이 망가져서 볼 수 없어도 갈거나 새로 장만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어디에선가 거저로 선물을 주면 그냥 받아도 될까.

 

 열흘쯤 이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는다. 라디오 방송 시청자의견 대상을 받은 아주머니는 참말 ‘아이들 교육’을 생각했을까. 아니, 라디오 방송부터 왜 선물을 텔레비전을 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좋은 라디오’를 주어야 걸맞지 않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전기 없이 햇볕을 쬐며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선물로 줄 때에 알맞지 않을까?

 

 아주머니 아이들 교육을 헤아리다가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라디오 방송국 선물은 텔레비전’이라는 대목에 쓴웃음이 난다. 이를테면, 자전거 대회에서 1등 한 사람한테 자동차 한 대 선물하는 꼴 아닌가. 생채식을 하는 사람한테 유기농 소고기 한 근을 선물하는 일은 올바르다 할 만한가.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연극표를 선물한다면, 거름을 내어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비료와 풀약을 선물한다면, 갓난쟁이한테 천기저귀 대는 어버이한테 물티슈와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선물한다면, 고양이한테 소젖(우유)을 따뜻하게 덥혀서 먹인다면, 소한테 돼지고기 살점을 먹이로 준다면, 이 지구별은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 꼴이 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 교육을 헤아린다며 집에서 텔레비전을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덜 보는 분이 퍽 많다. 그러면, 이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기에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안 보려고 할까.

 

 가만히 헤아려 본다. 텔레비전에 흐르는 이야기란 방송국에서 찍는데, 방송국은 모조리 도시에 있고, 도시 가운데 커다란 도시에 있으며, 이 가운데 서울에 가장 크게 쏠린다. 아니, 서울에서 만드는 이야기가 온 나라 집집마다 놓인 텔레비전에서 똑같이 흐른다 할 만하다.

 

 서울에서 살며 서울에서 일하는 방송국 일꾼은 서울 아닌 데로 출장을 가서 무언가 찍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는 서울에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운동경기도 온통 서울에서 생기는 일부터 다룬다. 서울 아닌 곳 이야기라 하면, 둘째가 경기도요, 셋째가 부산이랑 대구쯤 된다. 그러니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 열째도 스무째도 …… 온통 도시 이야기가 된다. 연속극이든 연예인 나오는 방송이든 이와 매한가지이다. 다큐멘터리라는 풀그림마저 도시 이야기가 되곤 한다. 멀디먼 나라 들짐승 이야기를 빼고, 이 나라 시골마을 이야기를 곱다시 들려주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알고 보면 하나도 없다 해서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교육이 걱정스러워 텔레비전을 안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이들한테 그닥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 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데리고 아파트 구경집(모델하우스)에 찾아가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와 지하철을 타기는 하겠으나, 아이들하고 공장 견학을 가면서 쇳내음이나 고무내음을 흠씬 들이마시지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조차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 ‘견학’을 가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얼마나 코를 찌르는가를 옳게 알거나, 이러한 공장에 이주노동자가 입가리개조차 안 쓰며 일하는 줄 모르기 일쑤이다. 한 마디로 간추리면, 도시에서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갈지언정, 도시에서 아파트 사이를 누비며 ‘이 멋진 건축물을 보렴!’ 하고 말하는 어버이는 없고, 서울 종로를 누비며 ‘이 놀라운 도시 빌딩들을 올려다보렴!’ 하고 외치는 어버이는 없으며,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이나 명동 밤거리를 쏘다니며 ‘이 대단한 도시 밤문화를 즐기렴!’ 하고 읊을 어버이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 거의 모든 어버이는 서울이나 서울 가까이에서 살아가며, 서울과 똑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아직 서울이나 서울 둘레나 서울과 닮은 도시에서 살지 않는 어버이는 언제쯤 서울이나 서울 비슷한 언저리에서 살아갈 수 있나 하고 기다린다. 이리하여, 도시에서 텔레비전을 안 본다 하더라도 막상 아이들 교육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모양새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4345.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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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8 19:44   좋아요 0 | URL
세 번째 문단에서, 저 웃었어요. 그런데 웃으면 안 되는 것이죠?ㅋ

이 세상엔 생각할 거리들이 매우 많은데(따라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고), 된장님이 좋은 걸 찾으셨네요. 정말 생각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요.

숲노래 2012-01-08 20:11   좋아요 0 | URL
고흥은 읍내 시골 장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가 그야말로 할머니 할아버지로 꽉꽉 차서, 설 자리마저 없어 자칫하면 버스를 못 타기까지 해요 ㅠ.ㅜ

나중에 다른 글로 쓸 텐데,
도시에서는 '경로우대'라 해서 어르신한테는 표값 안 받잖아요.
그런데 시골버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라
어르신한테 표값 안 받으면 아마 버스회사 다 문닫으리라 생각해요 ㅋㅋ

아무튼, 이런 시골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 아저씨들 라디오 소리를 가끔 어쩌다가 들으며
참 라디오란 텔레비전 못지않게
엉터리같구나 하고 느껴요.

에궁~
 


 걸으며 책읽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1.6.

 


 집에서 다 읽은 책이나 자질구레한 살림을 도서관 한켠으로 옮긴다. 버려야 할 쓰레기는 버리되, 건사해서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거나 예전 일을 되새길 때에 쓸 살림은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서 스무 해쯤 묵히고 싶다.

 

 아이하고 도서관으로 간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목에 긴 천을 둘러 준다. 바람이 쌀쌀하니 이렇게 해야 마실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널찍한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달린다. 아직 바닥과 골마루에 책이나 상자가 잔뜩 쌓여 더 마음껏 달리지는 못한다. 큰 교실 한쪽에 사진책·그림책·만화책·어린이책·교육책 갈무리하며 늘 생각하지만, 다른 교실에 언제 새 책꽂이를 들일 수 있나 또 걱정 또 근심이다.

 

 그래도 큰 교실 한 칸은 그럭저럭 책이 자리를 잡는다. 제대로 갈래를 나눌 겨를은 없고, 바닥에 쌓이지 않게 하고, 상자나 끈으로 묶인 책을 하나하나 없애는 데에 마음을 쓴다. 어쨌든 자리를 잡아 꽂아야 나중에 찬찬히 갈무리하든 무얼 하든 할 수 있다.

 

 아이는 “이 고양이 책 (집에) 안 가져왔잖아? 가져가겠어.” 하고 말한다. 열한 마리 고양이 이야기 그림책 하나를 슬쩍 도서관에 두었는데, 용케 금세 알아본다. “어, 이 케익 그림책(케익 그림책이 아니라 생쥐가 케익을 앞에 놓고 먹는 모습이 나오는 그림책)도 내가 보는 책이잖아. 왜 안 가져왔어.” 하더니, 한창 끌러서 제자리 잡는 책상자에 털썩 앉는다. 그림책을 펼쳐 읽는다.

 

 “앉을 데가 없잖아.” 하고 말하며 앉았기에 얌전히 다른 책상자를 끌른다. 아이가 이 책상자에 앉아 책을 펼칠 때에는 둘레가 꽤나 너저분했으나, 아이가 그림책 다 보고 내려와서 대나무 막대를 갖고 놀 무렵에는 걸상으로 쓰인 책상자까지 이럭저럭 치워서 제자리에 꽂는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만화책 여러 권을 끄집어서 “나, 이 책 집에 가져갈래.” 하고 말하기에, “한 권만 가져가자.” 하고는 “이 가운데 깨끗한 녀석을 가져가자.” 하며 하나만 뽑고 나머지는 다시 꽂는다. 새해에 다섯 살이 된 아이는 갓난쟁이 그림이 나온 만화책을 꽤 눈여겨본다. 아이는 《아기와 나》 3권을 집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걸어가는 길에 만화책을 펼쳐 읽는다.

 

 네 아버지도 어릴 적 만화책을 보며 걸어다녔단다. 추운 도서관에서 잘 놀아 주어 고맙다. 집에 가서 너랑 동생이랑 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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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리 눈물

 


 노래하는 알리 님이 다시 노래하며 온마음 가득 눈물을 베풀어 주어 고맙다고 느꼈다. 노래하는 사람한테서는 노래를 듣고, 글을 쓰는 사람한테서는 글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서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서는 사진을 바라본다. 알리 님이 부른 〈고추잠자리〉는 참 좋다. 알리 님이 부른 〈새벽비〉와 〈킬로만자로의 표범〉을 비롯해서, 알리 님 삶으로 다시 풀어내어 부른 노래들을 음반 하나로 묶어서 선보이면 얼마나 기쁘며 반가울까. (4345.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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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발바닥

 


 아이 발바닥을 들여다본다. 아이 발가락을 살핀다. 어제 겨우 내 손발톱을 깎았다. 엊저녁 내 손발톱 깎기를 더 미루다가는 안 되겠다고 여긴다. 내 손발톱을 깎는 몇 분이 아깝다고 여긴다기보다, 내 손발톱을 깎아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느긋하게 쉬지 못한다. 그러나 나한테 하루에 몇 분이라도 느긋한 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발톱을 깎는다. 아마 오늘이나 모레쯤 아이들 손발톱을 또 깎아야 하지 싶다. 아이들 손발톱을 세 차례쯤 깎고서야 내 손발톱을 겨우 깎는다. 두 아이를 거의 날마다 씻기면서 내 몸은 이레에 한 차례쯤 가까스로 씻는다. 아이들을 날마다 씻기고는 싶은데, 바깥일을 하며 힘을 많이 쓴 날은 차마 엄두가 안 나곤 한다. 엄두가 안 나더라도 아이들 씻기고 보면 또 어디에선가 새 힘이 솟곤 한다. 그렇기는 한데, 두 아이를 나란히 씻기고, 아이들 씻긴 물로 빨래를 하노라면, 그야말로 온 등허리와 팔다리 안 쑤시는 데가 없다. 내 어머니는 두 아들을 어떻게 씻기면서 집살림을 돌보셨을까. 내 어머니는 언제부터 두 아들이 스스로 씻을 수 있으면서 조금이나마 집일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을까.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아이 발바닥을 들여다본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조용하기에 나는 모처럼 기지개를 켜며 살그머니 방바닥에 모로 누워 손가락으로 등허리를 꾹꾹 누른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서 사진기를 쥐어 들고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좀 쉴 만하다 싶더니, 이렇게 어여쁜 모습으로 책을 읽는 아이를 사진으로 안 담을 수 없잖아. 어느 어버이라도, 어여쁜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앉아서, 어여쁜 손가락 볼볼 놀리며 책장을 넘기는 아이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리라. 사진기가 없던 먼먼 옛날에는 종이에 그림으로 그렸겠지. 종이도 붓도 없던 더 아득한 옛날에는 두 눈으로 가득 담아 마음속에 깊디깊이 아로새겼겠지. (4345.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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