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을 헤아리는 책읽기

 


 지난 2011년 12월 24일,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는 버스길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연말특집’이라며 ‘시청자 의견 대상’을 뽑으며, 대상으로 뽑힌 사람한테 텔레비전을 준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대상으로 뽑힌 아주머니는 “아이 교육 때문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 망가져도 그냥 있었는데, 이번에 좋은 선물로 텔레비전을 받아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기’에 집에 있던 텔레비전이 망가져서 볼 수 없어도 갈거나 새로 장만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어디에선가 거저로 선물을 주면 그냥 받아도 될까.

 

 열흘쯤 이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는다. 라디오 방송 시청자의견 대상을 받은 아주머니는 참말 ‘아이들 교육’을 생각했을까. 아니, 라디오 방송부터 왜 선물을 텔레비전을 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좋은 라디오’를 주어야 걸맞지 않을까? 라디오 방송이라면 전기 없이 햇볕을 쬐며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선물로 줄 때에 알맞지 않을까?

 

 아주머니 아이들 교육을 헤아리다가 문득 스친 생각 하나, ‘라디오 방송국 선물은 텔레비전’이라는 대목에 쓴웃음이 난다. 이를테면, 자전거 대회에서 1등 한 사람한테 자동차 한 대 선물하는 꼴 아닌가. 생채식을 하는 사람한테 유기농 소고기 한 근을 선물하는 일은 올바르다 할 만한가.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한테 연극표를 선물한다면, 거름을 내어 흙을 일구는 사람한테 비료와 풀약을 선물한다면, 갓난쟁이한테 천기저귀 대는 어버이한테 물티슈와 종이기저귀와 가루젖을 선물한다면, 고양이한테 소젖(우유)을 따뜻하게 덥혀서 먹인다면, 소한테 돼지고기 살점을 먹이로 준다면, 이 지구별은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 꼴이 될까 알쏭달쏭하다.

 

 아이들 교육을 헤아린다며 집에서 텔레비전을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덜 보는 분이 퍽 많다. 그러면, 이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기에 아예 안 보거나 되도록 안 보려고 할까.

 

 가만히 헤아려 본다. 텔레비전에 흐르는 이야기란 방송국에서 찍는데, 방송국은 모조리 도시에 있고, 도시 가운데 커다란 도시에 있으며, 이 가운데 서울에 가장 크게 쏠린다. 아니, 서울에서 만드는 이야기가 온 나라 집집마다 놓인 텔레비전에서 똑같이 흐른다 할 만하다.

 

 서울에서 살며 서울에서 일하는 방송국 일꾼은 서울 아닌 데로 출장을 가서 무언가 찍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는 서울에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예술도 과학도 운동경기도 온통 서울에서 생기는 일부터 다룬다. 서울 아닌 곳 이야기라 하면, 둘째가 경기도요, 셋째가 부산이랑 대구쯤 된다. 그러니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 열째도 스무째도 …… 온통 도시 이야기가 된다. 연속극이든 연예인 나오는 방송이든 이와 매한가지이다. 다큐멘터리라는 풀그림마저 도시 이야기가 되곤 한다. 멀디먼 나라 들짐승 이야기를 빼고, 이 나라 시골마을 이야기를 곱다시 들려주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알고 보면 하나도 없다 해서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교육이 걱정스러워 텔레비전을 안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이들한테 그닥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 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들 데리고 아파트 구경집(모델하우스)에 찾아가지 않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아이와 지하철을 타기는 하겠으나, 아이들하고 공장 견학을 가면서 쇳내음이나 고무내음을 흠씬 들이마시지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조차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 ‘견학’을 가는 일이 매우 드물다. 인쇄소와 제본소와 코팅공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얼마나 코를 찌르는가를 옳게 알거나, 이러한 공장에 이주노동자가 입가리개조차 안 쓰며 일하는 줄 모르기 일쑤이다. 한 마디로 간추리면, 도시에서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갈지언정, 도시에서 아파트 사이를 누비며 ‘이 멋진 건축물을 보렴!’ 하고 말하는 어버이는 없고, 서울 종로를 누비며 ‘이 놀라운 도시 빌딩들을 올려다보렴!’ 하고 외치는 어버이는 없으며,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이나 명동 밤거리를 쏘다니며 ‘이 대단한 도시 밤문화를 즐기렴!’ 하고 읊을 어버이는 없다.

 

 그러나, 이 나라 거의 모든 어버이는 서울이나 서울 가까이에서 살아가며, 서울과 똑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아직 서울이나 서울 둘레나 서울과 닮은 도시에서 살지 않는 어버이는 언제쯤 서울이나 서울 비슷한 언저리에서 살아갈 수 있나 하고 기다린다. 이리하여, 도시에서 텔레비전을 안 본다 하더라도 막상 아이들 교육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모양새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4345.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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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8 19:44   좋아요 0 | URL
세 번째 문단에서, 저 웃었어요. 그런데 웃으면 안 되는 것이죠?ㅋ

이 세상엔 생각할 거리들이 매우 많은데(따라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고), 된장님이 좋은 걸 찾으셨네요. 정말 생각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져요.

숲노래 2012-01-08 20:11   좋아요 0 | URL
고흥은 읍내 시골 장날 집으로 돌아오는 군내버스가 그야말로 할머니 할아버지로 꽉꽉 차서, 설 자리마저 없어 자칫하면 버스를 못 타기까지 해요 ㅠ.ㅜ

나중에 다른 글로 쓸 텐데,
도시에서는 '경로우대'라 해서 어르신한테는 표값 안 받잖아요.
그런데 시골버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라
어르신한테 표값 안 받으면 아마 버스회사 다 문닫으리라 생각해요 ㅋㅋ

아무튼, 이런 시골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사 아저씨들 라디오 소리를 가끔 어쩌다가 들으며
참 라디오란 텔레비전 못지않게
엉터리같구나 하고 느껴요.

에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