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 열매 국물 책읽기

 


  마당가 후박나무 열매가 알차게 맺혔다. 온 마을 멧새와 들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후박 열매 따먹으러 나들이한다. 우리 집 마당 후박나무는 새들한테 좋은 밥잔치를 베푼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논다. 첫째 아이가 후박나무 열매를 주워서 세발자전거 바구니에 담는다. 떨어진 후박잎도 담는다. 작은 바가지로 물을 붓는다. 그러고는 “자, 국이야.” 하면서 동생이랑 먹는 시늉을 한다.


  세발자전거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후박나무 열매는 알맹이 없이 빨간 ‘알맹이 받침’만 있다. 멧새와 들새가 열매를 따먹으며 받침만 밑으로 떨구었구나 싶다. 후박나무는 겨우내 푸른 잎사귀로 푸른 봄을 기다리는 노래를 불러 주었고, 봄에는 환한 꽃망울로 예쁜 나날을 들려주었으며, 이제 여름에는 아이들 노리개를 선물해 준다. 풀잎과 풀꽃과 나뭇잎과 나무열매는 모두 아이들한테 좋은 놀잇감이 된다. 아이들은 손으로 풀과 나무를 만지고, 눈으로 풀과 나무를 바라보며, 몸으로 풀이랑 나무랑 동무가 된다. (4345.7.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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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앞에 누운 책읽기

 


  끝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 사진 한 장 찍을까 생각하며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들어선다. 사진기를 들어 첫 장을 찍으려는데 피아노 걸상에 누워서 한손으로 피아노를 치던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본다. 헤헤헤 웃으면서 일어나 반듯하게 앉는다. 그러고는 이제껏 반듯하게 앉아서 피아노를 치던 양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아이도 방 한쪽 끝에 드러누워 누나처럼 놀았지 싶다. 누워서 놀면 어떻고, 앉아서 놀면 어떠한가. 재미있게만 놀면 되지. 아이들아, 온 하루는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가장 좋은 삶이란다. (4345.7.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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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으로 책읽기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숲을 바라봅니다. 숲이 늘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를 가득 채운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을 바라봅니다.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이 언제나 생각으로 스며듭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마음으로 스민 숲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거나 노래로 빚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으로 스며든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하고 얽힌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이나 노래나 춤이나 영화로 빚습니다.


  씨앗을 심어 푸성귀와 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씨앗과 풀과 꽃과 열매 모두 마음으로 담다가는 그림으로 새로 빚습니다. 씨앗을 심지 않았으나 풀이랑 나무랑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풀이랑 나무가 한 철 두 철 살아내는 흐름을 마음으로 담으면서 천천히 그림으로 새삼스레 빚습니다.


  삶으로 글을 씁니다. 삶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삶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일구는 삶은 내 글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은 그림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내가 보살피는 삶은 내 사진으로 예쁘게 태어납니다. (4345.7.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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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필름스캐너 소리 듣는다

 


  얼마만에 듣는 필름스캐너 소리인지 모릅니다. 몇 달만에 필름스캐너를 돌리는가 가만히 어림합니다. 한 해 남짓 묵힌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사흘만에 받고는 이른아침에 필름 한 통 여섯 장씩 필름스캐너에 앉힙니다. 가장 크게 긁는 사진파일이기에 여섯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꽤 오래 걸립니다. 서른여섯 장을 모두 긁으려면 한 시간 이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필름 여섯 장을 필름스캐너에 앉히고 빨래를 하더라도 스캐너는 그대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필름 한 장 크기는 고작 35밀리미터. 35밀리미터 필름 한 장을 파일로 긁기까지 몇 분 걸립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꼼꼼히 아주 천천히 아주 낱낱이 아주 찬찬히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사진기에 필름을 감아 찍을 때에도 더디 걸리고, 다 찍은 필름을 빼내어 현상을 맡길 적에도 더디 걸리지만, 현상된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파일을 이루기까지 또 더디 걸립니다.


  나는 더디 걸리는 오랜 길을 더 좋아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더디 걸리며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채고 몇 번 손길을 타면 금세 태어나는 디지털파일이라 해서 안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면 어떠한 기계로 찍는 사진이든 모두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는 ‘아주 값진’ 기계라거나 ‘값진’ 기계는 아닙니다. 낮고 작은 기계입니다. 그래, 돈셈으로 치면 낮고 작은 기계라 할 텐데, 나는 내가 쓰는 필름사진기한테 늘 말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아.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나는 네가 믿음직해.


  나한테 필름사진기를 빌려준 분이 이 사진기에 담은 꿈과 사랑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나한테 필름값을 빌려준 분이 이 필름마다 담은 꿈과 사랑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필름스캐너는 아주 천천히 움직입니다. 어느 한 가지 이야기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꼼꼼히 써레질을 합니다. 흙일꾼 할배는 소를 몰아 논을 갈고, 나는 필름을 필름스캐너에 앉혀 내 사랑을 꿈꿉니다. 좋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사진 하나 태어나는 날을 맞이하고 싶어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습니다. (4345.6.3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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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뜨기 책읽기

 


  나는 어릴 적에 실뜨기를 무척 못했다. 고무줄뜨기는 아예 질려서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일곱 살 밑 어느 때 고무줄뜨기를 하다가 틱 끊어지며 크게 덴 적이 있었을까. 내가 떠올리는 아주 어린 어느 날 고무줄이 끊어져 얼굴인지 눈가인지 튕기며 아주 따끔했던 적은 있다. 하다 보면 못할 만한 일은 없을 텐데, 내 어릴 적 동무들은 뜨기놀이를 할 때에 실로 하는 일 없이 고무줄로 징징 늘이며 하다 보니 이렇게 고무줄뜨기를 하는 곁에서는 멀찍이 떨어지기 일쑤였고, 내 손가락에 걸치려 하지도 않았기에, 두 아이와 살아가는 오늘에도 실뜨기를 도무지 못하고 만다.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실뜨기를 배운다. 아이 어머니는 실뜨기를 보여주는 일본 그림책을 펼치며 이것저것 가르친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실뜨기 그림책을 바라보며 흉내를 내곤 한다. 다만 아직 흉내일 뿐, 어머니가 찬찬히 가르치는 뜨기가 아니면 제대로 하지는 못하지만, 실 하나로도 오래도록 재미나게 놀 수 있다.


  실이 있기에 옷감을 짜고, 옷감을 짜기에 비로소 옷을 짓는다. 실뜨기놀이란, 옷감을 짜며 남은 짜투리를 버리기 아까워 갈무리하다가 아이들이 심심해 할까 봐 이렁저렁 이어 찬찬히 놀이를 즐기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빛나서 태어난 놀이일 테지, 하고 헤아린다. 옷감을 짜든 옷을 짓든 품과 겨를이 많이 든다. 이동안 아이들은 제 어버이 곁에서 심심할 수 있다. 이때에 어머니는 눈과 몸으로는 옷감을 짜거나 옷을 지으면서 입으로는 아이더러 손가락을 어찌저찌 걸어 실을 엮으라 말할 수 있다. 아이는 길게 늘어뜨린 실을 두 손 손가락에 걸고는 차근차근 실을 꿰며 새롭게 나타나는 모양을 바라보는 데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졸음에 겨운 아이가 실뜨기놀이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나는 왜 실뜨기 그림책을 샀을까. 게다가 그 실뜨기 그림책은 일본책인데. 실뜨기이든 고무줄뜨기이든 할 줄 모르고 무섭다 여긴 주제에 이 그림책을 왜 장만해서 갖추었을까. 나는 앞으로 언제쯤 될는 지 모르나 실뜨기 그림책이 쓰일 날이 있으리라 느꼈을까. 나는 앞으로 나한테 찾아올 우리 아이가 이 실뜨기 그림책을 좋아할 날이 있겠지 하고 느꼈을까.


  언제나 내가 읽을 책을 사서 갖추지만, 하나하나 짚으면 실뜨기 그림책을 내가 읽으려 한 책이라 여겨도 될까 궁금하다. 아니, 나로서는 실뜨기를 안 하더라도 마음으로 가만히 살피려고 장만했다고 할 테지. 나는 이쯤 즐기고 언젠가 나한테 찾아올 사람들한테 이 작은 그림책 하나 알뜰히 쓰이리라 알았기에 기쁘게 장만했다고 할 테지.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부르며, 마음이 읽는 책이리라. (4345.6.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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