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그림책에 그림이 실리고, 동화책에 그림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으레 그림을 그리고, 어른도 흔히 그림을 그립니다. 미술이나 예술을 한다면서 그림을 하는 어른이 있고, 어떤 어른은 그림을 그리면서 ‘아트’라는 영어를 쓰기도 하며, 때로는 골목동네 담벼락에 길게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돈을 받으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지만, 돈은 헤아리지 않고 끝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화책과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사내 아이 ‘네로’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그림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두 눈으로 본 것 가운데 마음에 드는 모습을 그릴 때에 그림입니다. 둘째, 마음으로 본 것 가운데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내려고 그릴 때에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두 눈으로 본 모습 그리기’와 ‘마음으로 본 모습 그리기’ 두 갈래라고 할 만합니다.


  글을 쓸 때에도 이렇게 두 갈래가 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몸으로 겪은 일을 글로 쓰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마음에 품은 생각을 글로 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그림을 베끼는 몸짓은 그림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시늉이나 흉내라고 합니다. 시늉이나 흉내는 그림 솜씨를 익히려고 할 수 있는 손짓은 될는지 모르나, 그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오로지 그림이어야 그림일 뿐, ‘시늉·흉내·손짓·베끼기·따라하기’는 그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두 눈으로 본 것은, 말 그대로 우리 눈으로 본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그림에는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마음으로 본 것은 다시 여러 가지로 헤아릴 수 있습니다. 먼저, 눈으로 본 모습이 아닌 오직 마음으로 본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눈을 감았을 때에 환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잠이 들어 꿈을 꾸면서 본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이루거나 바라는 것을 떠올릴 적에 마음속에 피어나는 모습이 하나 있습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모습’은 네 가지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아이와 함께 읽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크게 보면 두 갈래이고, 두 갈래 가운데 ‘마음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은 네 가지라 할 테니까, 아무래도 그림책은 ‘눈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보다 ‘마음으로 본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빚은 그림책’이 훨씬 많으리라 느껴요. 아이들한테는 두 갈래 그림책이 함께 있어야 하고, 이야기책(동화책)도 이 두 갈래로 쓴 책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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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보여주는 책



  아이는 늘 어른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가 쓰는 말은 모두 어른이 쓰는 말입니다. 어른이 여느 자리에서 늘 쓰는 말이, 아이가 앞으로 여느 자리에서 늘 쓰는 말이 됩니다. 말은 책이나 한국말사전을 써서 아이한테 가르치지 않습니다. 말은 책이나 한국말사전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여느 보금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는 여느 어버이가 여느 때에 쓰는 여느 말을 아이가 늘 들으면서 하나씩 받아들이거나 배웁니다.


  아이는 모든 삶을 어버이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버이가 이루는 삶은 모두 아이가 물려받습니다. 좋거나 나쁜 것이 따로 없습니다. 삶을 함께 누리는 어른과 아이요, 삶을 함께 짓는 어버이와 아이입니다.


  아이한테 보여주는 책은 아이한테 보여주는 삶입니다. 아이한테 읽히려는 책은 아이한테 읽히려는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한테 보여줄 책 한 권을 고를 적에 ‘아이와 어버이로서 함께 지을 아름다운 나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한테 읽히려는 책 한 권을 살필 적에 ‘아이와 어른으로서 함께 가꿀 사랑스러운 꿈’을 헤아려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에 있는 우리들은 언제나 멋지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의무’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멋지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게 일을 할 때에, 스스로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른인 우리들은 즐겁게 살아야 즐겁고, 어버이인 우리들은 기쁘게 살아야 기쁩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른과 어버이는 스스로 즐겁거나 기쁘게 모든 일을 하고 모든 말을 하며 모든 책을 읽힐 때에, 아이들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온 삶을 바라보고 맞아들여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이 사랑과 꿈을 다룰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어린이문학으로 아이한테 사랑과 꿈을 보여주고 물려주면서 가르치는 삶을 함께 누려서 기쁜 웃음을 지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4348.3.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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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읽는 책, 어른이 읽는 책



  아이가 읽는 책과 어른이 읽는 책은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읽는 책과 어른만 읽는 책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읽는 책’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책’과 ‘어른한테 맞춘 책’이 있어요. 아이한테 맞춘 책이란, 아이가 읽기에 좋거나 수월하도록 엮은 책입니다. 어른한테 맞춘 책이란, 어른이 읽기에 좋거나 낫도록 엮은 책이에요.


  아이가 부르는 노래와 어른이 부르는 노래는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부르는 노래와 어른만 부르는 노래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부르는 노래’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노래’와 ‘어른한테 맞춘 노래’가 있어요. 책과 노래는 서로 같습니다. 밥과 옷도 서로 같습니다. 어느 한쪽만 누리거나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과 어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영화와 어른이 볼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린이한테 모든 것을 다 맡기거나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꿈을 키우면서 사랑을 북돋아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어린이문학에 ‘꿈과 사랑과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린이문학에 전쟁 미치광이 이야기를 굳이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남녀 사이에 벌이는 살곶이 이야기를 구태여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때리고 맞고 죽이고 죽는 이야기를 애써 그리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문학에 담으려고 하는 이야기는 ‘삶’입니다. ‘죽음’이 아닌 삶입니다. 그렇다고 죽음과 등지거나 죽음을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삶을 가꾸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문학이라는 뜻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고, ‘삶을 노래하는 길’을 보여주며, ‘삶을 누리는 길’을 보여주지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문학이면 됩니다. ‘생활동화’나 ‘과학동화’나 ‘철학동화’나 ‘교훈동화’ 같은 것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을 밝히고 꿈을 가꾸며 사랑을 북돋우는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는 ‘생활·과학·철학·교훈’이 모두 맑고 밝으면서 차분하고 깊게 스며들어요. 이런 것(소재)만 도드라지게 다룰 까닭이 없고, 이런 것(소재)만 두드러지게 다루려 할 적에 ‘참다운 어린이문학’과는 동떨어진 장삿속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니까 ‘뽀로로’만 좋아하거나 ‘도라에몽’에 까르르 웃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라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재미있으면서 신납니다. 아이들이니까 ‘유치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삶과 꿈과 사랑을 다 압니다. 아이들도 다 아는 삶과 꿈과 사랑을 깊고 넓으면서 맑고 밝게 여미어 보여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문학이고 책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보여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른문학도 이와 같아요.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다루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하며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문학도 뭣도 아무것도 아닐 뿐입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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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다락방 2015-03-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하나 배웁니다^ ^ 저녁하기 전 잠시 들어와 좋은 글 보고 즐거운마음으로 밥하러 갑니다.^ ^

숲노래 2015-03-01 1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앤의다락방 님이 쓰신 어느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가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니
이러한 글이 태어났어요.
아이들과 아름답게 하루하루 누리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기쁘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느껴요~
 

물려줄 수 있는 책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아이한테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부동산이나 재산이 아닌 ‘보금자리’라고 하는 ‘집’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버이가 손수 일구어 지낸 보금자리는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아이가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삶터를 손수 일구어도 아름답습니다만, 어버이가 아름다이 일군 삶터라면 굳이 이 삶터를 버려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예부터 한 고장 한 마을 한 집에서 수백 해나 수천 해를 내리 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 고장 그 마을 그 집이 ‘살기에 넉넉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한곳에서 오래도록 살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산다면 더더욱 어렵습니다. 도시는 자꾸 재개발을 하고, 아파트는 기껏해야 백 해조차 잇지 못합니다. 아니, 아파트는 쉰 해조차 못 잇기 일쑤입니다. 아파트도 한동안 ‘집’ 구실을 할는지 모르나, ‘보금자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두고두고 지내면서 두고두고 온 사랑을 실어 물려주고 물려받을 만한 삶터가 되지는 못하는 아파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아파트에 살거나 다세대주택에서 삽니다. ‘머무는 집’은 있지만 ‘물려줄 집’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는 책이라면, 어린이문학이라 한다면, ‘한때 반짝하고 읽힐 만한 책’이기보다는 ‘두고두고 물려줄 만한 책’일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한때 반짝하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도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마음을 기울여서 아끼면서 보듬을 책이라면, 권장도서도 추천도서도 아닌,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아닌, 사랑으로 읽고 꿈으로 되새길 책이어야지 싶습니다. 예부터 숱한 어버이가 사랑으로 일군 보금자리를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듯이, 사랑스레 일군 글로 엮은 책을 아이가 기쁘게 물려받아서 두고두고 되읽고 새기면서 아름다운 꿈을 키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물려주면서 더욱 기쁜 사랑입니다. 물려받으면서 더욱 고마운 삶입니다. 물려주면서 더욱 빛나는 보금자리입니다. 물려받으면서 더욱 눈부신 책입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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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이가 있을까요? 나이가 있다고 본다면, 나이가 있습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요? 사랑이 있나요? 사랑이 있다고 본다면,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대로 서로 마주합니다. 어른과 어른 사이이든, 아이와 어른 사이이든, 우리가 보는 대로 서로 만나서 사귀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나이 더 많은 사람’이라 여기면, 내 둘레에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내가 너보다 많’으니까, 내가 너를 가르치는 자리에만 있겠다는 마음이 됩니다. 내가 너를 ‘나이’가 아닌 ‘사랑’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나하고 마주한 아이한테서 얼마든지 ‘사랑을 보고 배우’면서 ‘내 사랑을 아이(너)한테 보여주고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이란 ‘나이 많은’ 어른이 아이한테 선물로 주는 책이 아니고, 교훈으로 삼을 교과서도 아니며, 사회의식을 먼저 일깨우려고 하는 규칙이나 도덕이나 모범도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사랑’으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나이’나 ‘학력’이나 ‘이름값’이나 ‘권력’ 같은 겉치레를 모두 걷어치운 다음에, 아이와 어른 사이에 오직 ‘사랑’을 놓고 ‘꿈’을 두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할 때에 비로소 어린이문학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오롯이 사랑으로 삶을 짓는 사람일 때에 어린이문학을 쓰고 읽습니다. 어린이문학을 아이한테 읽힌 뒤에 독후감을 쓰라고 시키지 마셔요. 사랑을 아이한테 베푼 어른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얘야, 너 나한테서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을 받은 느낌을 독후감으로 발표하렴!’ 하고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은 언제나 오롯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인 어린이문학을 아이한테 읽히려 한다면, 그저 읽히고 함께 읽으면서 언제나 노래하면서 누리셔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독후감 숙제를 내도록 읽히는 어린이문학이 있다면, 이 책이나 문학은 어린이문학이 아닙니다. 그저 교과서요 법률이며 도덕이고 교훈인데다가 딱딱하고 어려운 짐덩이입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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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2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문학은 오롯이 사랑이다. 새겨봅니다. 늘 어린이문학을 교과서처럼 생각했지요. 함께 즐거이 읽고 이야기 나누어야겠어요. ^^

숲노래 2015-02-25 04:58   좋아요 0 | URL
적잖은 작가와 출판사와 비평가에다가 독자까지,
어느 때부터인가
어린이문학을 `교과서`로 여기는 바람에
그만 어린이문학이 `교훈`만 다루면 되는 줄 잘못 퍼지고 말았어요.
이리하여 요즈음 어린이문학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학교생활 따돌림과 시험지옥 이야기`라든지
`엄친아` 이야기라든지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만 나도는 이야기라든지...
재미없는 창작책만 잔뜩 쏟아져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