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읽는 책, 어른이 읽는 책



  아이가 읽는 책과 어른이 읽는 책은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읽는 책과 어른만 읽는 책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읽는 책’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책’과 ‘어른한테 맞춘 책’이 있어요. 아이한테 맞춘 책이란, 아이가 읽기에 좋거나 수월하도록 엮은 책입니다. 어른한테 맞춘 책이란, 어른이 읽기에 좋거나 낫도록 엮은 책이에요.


  아이가 부르는 노래와 어른이 부르는 노래는 따로 없습니다. 아이만 부르는 노래와 어른만 부르는 노래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부르는 노래’만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맞춘 노래’와 ‘어른한테 맞춘 노래’가 있어요. 책과 노래는 서로 같습니다. 밥과 옷도 서로 같습니다. 어느 한쪽만 누리거나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문학과 어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어린이가 볼 수 있는 영화와 어른이 볼 수 있는 영화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린이한테 모든 것을 다 맡기거나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꿈을 키우면서 사랑을 북돋아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어린이문학에 ‘꿈과 사랑과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어린이문학에 전쟁 미치광이 이야기를 굳이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남녀 사이에 벌이는 살곶이 이야기를 구태여 그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때리고 맞고 죽이고 죽는 이야기를 애써 그리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문학에 담으려고 하는 이야기는 ‘삶’입니다. ‘죽음’이 아닌 삶입니다. 그렇다고 죽음과 등지거나 죽음을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이문학은 ‘삶을 가꾸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문학이라는 뜻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고, ‘삶을 노래하는 길’을 보여주며, ‘삶을 누리는 길’을 보여주지요.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문학이면 됩니다. ‘생활동화’나 ‘과학동화’나 ‘철학동화’나 ‘교훈동화’ 같은 것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을 밝히고 꿈을 가꾸며 사랑을 북돋우는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는 ‘생활·과학·철학·교훈’이 모두 맑고 밝으면서 차분하고 깊게 스며들어요. 이런 것(소재)만 도드라지게 다룰 까닭이 없고, 이런 것(소재)만 두드러지게 다루려 할 적에 ‘참다운 어린이문학’과는 동떨어진 장삿속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니까 ‘뽀로로’만 좋아하거나 ‘도라에몽’에 까르르 웃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라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재미있으면서 신납니다. 아이들이니까 ‘유치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삶과 꿈과 사랑을 다 압니다. 아이들도 다 아는 삶과 꿈과 사랑을 깊고 넓으면서 맑고 밝게 여미어 보여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문학이고 책이면서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문학은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보여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른문학도 이와 같아요. 사람이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면서 가꾸는 삶과 꿈과 사랑을 다루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하며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는 문학도 뭣도 아무것도 아닐 뿐입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앤의다락방 2015-03-01 17:11   좋아요 0 | URL
또 하나 배웁니다^ ^ 저녁하기 전 잠시 들어와 좋은 글 보고 즐거운마음으로 밥하러 갑니다.^ ^

숲노래 2015-03-01 1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앤의다락방 님이 쓰신 어느 글을 읽고 댓글을 달다가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더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니
이러한 글이 태어났어요.
아이들과 아름답게 하루하루 누리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기쁘게 태어나는구나 하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