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을 때에 눈에 띄는 책

 


  언제 어디에나 책이 있다. 동네책방이 아주 많이 문을 닫았지만, 책방은 곳곳에 어김없이 있다. 스스로 마음이 생겨야 비로소 책을 찾아나서고, 손에 쥐며, 차근차근 읽는다. 스스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떠한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옆에서 자꾸 보채듯이 건넨다 하더라도 읽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실에 앉히고 교과서를 교사가 읽는들 모든 아이가 귀여겨듣지 않는다. 스스로 듣고 싶은 마음일 적에 교사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다. 스스로 해야 하는 공부라고 느껴야 비로소 공부를 한다. 똑같은 나이인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똑같은 옷을 입혀서 앉힌다고 해서 공부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달으며 찾도록 이끌 노릇이다.


  아름다운 책은 어디에서도 광고로 알려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책은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이 되고 아름다운 눈길을 밝히면서 아름다운 손으로 찬찬히 펼쳐서 읽을 때에 태어난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만나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꿈을 키우는 길에 길동무로 삼아서 읽는 책일 때에 아름답다.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 아름답다. 돈이 많거나 이름값이 드높기에 아름답지 않다. 많이 팔리거나 널리 읽혔기에 아름다운 책이 아니다. 삶에 눈을 뜨고 사랑에 마음을 열어 빙그레 웃는 손길로 손에 쥐는 책이 아름답다.


  읽고 싶을 때에 눈에 띄는 책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삶을 알고 싶은 마음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읽고 싶은 마음이란, 스스로 살가운 이웃이 되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는 웃음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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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선물하기

 


  책을 장만하는 까닭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 읽고 싶기 때문이다. 곁님도 아이들도 없이 혼자 책빛을 누리던 지난날에도 ‘나 혼자만 읽을 책’보다는 ‘뒷사람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했는데, 곁님과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오늘은 더더욱 또렷하게 ‘아이와 나중에 함께 읽을 책’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버지 책을 좋아할 수 있고 안 좋아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아이들 몫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주건 안 좋아해 주건 ‘책이 있어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오늘 널리 읽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스무 해 뒤에는 사라진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즐겁게 읽는 책을 고이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일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책짐이라 여긴다면 둘레에 나누어 줄 테고, 아이들이 나중에 책빛이라 여긴다면 기쁘게 읽어 주겠지.


  헌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책을 장만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무척 많지만, 굳이 예전 책을 찾으러 헌책방마실을 한다. 판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까맣게 잊힌 책을 찾으러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간다. 천 사람도 아니고 백 사람도 아닌 열 사람조차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을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랑해 주면 즐거운 책이다. 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사랑해 줄 때에 빛나는 책이 아니다. 내 책은 내가 사랑해 줄 때에 빛난다.


  오래오래 읽으면서 두고두고 물려줄 책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재미나고 예쁜 책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오늘날 새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책이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새롭게 장만한다. 다시 읽으려고 장만하기도 하지만, 고운 책이웃한테 선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웃이 생일도 아니고 다른 어떤 기림날도 아니라 하지만, 엽서에 짤막하게 편지를 써서 슬그머니 책선물로 부치자고 생각한다.


  헌책방에서 장만하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돈으로는 못 한다. 돈값으로 치면 천 원이나 이천 원짜리 책일 수 있고, 돈값으로 치면 삼천 원이나 사천원 짜리 책일 수 있다. 새책방에서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때로는 오만 원이나 십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다. 책선물이라 한다면 책값은 대수롭지 않다. 아름답게 읽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필 노릇이다. 두고두고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빛과 노래와 내음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들여다볼 노릇이다.


  선물할 만한 헌책 한 권을 만나 살살 쓰다듬는다. 서른 해 남짓 쌓인 책먼지를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낸다. 오늘 읽기에 오늘 마음밥이 되는 책이다. 오늘 만나면서 오늘 사랑노래가 되는 책이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고, 책방이 있으니 선물할 책을 장만한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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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2-25 13:17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곳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페이퍼입니다...
헌책 냄새도 그립구요 ㅎㅎ
학교 다닐때 쪼그려 앉아 읽었던 만화책도 그립구요 ^^ ㅎㅎ
책 사이로 보이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ㅎ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숲노래 2014-02-25 13:25   좋아요 0 | URL
고흥에도 헌책방은 없답니다.
읍내까지 나간 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까지 가야 비로소 헌책방이 있어요.

고흥서 헌책방마실을 하자면, 세 시간에 걸쳐 오가야 하고
찻삯도 이만 원 즈음 들어요 ^^;

그래도, 이렇게 가끔 마실을 할 수 있으면
재미난 책들이 찾아들면서
예쁜 이야기가 샘솟더라구요 ^^

드림모노로그 2014-02-25 14:24   좋아요 0 | URL
아휴 장난이 아니네요
말그대로 헌책 찾아 삼만리길이네요...
함께 살기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
다시 한번 존경을 ~!! 보냅니다 ㅎㅎ

숲노래 2014-02-25 20:35   좋아요 0 | URL
멀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책방이니
언제나 즐겁게 마실을 다녀요.
순천도 부산도 인천도 서울도~ ^^

대단하다기보다... 책내음이 저를 이끈다고 할까요~
 

책을 살피는 손길

 


  책은 온몸으로 찾는다. 눈으로만 책을 찾지는 못한다. 책꽂이는 사람 키높이로만 있지 않다. 키보다 높은 데에도 책을 꽂고, 키보다 낮은 데에도 책을 꽂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책을 살피기도 하며, 쪼그려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을 살피다 보면 으레 손이 책때가 타거나 먼지가 묻기도 한다. 새책방에서나 도서관에서나 헌책방에서나 늘 똑같다. 새책방에서 책을 살피기에 손에 먼지가 안 묻지 않는다. 새책에도 똑같이 먼지가 깃든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책은 수많은 사람이 돌려보는 만큼, 책먼지뿐 아니라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든다.


  헌책방은 어떠할까? 헌책방에 깃드는 헌책도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들 만할 테지. 그런데, 헌책방 헌책 가운데에는 출판사에서 드림책으로 누군가한테 보낸 뒤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이 있기도 하다. 신문사나 출판사로 날아간 드림책이 스무 해나 마흔 해 동안 그대로 꽂히거나 쌓인 뒤 헌책방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한테는 드림책이 꽤 많이 간다 하고, 이름난 작가는 이녁한테 날아온 드림책을 다 읽거나 건사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헌책방에 내놓곤 한다. 이녁은 못 읽더라도 다른 누군가 즐겁게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가운데에는 참말 많은 사람 손을 거쳐 너덜너덜한 책이 있지만, 도서관에서 내놓는 책들은 으레 대출실적이 적은 책이다. 이리하여, 헌책방 헌책은 뜻밖에도 사람들 손길을 거의 안 타거나 못 탄 책이 많다. 도서관에 꽂힌 책보다 한결 ‘깨끗하다’고까지 할 만한 헌책방 헌책이라 할 수 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살피는 이들은 으레 책방 골마루에 손바닥을 척 대거나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눌러앉아서 책시렁을 돌아보곤 한다. 이렇게 해야 밑바닥 책이 잘 보이고, 책탑 아래쪽 책을 잘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손과 바지와 옷에 책먼지가 묻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헌책방 책손이다. 손에 먼지가 묻으면 물로 깨끗이 씻으면 된다. 손에 먼지가 묻도록 즐겁게 살피면서 마음을 살찌울 책 하나 찾으려는 손길이 헌책방을 키우고 동네책방을 북돋우며 작은 책쉼터를 일으킨다.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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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다

 


  책을 본다. 눈앞에 그득 쌓인 책을 본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이 있고,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눈빛일까 헤아려 본다.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가누어 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본다. 내 이웃이나 동무는 이녁이 읽고 싶은 책을 본다. 서로 삶이 달라, 서로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서로 넋이 달라, 서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운전면허책을 들여다보는 틈마저 아깝다고 여겼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틈도 아깝다고 여겼다. 이동안 내 마음 살찌울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이동안 내 눈빛 밝히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살살 어루만지자고 생각했다. 자가용을 몰면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땀 삐질삐질 빼면서 어기적어기적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자가용을 몰면 우체국으로 소포꾸러미 보내러 자전거수레를 몰지 않아도 될 테고, 자가용을 몰면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서 가방이 무겁도록 짐을 짊어지고 나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자가용을 몰면 길바닥만 보고 다른 자동차를 살피기만 해야 한다. 내 보금자리와 이웃마을 사이에 드리운 숲이나 바다나 골짜기를 바라볼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 가운데 집과 읍내 사이를 오가다가 살며시 멈추고는 바람 한 줄기 쐬며 풀노래를 듣는 사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언제나 풀바람을 쐬고 풀노래를 듣는다. 자가용을 빨리 달리면,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더 오래 손에 쥘 만하다 말할 분이 있을 텐데,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책을 더 오래 손에 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책만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겨울바람도 책이요, 봄꽃도 책이다. 멧새 노랫소리도 책이요, 개구리 울음소리도 책이다. 오르막에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더러 “얘들아 하늘 좀 보렴. 구름 멋있지 않니?” 하고 말하며 구름바라기와 먼산바라기를 하는 일도 책읽기라고 느낀다.


  책을 본다. 책방마다 가득 쌓인 책을 본다.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마음밥으로 삼고 싶을까.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내 마음빛을 밝히고 싶을까. 남들이 나한테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묻는다. 나 스스로 걸어갈 길을 나 스스로 묻는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을 나 스스로 돌아본다. 길동무가 되는 책을 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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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누하동 헌책방 대오서점

 


  나는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서너 시간은 가볍게 걸어다니면서 살았다. 어느 날에는 예닐곱 시간을 터덜터덜 걸어다니기도 했다. 언제나 온갖 골목과 동네를 두 다리에 기대어 걸어다니면서 가게를 살피면서 지냈다. 거닐지 않은 골목이 없다 할 만큼 온갖 골목을 다녔으니, 헌책방을 찾으러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었으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자료가 모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헌책방’이라는 데를 찾아다니면서 오직 ‘헌책방’만 사진으로 찍던 무렵에, 김기찬 님이 한창 바지런히 골목 사진을 찍으셨다. 김기찬 님이 골목 사진을 살가이 잘 찍으신다고 여겨, 나까지 굳이 골목을 사진으로 찍을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는 내 사진감인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느라 들이는 필름값으로도 살림이 쪼들려 허덕였다.


  헌책방 한 곳을 찾으려고 온갖 골목을 걷다 보면, 그야말로 아주 아름답고 멋스러운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지만,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 ‘골목’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이가 이 골목을 걸어가면서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입이 쩍 벌어지면서 사진을 찍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헌책방에서 필름 아까운 줄 잊고 수없이 단추를 찰칵찰칵 눌러야 하니, 제아무리 멋스럽고 아름다운 골목을 만나더라도 필름 한 장 쓰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면 날마다 몇 시간씩 골목을 쏘다니면서 ‘아직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헌책방’을 찾아 다리품을 팔던 어느 날, 서울 종로구 누하동 한쪽에서 〈대오서점〉을 만났다.


  헌책방 〈대오서점〉은 내가 만나기 앞서도 오랫동안 헌책방으로 있었다. 이곳을 처음 알아보고 나서 둘레에 여쭈니, 독립문 〈골목책방〉 아저씨도 알고, 홍제동 〈대양서점〉 아저씨도 알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대오서점〉은 서울 시내 소매 헌책방에 책을 대주는 도매 헌책방 노릇을 했다는데, 책을 캐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 혼자 집살림을 도맡느라 책을 캐낼 수 없어, 소매 헌책방 발길이 뚝 끊어지고, 책을 새로 장만하는 길이 없다 보니, 소매 손님조차 거의 찾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오서점〉 할머니는 이녁 곁님과 함께 오랫동안 가꾸던 헌책방을 없앨 수 없고, 책시렁도 치울 수 없다고 했다. 새로 갖추어 꽂는 책은 없어도, 이 모습 그대로 건사한다고 했다.


  조그마한 기와집에 깃든 헌책방 〈대오서점〉은 한창 때에는 이웃 ‘옷수선’ 집도 책방이었다고 했다. 책이 그득그득 넘쳐서 어디에도 다 책이라, 그 옛날, 이를테면 1990년대 첫무렵이나 1980년대에만 왔어도 ‘엄청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척 보기에도 그렇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나는 예전 엄청난 모습이 아니어도 좋다. 할아버지가 가시고 난 자리에서도 이렇게 정갈하게 기와집을 보듬고 큰할머님(내가 대오서점을 처음 찾아간 2002년에 아흔여섯이던 큰할머님)을 돌보던 ‘작은’할머님은 빙글빙글 웃음 띤 얼굴로 책손을 맞이해 주었다. ‘큰’할머님은 조그마한 기와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에 앉아서 창문을 살짝 열고,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책손’이 이녁 며느리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셨다. 이때, 한 가지 깨달았다. ‘작은’할머님이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고, 그저 햇볕에 바래기만 하는 책을 치우지 않은 까닭을.


  나는 이곳 〈대오서점〉 이야기를 2003년에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렸다. 어느 누리신문에 기사로 올리고 난 뒤, 이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많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쓴 글 때문에 일본에서까지 이곳을 취재하러 왔다. 얼마 앞서는 〈대오서점〉을 ‘서울 서촌’에서 몹시 손꼽히는 명소로 다루어 준다고 한다.


  그래, 참 고마운 노릇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저런 뭔가를 이곳 〈대오서점〉에 하는 일이 다 좋은데, 2004년이었던가, 서울시에서 무슨무슨 공사를 한다면서, ‘책방을 하는 이곳’ 마당과 문간 모두를 파헤친 채 두어 달 즈음 엉터리로 팽개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할매 두 분이 계신 집인데, 집 안팎을 드나들기 어렵도록 땅바닥을 파헤치고는 어지러이 흙투성이를 만들고, 책시렁에 곱게 꽂힌 책들에 흙을 묻힌 그때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대오서점〉 할매가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다듬으며 고추를 말리던 모습을 아련하게 되새긴다. 이곳에 책손이 없을 적에는 두 할매 속옷을 거리낌없이 척척 마당에 너셨지만, 이제는 속옷 빨래를 마당에 못 너시겠지. 4347.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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