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피는 손길
책은 온몸으로 찾는다. 눈으로만 책을 찾지는 못한다. 책꽂이는 사람 키높이로만 있지 않다. 키보다 높은 데에도 책을 꽂고, 키보다 낮은 데에도 책을 꽂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책을 살피기도 하며, 쪼그려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을 살피다 보면 으레 손이 책때가 타거나 먼지가 묻기도 한다. 새책방에서나 도서관에서나 헌책방에서나 늘 똑같다. 새책방에서 책을 살피기에 손에 먼지가 안 묻지 않는다. 새책에도 똑같이 먼지가 깃든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책은 수많은 사람이 돌려보는 만큼, 책먼지뿐 아니라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든다.
헌책방은 어떠할까? 헌책방에 깃드는 헌책도 여러 사람 손때가 깃들 만할 테지. 그런데, 헌책방 헌책 가운데에는 출판사에서 드림책으로 누군가한테 보낸 뒤 한 번도 펼쳐지지 않은 책이 있기도 하다. 신문사나 출판사로 날아간 드림책이 스무 해나 마흔 해 동안 그대로 꽂히거나 쌓인 뒤 헌책방으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름난 작가한테는 드림책이 꽤 많이 간다 하고, 이름난 작가는 이녁한테 날아온 드림책을 다 읽거나 건사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헌책방에 내놓곤 한다. 이녁은 못 읽더라도 다른 누군가 즐겁게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다가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 가운데에는 참말 많은 사람 손을 거쳐 너덜너덜한 책이 있지만, 도서관에서 내놓는 책들은 으레 대출실적이 적은 책이다. 이리하여, 헌책방 헌책은 뜻밖에도 사람들 손길을 거의 안 타거나 못 탄 책이 많다. 도서관에 꽂힌 책보다 한결 ‘깨끗하다’고까지 할 만한 헌책방 헌책이라 할 수 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살피는 이들은 으레 책방 골마루에 손바닥을 척 대거나 아예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눌러앉아서 책시렁을 돌아보곤 한다. 이렇게 해야 밑바닥 책이 잘 보이고, 책탑 아래쪽 책을 잘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손과 바지와 옷에 책먼지가 묻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헌책방 책손이다. 손에 먼지가 묻으면 물로 깨끗이 씻으면 된다. 손에 먼지가 묻도록 즐겁게 살피면서 마음을 살찌울 책 하나 찾으려는 손길이 헌책방을 키우고 동네책방을 북돋우며 작은 책쉼터를 일으킨다. 4347.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