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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하나 있어

 


  아름다운 책 하나 있어 책방이 빛납니다. 아름다운 책이 여럿 있어도, 천 권이나 만 권 있어도, 책방은 빛날 테지요. 그런데, 아름다운 책이 꼭 하나 있어도 책방이 빛나요.


  아름다운 책은 나한테만 아름다운 빛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여러 사람 또는 많은 사람한테 아름다운 빛으로 젖어들 수 있습니다. 책을 쓰고 책을 펴내며 책을 다루는 사람들 아름다운 손길이 골고루 담긴 아름다운 책 하나입니다. 살아가는 빛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빛을 들려줍니다. 서로 아끼는 빛을 펼치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빛을 드리웁니다.


  한 사람이 읽을 책은 한 권일 수 있고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일 수 있습니다. 몇 권을 읽든 좋습니다. 마음속에서 고운 빛이 샘솟도록 북돋우는 책이면 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북돋우는 따사로운 책이라면, 스스로 바라는 만큼 즐거이 읽으면 돼요. 나부터 스스로 빛나면서 책이 빛나고, 나와 책이 빛나면서 책방이 빛나며, 나와 책과 책방이 빛나면서, 내 마을과 삶터가 환하게 빛납니다. 434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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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와 시집 읽기

 


  두멧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 모두 집에 두고 홀로 마실을 간다. 군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다. 군내버스에 올라 버스삯을 치르고 자리에 앉는다. 낮인데 군내버스에 손님이 꽤 있다. 문득 생각하니 겨울방학 철이다. 두멧시골 아이들은 읍내로 나온다. 읍내에서 놀 생각이겠지. 또는 읍내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이웃 도시로 찾아가서 놀 생각일 테지.


  군내버스에서도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살며시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이웃마을 논밭을 구경하고, 옆마을 숲을 살핀다.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천천히 마을마을 돌면, 예쁜 흙과 풀과 나무를 쏠쏠히 마주할 수 있다.


  읍내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순천으로 간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도 빈자리 거의 없을 만큼 빼곡하다. 참말 방학철이로구나 싶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고흥 바깥으로 놀러 나간다. 빈자리 찾아 맨 끝자리까지 간다. 군내버스에서도 시외버스에서도,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모두 손전화를 손에 쥔다.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거나 받으려고 손전화를 손에 쥐지 않는다. 전화기로 게임을 하거나 연속극을 보거나 노래를 듣는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저전동 큰길가에 있는 헌책방에 들른다. 헌책방에서 두 시간 반 즈음 책을 돌아본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살핀 책을 즐거이 장만한다. 무거운 책은 택배로 받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을 책 몇 권만 챙긴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들어간다. 고흥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도 붐빈다. 겨우 한 자리 얻어 앉는다. 이 시외버스에서도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모두 손에 손에 전화기를 들고 게임·연속극·노래에 흠뻑 젖는다. 버스에서 책을 손에 쥔 사람은 나 혼자이다.


  생각해 보면, 시골 아이나 어른 모두 책읽기가 익숙하지는 않다. 고흥읍에도 책방이 두 군데 있으나, 참고서와 자기계발책과 잘 팔리는 책 몇 가지와 잡지를 빼면, 마음을 살찌우는 여느 인문책이란 찾아보기 아주 힘들다. 그렇다고 고흥에서 순천으로 나처럼 헌책방마실을 다니는 사람도 드물다. 꼭 종이책을 읽어야 하지는 않으나, 손전화로 연속극이나 운동경기 들여다보느라 바쁘기만 하다면, 집으로 가서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만 켠 채 멀거니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우리들 가슴과 마음과 머리는 어찌 될까.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을 누리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살아가며 싱그러운 바람소리 들으며 종이책 하나 살며시 보듬을 줄 모른다면, 우리들 넋과 얼과 빛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과 기차를 타고 먼길을 달려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찾아갈 적에, 가방에 그림책 한두 권씩 챙기며 책놀이를 하는 어버이도 이제는 거의 만날 수 없다. 시골마을에 책동무가 없다.


  생각과 생각에 젖어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채만식 님 짧은소설 한 꼭지를 읽고, 천양희 님 시집 한 권 읽는다. 다 읽은 책을 덮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434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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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름다운 보배

 


  헌책방을 찾아간다. 서울에서도 인천에서도 부산에서도 춘천에서도 살지 않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니 헌책방을 찾아가기 어렵지만, 고흥하고 이웃한 도시 순천에는 헌책방이 있기에, 한두 달에 한 차례쯤 즐겁게 마실을 간다. 오랜만에 헌책방으로 찾아가면, 무엇보다 책내음이 확 풍긴다. 우리 집에서도, 또 서재도서관에서도 책내음은 확 풍긴다. 그런데 헌책방 책내음은 ‘내가 이제껏 아직 만나지 못한 책에서 풍기는 책내음’이다. 집과 서재도서관에서는 ‘익숙한’ 책내음이 ‘익숙하달지라도 새로 들추면 새롭게 풍기는’ 책내음이고, 헌책방에서는 아직 마주하지 못한 책들이 ‘얼른 나를 알아보면서 새로운 삶과 사랑과 꿈에 눈을 뜨렴’ 하고 이끄는 책내음이다.


  책이란 참 아름다운 보배로구나. 책이란 참 멋스러운 벗이로구나. 책이란 참 살가운 이야기로구나. 스무 해 마흔 해 지나도록 여러 생각 북돋울 수 있는 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 해 이백 해 지나도록 따사로운 멋 나누어 주는 책을 쓴 사람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천 해 이천 해 흐르도록 꿈을 보여주는 책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이 땅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가. 434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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