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본다
책을 본다. 눈앞에 그득 쌓인 책을 본다. 이 많은 책들 가운데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이 있고,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이 있다. 내 마음을 살며시 건드리는 책을 쓴 사람은 어떤 눈빛일까 헤아려 본다. 내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까 가누어 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본다. 내 이웃이나 동무는 이녁이 읽고 싶은 책을 본다. 서로 삶이 달라, 서로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서로 넋이 달라, 서로 바라보는 자리가 다르다. 나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 아니라,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았다. 내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나는 운전면허책을 들여다보는 틈마저 아깝다고 여겼다.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틈도 아깝다고 여겼다. 이동안 내 마음 살찌울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이동안 내 눈빛 밝히는 풀과 꽃과 나무를 살살 어루만지자고 생각했다. 자가용을 몰면 책방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땀 삐질삐질 빼면서 어기적어기적 짊어지고 집까지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된다. 자가용을 몰면 우체국으로 소포꾸러미 보내러 자전거수레를 몰지 않아도 될 테고, 자가용을 몰면 읍내 저잣거리로 마실을 가서 가방이 무겁도록 짐을 짊어지고 나르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자가용을 몰면 길바닥만 보고 다른 자동차를 살피기만 해야 한다. 내 보금자리와 이웃마을 사이에 드리운 숲이나 바다나 골짜기를 바라볼 수 없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 가운데 집과 읍내 사이를 오가다가 살며시 멈추고는 바람 한 줄기 쐬며 풀노래를 듣는 사람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언제나 풀바람을 쐬고 풀노래를 듣는다. 자가용을 빨리 달리면,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더 오래 손에 쥘 만하다 말할 분이 있을 텐데, 자가용으로 더 빨리 달린대서 책을 더 오래 손에 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종이책만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겨울바람도 책이요, 봄꽃도 책이다. 멧새 노랫소리도 책이요, 개구리 울음소리도 책이다. 오르막에서 숨을 돌리면서 아이들더러 “얘들아 하늘 좀 보렴. 구름 멋있지 않니?” 하고 말하며 구름바라기와 먼산바라기를 하는 일도 책읽기라고 느낀다.
책을 본다. 책방마다 가득 쌓인 책을 본다.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느 책을 마음밥으로 삼고 싶을까. 나는 이 많은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내 마음빛을 밝히고 싶을까. 남들이 나한테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묻는다. 나 스스로 걸어갈 길을 나 스스로 묻는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을 나 스스로 돌아본다. 길동무가 되는 책을 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닫는다. 4347.2.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