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선물하기
책을 장만하는 까닭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 읽고 싶기 때문이다. 곁님도 아이들도 없이 혼자 책빛을 누리던 지난날에도 ‘나 혼자만 읽을 책’보다는 ‘뒷사람한테 물려줄 책’을 생각했는데, 곁님과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오늘은 더더욱 또렷하게 ‘아이와 나중에 함께 읽을 책’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버지 책을 좋아할 수 있고 안 좋아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아이들 몫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주건 안 좋아해 주건 ‘책이 있어야’ 좋아하거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오늘 널리 읽히는 책이라 하더라도 스무 해 뒤에는 사라진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나 스스로 즐겁게 읽는 책을 고이 건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일을 생각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책짐이라 여긴다면 둘레에 나누어 줄 테고, 아이들이 나중에 책빛이라 여긴다면 기쁘게 읽어 주겠지.
헌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책을 장만한다. 새로 나오는 책이 날마다 무척 많지만, 굳이 예전 책을 찾으러 헌책방마실을 한다. 판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까맣게 잊힌 책을 찾으러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간다. 천 사람도 아니고 백 사람도 아닌 열 사람조차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을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사랑해 주면 즐거운 책이다. 만 사람이나 십만 사람이 사랑해 줄 때에 빛나는 책이 아니다. 내 책은 내가 사랑해 줄 때에 빛난다.
오래오래 읽으면서 두고두고 물려줄 책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재미나고 예쁜 책들을 본다. 나는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오늘날 새책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책이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지나치지 않기로 한다. 새롭게 장만한다. 다시 읽으려고 장만하기도 하지만, 고운 책이웃한테 선물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웃이 생일도 아니고 다른 어떤 기림날도 아니라 하지만, 엽서에 짤막하게 편지를 써서 슬그머니 책선물로 부치자고 생각한다.
헌책방에서 장만하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돈으로는 못 한다. 돈값으로 치면 천 원이나 이천 원짜리 책일 수 있고, 돈값으로 치면 삼천 원이나 사천원 짜리 책일 수 있다. 새책방에서 만 원이나 이만 원짜리, 때로는 오만 원이나 십만 원짜리 책을 장만해서 선물할 수 있다. 책선물이라 한다면 책값은 대수롭지 않다. 아름답게 읽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필 노릇이다. 두고두고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빛과 노래와 내음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들여다볼 노릇이다.
선물할 만한 헌책 한 권을 만나 살살 쓰다듬는다. 서른 해 남짓 쌓인 책먼지를 손바닥으로 살살 닦아낸다. 오늘 읽기에 오늘 마음밥이 되는 책이다. 오늘 만나면서 오늘 사랑노래가 되는 책이다. 책이 있으니 책을 읽고, 책방이 있으니 선물할 책을 장만한다. 4347.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