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품집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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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누가 누구를 배울까



《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강동욱 옮김

 미우

 2019.5.31.



  날개가 있으면 날고, 다리가 있으면 걷거나 뛰고, 손이 있으면 쥐거나 잡을는지 모릅니다. 입이 있으면 먹거나 마시고, 이 입으로 말을 하거나 노래하고, 이 입으로 숨을 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할까요? 다리가 없으면 걷지 못할까요? 손에 없으면 잡지 못할까요? 입이 없으면 말을 못할까요?



“자네 회사가 우리 회사를 매수한 게 언제였지?” “7년 전이죠.” “농약 회사가 민간 군사회사를 매수한 까닭이 그거였나?” “우리의 유전자 기술이 우주개발의 꽃이 되는 건 조금 뒤의 일. 그때까지 군사 분야에 응용하여 푼돈이라도 벌겠다는 생각이죠. 우리 회장님은 남들보다 훨씬 부지런하시니까요. 식량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 모양입니다.” (169쪽)



  그저 마땅하다고 여기는 길이 어쩌면 하나도 안 마땅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길이 더없이 대수로울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문득 “내가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은 쪽에서는 “네가 입을 벙긋하지 않아도 얼굴에 다 적혔어.”처럼 대꾸하지요. 때로는 “입으로 말해야 아니? 네 몸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다 알겠던데.”라든지 “네 눈에 다 나타나더라.”라든지 “네 마음을 읽었어.” 하고도 대꾸합니다.



“실험동물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건 인간 아닌가?” “동물입니다. 내 자존심을 걸고 맹세하죠.” (149쪽)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얼마나 볼까요? 우리는 우리가 본 모습 가운데 무엇이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가려낼 만할까요? 밑바탕으로는 하나도 모른다면, 코앞에서 보더라도 무엇인가를 모를 뿐 아니라, 아예 못 느끼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저기 봐. 저기 있잖아.” 하고 손가락으로 콕 짚어도 못 보곤 합니다. ‘모르는’ 것이나 ‘처음 보는’ 것이라면, 대놓고 보여주어도 ‘알아보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아주 쉬운 낱말로 엮은 몇 마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에 흐르는 줄거리’를 듣는 사람으로서는 영 낯설거나 마음을 안 여는 몸짓이라면 그저 한귀로 흘러나갈 뿐입니다. 《움벨트》(이가라시 다이스케/강동욱 옮김, 미우, 2019)는 이 대목을 넌지시 건드립니다.



‘매일 수십 명씩 저렇게 소란을 떠는데, 큰 장어가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 저런 건 도시의 테마파크로도 충분한데. 역시 이 섬의 좋은 점을 좀더 알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야 해.’ (38쪽)


‘사람들에게 알리면, 저 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섬의 환경보호에 진지하게 나서 줄까. 아니면 저 녀석을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섬이 더욱 황폐해져 버릴까. 어떻게 하지? 알려야 하나? 아니면…….’ (41쪽)



  시골집에서 살아가다가 때때로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옵니다. 시골집에 깃들 적에는 풀벌레하고 멧새하고 바람하고 구름하고 풀꽃나무하고 들짐승하고 개구리하고 …… 이런저런 이웃 숨결이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듣습니다. 바람빛하고 구름빛을 헤아리고 별빛하고 햇빛을 읽어요. 이러다가 큰고장에 이르면 눈앞뿐 아니라 둘레를 가로막는 가게에 아파트에 자동차에 어수선합니다. 더구나 큰고장에서는 제비는커녕 참새를 보기도 만만하지 않고, 돌림앓이가 훅 퍼진다는 2020년에는 매미 노랫소리마저 못 들어요.


  버스로 움직이거나 걸으며 돌아다니거나 가게에 깃들면서 구름빛이나 하늘빛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많은 큰고장에서는 천천히 걷는다든지, 걷다가 멈추어 하늘바라기를 할 겨를이 없습니다. 버스에 타서 앉든 서든 하늘을 못 봅니다. 해가 기운 뒤에는 별빛이 아니라 자동차 불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아, 이런 곳, 큰고장, 서울이란 데, 삶터가 아닌 매캐하고 차갑고 꽉 막힌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스치거나 얼크러질까요?



“집에는 인간만 살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어두워지면 특히. 많은 생물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집 전체에 시끄럽게 울려퍼지지. 지금까지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아.” (111쪽)



  오늘날 시골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시골 푸름이는 생태자연 인문책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아요. 둘레에서 쉽게 숲을 마주할 만하지만, 시골 어린이나 푸름이는 하루빨리 서울로 가고 싶을 뿐이요, 손전화에 코를 박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오늘날 서울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꽤 많이 읽습니다. 서울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숲을 숲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보여주고, 유튜브나 영화로 보여줍니다. 서울 푸름이는 꽤 어려운 말씨가 가득한 인문책으로 생태자연 이야기를 읽습니다. 서울 푸름이도 서울 어린이하고 마찬가지인데, 맨몸으로 숲을 마주할 틈이 없고, 맨손으로 숲을 어루만질 자리가 없어요.


  매미로 거듭나기 앞서 굼벵이로 살아가는 이웃 숨결이 어느 나무 곁에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피지 못하고서 매미 도감만 달달 왼들 매미를 알 턱이 있을까요? 흔하디흔한 참새나 비둘기가 철마다 어떻게 다른 날갯짓에 노랫소리인가를 늘 귀담아듣지 않고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살핀들, 참새나 비둘기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풀개구리하고 참개구리하고 무당개구리하고 멧개구리는 울음소리가 다 다릅니다. 똑같은 풀개구리라 해도 하나하나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여치하고 베짱이하고 방울벌레하고 귀뚜라미하고 곱등이도 노랫소리가 다르지요. 우리는 이 얼거리를 얼마나 스스로 느끼면서 이웃하고 나누는 하루일까요?



“내가 작은 새로 변해 있는 동안에는, 두 분의 동작이나 대화도 느리게 느껴졌어요. 그럼 내가 더욱더 개미만큼 작아지면? 너무 느려서 분명 여러분이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 수 없게 되겠죠. 언덕이나 산과 똑같이 보이고 말 거예요.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상대가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다른 시간 속에 있겠죠. 왠지, 죽는다는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치채지 못할 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21쪽)



  만화책 《움벨트》에 흐르는 이야기는 얼핏 먼먼 꿈나라 같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깊이 감춰진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부나 권력자가 숨기고, 지식인이나 과학자가 모르는 척 지나가려는 모습이라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눈을 감거나 등돌리면서 어느덧 우리 마음에서 사라져 버린 숨결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당신은 개구리의 대합창을 들은 적 있나요?” “아아, 네. 인도네시아에서.” “그 장대한 교향악을 경험했다면 알겠죠. 그들은 소리로 세상과 일체화할 수 있어요. 우주공간은 진공이라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간 물질로 가득 차 있죠. 다만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로서 전달되지 않을 뿐입니다.” (188쪽)


“하지만 개구리라면 그들의 피부는 틀림없이 우주의 교향곡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인간보다 더욱 우주공간에 친숙해지겠죠.” (189쪽)



  누가 누구를 배울까요. 아이는 언제나 어른한테서 배우는데, 오늘날 어른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림하며, 어떻게 일하거나 노는가요? 앞으로 어른이란 자리에 설 아이들은 일하고 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가꿀 적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드론을 다루는 솜씨를 배워서 농약드론도 돌리고 사진드론로 다루고 군사드론을 만지작거리도록 해야 첨단문명이나 직업훈련이나 사회공헌이 될까요? 아이들이 손수 낫을 쥐어 풀을 베고, 풀베기를 마친 다음에는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고, 다시 낫질을 하고서 새참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쉬다가, 일을 마무리짓고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야 어른다운 어른이지 않을까요?


  큰고장에는 빛이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없는 큰고장이기에 앞으로 참답게 고운 빛이 천천히 피어나도록 처음부터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요. 빛이 퍼질 수 없도록 잿빛으로 매캐하게 꽉 막힌 큰고장이기에, 그곳에 빛씨앗 한 톨을 심어서 나무 한 그루로 돌보는 길을 생각하는 어른 한 사람이 씩씩하게 설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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