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14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믿지 말고 볼 줄 알면



《은여우 14》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8.31.



  볼 줄 안다면 그저 봅니다. 믿는다거나 못 믿겠다는 생각으로 가지 않습니다. 볼 줄 알기에 그저 바라보지요. 있는 대로 보며, 드러나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결을 하나하나 맞아들입니다.


  볼 줄 모른다면 참말로 못 볼 테지요. 감추거나 숨길 적에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지만, 꾸미거나 덧씌우면 속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못 보는 마음으로 그저 따르다’가 ‘믿음이 스스로 굴레가 되’기 일쑤입니다. 볼 줄 아는 눈길이 없다면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텐데, 눈길도 마음길도 아닌 ‘믿음’으로 가고 나면, 둘레에서 들려주는 말이라든지 꺼풀을 벗긴 속모습을 마주하더라도 참길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타츠오는? 타츠오는 보여? 아빠는 안 보여! 그러니까 믿는 거라니까!” (15쪽)



  믿는 마음이 되면 눈앞에서 뻔히 보이는 모습을 놓고도 거짓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믿어버렸거든요. 밑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믿음은 좀처럼 안 흔들리지요. 그래서 정치하고 종교는 언제나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내몰기 마련입니다. 허수아비를 세우는 모든 곳은 사람들이 참길을 바라보지 않게끔, 참삶을 생각하지 않도록, 참사랑으로 어우러지지 않을 굴레를 씌우려 합니다.


  믿게 하려면 다 다른 모습을 거슬러야 하지요.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차림새에 말씨에 얼굴이 되도록 내몰아요. 이러면서 또래를 묶어 하루 내내 지내도록 묶어 놓습니다. 똑같은 책을 펴서 똑같은 이야기를 달달 외워서 똑같은 종이를 내밀고는 똑같은 풀이를 적도록 밀어붙입니다.



“뭐, 유코를 잊으라는 건 아니지만, 딱히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도 추억은 얼마든지 있잖아. 조금씩 정리를 해두는 게 좋아.” (59쪽)



  어버이는 아이를 안 믿습니다. 어버이가 왜 아이를 믿어야 할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어떤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으로 움직이는가를 지켜봅니다. 어버이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눈길이 되어 마주보려 합니다.


  어버이는 ‘보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되면 아이가 몹시 괴롭습니다. 거꾸로 아이도 어버이를 믿을 적에 스스로 갇혀요. 어버이를 믿는 아이는 스스로 서는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곁에서 익히며, 함께 누리면서 삶으로 녹일 줄 안다면, 이 아이는 슬기롭고 튼튼하며 의젓하게 큽니다.


  일본절(신사)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는 《은여우 14》(오치아이 사요리/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은 첫걸음부터 이어온 ‘믿다·보다 사이에 무엇이 있나’ 하는 대목을 부드럽게 다룹니다. 그저 수수하다 싶은 사람살이에서 왜 누구는 믿고 왜 누구는 보는가를 다루려 하지요. 믿는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보는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가를 가만히 맞댑니다.



“보통은 큰 신사에서 해야 신덕을 입는다고 생각하시지만, 시치고산은 원래 지역의 우지가미님을 모신 신사에서 하는 행사고, 게다가 큰 신사는 많은 사람이 참배를 오시니까 궁사 밑에 있는 여러 신직들이 진행하지만, 이쪽은 신사의 수장인 궁사님께서 직접 진행을 해주시죠.” (107쪽)



  ‘믿음직하다’라는 말씨는 좋은 결도 나쁜 결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무엇을 하든 받아들일 만하기에 믿음직할 텐데요, 무엇을 하든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지만, 이보다는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반가우리라 생각해요. 믿음직하기보다는 ‘함께 놀고 일하며 살아갈 만한’ 사람이라면 그지없이 사랑스러울 테고요.



‘죽음을 접하면 부정 탄다. 인간은 죽음을 접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일까? 죽음이란 대체 뭘까?’ (136쪽)


‘불교는 다시 태어나지만, 신도에서는 죽은 사람은 신이 되어 지켜봐 준대. 그것도 왠지 나쁘지 않네.’ (138∼139쪽)



  알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다르게 살아가며 다르게 맞아들이는 하루가 되겠지요. 저는 ‘알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알아냈기 때문에 더 즐겁게 바라보거나 들여다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하나를 알았으면 이다음인 둘을 알고 싶은 걸음이 되고 싶어요. 둘을 알아냈으면 열이며 스물을 내다보면서 새삼스레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습니다.


  알아낸 대목으로 굳게 믿음을 뿌리박고 싶지 않습니다. 알아낸 대목을 내세워 믿음직한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알면 알수록 제 마음속을 한결 깊고 넓게 파헤치면서 더더욱 날아오르는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돌개바람이 되겠지요. 때로는 휘파람이 되겠지요. 때로는 산들바람이 될 테지요.


  어느 바람이든 이 별을 두루 돌면서 푸르게 어루만집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누구한테나 서글서글 다가서면서 곱게 흐릅니다. 바람이 불기에 풀꽃나무가 숨을 쉬고, 사람도 숨을 쉽니다. 바람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납니다.



“전에 물어봤지? 왜 신주를 그만뒀냐고. 내가 없었기 때문이야.” (177쪽)



  나이기에 ‘나’를 찾습니다. 너이기에 ‘너’를 찾지요. 내가 너를 보면 너는 너이지만, 네가 나를 보면 너는 ‘너이면서 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줄 알아차립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솜씨와 재주를 살려서 서로 다른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꿈꿉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굳이 똑같아야 하지 않아요. 서로 다른 우리가 애써 똑같은 길을 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못 먹는 밥이 있고, 그대는 그대대로 못 마시는 술이 있겠지요. 저는 저대로 엉성한 손놀림이 있을 테며, 그대는 그대대로 멋진 손빛이 있겠지요.


  우리가 저마다 믿지 않고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믿음이란 틀을 버리고, 믿음이란 굴레는 녹여버리고, 언제나 새롭게 보고 새삼스레 바라보며 사랑으로 마주보는 상냥한 눈망울이 되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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