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타 달리다 9
타카하시 신 지음, 이상은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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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2.19.

여럿이 이어서 달릴 적에



《카나타 달리다 9》

 타카하시 신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20.12.25.



  《카나타 달리다 9》(타카하시 신/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20)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 삶터를 돌아봅니다. 그저 달리기가 좋은 아이 하나가 앞장서면서 둘레 여러 아이들이 새롭게 동무가 되고, 이 아이들은 나란히 달리면서 ‘달리면 무엇이 좋고 삶을 어떻게 새로 바라보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운동’도 ‘스포츠’도 아닌, 오직 즐겁게 달리면서 땀을 흘리고 바람을 가르며 노래하고 싶은 아이들은,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하늘을 바라볼 적에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여러 어른이 보기에 이 아이는 첫째로 들어오고 저 아이는 넷째로 들어오고 그 아이는 막째로 들어오는 듯하지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은 홀가분하게 꿈을 키우고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왜 첫째가 되어야 할까요? 왜 둘째가 되면 안 되나요? 아니, 왜 첫째부터 막째까지 금을 긋고서 줄을 세우나요?


  더 잘해야 할까요? 좀 못하면 안 될까요? 남보다 앞서가야 하나요? 앞서거나 뒤선다는 생각을 왜 해야 하는지요? 나란히 가고, 나란히 즐기고, 나란히 노래하고, 나란히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맞이하면 어떨는지요?


  더 갈고닦았기에 잘 달리지 않습니다. 더 다그쳤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가 있으니 달립니다. 날개가 있으니 납니다. 입이 있으니 노래합니다. 귀가 있으니 듣습니다. 눈이 있으니 빛깔이며 빛살을 알아봅니다. 마음이 있으니 사랑합니다. 머리가 있으니 생각합니다. 손이 있으니 짓습니다. 가슴이 있으니 품습니다. 살갗이 있으니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며, 씨앗이 있으니 이 모두를 고루 여미어 즐겁게 심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니냐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즐기는 아름다운 하루가 될 만한가를 생각하는 길에 서면 좋겠어요. 《카나타 달리다》는 이런 이야기를 ‘여럿이 이어서 달리기’라는 줄거리로 들려줍니다.


ㅅㄴㄹ


‘이 운동화! 너무 기분 좋아! 할머니가 사주신 운동화도 좋았지만, 이건 아주 가벼워서 발이 저절로 나아가는 것 같아! 내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운동화. 신데렐라처럼 발에 딱 맞는 운동화! 계속, 계속, 함께 달리자!’ (31쪽)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것도 싸우는 거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무리 분해도, 먼 훗날을 위해 달려 나간다.’ (50쪽)


“역전경주는 실력도 달리는 법도 재능도, 입장이나 경험마저도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어깨띠를 연결하기 위해서 팀이 될 수 있어요.” (97쪽)


‘똑같은 레이스는 한 번밖에 없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야!’ (144쪽)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 무척 고요해. 바람이 기분 좋아. 즐거워.’ (195쪽)


“포기해 버린 자신의 나약함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레이스 중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빠른 게 아니야. 강해, 너는.”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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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かはししん #高橋しん #かなたかける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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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미각 식탐정 15
다이스케 테라사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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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이 맛에 담은 이 삶



《절대미각 식탐정 15》

 테라사와 다이스케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9.12.25.



  《절대미각 식탐정 15》(테라사와 다이스케/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9)을 읽으면서 밥맛하고 밥길을 생각합니다. 그림꽃책에 나오는 사람은 소설을 쓰면서 탐정 노릇을 한답니다. 이이는 둘레에서 보자면 엄청나게 먹는다지요. 하루에 세끼나 다섯끼가 아닌, 쉰끼나 여든끼도 아닌, 이보다 훨씬 먹어치울 뿐 아니라, 누가 말리지 않으면 끝도 없이 먹어댄다고 합니다.


  설마 사람이 어떻게 하루에 백 그릇을 훨씬 더 먹느냐고 따질 만한데, 이이는 누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먹고픈 대로 먹습니다. 누리고픈 대로 누립니다. 이러면서 속내를 읽어요. 겉으로는 좀처럼 안 보이는 속살을 헤아립니다. 누가 감춘 대목을 알아차리고, 왜 감추었는가 생각하며, 어떻게 풀어내어 이야기로 들려주면 좋을까를 살핍니다.


  우리는 어떤 밥을 먹나요?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느끼나요? 밥을 지은 사람들 손길을 헤아리나요? 밥을 지은 사람에 앞서, 논밭에서 거두고 바다에서 낚으며 들에서 훑은 살림을 알아보나요?


  모든 밥은 땅에서 오고 하늘에서 옵니다. 흙에 깃들어 비랑 바람이랑 볕을 머금으면서 자란 숨결이 우리한테 밥이 됩니다. 이 푸른별에서 어우러지고, 먼먼 별빛을 받아들이고, 온누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 마음을 새삼스레 품은 숨빛이 우리가 먹는 밥이에요.


  밥이 되어 준 쌀알 한 톨이 어느 땅에서 어떤 손길을 받고 어떤 하루를 보낸 끝에 어떤 길을 거쳐서 우리한테 왔는지 읽을 수 있을까요. 밥을 지은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밥감을 손질하고 어떤 눈빛으로 밥자리를 차렸는지 읽어 볼까요. 우리 몸으로 스며드는 모든 밥을 넉넉히 맞아들이면서 사랑으로 누린 다음 사랑으로 베풀 수 있는가요. 《절대미각 식탐정》에 나오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 누구나 ‘맛에서 삶과 넋과 숨과 길과 오늘과 어제와 별과 꿈과 사랑’을 읽어내는 눈빛을 새삼스레 틔운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실제로 파스타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알단테니 아니니를 따지는 건 대개 중년 이상의 고리타분한 아저씨들이고, 젊은이들은 자기 취향에 맞게 삶아 주는 집을 골라서 다니는 게 보통이라지.” (15쪽)


“만약 저 사람이 정말로 오른손에 화상을 입었고, 그 상처에 고추기름이 묻었다면 지금쯤 아파서 정신도 못 차릴 지경이라야 해.” (26쪽)


“왠 민폐? 손님으로 왔으니 가게 눈치 볼 것 없이 당당히 회의를 하면 될 것 아냐. 뭣보다 끝없이 이야기하고 싶으면 끝없이 우동을 시켜 먹으면 그만이잖아!” (38쪽)


“오히려 자네가 메밀국수 만들기를 착실히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맛없는 우동이 만들어진 거지.” “네?” “아까 우동과 메밀국수는 같은 면 요리라서 공통점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 두 가지 면 요리는 반죽하는 방법이 아주 달라.” (61쪽)


“그럼 왜 똑같이 만든 두 케이크가 하나는 초록색, 하나는 보라색이 됐을까? 그건 한쪽 시폰케이크반죽에 누가 어떤 독극물을 넣었기 때문이야.” (117쪽)


“농학부 학생이라면 감자에 대한 이 정도 상식은 당연히 갖추고 있었어야 하는데, 감자 손질처럼 학교 공부도 얼렁뚱땅 해치운 모양이군?”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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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てらさわだいすけ #寺澤大介

https://www.amazon.co.jp/-/en/gp/product/B009KWUK9U/ref=dbs_a_def_rwt_hsch_vapi_tkin_p5_i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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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현 1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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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2.14.

노래하고 싶다면 나무를 품지


《天相의 弦 1》

 야마모토 오사무

 천강원 옮김

 서울문화사

 2003.11.29.



  《天相의 弦 1》(야마모토 오사무/천강원 옮김, 서울문화사, 2003)를 읽고서 찾아보니, 이 그림꽃책은 우리말로 석걸음까지 나온 다음 판이 끊어집니다. 일본말로는 열걸음까지 나왔습니다. 시골에서 고삭부리로 태어나 흙이랑 나무를 만지며 놀기를 좋아하던 어린 날을 보낸 뒤, 칼을 찬 경찰이 아닌 사랑어린 눈빛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조선사람은 교원자격증을 땄어도 길잡이를 할 수 없을 뿐더러, 1945년 뒤로 1950년을 지나면서 돌아갈 길이 막힌 채 스스로 발버둥을 치고 밑바닥으로 몰려 멧골 깊은 곳에서 나무를 베는 일을 하다가 조금씩 소릿가락에 눈을 뜨고서 바이올린에 아름다이 숨결을 불어넣은 진창현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나날을 줄거리를 다룹니다.


  그림꽃책 《천상의 현》 첫걸음은 이 삶길 가운데 ‘고삭부리로 태어난 진창현을 어머니가 고개 넘어 옆마을로 젖동냥을 다니며 키운’ 이야기, ‘늘 놀림이나 따돌림을 받지만 홀로 흙이며 나무를 주무르면서 빛살을 새롭게 만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진창현 님이 남긴 글을 죽 읽어 보면, 바이올린을 잘 짜는 이도, 바이올린을 잘 켜는 이도, ‘어떡해야 노랫가락을 아름다이 켜는 바이올린을 짤 수 있는지’를 밝히지도 말하지도 알려주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아니,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깨닫고 마음으로 읽어 몸에 새길 뿐이라고 하더군요.


  이녁은 밑바닥으로 늘 내몰렸는데, 그 밑바닥에서도 더 밑바닥으로 처박히도록 끝없이 내몰렸다고 합니다. 이때에 이녁은 어머니하고 누이를 그리면서 다시 일어섰고 새롭게 꿈을 마음에 새기면서 모든 고빗사위를 바로바로 받아들여서 녹여냈구나 싶어요. 젖동냥을 하며 살려낸 어머니, 이 어머니 곁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고 지켜준 누이, 멧골에 홀로 오두막을 짓고 바이올린을 짜는 이녁을 사랑스레 여긴 곁님,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두 사람을 미덥게 여긴 마을사람이며 이웃, 무엇보다 두 사람을 둘러싼 드넓은 숲과 멧골과 물줄기와 바람과 하늘과 나무와 흙, 이 모두가 어우러져서 ‘스트라디바디가 아닌 진창현’이라는 새로운 노랫가락을 품은 바이올린하고 첼로하고 비올라가 태어났지 싶어요.


  스트라디바디도 진창현도 배움터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둘은 책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둘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걸맞는 숲을 고이 품고서 나뭇결하고 몇 가닥 줄에 얹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글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사랑을 속삭이는 책은 누가 쓸까요? 마음을 깨우는 노래는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는 누가 지을까요? 《하이디》처럼 《초원의 집》처럼 《플란다스의 개》처럼, 모든 아름다운 사랑이 태어나고 피어나고 자라나는 바탕은 숲이요, 이 숲을 품고서 삶을 노래할 줄 아는 웃음꽃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지두 계집이란 이유로 학교도 못 갔고 글도 읽을 줄 모릅니더. 뭐 가끔 불편하기는 하지예. 하지만 내가 사내보다 못하다고 생각해도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으면, 엄마가 되길 잘했다 싶네예. 아이를 낳을 수 있어서 참말로 행복합니더.” (21쪽)


“여기 이렇게 앉아서 오늘 본 것들을 몇 번이고 떠올리는 거예요. 그러면 점점 분명하게 그 형태가 머릿속에 떠올라요. 이 물고기는 성철이들이랑 강에 놀러갔을 때 본 거예요 …… 물고기가 내 발밑으로 왔어요. 도망가지 않게 움직이지 않고 계속 쳐다봤어요. 물고기가 무이 흘러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살짝 틀었는데, 그랬더니 등에 있던 비늘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50∼51쪽)


“예쁘고 아름다운 건 물건뿐만이 아니란다. 사람의 마음도 부처님의 자비도 아주아주 아름다운 거야.” “엄마도 예뻐요.” (68쪽)


“일본이든 조선이든 상관없어. 넌 엄마의 보물이니까.” (92쪽)


‘노력하고 연구해 정진하면 할수록 신비한 힘이 발동해, 만들어진 사물에 생명이 깃든다는 사실. 물건을 만드는 자는 생명의 탄생을 볼 수 있다는 사실.’ (137쪽)


“그들에게는 나이든 부모도 있을 거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을 거야! 장래에 대한 꿈도 있고! 하지만 죽는다고! 적도 아군도 모두 죽어! 자신도 죽고! 전쟁이란 건 그런 거야!” (196쪽)


#山本おさむ #天上の弦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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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가 하나 북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5
타카노 후미코 지음, 정은서 옮김 / 북스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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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2021.2.14.

두려움 더하기 눈속임


《막대가 하나》

 타카노 후미코

 정은서 옮김

 북스토리

 2016.6.25.



  《막대가 하나》(타카노 후미코/정은서 옮김, 북스토리, 2016)가 다루는 줄거리는 수수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곳에나 이야기가 있고, 이 이야기는 스스로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피어난다는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사랑은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늘 사랑이거든요.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게 여길는지 모르나, 나무도 늘 나무입니다. 곰곰이 보면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도 ‘있는 그대로’입니다. ‘있는 그대로’에서 깎으니 미움이나 멍울이나 두려움으로 흘러요. ‘있는 그대로’에서 보태니 자랑이나 우쭐질이나 막짓으로 흐릅니다.


  공 하나를 사이에 놓고서 즐겁게 놀 적에는 다툴 일이 없습니다. 이기거나 지는 놀이란 없어요. 놀이란 ‘놀다 = 움직이다’인 터라, 서로 마음껏 움직이면서 땀흘리며 웃고 즐기는 살림입니다. 공 하나로 하는 ‘운동경기(스포츠)’를 하는 이들은 ‘공놀이’란 말을 꺼려요. 그도 그럴 까닭이, 운동경기(스포츠)란 이름을 붙이면 반드시 이기거나 지거든요.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공놀이(생활체육) 아닌 운동경기(스포츠)란 이름에서는 지지 않으려고, 그저 이기려고, 닦달을 하지요. 억지로 시키고 때리지요. ‘돈·이름·힘을 얻거나 차지하려는 운동경기(스포츠)’가 되기에 주먹질(폭력)이 불거집니다.


  2021년 2월 한복판에 불거지는 ‘배구판 주먹질(학교폭력)’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배구이든 농구이든 축구이든 온갖 놀이판을 보면 누구나 맨몸으로 뻘뻘 땀흘립니다. 이들은 늘 ‘다섯 사람 넘게 모여서 살을 부대끼’지요. 그런데 놀이판에서 땀흘리며 살을 부대낀 이들 가운데 돌림앓이에 걸린 사람은 여태 없습니다. 놀이판 아닌 절집(예배당)에서 잔뜩 걸렸다지요. 골프를 하거나 스키를 타는 곳에서, 또 백화점이며 대형마트이며 우글우글 바글바글한 곳에서 누가 뭘 걸린 적이 있을까요? 도서관하고 학교와 작은모임은 왜 닫아걸면서 운동경기와 전철역과 국회의사당과 스키장과 대형마트는 왜 안 닫아걸까요?


  꽤 오랫동안 살을 부대끼며 땀흘리고 겨루는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돌림앓이에 안 걸리는데, 또 서울 한복판 버스나 전철에서 아직 아무도 돌림앓이에 안 걸리는데, 왜 ‘다섯 사람 넘게 모이면 안 될(5인 이상 집합금지)’까요?


  눈속임 아닌지요? 거짓말 아닌지요? 우리 몸은 늘 우리가 스스로 튼튼하며 맑고 환한 마음인 ‘사랑’일 적에 지키는데, 우리 마음에서 사랑을 걷어내고 두려움과 미움을 심으려는 얼거리이니 않나요? 영화나 연속극을 찍는 자리에서, 기자가 우르르 모이는 자리에서, 나라지기나 벼슬꾼이 심부름꾼을 잔뜩 이끌고 우르르 다니는 자리에서, 시청이나 군청 같은 곳에 우르르 몰려서 일하는 자리에서는 막상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수수하게 살아가는 자리에서 수수하게 마음이 만나며 피어나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그림꽃책 《막대가 하나》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여 받아들일 적에 사랑이 될까요?


ㅅㄴㄹ


‘작은 마을이라 상점가를 빠져나가면 금방 처마가 깊숙한 농가로 바뀌고 저기를 지나면 금방 막다른 골목이다. 대나무가 우거진 언덕길을 올라간다. 숲 기슭에 냇물이 흐르고 있다.’ (15쪽)


‘지금의 일도 하나의 추억이 될까. 자식이 태어나고 다 자라 독립한 후 다시 둘만 남으면, 과거의 추억이라며 떠올리게 될까.’ (44쪽)


‘달릴 필요 없어. 멈춰 서서 기다리면 돼. 느긋하게 멈춰 서서 기다리면 돼.’ (84쪽)


“물건을 부수고 강아지를 발로 차고 꽃을 뽑고, 웃으면 안 될 때는 웃고, 웃어도 좋을 때는 웃지 않고, 장미를 건드리다 가시에 찔리면 누가 달래줄 때까지 한없이 우는, 그런 아이가 잔느야.” (98쪽)


“잔느의 옷에는 제대로 달려 있는 단추가 거의 없지만, 피아니의 옷은 대개 엄마가 꿰매 주시지.” (99쪽)


‘착한 아이가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있나요?’ (110쪽)


“본인은 의외로 믿을 수가 없답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타인만 볼 수 있거든요.” (184쪽)


#高野文子 #棒がいっぽん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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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3 - 팀 카라스노, 출발
후루다테 하루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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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너 혼자 하지 않아



《하이큐 3》

 후루다테 하루이치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3.7.30.



  《하이큐 3》(후루다테 하루이치/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3)을 읽으면 배구라고 하는 공놀이에서 서로 어떻게 맞물려서 하나로 흐르는가 하는 줄거리가 도드라집니다. 다만, 《하이큐》를 죽 보면 이처럼 ‘어울림’을 다루는 줄거리가 드문드문 나오되, 큰줄기는 이다음에도 뛸 수 있도록 저쪽을 이기느냐 지느냐입니다. 이기고 지는 대목을 안 다룰 수는 없겠지만, 이기거나 지는 이야기만 다룬다면 삶이라는 길이 덧없어요. 이기든 지든 즐겁게 뛰고 달리고 놀고 얘기하고 웃다가 눈물을 흘릴 줄 안다면,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하루는 아름답습니다.


  그림꽃 하나가 이 모두를 다루기 어려울까요? 이기고 지는 판을 다루기가 쉬울까요? 그런데 그저 이기거나 지는 판을 다룰 뜻이라면, 구태여 사람들이 겨루지 않아도 됩니다. 로봇을 쓰면 되지요. 이기도록 채찍질을 하면 되겠지요. 배움수렁(입시지옥)처럼 가두어 놓고서 닦달을 할 노릇이겠지요. 배구이든 어느 마당이든 이기고 지는 판보다는 온마음을 다한 숨결로 온몸을 다 쓰는 땀방울에서 빛을 한 줄기 찾으려 한다면, 바로 이 길을 담고 다루고 그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2021년 2월 한복판에 ‘학교폭력 이재영·이다영 자매’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두 사람이 벌인 괴롭힘질은 가볍지도 짧지도 않았는데 여태 감추었다지요. 맞거나 들볶인 사람은 벌벌 떨다가 엄두를 못 낸 채 오늘에 이르렀고, 때리고 들볶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홀로 잘난순이가 되어 우쭐거렸습니다.


  배구는 혼자서 할 수 있을까요? 농구나 축구는? 아니 혼자 해내는 길이란 아예 없습니다. 책조차 혼자 쓰지 못합니다. 우리는 혼자서 붓을 깎고 종이를 짓고 실을 잣지 않잖아요. 이웃 손길 하나도 없이 혼자서 다 해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숲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어야 하고, 나무를 살찌우는 해랑 비랑 흙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함께 움직이고 같이 돌아가는 삶입니다. 이 ‘함께’를 느끼고 말할 줄 알기에 제대로 맞물려 흘러가는 배구요 살림이며 삶이자 사랑이겠지요. 이런 얼개를 잊어버린 ‘학교폭력 이재영·이다영 자매’ 같은 사람은 톡톡히 값을 치를 노릇일 뿐 아니라, 이들처럼 주먹다짐에다가 이름팔이에다가 뒷힘을 써 온 모든 이들은 차근차근 걷어내도록 눈을 뜨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조용하다. 아까 본 서브 리시브는 진짜로 딱 그런 느낌이었어.’ (11쪽)


“그렇지만 리베로는 키가 작아서 하는 포지션이 아니라, 리시브를 잘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포지션이잖아요?” (14쪽)


“시합 중에 경기장에 가장 큰 함성이 울려퍼지는 건, 어떤 굉장한 스파이크보다 슈퍼 리시브가 나왔을 때야.” (20쪽)


“설령 키가 2m라고 해도 나는 리베로를 할 거야. 스파이크를 날리거나 블로킹을 하지 못해도, 공이 바닥에 떨어지지만 않으면, 배구는 지지 않아. 그리고 그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 바로 리베로다.” (21쪽)


“지금까지 수없이 블로킹을 당해 왔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스파이크를 성공시켜 왔잖아요. 그래서 모두 아즈마네 선배를 ‘에이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46쪽)


“아무리 스파이크가 안 들어가도 원망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 하지만, 멋대로 포기하는 건 용서 못해.” (82쪽)


“속공을 쓰지 못해 블로킹에 완벽히 마크를 당해도, 막힐지 뻔히 알아도, 블로킹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장면에서 마지막 공을 처리하는 게 바로 에이스야.” (101쪽)


“에이스가 블로킹을 뚫고 얻어낸 한 점이나, 네가 블로킹을 피해서 얻어낸 한 점이나, 똑같은 한 점이야.” (152쪽)


“호칭이나 포지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적이 제일 두려워하는 선수가 가장 멋진 게 아닐까?”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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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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