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코어 걸 6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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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바른길이 아닌 사랑길을 걷자



《하이스코어 걸 6》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20.1.31.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교육. 상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오노 재벌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앞에 두고 초조했는지도 몰라. 위에서 누르기만 해서는 자라날 것도 자랄 수 없겠지.’ (155쪽)



  사람은 어떻게 이 별에서 사람으로 살아갈까요? 이런 말을 누가 묻는다면 대번에 튀어나오는 말이란, “글쎄요, 모르겠네요.” 입니다. 이윽고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 저는 사람이란 몸을 입고서 살아가니까, 여태 살아온 대로 생각해 볼게요.” 하고 덧붙여요. “넘어지기에 일어나고, 일어났으니 또 넘어지고, 다시 넘어졌기에 새로 일어나고, 그러면서 무언가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서 한결 씩씩하면서 튼튼하게 나아가는 길을 맞아들이기에 사람으로 살지 않을까요?” 하고.


  아이를 보면 그렇습니다. 넘어져서 울다가도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다시 일어나서 걷거나 달려요. 이윽고 아이는 다릿심이 붙어 엄청 잘 걷거나 잘 달립니다.


  어른을 보면 어떤가요. 쓴맛을 보고 또 보기에 고꾸라지는 어른이 있습니다만, 쓴맛을 자꾸자꾸 보기에 더더욱 다시 부딪히고 뛰어들면서 끝끝내 해내는 어른이 있어요. 고꾸라진대서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고꾸라지는 모습도 바로 사람다운 길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안 된다고 여겨도 끝까지 해보려고 달려드는 모습도 참말로 사람스러운 길이로구나 싶습니다.



‘코하루가 승리에 집착하고 있는 반면, 저 아이는 게임 자체를 즐기면서 대결에 임하고 있어. 코하루에게는 빠져 있고, 하루오에게는 존재하는 것.’ (24쪽)


“야구치에게 진 것도 분하지만, 그렇게나 연습해 놓고 져버린 저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서.” “그 분한 마음이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야.” (59쪽)



  여기 《하이스코어 걸 6》(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이 있습니다. 여섯걸음을 지나 일곱걸음을 기다리는 만화책인데, 책이름 그대로 ‘하이스코어’를 찍는 ‘걸’은 오락실에 거의 갈 수 없는 몸입니다. 이 아이는 집안일을 물려받아야 하는 짐을 짊어지느라 동무가 하나도 없어요. 쉴틈이 아예 없어요. 갖가지 솜씨를 익혀야 해요.


  이러다가 오락실 죽돌이를 만나지요. 오락실 죽돌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오락실에만 들어서면 눈빛이 바뀐다지요. 그야말로 온마음을 쏟고 온힘을 쏟아서 스스로 이루려는 일(끝판깨기)을 해낸다지요.



‘땀흘려 벌어서 오락기에 들어간 동전들이 네게 새로운 힘을 주었을 거야.’ (50쪽)


‘후우, 평소에는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당연한 듯 게임을 즐겨 왔는데, 게임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122쪽)



  오락실 곁에 간 적이 없는 으리으리한 집 아가씨는 처음 마주하는 오락실 기계에 앉아서 처음 손잡이를 다루고 단추를 누르지만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하던 끝판깨기를 매우 가볍게 해냅니다. 오락실 죽돌이는 이 아가씨 손놀림이며 생각이며 몸짓에 무척 놀라지만 ‘도무지 질 수 없지!’ 하면서 스스로 불타오릅니다.


  둘은 앞으로 어찌될까요? 오락실 죽돌이는 으리으리집 아가씨한테 한 판이라도 이길 날이 있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는 아주 또렷이 알 만합니다. 한 달에 고작 하루쯤, 기껏 한두 시간쯤 가까스로 오락실을 기웃하며 오락기계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리고 딱 한 판만 할 수 있다면, 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몸짓으로 그 놀이를 할까요? 놀이가 꽁꽁 막힌 아이가 아주 조그마한 틈새를 찾아내어 이 틈새로 겨우 숨을 돌리려 한다면, 이 아이가 보여주는 손놀림이란 얼마나 눈부실까요?



‘나는 계속 지켜봤단 말이다. 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면서 번 급료를 절반 이상이나 어머니깨ㅔ 드리는 모습을!’ (46쪽)


‘나는 지켜봤다. 남은 급료를 절약하기 위해 굳이 먼 동네의 저렴한 오락실을 찾아다녔던 것을.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휘몰아쳐도, 50엔으로 2판을 할 수 있는 오락실에 다녔던 사실을!’ (47쪽)



  만화책 《하이스코어 걸》 여섯걸음에 나오는 죽돌이는 어느새 초등학교를 마쳤고, 바지런히 곁일을 합니다. 빈틈이 곁일을 하며 버는 돈은 거의 어머니한테 맡긴다고 해요. 오락실 죽돌이였던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거듭날 만할까요.


  놀이돌이라 할 이 아이는 학교에서 딱히 무엇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배울 길이 없는 대목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할 만해요. 집에서, 마을에서, 아이를 둘러싼 너른 터전에서 문득문득 마음으로 배우는 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배우는 길은 비록 ‘오락실 게임’으로만 보일는지 모르는데, 이 아이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배우든 스스로 착하고 튼튼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눈빛을 맞아들이려고 해요.


  으리으리집 아가씨는 바로 놀이돌이한테서 이러한 마음을 느낍니다. 놀이돌이하고 가까이 지내는 몇 안 되는 동무도 이 놀이돌이한테서 바로 이 대목이 아름답다고 느껴서 도움말을 들려준다든지 어려울 적에 돕는다든지 합니다.



“저 미묘한 표정이 안 보여? 저게 휴식을 취하는 얼굴이냐고. 그렇게 오랫동안 아키라와 함께 있었으면서 도대체 뭘 봐온 건지.” (92쪽)


“아무튼 그렇게 단단한 머리론 아키라의 기분을 헤아릴 수 없을 거야. 진심으로 그 앨 위한다면 이해할 생각부터 해야지.” (94쪽)



  으리으리집 아가씨는 학교는 학교대로 다니되, 집에서 따로 가정교사한테서 배워야 합니다. 가정교사는 매우 모집니다. 놀이돌이가 여러 달 머리를 싸매면서 손수 만든 놀이(컴퓨터게임)가 담긴 놀이기구를 멋대로 내다버리기까지 합니다.


  으리으리집 가정교사는 무엇을 바라보는 삶일까요. 다그치기만 해서 아이가 솜씨꾼이나 재주꾼이 된다고 여길까요. 막상 솜씨꾼이나 재주꾼으로 키울 수는 있되, ‘사람다운 마음이 없는 솜씨꾼’을 뽑아낸다면, 또 ‘즐겁게 놀고 어울리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눈빛이 없는 재주꾼’을 지어낸다면, 이러한 배움길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마음이 없고 생각이 없는 채, 솜씨나 재주만 있는 사람으로 길들인다면, 굳이 사람을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기계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뭣 하러 힘들게 ‘생체기계’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렇게 서슬 퍼런 아키라는 나도 처음 봤어. 또 가출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저는 오노 가 교육 담당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 “그렇지만 제자가 저렇게 마음을 닫아버렸는데 힘들 것 아냐?” “힘이 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키라 아가씨를 교육하는 게 제 역할.” “인간으로서 힘들잖아.” “글쎄요. 어떨까요. 고집 부려서 뭐 어쩌려고?” “아키라의 기분이 한번 돼 봐.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도 당신을 따라왔는데,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던 걸 한마디 말도 없이 버려버리고, 그걸 버린 장본인에게 매일 교육을 받고 있잖아. 도대체 어떤 심정이겠어? 그런데 교육만 받는다고 쟤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할 것 같아? 선생은 자기가 미움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키라가 저렇게 남을 무시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단 말야.” (143∼145쪽)



  바른길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른길은 참으로 반듯반듯하겠지요. 그렇지만 한 가지가 있어요. 바른길은 바르기는 하겠지만 따분하거나 심심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가울 수 있어요. 너무 반듯한 나머지 피 한 방울이 없기까지 합니다.


  어버이하고 아이가 어우러지는 살림집이라면, 어른하고 아이가 배우는 터전이라면, 우리가 바라볼 길이란 바른길은 아니지 싶습니다. 바른길을 안 쳐다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른길 아닌 사랑길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노래하면서 나아간다면, 저절로 반듯반듯하면서도 싱그럽고 상냥하고 넉넉하면서 아름다운데다가 신나는 길을 펼칠 만하지 싶어요.


  바른길만 갈 적에는 사랑하고 멀어지기 쉽지만, 사랑길을 갈 적에는 좀 에돌아가기는 하더라도 바른길을 고이 품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라로 보아서도, 또 이 지구라는 별을 아우르면서도, 우리가 갈 길은 언제나 사랑길일 적에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노래하며 나누기를 바라요. 사랑을 꿈꾸면서 길어올리고, 이 사랑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자란다면 기쁘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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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6
오자와 마리 지음,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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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푸른책

- 함께 뛰어넘을 언덕



《은빛 숟가락 16》

 오자와 마리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9.7.15.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윗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고단한 살림이 되기 일쑤입니다. ‘윗자리’란 여럿입니다. 먼저, 나이가 많은 자리입니다. 둘째, 돈이 많은 자리입니다. 셋째, 이름이 높은 자리입니다. 넷째, 주먹힘이 센 자리입니다. 다섯째, 동무나 이웃을 많이 거느린 자리입니다. 여섯째, 벼슬이 높은 자리입니다.



‘난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심했다. 왜냐면 지금까지 호토리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양심이 찔려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17쪽)


‘저녁은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족은 내가 오디션에 떨어져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꺼림칙해서 괴로워하던 그 정보를, 호토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데다 거짓말까지 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았다.’ (31쪽)



  군대라는 곳에서는 벼슬이 높은 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아래 틀을 깬다고 해서 무시무시하게 다그치는데, 싸움터에서는 그자리에서 바로 죽여도 된다고까지 하지요.


  삶터에서는 어떤가요?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든지, 장관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지자체에서는 시장이나 군수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교장·교감·교사가 시키는 대로 학생이 따르지 않는다면?


  가만히 생각해 봐요. 우리는 윗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윗자리이건 아랫자리이건 저마다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한쪽이 다른쪽을 밀어붙일 수 없어요. 서로 이야기를 해서 가장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함께 나아갈 노릇이에요. ‘시킴질’ 아닌 ‘이야기’로 맺고 풀 노릇입니다.



“그냥이라니. 몇 시인지 알아? 이런 시간에 돌아다니는 초등학교 6학년은 없어.” “얼마든지 있어. 이 주변 애들은 전부 중학교 입시를 치러서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원에 가 있어.” (50쪽)



  시킴질이 판치기에 막질(갑질)이 판쳐요. 시킴질이 드세니 바른소리나 바른말이 자꾸 막혀요. 더 생각해 볼까요? 어린이가 어른 곁에서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할 적에 ‘어린이가 들려주는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고분고분 듣고 따르면서 바르게 살림을 가다듬거나 추스르려고 하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아주 없거나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생각보다 참으로 적습니다만, 이제는 조금씩 ‘어린이 바른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음을 열어 삶을 바꾸려는 어른’이 늘어난다고 느껴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묻고 싶어요. 어린이나 푸름이 여러분이 바른소리나 바른말을 마음껏 펼 수 있는 나라이거나 집이거나 마을이거나 배움터인가요?


  어른한테 묻고 싶습니다. 어른이 말하니까 어린이나 푸름이는 잠자코 있거나 따르기만 해야 하는가요? 어른으로서 바른소리나 바른말에 어느 만큼 마음을 열면서 스스로 새길을 즐겁게 나아가는가요?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최악이었어. 그 베란다에서 형이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최악이었을지 몰라. 그래도 엄마를 많이 좋아했는데, 난 그무렵의 일을, 분명 잊지 않고 있어.” (66쪽)



  여러 아이하고 어른이 얼크러지는 삶자리를 오롯이 사랑으로 그려내는 《은빛 숟가락 16》(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무척 긴 만화가 될 테고, 앞으로 어떤 마무리가 될는지 지켜보는 만화이기도 한데, 혼자 먹든 함께 먹든 서로 따사로운 손길로 지은 밥차림을 서로 즐거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터뜨리면서 서로 사랑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줄거리로 삼습니다.


  더없이 따스한 삶을 그리지만, 이 따스한 삶 곁에서 맴도는 아이나 어른이 많다지요. 사랑받지 못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있고, 사랑받지 못한 생채기나 멍울이나 응어리를 그대로 품은 채 어른 몸이 된 뒤에 아이를 낳으니, 도무지 제 아이한테 사랑을 어떻게 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매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런 여러 사람 곁에서 가없이 너른 마음이 되는 사람이 있고, 이냥저냥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어요.



“엄마는 분명 루카보다 더 상처받았을 거야.” “그런데도 질리지도 않나 봐.” “텟짱하고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번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텟짱하고 헤어지고 나서 엄마는 무척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일 관련된 자격증을 따고. 집에서도 그래. 네가 없어졌을 때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너도 기억하잖아?” “결국 형도 엄마 편이구나.” “형은 언제나 네 편이야.” “그럼 만일 엄마가 시게키랑 결혼하게 되면, 나 형이랑 산다?” “응, 그래.” (71∼72쪽)



  마음이 아픈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사랑이 가득한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집에서 받은 생채기를 학교에서 더 받아야 한다면,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클까요? 집에서 받은 사랑을 학교에서 더욱 받는다면, 이 아이는 또 앞으로 어떤 삶길을 그릴 만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삶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이기보다는, 대학교나 회사에 어떻게 더 잘 붙이는가에 사로잡힌 자리라고 느낍니다. 앞으로 이 나라 학교는 삶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리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대학교에 가고 싶으면 누구나 갈 수 있어야겠고,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으면 누구나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어 새롭게 하루를 열 수 있어야겠어요.


  졸업장으로 금긋는 터전은 이제 끝내면 좋겠습니다. 기쁘게 어울리는 터전이 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푼푼이 살림을 나누는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집이나 땅을 돈으로 사고파는 나라가 아니라,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꿈을 키우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길을 이룰 만할까요?



“(너희) 엄마가 그랬어. 자기는 엄마로서는 실격이었기에, 루카의 마음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대. 난 루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더는 만날 수 없대. 내 시간을 낭비시킬 수는 없다고 했어. 전혀 낭비가 아닌데 말이지.” (94쪽)



  엄마답지 못한 엄마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낳은 뒤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섣불리 ‘잘못’이라 못박기보다는, 낳은 사랑을 찬찬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기르는 사랑을 아직 모른다 하더라도, 오늘부터 기르는 사랑을 배우면 되어요. 둘레에서 나긋나긋 기르는 사랑을 알려주면 참으로 좋겠어요.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서 다루는 밥차림에도 익히 나오는데, 아주 놀랍거나 대단한 밥차림이 아니어도 됩니다. 같이 부엌에 모여서 같이 반죽을 하고 그릇을 다루며 설거지를 합니다. 같이 자리를 펴고 같이 앉아서 마주봅니다. 곁밥이 많아도 좋으나, 곁밥이 하나여도 좋아요.


  때로는 집에서 차리지 못하고 사다 먹을 수 있어요. 사다 먹는 밥차림이어도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이 된다면 무엇을 먹더라도 웃음꽃이 피어나고 수다판이 벌어집니다. 가게에서 파는 과자 한 조각으로도 즐거이 저녁자리를 누릴 만해요. 잔칫밥을 차렸어도 사랑스러운 기운이 흐르지 않으면 답답하고 더부룩하고 괴롭고 힘들 테지요.



“확인해 볼래? 루카랑 형의 친부가 엄청난 쓰레기인지 어떤지. 찾으려고 생각하면 찾을 수 있어.” “혹시 형은 이미 만난 적 있어?” “없어. 방금 루카가 한 말이랑 똑같이, 찾아도 어차피 대미지를 입을 뿐이라고 생각했거든.” (104∼105쪽)


‘사는 세계가 너무 다르다는 걸 루카도 알아챘다. 부인은 국내 유수의 호텔 그룹 총재의 손녀에 다도 종갓집 딸이기도 했다. 부인을 버리고 우리를 낳아준 어머니와 맺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는 14살 때 만나던 같은 상대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 일순간이나마 친모에게 꿈을 꾸게 했을까.’ (139쪽)



  집안을 잇는 길이란 어느 일을 돈이 오래오래 되거나 이름이 널리널리 퍼지도록 붙잡는 길이 아니지 싶습니다. 예부터 흐르고 흐르던 포근한 사랑을 오늘 새롭게 가꾸어서 한결 밝히기에 집안길이 되지 싶어요. 먼먼 옛날부터 숱한 어버이가 숱한 아이한테 나누어 주면서 새롭게 받은 사랑을 오늘 되새기면서 앞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북돋우기에 집안길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니, 아직 모르겠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꼭 뛰어넘을 거야.” “응, 알겠어.” “형은?” “형은 루카를 응원할게.” “응? 형도 뛰어넘어.” (154쪽)



  어제를 뛰어넘어 오늘에 이릅니다. 아쉽거나 서운했던 어제를 내려놓고서 오늘을 맞이합니다. 즐겁게 누린 어제였으면 오늘은 새로 찾을 즐거운 길을 생각하면서 아침에 기지개를 켭니다.


  더 잘 하고 싶기에 뛰어넘지 않아요. 껑충껑충 자라는 키처럼 깡총깡총 뛰놀면서 홀가분하게 하늘로 두 팔을 뻗는 신바람을 누리려고 뛰어넘습니다. 어떤 울타리가 코앞에 있어도 가뿐히 뛰어넘어요. 어떤 담벼락이 둘레에 높다랗다지만 사뿐히 뛰어넘지요.


  사랑은 울타리로 둘러쳐서 막지 못합니다. 사랑은 담벼락으로 꽁꽁 싸매어 가두지 못합니다. 모든 응어리도 멍울도 생채기도 달래면서 녹이는 사랑이에요. 모든 미움도 시샘도 짜증도 가볍게 다독이면서 활활 태우는 사랑이에요.


  바람을 타는 새처럼 날아오르고 싶기에 뛰어넘습니다. 온누리를 가르는 별똥처럼 별하고 별 사이를 나들이하고 싶기에 뛰어넘어요.


  우리 함께 뛰어넘어 볼까요? 나이로 금을 긋는 어른들 판에서 사랑으로 손을 잡는 아이들 판으로 바꾸어 볼까요? 돈이나 이름이나 주먹으로 금을 가르는 어른들 나라에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푸른 놀이마당으로 고쳐 볼까요? 벼슬을 내세워 억누르거나 시킴질에 막질을 일삼는 어른들 마을에서 사랑으로 뛰놀고 웃음꽃을 피우는 맑은 보금자리를 지어 볼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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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지음 / YNK MEDIA(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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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



《보석의 나라 9》

 이치카와 하루코

 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10.25.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서 건넌다는 옛말이 있어요. 돌다리라고 하면 튼튼한 다리를 떠올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나 걷는 길이 이 돌다리나 돌길처럼 언제나 튼튼하면 좋겠다고 꿈꿀 만합니다.


  돌머리라고 하면 굳어버린 머리를 떠올려요. 스스로 새롭게 생각하려 하지 않을 적에 이런 말을 씁니다. 다리가 되어 누구나 홀가분하게 건너도록 하는 돌다리라면 듬직하다고 여기고,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리면 꿈도 사랑도 모두 멀어지고 만다고 여겨요.



“걱정 마. 너한테 책임을 전가하진 않을 테니까. 자신의 의지로 정한 일이야.” (10쪽)



  모든 돌은 다릅니다. 모래가 굳었다는 돌이 있고, 흙이 굳었다는 돌이 있어요. 불을 뿜는 멧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물이 굳은 돌이 있다지요. 그런데 돌은 이렇게 다른 무엇이 굳을 적에 태어날까요? 어느 모로 보면 야무진 굳음이나 굳셈이라면, 다른 눈으로 보면 멈추거나 고이거나 갑갑한 굳음이나 버팀인 돌이로구나 싶어요.


  이런 갖은 돌 가운데 빛나는 돌이 있습니다. ‘빛돌’이에요. 이 빛돌이 아니어도 모든 돌은 서로 다른 빛이 흘러요. 조약돌이든 몽돌이든 참말로 다르면서 새삼스러운 빛결입니다. 온갖 빛결인 돌인데, 그러한 빛결 사이에서 한결 눈부신 빛돌이 있어요. 이 빛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값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이 가루가 선배들이라는 건가요?” “맞아.” (35쪽)



  아홉걸음째에 이르며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롭게 앞으로 뻗는 《보석의 나라 9》(이치카와 하루코/신혜선 옮김, YNK MEDIA, 2019)을 읽다가 생각을 기울입니다. 다 다른 빛돌은 다 다른 굳기와 세기입니다. 다 다른 빛돌이기에 이 빛돌에 서린 넋이며 숨결이 다르기 마련이에요. 다 다른 빛돌인 터라 빛돌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바라는 삶이 달라요.


  이때에 고개를 갸웃할 수 있어요. 아니, 빛돌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넋이나 숨결이 있느냐고 말이지요. 어떤 분은 풀이나 나무한테는 넋이나 숨결이 없다고 여기기도 해요. 짐승을 고기로 삼을 수 없어서 풀이나 열매만 밥으로 삼는 분이 있는데, 풀하고 나무도 짐승하고 똑같이 넋이며 숨결이 있어요. 개나 고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도 아픈 줄 느낄 뿐 아니라, 풀꽃이며 나무도 아픈 줄 느껴요.


  돌도 그렇습니다. 돌도 아픈 줄 느껴요. 돌은 딱딱할 뿐더러 목숨이 없겠거니 여기며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으나, 돌한테 흐르는 넋을 읽고 숨결을 느끼며 마음을 만난다면, 그 어느 곳에 있는 돌도 마구 걷어차거나 밟지 않겠지요.



“나에게 행복을 준 너희에게 깨끗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제약을 가진 나로선 계속되는 투쟁에 너희를 희생시키면서 이상과 거리가 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지.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제부터는 나를 두고 떠나거라. 아름다운 보석 생명체여.” (64∼65쪽)



  돌을 돌 그대로 바라볼 줄 모르기에 나무를 나무 그대로 바라볼 줄 몰라요. 돌빛을 돌빛대로 마주할 줄 모르기에 풀빛을 풀빛대로 마주할 줄 모릅니다. 자, 사람 사이에서는 어떨까요? 사람마다 다른 마음이 흐르며 다른 사랑이 샘솟는 줄 느낀다면, 우리는 나라를 어떻게 가르더라도 군대나 전쟁무기를 키울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면서 아름다운 넋이며 숨결인 줄 읽는다면 위아래로 가른다든지 괴롭힌다든지 따돌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는 마음이기에 짐승이며 푸나무이며 바다벗이며 돌을 마구마구 다룹니다. 사람마다 다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사랑할 줄 알기에 이 별을 이룬 모든 빛을 고루고루 아끼면서 손을 맞잡는 길로 나아가요.



“내가 너희에게 저지른 짓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 “비틀렸다는 이유로 과거를 버리면, 앞으로도 저희는 성장할 수 없어요. 이제부터는 서로 다른 존재로서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 주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터.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용과 평등은 고대에 이상적으로 여겨졌으나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8쪽)



  만화책 《보석의 나라》는 내내 싸움판 이야기입니다. 빛돌은 처음 태어날 적에 싸울 마음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 빛돌을 둘러싼 사람이며 문명이며 기계이며 다들 제 눈앞만 바라보고 말아요. 제 눈앞만 바라보니 제 앞가림만 따지고, 제 앞가림만 따지니, 빛돌은 처음부터 언제나 빛돌일 뿐이었지만, 더없이 솜씨좋은 싸울아비로 바뀝니다.


  빛돌은 빛돌스러운 길을 찾을까요? 사람이나 기계나 문명이 빛돌한테 새길을 찾아 줄까요? 아니면 빛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부대끼고 알아보면서 새길을 찾을까요?



“자유다. 금강은 너희를 아끼면서도 가둬두진 않았어. 금강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이었지. 엄격한 제약에 묶인 자신에 대한 반동심 때문이었거나, 혹은 너희가 과거 주인이었던 인간과 비슷한 존재가 되길 바란 건지도 모르겠군.” (103쪽)



  우리는 모두 빛나는 돌입니다. 우리는 모두 눈부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꿈입니다. 야무진 마음이 되어 빛나면 좋겠어요. 눈부신 사랑 그대로 활짝 웃으며 깨어나면 좋겠어요. 맑은 꿈이 되어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지으면 좋겠어요.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기술력이 있었으면 우리의 문제도 이미 해결했겠지.” (119쪽)



  남보다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남이 누리는 살림을 빼앗거나 가로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흐르는 빛을 알면 되어요. 우리한테서 샘솟는 빛을 둘레에 넉넉히 흩뿌리면 되어요.


  씨앗을 심습니다. 씨앗 한 톨이 첫걸음이 되어 앞으로 새롭게 깨어날 숲을 그립니다. 우리 스스로 빛돌이면서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빛나면서 이야기꽃을 이룹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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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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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줄세우기에는 마음이 없어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우리 집에서 사람 손길을 타고 싶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가 있습니다. 어느새 한두 달 남짓 지내는데, 이 아이는 스스로 사냥할 줄 압니다. 사냥할 줄 알되, 사냥을 못하면 사람이 주는 밥을 먹기를 바라더군요. 겨울바람이 매섭고 꽁꽁 얼어붙은 날이 아니고는 따로 밥을 안 줍니다. 자칫 사냥솜씨를 잃을 수 있거든요.


  우리 집에 여러 나무하고 풀이 우거지니 갖은 새가 찾아오고, 마을고양이는 곧잘 이 새 가운데 한 마리를 잡아챕니다. 고양이가 새를 잡아챌 적에는 날렵합니다. 바람처럼 뛰어올라 앞발을 확 놀려서 바로 잡더군요. 새를 못 잡을 적에는 어설퍼요. 아하, 잡을 적하고 못 잡을 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양자의 증오가 이 기회를 빌려 폭발. 연재 기회의 습득보다도 상대를 향한 살의가 우선이다. 살고 싶은 동네 넘버원, 키치조지를 향한 증오. 시부야와 신주쿠가 가까운 시모키타자와에 대한 증오. 증오와 증오가 맞부딪쳐 만들어내는 지옥도. (8∼9쪽)



  잘할 때가 있으면서, 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설플 때가 있지만, 날렵한 때가 있습니다. 같은 몸인 목숨이지만 두 모습이 나란합니다. 같은 몸이어도 마치 다른 몸이라도 되는 듯이 달라 보이곤 합니다.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늘 잘하기만 하는 사람일는지요, 넘어지다가 일어서는 사람일는지요. 일어서서 멀쩡히 달리다가 그만 넘어지기도 하는 사람일는지요.



“연재에서 잘리고, 단행본 발행도 중단.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하할, 재능 없는 자신을 원망하라고.” (21쪽)



  불꽃이 튈 뿐 아니라, 불바람이 몰아친다고 할 만한 만화밭을 다룬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가만히 읽습니다. 누가 낫고 모자라다는 금을 죽 긋고는 이 금을 못 넘으면 얼간이라 여기고, 이 금을 넘으면 우쭐거리는 판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느 금을 넘은 이라 하더라도 제 앞에 있는 이를 물리치고 싶습니다. 아직 금을 못 넘은 이들은 악다구니가 되어 발톱을 사납게 세웁니다.



“작살을 내주겠어.” “과연 잘 될까? 만화가 지망생 출신들.” “!”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이 좌절되고 마음이 꺾여 이렇게 먹고살 수밖에 없는 거겠지. 만화를 사랑했던 만큼, 그 반동으로 뒤틀려버린 걸까? 중지에 박힌 굳은살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어.” (36∼37쪽)



  어깨동무를 하는 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내가 살려면 너를 밟아야 하고, 그냥 밟아서만 안 되고 다시는 못 일어나도록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란 왜 자꾸 불거질까요. 넘어진 이한테 손을 내밀면, 손을 내미는 사람도 진 사람이 될까요.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 이가 있으면 냅다 잡아채어 넘어뜨리고 우리만 일어서서 앞서가면 될까요.


  경제성장율이나 순위표란 모두 싸움판입니다. 다같이 넉넉한 길을 가도 될 테고, 다함께 대학교에 들어가도 될 테며, 누구나 일자리를 누리면 될 테지요.


  생각해 봐요. 왜 누구는 들어가도 되고, 누구는 들어가면 안 될까요? 왜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할까요? 왜 인기투표를 하고, 왜 숫자를 매길까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삶길을 고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아요. 중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을 테고, 초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겠지요. 또는 아무 학교를 다니지 않고서 스스로 배워도 좋을 테지요.


  굳이 의무교육을 떼어야 하지 않고, 애써 대학교육을 지나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일으킬 삶을 스스로 배우면 될 뿐이며, 스스로 사랑할 하루를 스스로 깨달으면 될 뿐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이러한 삶길이 되도록 이바지하면 되어요.



‘멸시받던 예전의 나는 죽었다. 이번엔 내가 작살낼 차례야.’ (74쪽)


‘참 잔혹한 책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는 작가들에게 랭크 따윌 붙이다니! 톱10 같은 건 상관없어. 작가는 자신의 기술을 구사해서 헤쳐나갈 뿐.’ (109쪽)



  만화책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는 줄세우기를 끝없이 따집니다. 아름다운 만화는 그저 아름다운 만화일 뿐이고, 재미난 만화는 그냥 재미난 만화일 뿐이며, 놀라운 만화는 그대로 놀라운 만화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너는 네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릴 꿈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꿈을 그리고, 너는 네가 사랑할 꿈을 그리지요. 더 낫지 않고,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 선으로는 내 영혼을 조각낼 수 없다. 선의 숫자만으로 승부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신념과 긍지를 불어넣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에는 꽂히지 않으니까.” (134∼135쪽)



  재주가 빼어나야 하지 않아요. 사랑이 어린 손길이면 되어요. 솜씨가 훌륭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웃는 노래를 담으면 되어요. 글을 쓸 적에 글재주는 덧없어요. 글사랑으로 빚을 적에 비로소 글이에요. 책을 솜씨있게 읽어야 잘 배우거나 깨달을까요? 아니지요. 어느 책에서든 우리 하루를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음을 살펴서 받아들이면 넉넉해요.


  내로라하는 자리에 서야 하지 않습니다. 자랑할 만큼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우쭐우쭐 할 만큼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사랑이면 됩니다. 언제나 즐거우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꿈꾸며 피어나면 아름다워요.



“저는 그거 좀 별로라서, 40점 정도일까요.” “크윽.”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이야. 빈말은 만화를 모독하는 거니까.’ “40점, 그건 작가에 대한 모독이 아니려나?” “네? 작가세요?” (183쪽)



  줄세우기로는 줄세우기만 보여줄 뿐이에요. 줄세우기에는 상냥한 웃음도 참한 눈빛도 기쁜 춤사위도 없습니다. 내가 너보다 잘나야 하지 않고, 네가 나보다 못나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 됩니다. 다 다른 하루를 그리면서 걸어가지요. 늘 새롭게 거듭나는 발걸음이 되어 달리면 되어요.


  좁은 판에서 살아남자고 생각하니 싸우고 말아요. 자, 그 좁은 판은 그만 쳐다보기로 해요. 잘 보셔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학입시는 ‘지옥·전쟁’ 같은 낱말로 나타냅니다. 이뿐인가요? 일삯을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는 길도 ‘지옥·전쟁’이라 하지 않나요?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시장·군수가 되려는 길도 ‘지옥·전쟁’으로 나타내지 않나요?


  싸우려 하니 불구덩이가 됩니다. 불구덩이에 뛰어들자니 싸우고 맙니다. 어떻게 하든 쳇바퀴입니다. 불구덩이로 안 뛰어들어야 사이좋게 손을 잡습니다. 싸움질을 멈출 적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에 꽃을 피우는 길이라면 오늘 어제 모레를 고요히 잇는 날갯짓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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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6 : ~소설가가 되는 방법~ - S 코믹스
야나모토 미츠하루 지음, 김아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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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마음을, 오늘을, 나를, 너를 쓴다



《히비키 6》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10.25.



  글을 쓰기란 얼마나 쉬울까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니 이 하루를 그저 옮기면 되는 글입니다. 늘 새롭게 꿈을 그리니, 이제부터 이루려는 꿈길을 차곡차곡 그리면 되는 글입니다. 오순도순 짓는 살림이니, 이 살림을 고스란히 담으면 되는 글입니다. 마주하는 이웃을 마음으로 느끼니, 이웃한테서 맞아들이는 숨결을 가만히 나타내면 되는 글입니다.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울까요.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채 바쁘게 몰아치니, 숨을 쉴 기운조차 없어 어렵습니다. 앞으로 이루려는 꿈이 없으니,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즐거울는지 몰라 셈틀을 켜 놓아도 글판을 두들기지 못합니다. 손수 짓거나 누리는 살림이 없노라니 막상 글쓰기도 만만하지 않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꽉 막힙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다 다른 이웃인 줄 알아보지 않으니,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한 숨결이 없어 풀이나 나무나 돌 이야기를 글로 적더라도 싱그럽거나 생생하지 않습니다.



“난 죽지 않아. 아직 걸작을 쓴 기억은 없으니까.” (40∼41쪽)


“내 소설을 읽어 줘서 고마워. 재미있게 봐줬다면 기쁘지만, 시시했다 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소설은 또 쓸 거니까, 다음에도 읽어 주면 좋겠어.” (17쪽)



  글쓰기를 묻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를 되묻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도 어렵겠네요 하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하고픈 분이 있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쓰기를 하시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잘 다룬 책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는 마음쓰기를 다룬 책을 읽으시면 어떻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이란 말이며, 말이란 생각이고, 생각이란 우리가 오늘 펼쳐 보이는 마음이 드러난 씨앗이라고 느낍니다. 하나씩 따지면 되어요. 말이 있기에 글이 있습니다. 말이 없다면 글이 없어요. 그렇다면 말이란? 우리가 말을 하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없이 말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을 적에는 소리는 낼는지 모르나 말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생각이란? 마음이 있기에 이 마음이란 자리에 씨앗처럼 심어서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심어서 가꾼 뒤에 일으키는 생각이 없으니, 언제나 다른 사람 말을 조잘조잘 따르기만 하는 쳇바퀴나 굴레가 되곤 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다면, 이 흐름을 헤아리면서 마음부터 쓸 줄 알아야겠지요. 마음을 옮기기에 마음쓰기요, 네가 어떤 마음인가를 하나하나 읽도록 헤아리기에 마음쓰기입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껴 준다면 기쁠 것이고, 아마도 그 소설은 그 사람을 위해 쓰여진 걸 거라는 생각이 들어. 10년 동안 소설을 썼으면 당신의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사람이 적어도 있긴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나일지도 모르고. 안 팔린다는 둥, 졸작이라는 둥, 그래서 죽는다는 둥, 남이 재밌게 본 소설에다 작가랍시고 함부로 꼬투리 잡지 말라구.” (35∼36쪽)



  ‘소설가가 되는 방법’이란 이름이 붙은 《히비키 6》(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을 읽으면, 어느새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문학상 두 가지를 한꺼번에 탄 히비키가 하이틴로맨스 소설도 슬쩍 써 보았는데, 이 소설도 덜컥 문학상을 받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느덧 히비키가 쓰는 소설은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 확 사로잡히는 글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만화책 《히비키》는 ‘소설을 쓰는 여자 고등학생’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길을 줄거리로 삼아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로 엮습니다. 그렇다고 내로라하는 문학상을 거머쥐는 길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그립니다.


  그래서 문학상을 거머쥐지 못한 사람, 문학상을 노리지만 으레 미끄러지는 사람, 문학상을 누가 받을는지 가리는 다른 소설가, 문학상을 거머쥔 사람 책을 찍어내어 돈을 벌려고 하는 출판사 일꾼, 문학상을 둘러싼 자리에서 아옹다옹하는 사람들을 다루어 장사를 하려는 잡지사 일꾼, 이런 뭇사람하고 동떨어진 여느 사람, 소설이고 책이고 마음이 없는 사람 …… 여러 갈래 여러 사람을 찬찬히 아울러서 이야기를 엮지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 금액은 히비키의 소설에 대한 정당한 가치입니다.” “정당이고 나발이고 당신네들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 (63쪽)



  자동차를 잘 안다고 한다면, 자동차 이야기로 무엇을 쓸 만할까요? “잘 안다”는 무엇이고 “쓸 만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자동차를 만든 회사 이름을 늘어놓으면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어느 곳에 어느 자동차가 어울리는가를 밝히기에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값이나 값어치를 적으니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물건으로 우리 앞에 있는 자동차라지만, 이 자동차도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어요. 입이 아닌 마음으로 자동차한테 말을 건다면, 자동차를 다루는 사람들 모습이나 눈길을 새삼스레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는 자동차는 무엇을 느끼는지, 찻길을 넓힌다면서 숲이며 들이며 마을을 밀어내는 몸짓을 자동차로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자동차가 달리며 내뿜는 찌꺼기를 자동차는 어떻게 헤아리는지, 이런 이야기를 자동차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쓸 수 있습니다.



‘이대로 싸워 봤자 이길 수 있을 리 없고. 그러게 얌전히 있으면 될걸. 도저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어. 난 왜 이렇게 자아가 강한 걸까. 히비키라면 어떻게 했을까.’ (101쪽)



  앞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삶길을 열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차츰 늘어납니다. 대단한 일이라고 여겨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글을 쓰는 길을 바라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태어난다니, 참말로 우리 삶터를 확 바꿀 만한 빛이 되겠구나 싶어요.


  흙을 일구거나 숲을 돌보는 길을 가겠노라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틀림없이 어디엔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 나라 터전이 터전이니만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지만, 돈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스스로 이루려는 꿈길을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늡니다. 그리고 돈을 알맞게 누리면서 스스로 바라는 꿈길도 아름답게 펴고 싶은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돈벌이가 꿈이라면 굳이 글을 안 써도 됩니다. 돈을 잘 버는 길을 가면 되겠지요. 글쓰기로 돈을 벌 꿈이 있다면 이때에는 글로 돈을 버는 길을 새로 닦으면 돼요. 다만, 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글에도 두 가지가 있지요. 참마음을 담아서 참다이 버는 돈이 있을 테고, 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아치우고서 거둬들이는 돈이 있겠지요. 글이름이나 글치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이치우고서 글빛을 뽐내는 길이 있을 테고, 오롯이 참답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글빛을 즐기는 길이 있어요.



“난 상 받을 생각 없고, 카요코도 없는 모양이니까, 수상은 취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뭐어! 왜? 어째서? 대상인데? 애니메이션화도 된다구?” “으음, 매일매일 책 읽거나 멍 때리면서 여러 가지로 바쁜데다, 상 같은 거 그다지 흥미없어서. 미안해.” (172쪽)



  만화책 《히비키》에 나오는 아이는 여고생입니다. 남고생이 아닌 여고생이지요. 이 여고생을 바라보는 둘레 사람 눈길이 다 다릅니다. 요즈음에도 ‘여자는 짝을 맺고서 아기 낳고 집안일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 ‘아직 제대로 깨이지 않은 이 터전에서 글을 쓰자면 사내 따위는 가까이하지 말고서 오직 글을 사랑하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어요. 꾸준히 사랑받는 글을 쓰는 분이 있고, 좀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글만 되풀이하는 분이 있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삶길을 걸을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몸이자 마음으로 태어나서 서로 다른 꿈하고 생각을 키우며, 이 다른 삶에서 피어난 이야기를 저마다 다른 말글로 담아낼까요?



“이제야 그 섬뜩한 웃음이 사라졌네. 농담이야. 설마 진짜로 걸겠어? 흥정하러 온 거 아냐. 선물용 과자까지 싸들고 사과하러 온 거니까. 화내도 좋으니 받아들이시라고.” (176쪽)



  소설을 쓰는 히비키는, 소설쓰기에 앞서 소설읽기를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숱한 소설을 읽으면서 ‘이쪽은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 쓰레기’라고 ‘저쪽은 내 마음을 건드린 아름다운 빛’이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로 마음에 남은 소설을 오래오래 읽다가 어느 날 생각해요. ‘아, 나도 소설을 써 볼까?’ 하고요. 그리고 찬찬히 쓰지요. 누구보다 스스로 ‘내가 썼더라도 내 마음부터 새롭게 건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무엇을 노리고 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널리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쓰지 않아요. 그리고 히비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읽은 느낌’을 꾸미지 않고 모조리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새롭게 쓸 다른 소설을 부푼 마음으로 꿈꾸면서 ‘좋았거나 아쉬웠던 모든 대목’을 받아들여서 첫걸음을 다시 떼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소설이란 글을 쓰는 길이란 이렇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건드리며 아름다울 글을 쓰면 되어요. 어떤 목소리이든 거스르지 않고서 스스로 녹여내어 새롭게 빛으로 밝히려는 숨결로 글을 쓰면 되지요.


  이리하여 글쓰기는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겠노라 생각을 하고 즐겁게 하루하루 걸어간다면 글쓰기이든 마음쓰기이든 쉽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지레 혀를 내두르면, 아마 죽고 다시 태어나도 글을 못 쓰겠지요. 마음을, 오늘을 씁니다. 나를, 너를 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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