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 11
오쿠보 케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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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새롭게 나아갈 길을 꿈꾸네



《아르테 11》

 오쿠보 케이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만화책을 어느덧 마흔 해째 읽습니다. 언제부터 만화책을 처음 폈는지 모르나, 우리 형이 읽던 만화를 곁에서 구경했을 테고, 이때가 너덧 살이나 서너 살 무렵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군대살이를 하던 때를 빼고는 만화읽기를 끊은 적이 없습니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상대를 더 잘 알고 싶은데,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걸 의식해 가면서 남이랑 얘기해 본 적이 없거든요.” (19쪽)


“우선 자기 마음속을 상대한테 털어놓는 거야.” “자, 자기 마음?” “그래, 맞아. 자기 마음은 감추면서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걸 끌어내겠다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야.” (21쪽)



  만화책을 안 읽거나 멀리하는 분은 제가 만화책을 그토록 오래 무척 많이 읽는다는 말을 들으면 으레 놀랍니다. 그런데 저는 만화책뿐 아니라 그림책도 많이 오래도록 읽습니다. 사진책도 그렇지요. 어린이책도 시집도 참 꾸준히 오래 많이 읽어요. 소설책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고, 인문책은 틈틈이 읽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읽을까요? 만화책에 무엇이 있기에 소설책은 아예 안 읽다시피 하면서 만화책은 그토록 읽을까요?


  이 물음을 풀이하기는 쉬워요.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어우러진 이야기꽃이거든요. 글만 있을 수 없고 그림만 있을 수 없어요. 드물게 ‘글 없이 그림으로만 엮는’ 만화책도 있습니다만, 이때에는 ‘말풍선이 없다’뿐이지, 칸칸이 나눈 자리에 깃든 그림마다 마음으로 깊고 넓게 들려주는 말을 느껴요.


  다시 말해서, 글하고 그림을 새롭게 엮어서 온누리 살림자락을 한결 깊고 넓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그리기에 만화책이라 할 만합니다. 만화를 담은 책이 만화책이 아니라, 글꽃하고 그림꽃이 상냥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야기꽃으로 꿈·사랑·살림·오늘이 피어나도록 들려주는 책이기에 만화책인 셈입니다.



“저도 사랑에 빠져 넋을 잃으면, 그렇게 될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불행하다는 건 누가 정한 거죠?” (39쪽)



  이태째 한국말로 꾸준히 나오는 《아르테 11》(오쿠보 케이/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19)를 읽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너덧 해쯤 앞서 나온 만화요, 한국에서는 이제 옮기는 셈인데, 이탈리아란 나라를 둘러싼 중세란 때에 ‘사내 아닌 가시내’로서 그림지기 길을 걷는 아가씨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참말 있던 일’을 그리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참말 있던 일일 수 있으나, 만화님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만화는 무엇이든 그려내어 새로운 길을 닦아 주거든요.


  이를테면 이래요. “웃기지 마. 그때 무슨 가시내가 그림을 그려? 터무니없는 소리!” 하고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니야. 생각해 봐. 역사책에만 안 적힌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아?” 할 만하고, “비록 그때 그런 일이 없었어도, 그때 그런 일이 있으면 우리 삶이며 이 별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우며 사랑스레 달라졌을까 하고 생각하고 싶어.” 할 만하며, “그래, 다 지어낸 이야기이지. 그러나 이렇게 지어내는 이야기로 오늘 우리가 새롭게 나아갈 꿈하고 사랑을 다루고 싶어.” 할 만합니다.


  그래요. 만화란 이렇습니다. 게다가 만화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쉽게 다가갈 수 있기에, 이러한 새길 새꿈 새삶 새사랑 새별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더욱 부드럽고 쉬우며 찬찬히 그려내곤 합니다.



“돈은 안 낼 겁니다. 저는 ‘그 여자 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겁니다. 하지만 돈을 내 버리면, 그건 제가 ‘돈으로 산 이야기’가 되어 버릴 테죠.” (54쪽)


“이제 알겠죠? 사람을 사랑하는 건 멋진 거라는 걸.” “앗. 아뇨, 그게!” “사람을 사랑하는 건 존엄한 거예요.” (72쪽)



  요즈음 한국은 ‘만화’라 이름을 붙일 만한 만화가 거의 죽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웹툰은 만화가 아닙니다. 웹툰은 웹툰입니다. 만화가 만화인 까닭은 ‘화면 구성’이나 ‘빠르고 쉽게 넘기기’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에요. 만화는 말풍선에 적힌 말 한두 토막뿐 아니라, 뒷그림 하나하까지 모조리 훑도록 이끌기에 만화입니다.


  영화하고 만화가 닮았다고 보면 됩니다. 영화에서 뒤쪽에 나오는 것들, 이른바 소품을 아무렇게나 담지 않아요. 모든 소품에든 모두 다른 뜻이 있습니다. 만화에서 칸칸이 담아내는 뒷그림 구석구석까지 모두 다른 뜻하고 이야기가 흘러요.


  주인공 한두 사람만 뜻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도, 슬쩍 지나가는 사람도, 자잘한 뒷모습도, 또 말풍선 안팎에 넣는 속말이나 소리도, 칸나눔이며 흐름결까지도, 깊고 넓게 읽는 뜻하고 이야기가 어우러져요.



‘생각해도 소용없어!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96쪽)



  중세 무렵에 그림님이 빚은 그림을 떠올리기로 해요. 그때 그림님은 얼굴만 잘 그리려 하지 않았어요. 옷차림이며 옷무늬이며 노리개뿐 아니라, 둘레나 뒤쪽 모습까지 모두 꼼꼼히 생각하면서 담았습니다. 뒷그림이라며 아무렇게나 슥슥 발라서 채우지 않아요.


  만화에서도 슥슥 채우는 그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어우러지기에, 이 이야기를 글하고 그림을 알맞게 갈라서 다룹니다. 그림은 그림대로 훌륭히 담는 만화책이면서, 글은 글대로 짜임새있을 뿐 아니라, 시요 노래요 수다요 동화이면서 살림꽃이 되는 글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생각?” “내가 혼자 설 힘이 없으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내 걱정을 하시는 거야. 그럼, 나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으면 되는 거네.” (156쪽)



  만화책 《아르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르테’란 이름인 아가씨는 그림이 무척 좋았다고 해요. 어릴 적에는 집안에서 ‘쟤가 그림을 좋아하나 보구나’ 하고 여겼지만, ‘난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먹고살겠어요’ 하고 외치니까 ‘미쳤구나’ 하고 여겼대요. 아르테 집안뿐 아니라 마을이며 나라에서도 똑같이 바라보았다지요. ‘가시내라는 몸은 사내 집안에 들어가는 돈붙이’쯤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부엌데기’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기던 무렵에 홀로서기를 하는데 그림을 그리며 밥벌이를 하겠다니, 그야말로 미친 사람으로 보였겠지요.


  이때에 아르테는 참으로 외로웠지만, 아르테를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그림을 가르치고 받아들이기로 한 스승(사내)이 한 사람 있습니다. 딱 하나이지요. 이 스승은 사내인 몸인데 왜 가시내를 그림지기로 받아들이기로 했을까요? 오늘은 스승이지만, 이이는 사내란 몸이었어도 ‘자리(계급)’가 낮은 곳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힘겹게 살았어요. 이이는 사내이건 아니건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거나 마주하지 않는 틀’을 달가이 여기지 않아요. 그러니 아르테를 보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서 심부름을 맡기고 그림길을 짚으며 일거리를 찾아주었습니다.



“여류 화가를 만난 건 분명 처음이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화가가 되고 싶다는 선택은 아르테에게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 아니었나요?” (159쪽)



  어느덧 열한걸음에 이르는 《아르테》입니다. 열한걸음에 이르는 이야기는 아르테 아가씨가 그동안 스스로 어떻게 맞서고,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거듭나고, 어떻게 어깨동무하고, 어떻게 웃고 노래하고 떠들면서 빛나는 길을 가는가 하고 들려줍니다.


  앞으로 몇 걸음이 더 나올는지는 모릅니다만, 마무리가 되는 그날에는 ‘아마 참말로 있지 않았다고 할 테지만, 이러한 삶길을 연 다부진 아가씨 한 사람이 어떻게 둘레를 환하게 바꾸어 내면서 우리가 오늘 이곳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밝히는 알찬 꾸러미가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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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 달리다 5
타카하시 신 지음, 이상은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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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만화책


별을 보며 달리고 싶지 않니?



《카나타 달리다 5》

 타카하시 신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19.11.25.



‘교복 밑에 스포츠 웨어라니, 초등학생이냐? 라고 지적하고 싶었지만, 나는 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56쪽)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기에 한결 듬직하거나 어른스럽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을 적에는 그저 ‘나이먹기’를 할 뿐입니다.


  나이를 먹었으니 언니나 오빠나 누나나 형이 될까요? 나이는 먹되 언니답지도 누나답지도 않다면, 나이는 먹으나 오빠스럽거나 형으로서 믿음직하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지 못하다면 무엇일까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요?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저마다 달라.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 보이는 등. 일 때문에 피곤해서 굽어 있는 등. 집에 가기 싫어서 투덜대는 등.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조급한 등.’ (73쪽)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철바보’입니다. 철이 안 들면 철을 모르니 철바보이지요. 다시 말해, 철이 들지 않은 채 나이만 먹을 적에는 ‘철바보’이면서 ‘늙은이’입니다. 푸름이 가운데에서도 나이는 먹어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자리’는 누리더라도 조금도 철이 들려 하지 않는다면 ‘철바보이면서 늙은 사람이란 자리’가 되겠지요.


  어른이란 자리도 매한가지예요. 나이가 서른이나 쉰이나 일흔이라 하더라도 철이 안 든 채 허튼 짓이나 엉뚱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하면 ‘어른 아닌 철바보이자 늙은이’일 뿐입니다.



‘아직 네 바퀴나 남았는데 페이스를 계속 올리란 말이야? 카나타 녀석, 빨라졌어!’ (92∼93쪽)



  어쩌다 보니 달리기를 하더라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나아가서도 끝없이 달리는 이야기를 다룬 《카나타 달리다 5》(타카하시 신/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19)을 읽으면, 달리기를 하는 마음을 더없이 잘 읽을 만합니다. 만화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하루 가운데 얼마나 달리기를 하는가요? 어릴 적에 얼마나 달려 보았을까요? 학교 골마루에서 달리다가 샘님한테 꾸지람을 듣거나 꿀밤을 맞지는 않았나요? 그래도 달리기가 신나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바람을 타고 휙휙 날아가는 결이 재미나서, 달리기를 못 멈추지는 않았나요?


  또는 달린 적이 없을 수 있어요. 얌전하게 어른 말을 듣느라, 고분고분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느라, 골마루에서든 길에서든 뛰거나 달리지 말라고 배우느라, 막상 달리기는 안 한 채 지냈을는지 모릅니다.


  치마를 두르고 달려서는 안 된다든지, 달리면 허둥지둥댄다는 말을 듣고서, 그만 달리기를 안 하지는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운동장이 좁다든지, 자동차가 너무 넘쳐서, 학교를 마치면 학원차를 타느라, 학원하고 학교하고 집 사이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자동차로 태워 주느라, 달릴 겨를이 없지는 않았나요?



“도쿄에도 여기만큼 가파른 언덕이 많아. 하코네가 그리워서 틈틈이 달렸더니, 푹 빠져 버려서, 요즘 내 취미야! 급경사 오르기.” (98쪽)


“도쿄에서는 이게(별이) 보이지 않아. 도쿄로 다시 돌아가고 나서,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았어.” (106쪽)



  두 다리는 땅을 디디려고 있습니다. 두 팔은 하늘을 안으려고 있습니다. 두 다리는 이 땅을 박차면서 빛납니다. 두 팔은 바람을 품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별바라기를 하는 꿈을 키울 수 있을까요? 커다란 서울이 아닌, 숲으로 아름드리가 될 서울을 꿈꿀 수 있을까요?


  시골에 발전소나 송전탑이나 군부대나 골프장이나 공장이나 관광단지가 없는, 그래서 어느 시골에서나 느긋하게 숲바람을 마실 수 있는 꿈을 키울 만할까요? 손수 심고 가꾸고 짓고 누리고 나누는 살림살이를 꿈꿀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하루토와 카나타를 뒤쫓았을 때 말이야, 나호도 아카리도 어느새 엄청 진지하게 뛰더라. 특히 아카리는 가게 일을 돕느라 운동을 그만둔 지 한참 됐는데.” (132쪽)


‘진짜냐? 뭐지? 이 속도감. 벌써 2km 가까이 달렸는데, 내 몸은 이런 스피드로 달릴 수 있는 건가?’ (174∼175쪽)



  만화책 《카나타 달리다》를 그린 분은 어릴 적에 달리기를 한껏 누렸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며 육상부이기도 했다더군요. 스스로 달리기가 좋기도 했고, 달리기를 겨루는 자리에도 즐겁게 나갔다고 합니다. 이 만화책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납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만화를 빚은 타카하시 신 님이 빚은 다른 만화책에서도 ‘달리는 사람’이 곧잘 나올 뿐 아니라, 달리며 땀방울을 송이송이 흩뿌리는 그림을 자주 보았네 싶어요.


  스스로 즐거웠기에 스스로 즐겁게 마음에 새깁니다. 마음에 즐겁게 새긴 이야기를 글로도 그림으로도 만화로도 사진으로도 노래로도 춤으로도, 또 숱한 모습으로도 피워냅니다.



“이제 그만 포기해! 너는 나를 못 이긴다고 했잖아!” “포기하지 않아! 나는, 발이 느리니까, 이것밖에 못 하니까, 계속 달리는 것만은 절대로 지지 않아. 질 리가 없어. 나는, 그날부터 하코네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 계속, 계속 달렸어.” “뭐? 그날? 언제?” “학교에 육상부가 없으니까 학원이 끝나고 공원에서 매일 달렸어. 공원에서는, 거기서 뛰고 있던 사람들의 등을 계속해서 쫓아갔어.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어느새,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려 줬어. 함께 연습해 줬어. 힘내, 힘내라고. 질 리가 없어! 아니, 달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아! 질 수 없어!” (186∼187쪽)



  별을 보면서 달리고 싶지는 않나요? 별바라기 몸짓으로 달리면 어떤 멋일까요? 꽃을 보면서 달리고 싶지는 않은지요? 꽃바라기 손짓 발짓이 되어 달리면 어떤 맛일까요?


  그리고 동무를 상냥히 바라보는 눈길로 달려 봐요. 이웃을 따스히 마주하는 눈빛으로 달려 봐요. 사람뿐 아니라 온누리 뭇목숨을 포근히 얼싸안는 품이 되어 달려 봐요.


  혼자만 앞서 나아가는 달리기가 아닌, 다같이 손을 잡는 달리기를 해봐요. 먼저 가서 첫째가 되려는 달리기가 아닌, 이 땅을 두 다리로 의젓하게 밟으면서 높디높은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두 팔로 넉넉히 껴안는, 그런 달리기를 해봐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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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만화책


문학잡지 편집장이 된 여든 살 할머니

― 내가 사랑하는 2019년 올해책 《80세 마리코》



  2019년 1월 1일부터 2019년 12월 31일 사이에 나온 책을 모두 읽지는 못했습니다. 올해에 나온 책을 모두 장만할 돈이 아직 없기도 했지만, 눈에 안 뜨인 책이 있고,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달이 백 자락 넘게 챙겨서 읽은 사람으로서 제 나름대로 2019년 올해책 한 가지를 꼽으려 합니다.

  지난 2018년 10월 31일에 첫걸음이 나오고, 2019년 1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두걸음부터 열걸음까지 잇달아 나온 만화책 《80세 마리코》(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입니다.


“있어요!! 조… 좋은 거!! 나, 나는요, 지금 이 순간을 몇 십 년이나 기다렸으니까…!!” (2권 42∼43쪽)


  만화책 《80세 마리코》는 아마 많이 안 팔렸을 수 있고, 이런 만화책이 있는 줄 모르는 분도 많을 테며, 이 만화책을 눈여겨본 기자나 비평가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 만화책을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해 사이에 자그마치 아홉걸음이나 한국말로 나온 ‘여든 살 할머니가 갖은 가시밭길을 신나게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이 만화책은, 바로 오늘날이기에 더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든 분이 늘어나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제 여든이란 나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라고 하기보다 ‘아직 한창’이라 할 만한 때에 이르렀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 만화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다가갈 적에 스스로 아름다이 피어나는 꽃인가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난 꼭 소설을 쓸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써서 책을 낼 거예요. 당신이 있는 곳에 전해질 수 있도록. 당신이 그걸 읽어 줄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어질 수 있을 거예요.” (3권 75∼76쪽)


  영화 〈뮬란〉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는 이녁 딸이 못물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앓이를 할 적에 살며시 다가와서 ‘늦꽃’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먼저 피어난 꽃이든 나란히 흐드러진 꽃이든 다 곱다고, 그러나 가장 나중에 피어나는 꽃, ‘늦꽃’이 어느 꽃보다 한결 곱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려주어요.


“작가는 잡지에 공헌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죠. 작가는 좀더 좋은 작품을 쓰고, 잡지는 그 자리를 제공한다, 전 늘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4권 119쪽)


  만화책 《80세 마리코》에 나오는 할머니 마리코 님은 여든 살 나이에 갖가지 일을 겪어요. 첫째, 소설을 써서 번 돈으로 지은 집에서 쫓겨납니다. 따지고 보면 쫓겨난다기보다 스스로 떠난 셈이지만, 아들이며 며느리이며 손자이며 손자 며느리이며, 마리코 할머니하고 생각이며 삶이 너무 다른 길인 줄 뒤늦게 느껴요. 비록 그 집이 마리코 할머니 온삶이며 피땀이 깃든 집이지만, ‘곧 죽으리라 여기는 눈길’을 느끼면서, 그 집을 스스로 내려놓기로 해요.


  그런데 주머니에 몇 푼 없이 집을 떠나요. 빈털터리이다 싶은 몸으로 ‘내가 온삶을 바쳐 지은 집’에서 나온 여든 살 할머니는 피시방 비슷한 곳에 머물면서 길고양이를 건사합니다. 그리고 이즈음 문학잡지에서도 잘립니다.


“잡지에 활력을 준다고 했는데, 애초에 잘린 작가인 당신은 거기에 안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어머. 내 이야기를 이해 못 했나요?” “이해했는데요?” “난 ‘군세이’가 추구하는 작풍과 벗어나버려서 잘렸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자신의 잡지라면 괜찮을 거란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죠?” “‘군세이’가 만들고 싶은 것과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다르니까요.” (5권 65∼66쪽)


  여든 살에 글쓸자리를 잃은 할머니 마음은 어떠할까요? 집이며 아이들도 마음에서 잃어야 했는데, 마지막까지 할머니 삶을 버티던 글쓸자리가 사라진 뒤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때에 갈 만한 길은 매우 좁기 마련입니다. 냇물이나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버릴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려 몸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여든 살 마리코 할머니는 이렇게 괴롭고 힘들 적에 품에 건사한 길고양이를 떠올립니다. 이 길고양이 아이도 무척 괴롭고 힘든 가시밭길을 걸었을 텐데 끝까지 살아서 ‘나를 만나’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하지요.


“내게 어머니는 ‘작가 코자쿠라 쵸코’야. 그 소설의 힘으로 세상의 눈이 다시 코자쿠라 쵸코를 보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이건 쓰레기가 아냐.” (6권 154쪽)


“난 기뻐요. 60살이나 차이가 나는 당신이 같은 곳에서 초쿄 씨를 바라보고 있다니.” (7권 60쪽)


  여든 살에 이른 소설지기 할머니 앞에 놓인 길이 매우 좁다 보니, 오히려 이 할머니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더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기도 합니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았을 길이니 먼저 갈 수 있어요. 아직 누구도 그 길이 잘될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불꽃을 태울 만하다고 여겨요.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좋겠어요. 오래된 마을이거나 골목이니까 싹 허물어서 아파트를 올리면 될까요? 그런데 오랜 마을이나 골목을 밀어내어 아파트를 올리더라도 스무 해나 서른 해가 지나면?


  또 하나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일본이든 유럽이든 중남미이든, 또 쿠바 같은 나라에 마실을 가면서 어느 길을 걷고 어느 곳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나요? 새로 올려세운 높직한 첨단문명이 번쩍거리는 곳에서도 아름답다고 느낄 분이 있겠지만, 오랜 마을이나 골목이나 터전을 돌아보려고 여러 나라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많습니다.


“작가는 언제나 집안에만 있는데, 언제 낡은 옷이 생기겠어. 24시간 기분 좋게 지내고 싶잖아. 언제든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다고.” (7권 146쪽)


“어떤 이야기를 가져와도 여기 사람들은 바뀌지 않아요. 오랜 시간 같은 풍경에 세뇌되어 의욕을 잃어버리고 주도권은 집주인에게 빼앗겼죠.” (8권 43쪽)


  만화책 《80세 마리코》는 모든 틀을 와장창 깨면서 나아가는 삶길을 그립니다. 설마 저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길을 그립니다. 만화이니까 그릴 수 있는 얘기 아니냐고 묻는다면, 바로 만화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렇게 모든 낡은 틀을 깨부수고서, 모든 새로운 길을 여는, 게다가 여든 살 할머니부터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즐거운 꿈길을 그립니다.


‘사랑은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몇 년을 수십 년을 거듭 쌓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야.’ (9권 29∼30쪽)


‘내일 일은 모른다. 답이란 없다. 하지만 지금을 바꾼다면 다른 내일이 올지도 모르지.’ (9권 131쪽)


  미움, 시샘, 등돌림, 검은셈, 꿍꿍이, 괴롭힘, 눈속임, 따돌림 들이 춤추는 판에서 여든 살 할머니가 살아날 길은 참으로 팍팍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온갖 것이 춤추는 판이기에 더 기운을 낼 만하기도 해요. 이런 판을 싹 갈아엎어서 다같이 웃음판이 되고 노래판이 되는 길을 그릴 수 있습니다. ‘여태 이랬는걸?’ 하고서 고개를 돌리는 길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삶이 얼마인지 몰라도, 티끌 하나만큼도 아쉽지 않게 온힘을 사랑으로 쏟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어요.


“옛날 책이 재미있니?” “옛날 아니야. 책을 읽으면 거기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이야. 아빠 책장은 모르는 지금이 가득 있어.” “아빠가 갔던 곳에 너도 가는 거구나.” ‘책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천천히 시간을 뛰어넘는 거야.’ (10권 74∼75쪽)


  여든 살 소설지기 할머니는 이제 열 살쯤 되었나 싶은 아이가 이녁 소설을 재미있다면서 읽는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일흔 해를 가로지른 어린 동무를 만나서일 수도 있지만, ‘책이 품은 힘’이 무엇인가를 여든 살에 이르러 처음으로 헤아렸기 때문이라 할 만해요.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책이 됩니다. 오늘 이곳에서 앞으로 나아갈 새빛을 밝힐 수 있는 책입니다. 아직 겪지 못한, 또는 무척 오래된 일이라 이 몸으로 갈 수 없는, 그런 모든 삶이며 살림이며 사랑을 ‘책 하나를 손에 쥐어’서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어린 동무한테서 배웁니다.


“있습니다. 미래는 저도 신도 선생님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10권 103쪽)


  빈손에 빈몸이니 그저 부딪힙니다. 터무니없는 꿈이라 여겨도 나아갑니다. 넘어지니 일어섭니다. 쓰러지니 한참 누워서 기운을 차려 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무엇을 하면서 여든 살을 꽃나이로 삼고 꽃길로 가꿀 수 있겠는가를 생각합니다.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끝이 아닌 첫길을 생각하고, 혼자 가는 길이 아닌,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빛날 길을 생각합니다. 2019년을 지나 2020년에 더 나올 만화책 《80세 마리코》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새롭게 흐를까요?


  올해책이자 아름책인 이 만화를 여러 이웃이 사랑하면서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요, 아름책입니다. 아름다운 책이어서 아름책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짓도록 넌지시 알려주는 징검다리가 되기에 아름책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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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7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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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기뻐서 너를 만나고 나를 사랑하고



《80세 마리코 7》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어째서 안 쓰는 거야? 지금도 당신은 대단한데. 독자가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있으면 당신은 한 글자도 못 쓸지도 몰라. 베스트셀러 작가 코자쿠라 쵸코의 마지막 작품이 다른 사람이 쓴 거여도 상관없어?” (23쪽)


“난 기뻐요. 60살이나 차이가 나는 당신이 같은 곳에서 초쿄 씨를 바라보고 있다니.” (60쪽)


“손님은 네 고집에 돈을 내는 게 아니야. 자신의 기쁨에 돈을 내는 거지.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손님은 돌아오지 않아.” (123쪽)


“작가는 언제나 집안에만 있는데, 언제 낡은 옷이 생기겠어. 24시간 기분 좋게 지내고 싶잖아. 언제든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다고.” (146쪽)


“날마다 입고서, 좋아하는 패션을 소화하는 자신을 만들어내는 거야! 뭐야, 치에조.” “쵸코 씨는 우리 의견은 무시하는구나. 우리 옷은 아무렇지도 않게 폄하하면서.” (150쪽)



  할아버지가 되었기에 글을 못 쓰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라서 요즘 물결을 모르는 채 글을 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물결을 맞추어야 읽을 만한 글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스러워야 멋진 글이 아닙니다. 요즘멋이든 옛날맛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싱그러이 살아서 흐르는 글이란 언제나 하나라고 느껴요. 바로 우리 스스로 오늘을 지어서 사랑이 넘실넘실하는 글입니다.


  여든 살 할머니하고 스무 살 아가씨가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둘 사이에는 예순 해라는 틈이 있지만, 둘이 바라보는 한 사람이 남긴 글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다른 눈빛이면서 같은 마음으로 알아요. 이리하여 둘은 동무가 되지요. 예순 해를 가로지르는 마음동무요 글동무이자 일동무에다가 수다동무가 됩니다.


  2018년 한가을에 첫걸음이 한국말로 나온 만화책은 2019년 끝가을까지 열걸음이 나옵니다. 모두 몇 걸음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할는지 모르겠는데, 이 가운데 《80세 마리코 7》(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면 ‘좋아하는 길’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여든 살이 되도록 소설을 쓴 할머니 한 분은 ‘늘 집에 오래 머물며 글을 쓰니’까 헐렁하거나 수수한 차림이 익숙합니다. 집에서 글을 쓰는데 굳이 차려입을 까닭이 없다고 여겨요. 다른 할머니는 ‘집에 오래 머물며 글을 써야 하니’까 더 빛나고 고우며 사랑스러운 옷이 익숙합니다. 바깥에 나가기 힘든 만큼 집에서 더더욱 빛나는 옷을 누리려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늘 쓰는 살림이니 가볍고 값싸며 투박한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늘 쓰는 살림이기에 오직 하나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예쁘고 값지며 반짝이는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두 길은 다른 듯하면서 같아요. 오늘 여기에서 마주하는 매무새는 다르지만, 늘 곁에 두면서 아끼려는 마음은 같지요.


  우리는 서로 만납니다. 일 때문에 만나기도 할 텐데, 무엇보다 서로 좋기에 만납니다. 서로 마음에 들기에, 서로 마음이 맞기에, 서로 마음으로 아낄 줄 알기에 만납니다. 마음으로 사귈 수 있는 사이가 아닌 채 그저 일 하나로만 만난다면 어떨까요? 아마 기운이 쪽 빠지겠지요? 일 때문에 만나더라도 마음이 따사로이 흐르는 사이라면, 일은 일대로 알뜰히 하고, 서로서로 기운이 새로 샘솟겠지요?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 몫입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어느 일을 좀 힘들거나 고단하게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하더라도 그 힘들거나 고단한 일을 방긋방긋 웃고 노래하는 몸짓으로 할 수 있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 그만 짜증을 잔뜩 부리거나 억지웃음으로 감쌀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에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고, 저렇게 해도 됩니다. 어떠한 길을 가든 우리 마음이 흐르는 결을 찬찬히 짚으면서 스스로 기쁠 수 있으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기뻐서 너를 만납니다. 기뻐서 나를 사랑합니다. 너를 만나며 기쁘고, 나를 사랑하며 기쁩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내 이야기를 재미나게 되새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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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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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옛날을 오늘로 바꾸는 책



《80세 마리코 10》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2.31.



“부활한 뒤에 깨달았어. 독자는 작가의 가장 큰 힘의 근원이야! 내가 독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독자가 그걸 받아들여 준다면, 난 백만 마력이라고!” (65쪽)


“옛날 책이 재미있니?” “옛날 아니야. 책을 읽으면 거기에 갈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이야. 아빠 책장은 모르는 지금이 가득 있어.” “아빠가 갔던 곳에 너도 가는 거구나.” ‘책은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장소에서 천천히 시간을 뛰어넘는 거야.’ (74∼75쪽)


“있습니다. 미래는 저도 신도 선생님도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103쪽)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처지겠지만 친해지려는 마음도 안 든다. 자신과 비슷한 영감을 보고 질색할 뿐이야. 책을 찾아볼 마음도 안 들어. 새로운 지식 따윈 내게 필요없으니까. 모든 게 다 귀찮다.’ (133쪽)


“여자들은 상대가 부자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하던데, 코다 씨도 신데렐라가 되고 싶진 않나요?” “돈이요? 음, 하지만 전 제가 벌어 부자가 되는 게 더 좋아요.” (163쪽)



  만화책을 같잖게 보는 눈길이 꽤 있습니다. 왜 만화책을 같잖게 볼까요? 만화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지 않거나, 아름만화를 만난 일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만화책이라면 그저 안 좋다고만 여기면서 스스로 생각을 닫고 마음을 잠근 탓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만화를 모르기에 같잖게 보는구나 싶어요.


  적잖은 사람들은 이웃을 옷차림이나 주머니나 생김새로 따지곤 합니다. 허름한 옷차림이면 마치 사람도 허름하다고 여기고, 자동차가 허름하면 그이도 허름하다고 여기며, 자동차가 없이 걸어다니면 어떻게 요즈음에 자동차도 못 굴리는 허름한 살림이냐 하고 여기기도 해요. 그런데 주머니가 돈으로 가득해야 안 허름할까요? 잘생기거나 예쁜 몸매이면 안 허름한 사람일까요? 겉훑기로 따지는 눈길이란 얼마나 아름답거나 알맞을까요?


  만화책 《80세 마리코 10》(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 책은 틀림없이 만화책이지만 소설 같구나 싶고, 소설을 넘어 고스란히 우리 삶인데다가, 인문책 백 자락이나 오백 자락을 한몫에 담았구나 싶은 이야기꾸러미이네 싶어요.


  열걸음째에 이른 《80세 마리코》에서는 여든 살이란 나이가 되도록 미처 제대로 헤아리지 않던, 또는 미처 몰랐던, 또는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리코 할머니는 어느 날 ‘마리코 할머니가 예전에 쓴 소설책을 읽는 아이’를 만나요. 아이는 마리코 할머니 예전 소설이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때로 나아가’고,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키우는 꿈나라로 가는 징검다리’로 느낀다고 수수하게 말합니다.


  여든 살 소설쟁이 할머니는 가슴이 확 트이지요. 문득문득 마음으로 느꼈을 수 있지만 정작 말로 또렷하게 그려 본 적이 없던 ‘책이 맡은 일’을 깨달아요. ‘모든 책에는 아직 모르는 오늘이 가득하다’고, ‘모든 책은 앞으로 새로 나아갈 그야말로 새롭고 눈부신 오늘을 만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된다’고 하는, 책읽기가 우리 삶에서 어떤 몫을 하는가를 가만히 되짚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외려 어리석은 몸이 되기도 하고, 한결 슬기로운 눈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기에 늙은 몸뿐 아니라 늙은 마음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반짝반짝 아름다이 빛나는 손길이 되어 이웃한테 어진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기도 합니다. 자, 생각해 보기로 해요. 어느 길로 갈 적에 즐겁나요? 어느 갈래에 깃들면서 스스로 빛나면 신날까요? 어느 마음이 되고 어떤 몸이 되고 싶은가요?


  여든 살이기에 여든이란 고갯마루에서 새롭게 배우는 길로 가겠습니까? 여든이니 이제 죽을 생각을 해야겠구나 하고 모든 배움길을 스스로 막고서 폭삭 주저앉아 버리겠습니까?


  나이가 어리기에 모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기에 알지 않습니다. 알려고 마음을 먹기에 적은 나이에도 잘 알고, 알려는 마음을 틔우지 않으니 늙은 나이에 도무지 모르곤 합니다.


  솜씨꾼이라서 잘 배우지 않아요.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에 잘 배워요. 재주가 없어서 못 하지 않아요. 눈을 안 뜨고 마음을 안 여니 못 해낼 뿐입니다.


  옛날을 오늘로 여는 책을 폅니다. 오늘 옛날로 나아갔다가 새날로 날아가 봅니다. 옛날을 살던 이웃을 책에서 만납니다. 오늘을 살며 새날을 꿈꾸는 동무를 책뿐 아니라 숲에서, 구름더미에서, 풀밭에서, 나뭇잎 끄트머리에서 만납니다. 싱그러이 웃으며 스스로 꽃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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