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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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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콕콕 콩콩 찾아드는 노랫소리



《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12.15.



  겨울에 매우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함박눈뿐 아니라 싸락눈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겨울에 더없이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잎눈이나 꽃눈을 수두룩하게 만날 뿐 아니라, 아직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을 무렵에도 꽃내음을 맡기 좋아요.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온누리를 하얗게 덮는 하늘눈도 좋고, 푸나무에서 피어나려는 풀눈·나무눈도 좋거든요.



“자신감을 갖고 언제든지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 타카코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더니 결심이 굳어졌어.” 마음을 달래 주는 건, 언제나 누군가의 숨결. (120쪽)



  지난겨울에는 고흥이란 고장에서 하늘눈을 하루도 만나지 못했는데, 밤새 매우 고요했어요. 왜 이렇게 고요한가 싶어 새벽에 마당을 내다보았더니, 어라 흰눈이 마당을 가볍게 덮었군요. 해가 들면 모두 녹을 듯했고, 참말로 아침이 되자마자 흰눈은 녹습니다. 그러나 낮에도 저녁에도 눈발은 이어가더군요. 비록 고흥이란 고장에서는 저녁에 날리는 눈발도 바로바로 녹습니다만, 아이들은 하루 내내 오랜만에 눈을 구경할 수 있어서 손이며 볼이며 몸이 얼도록 눈놀이를 즐깁니다.


  그래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은 고요합니다. 눈은 온누리를 하얗게 덮을 뿐 아니라, 온갖 소리도 차분히 잠재워요. 새롭게 피어날 철을 그리면서 하얀 이불이 된달까요. 깊이깊이 꿈을 꾸라는 뜻으로 소리를 다독인달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인 건 멋진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불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아?” (115쪽)



  2018년에 세걸음이 나오고 2020년에 드디어 네걸음이 나온 《행복한 타카코 씨 4》(신큐 치에/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0)입니다. 썩 널리 읽히거나 사랑받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선보인 다른 만화 《와카코와 술》은 퍽 읽히고 사랑받는구나 싶은데요, 저는 ‘혼술놀이’를 즐기는 이야기보다 ‘소리놀이’를 누리는 이야기가 어쩐지 끌립니다.


  숲에서라면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노래로 맞아들이고, 서울에서라면 서울에 퍼지는 소리를 노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이야기가 감도는 《행복한 타카코 씨》예요. 서울(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살며 갖가지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는 타카코 아가씨인데, ‘다른 사람은 시끌벅적하다’고 여겨도, 타카코 아가씨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살림자리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 생각하는 소리’라고 여깁니다.


  소리에 깃든 마음을 읽는다고 할 만해요. 소리에 담는 생각을 느낀다고 할 만하지요. 소리로 나누려는 사랑을 헤아린다고 할 만하고요.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온다. 그 정체는 밝은 웃음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똑같은 힘이 있어. 어른은 도저히 불가능한, 있는 힘껏 드러내는 공포나 아픔, 악에 받친 응석.’ (68∼69쪽)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소리가 흐르나요. 우리 눈은 어떤 말소리를 알아보는가요. 우리 손으로는 어떤 소리를 짓는가요. 연필을 사각이는 소리인가요. 눈밭을 사그락사그락 밟는 소리인가요. 농약을 피이이 뿌리는 소리인가요, 들풀 곁에 쪼그려앉아 잎줄기를 톡톡 훑는 소리인가요.


  아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넘기는 소리인가요, 악을 쓰면서 치고받는 소리인가요. 콩콩 폴짝폴짝 사뿐사뿐 날아가듯 걷는 소리인가요, 쿵쿵 씩씩 흥흥 골을 부리는 소리인가요.


  통통 톡톡 도마를 두들기는 칼놀림이 노래가 되는 소리인가요, 쾅쾅 퍽퍽 도마를 내리찍는 칼부림이 짜증스럽거나 지겨운 소리인가요. 우리는 늘 소리를 내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결에 맞추어 다 다른 소리가 되어요.



‘들려오는 소리로는 느낄 수 없었다. 직접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서글픔. 분명 그곳에는 나의 상상이 미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터. 지레짐작은 하지 말자고 맹세한 아침 풍경이었다.’ (40쪽)



  한국말로 옮긴 이름은 《행복한 타카코 씨》입니다만, 일본책에는 “타카코 상”이란 수수한 이름입니다. 타카코 아가씨는 소리에서 즐거운 빛도 서운한 빛도 느끼고, 반가운 빛도 아쉬운 빛도 느껴요.

  가만 보면 그렇지요. 우리 귀는 ‘소리라고 하는 빛’을 받아들이는 곳이지 싶어요. 살갗이나 눈이나 코는 ‘소리라고 하는 결’을 새삼스레 느끼는 곳이지 싶고요.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란 무엇일까요? 키득키득하는 소리란 즐거운 웃음인가요, 놀리는 웃음인가요. 킬킬대는 소리란 좋아 죽겠다는 웃음인가요, 비웃으려는 몸짓인가요.


  얼핏 듣는 소리는 같을는지 몰라도, 소릿값만 같을 뿐 마음빛은 달라요. 글로 옮기는 소리마디는 같아 보일는지 몰라도, 글씨만 같을 뿐 마음차림은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리액션이 똑같으면 왠지 안심이 돼. 이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30쪽)


설령 결과적으로 어지럽힌 것이 될지라도, 평소의 사소한 행동이 이렇게나 그 사람의 인상을 좋게 만든다.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쌓여,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10쪽)



  어버이나 어른 자리에 있는 분들이 그리 살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떻게 마주하면 즐거울까요? ‘즐거울까?’라는 대목을 헤아려 봐요. 똑같이 받아치는 싸움판이 아닌, 누가 더 낫거나 뛰어나다는 다툼판이 아닌,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놀이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눈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비오는 소리에 발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어 볼까요? 꽃이 지는 소리에, 또 꽃이 피는 소리에, 잎이 지는 소리에, 또 잎이 돋는 소리에, 하나하나 우리 마음을 바람에 실어서 띄워 볼까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수다잔치가 벌어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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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9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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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아직 사랑을 모르니 때로는 미움불꽃



《순백의 소리 19》

 라가와 마리모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1.25.



  문득 피리를 부는 아이가 “아, 오랜만에 부니 힘드네?” 하고 말합니다. “늘 하지 않고 오랜만에 하면 무엇이든 다 힘들지. 그렇지만 오늘부터 다시 날마다 꾸준히 피리를 불면 하나도 안 힘들 테지.”


  오래도록 쓰지 않으면 먼지가 앉습니다. 세간이나 살림에도, 우리 힘살이며 몸에도 먼지가 앉아요. 새삼스레 꺼내어 쓸 적에는 좀 삐걱댄다든지 어설플 만한데, 이제부터 차근차근 쓰노라면 어느새 먼지는 말끔히 가시면서 잘 움직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도 술술 흐를 만합니다.



“츠가루 샤미센의 소리는 ‘혼’이라꼬 생각합니다. 쪼매씩이라도 들어주실 기회를 늘려서, 후토자오 음색을, 모두의 마음에 심어 주고 싶네예. 그러기 위해, 지금 멤버들과 노력하고 있습니다.” (19∼20쪽)


‘술렁이는 잎사귀. 점점 더 잘 들리게 됐다. 귀가 밝아졌다. 더욱더, 더욱더 밝아졌으면.’ (44∼45쪽)



  더 잘해야 하거나 솜씨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하면 즐겁고, 사랑을 담아서 하는 동안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밥을 짓거나 옷을 깁거나 집을 가꾸거나 밭을 매거나 노래를 하는 자리, 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때,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릴 적, 언제 어디에서나 따사로이 숨결이 흘러요.


  밥자리에서는 밥을 지은 사람 숨결을 받거나 나눕니다. 옷을 입고 벗어서 빨거나 개면서 이 옷을 지은 사람 넋을 헤아리거나 누립니다. 노래를 들을 적에는 어떨까요? 노래를 지은 사람을 비롯해서,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려주거나 악기로 켜는 이들이 마음에 담은 숨결을 함께하겠지요.



“사와무라, 손 좀 보자. 왼손.” “?” ‘뭐야! 굳은살 생긴 부분도 굳기도 나와 거의 다를 게 없어! 무데 무슨 차이지?’ (62쪽)



  고등학교라는 길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 말끔히 그만둔 아이가 있다지요. 이 아이는 샤미센이라는 악기를 온몸뿐 아니라 온마음으로 켜서 이웃하고 맑고 밝은 노랫결을 나누는 꿈이 있다지요. 누구는 말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켜도 되지 않느냐고. 누구는 말합니다. 대학교에 가서 더 배우고서 켜도 되지 않느냐고.


  아이는 중학교 다닌 일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책상맡에 얌전히 앉아서 교과서를 펴기보다는 두 손에 악기를 켜면서 노랫결을 퍼뜨리고 싶어요. 삶이 숨쉬는 이야기를 노랫가락에 실어서 나누고 싶어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루는 《순백의 소리 19》(라가와 마리모/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0)을 읽으면, 지난 열여덟걸음에 걸쳐서 이 아이가 걸어온 길이며, 겪은 하루이며, 만난 사람이며, 이 모두가 새삼스레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노랫결’을 더 깊고 넓게 어루만져 주는구나 하는 대목을 느낄 만합니다.



‘뮤즈가 사라져도 안타까운 마음은 영감의 원천이 되고, 새로운 프레이즈가 아련히 떨어져 내린다. 어떤 때라도 샤미센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나, 귀신인가.’ (95쪽)



  홀로서기를 하면서 씩씩한 아이입니다. 어머니한테서도 형한테서도 떠나며 꽤 이르다 싶은 나이부터 홀로 살림을 꾸리고 하루를 짓는 아이입니다. 아마 지난날에는 온누리 어디에서나 스스로 길을 닦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많았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날에는 다들 초·즁·고등학교를 다니는 길을 가지만, 스스로 꿈이 있다면 구태여 졸업장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아요.


  삶터에 두 발을 디디면 되어요. 삶자리를 제 손으로 하나씩 세우면 되지요. 삶을 북돋우는 일거리를 스스로 닦으면 됩니다.


  빼어난 스승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보고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나아갑니다. 훌륭한 길잡이가 알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엉성하건 어설프건 대수롭지 않아요. 모두 스스로 느끼고 치르고 깨달으면서 나아가면 되어요.



“사와무라는 좋겠어. 츠가루 샤미센 본고장에 태어나서, 소리도 악기도 늘 가까이 있었을 테니.” “나는 운이 좋아 할배가 연주자였을 뿐이지. 아오모리 출신이라고 누구나 소리와 가까운 건 아이다.” (112쪽)



  노래뿐 아니라 모든 살림이 매한가지입니다. 빼어난 밥지기가 차려 주거나 지어 주는 밥이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하나 새로 익혀서 지으면 될 밥입니다. 다시 말해서, 노래를 짓는 일을 누구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아요. 노래종이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에 흐르는 가락을 잡아채어 그때그때 새롭게 노래로 옮기면 되어요.


  글쓰기를 누구한테서 배워야 할까요? 늘 스스로 쓰고 스스로 가다듬어서 스스로 펴면 되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배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찾아보고 살펴서 알아내고는 스스로 삭이고 어루만지면서 녹여내어 우리 숨결로 새로 품어요.



“할배의 ‘춘효’맨치로 성숙했을 때 내보일까 생각합니더.” “그게 몇 년 후지?” “글쎄요, STC를 위한 곡은 아이겠네예.” (166쪽)



  우리가 수저를 쥐고서 우리 입으로 밥을 넣습니다. 우리 몸에서 밥이 흐르고 돌다가 밑으로 나옵니다. 우리가 코를 킁킁하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우리 살갗이 바람결을 느끼면서 탄탄합니다. 우리가 앞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귀를 쫑긋하면서 갖은 소리를 받아들입니다.


  네, 모조리 스스로 합니다.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렇지요. 언제나 스스로 보고 겪고 누껴서 스스로 짓고 가꾸며 세워요.



‘뭐가 성원이야. 자기 연주를과시하려는 것뿐이잖아! 화가 난다.’ (190쪽)



  사랑이 타올라 온누리를 포근하게 감쌉니다. 때로는 미움이 타오르면서 자질구레한 것을 확 태웁니다. 아직 풋풋한 아이는 아직 사랑을 모르니, 때때로 미움을 마음에 끌어당겨서 스스로 타올라요.


  그래요, 미움이라는 불길도 겪어야겠지요. 짜증이라는 불길도 치러야겠지요. 어느 때에는 시샘이라는 불길도, 부러움이라는 불길도, 창피라는 불길도, 몽땅 스스로 껴안아야 할 테지요.


  이러고 나서 어느 날 문득 알아보리라 생각해요. ‘아, 그저 사랑이면 되는 길이었네?’ 하고요.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언제나 가장 아름다이 노랫가락을 펴는 때는 오롯이 사랑일 때입니다.


  아이는 사랑을 노랫가락으로 얹고 싶어서 긴긴 길을 홀로 나섭니다. 아이는 사랑을 제 마음속에서 끌어내어 포근한 햇볕처럼 나누고 싶기에 오늘 이 길에 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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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1
아오야마 고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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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겉얼굴이 아닌 속에 흐르는 마음을



《명탐정 코난 1》

 아오야마 고쇼

 이희정 옮김

 서울문화사

 1996.12.20.



  아닌데 아니지 않은 척하기에 감춘다거나 숨긴다고 합니다. 그러한데 그렇지 않다고 둘러대기에 겉치레나 겉발림이라고 합니다. 감추기에 나쁘지 않고 치레하기에 얄궂지 않아요. 그저 감춤질이나 숨김질이고, 치레질이나 발림질입니다.


  오늘 이 모습이 내키지 않으니 감추고 싶을 만하고, 치레를 하고 싶겠지요. 다른 모습이 되기를 바라기에 꾸미거나 뜯어고치기도 하고, 슬슬 숨기기도 해요.


  그러나 겉모습이 어떠하든 대수로운 대목은 마음이에요. 겉모습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미더라도 속마음을 바꾸지 못해요.



“이런 거 가지고 헬렐레 하는 건 좋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해야지!” “진심이라…….” “어휴 참! 왜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거야?” “응? 아, 아니 그냥.” “우쭐해서 사건만 쫓아다니다 언제 한 번 되게 당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14쪽)



  속마음이 튼튼하다면 겉을 꾸미지 않습니다. 속마음이 포근히 사랑이라면 겉을 치레하지 않아요. 속마음이 오롯이 즐겁게 흐르면서 빛난다면, 구태여 이를 감출 까닭도 숨길 일도 없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속였으나 이내 눈가림으로 흐릅니다. 한두 판은 슬그머니 감추었는데 어느새 눈속임이 깊어지고 잔꾀가 늘어요.


  어떤 길이 우리 참모습일까요? 어떻게 살아갈 적에 스스로 기쁘면서 동무하고도 반가이 어우러질까요? 서로 더 나은 겉모습으로 치달아야 할까요, 아니면 서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손을 잡으면 될까요?



“신이치! 네가 작아졌다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해선 안 된다!” “네? 왜요?” “네가 신이치라는 걸 알면 또 그놈들이 네 목숨을 노릴 게 틀림업서! 게다가 네 주위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해!” (55쪽)



  스무 해 넘게 흐르는 《명탐정 코난 1》(아오야마 고쇼/이희정 옮김, 서울문화사, 1996)는 아주 작은 일이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가볍게 끝날 만한 일이 자꾸 이어가고, 이 만화에 나오는 아이는 ‘신이치’ 아닌 ‘코난’으로 살아가면서 이 실타래를 스스로 풀어놓지 못합니다.


  코난이자 신이치, 신이치이자 코난 곁에서 늘 지켜보는 아이는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참마음(속마음)’을 바라보라고 말이지요.


  생각할 노릇입니다. 몸이 작아지고 말더라도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을 보면 신이치 그대로인걸요. 마음으로 만날 줄 안다면, 작아진 몸이 대단하지 않아요. 같이 길을 찾으면 되거든요.


  수렁에 빠진 동무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수렁에서 건지도록 돕겠지요? 내가 수렁에 빠졌다면 동무는 어떻게 할까요? 소매 걷어붙이고 바로 달려오겠지요? 신이치이자 코난은 아직 동무 곁에서 마음을 열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려 하지 못해요. 이러면서 새로운 눈속임을 풀어내는 길을, 또 혼자서 풀어내는 길을 끝없이 나아가려고 합니다.



“아빠 회사가 일을 안 하면 아빠랑 같이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집사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받아 유괴 사건을 일으킨 거예요 …… 집사 할아버지는 반대했는데 제가 억지를 부렸어요. 그러니까 다 내 잘못이에요.” (112쪽)



  2020년 즈음해서 《명탐정 코난》은 아흔걸음 즈음 나옵니다. 앞으로 백걸음이 넘을 만하겠구나 싶은데요, 이렇게 길고긴 이야기로 끌어야 할는지 좀 아리송합니다. 굳이 더 안 끌어도 되거든요.


  질질 끄는 이야기를 보며 새삼스레 한 가지가 떠오르더군요. 속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으니 자꾸 겉모습에 매달립니다. 신이치란 아이는 따사로운 동무하고 사랑을 나누는 길보다 ‘수수께끼를 푸는 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이치이자 코난은 가장 큰 수수께끼에서는 늘 달아나요. 좋아하는 동무한테 제 마음을 제대로 털어놓는 그 길, 어떻게 그런 말을 털어놓아야 하는가 하는 수수께끼에서는 언제나 꽁지를 빼더군요.



“네가 뒤에서 사건을 해결해서 모리 탐정을 명탐정으로 키워 주는 거야! 그래서 이름이 알려지면 의뢰가 줄줄줄 들어올 거 아니냐!” “그 푼수 아저씨를.” (124쪽)



  바탕이 되는 수수께끼를 풀면 다른 수수께끼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밑돌을 제대로 놓으면 새 걸음으로 얼마든지 저 너머로 나아갑니다. 첫자리를, 첫구슬을, 첫발을, 자꾸 엉뚱하게 떼려고 하면 동무는 더 외롭겠지요.


  곰곰이 보면 코난이 풀어내는 모든 수수께끼는 코난 혼자서 풀 수 없습니다. 늘 둘레에서 돕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는 숨결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명탐정 코난》은 아흔걸음에 이르도록 이런 수수께끼하고 숨결을 누구보다 신이치이자 코난이 스스로 못 느끼고 못 보고 모르는 채 흐른 셈입니다. 그저 여태껏 수수께끼 풀이로만 내달린 셈이로구나 싶어요.



‘미안하다, 란! 지금은 음성 변조기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지만,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어린애 목소리가 사라지만, 그때는 꼭 들려줄게! 나의 진짜 목소리를!’ (182쪽)



  마음소리를 나중에 들려주려고 하지 말아요. 오늘 들려주면 됩니다. 마음은 바로 오늘 밝히면 되어요. 마음소리는 바로 오늘부터 들을 노릇입니다. 마음소리를 나중에 들으려고 하지 말아요. 미루면 미룰수록 자꾸 핑계가 생겨요. 미루다 보면 어느새 참마음을 잊거나 잃기 쉬워요.


  오늘 첫발을 뗍니다. 첫발을 떼니 두 발도 석 발도 뗄 만합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한결 느긋하면서 힘차게 걸어가면서, 어떤 몸으로도 어디에서나 기쁘게 웃음이 피어나는 살림이 되는 줄 알아보는 이야기로, 이제는 《명탐정 코난》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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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모의 플래시백 2
우에시바 리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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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내리사랑 치사랑 다음에는



《오쿠모의 플래시백 2》

 우에시바 리이치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8.31.



  아이는 어머니를 얼마나 좋아할까요. 또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할까요. 어머니는 아이를 얼마나 아낄까요. 또 아버지는 아이를 얼마나 보살필까요. 어느 누구보다 좋아할 만한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일는지 모릅니다. 멀리서 찾을 사랑이 아닌, 보금자리에서 늘 마주하면서 어우러지는 사랑일 수 있어요.



“굉장하다, 미노루! 어느새 엄마를 번쩍 들어올릴 정도로 커버린 거야?” (18쪽)



  오늘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어느 쪽에서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있으면서, 다른 쪽에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봐요. 우리가 이 땅에서 한삶만 누리지 않았다면, 태어나고 죽기를 숱하게 되풀이했다면, 오늘은 내가 어버이 자리에 있다지만, 어제는 내가 아이 자리에 있었겠지요. 서로 자리를 갈마들면서 다시 태어나고 죽기를 이어왔는지 모릅니다. 그냥 하는 내리사랑 치사랑이란 말이 아닌, 오래도록 이어온 숨결을 그리는 내리사랑 치사랑일 수 있어요.



‘내가 어릴 때 그렇게나 엄마를 좋아했었나? 아버지의 기억은 자주 보면서, 왜 자기 기억은 안 떠오르는 거야?’ (29쪽)



  일찍 죽은 아버지가 ‘오늘 내 나이’였을 무렵 어떻게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았는가를 문득문득 ‘오늘 머릿속으로 환하게 보는’ 아이가 있답니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오쿠모의 플래시백 2》(우에시바 리이치/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입니다. 아이로서는 무척 일찍 떠난 아버지여서 변변하게 섞인 말이 없다지만, 불쑥불쑥 번쩍하고 떠오르는 ‘아버지 예전 모습이자 삶이자 몸짓’을 느끼면서 ‘아,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그런 일을 겪으며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이때마다 아이가 물어요. ‘그런데 내가 여기서 뭘 어쩌라고?’ 하고요. 그렇지요. 일찍 떠난 아버지가 살았던 모습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아이는 아직 모릅니다. 어떻게 그런 모습이 생각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둘은 핏줄이 하나인걸요. 같은 피가 흐르는걸요. 비록 이승하고 저승으로 갈렸어도 마음은 늘 하나로 만나는걸요.



‘정말로 관찰 때문에 입는 걸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것저것 입어 보는 게 즐거운 것 같은데.’ (64쪽)


“생일이라고 해서 굳이 돌아올 필요는 없는데.” “그럴 수는 없지. 너랑 같이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얼마 안 있으면 못 할 텐데.” “어?” “지금까지는 둘이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너도 곧 자기 생일은―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 아이랑 보내게 될 테니까. 엄마도 그랬는걸.” “엄마도?” (88∼89쪽)



  돌고도는 삶이기에 《오쿠모의 플래시백》에서 어머니하고 아이가 만나는 자리는 참으로 오래된 삶자리일 만합니다. 어제하고 닮았으나 오늘하고 똑같지는 않은, 어제하고 다르지만 오늘하고 맞물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짓는 하루입니다.


  더 생각해 본다면, 어제 내가 어머니요 네가 아이였든, 오늘 내가 아이요 그대가 어머니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아끼는 마음이라면 넉넉합니다. 돌보는 눈길이라면 따스합니다. 어루만지면서 달래는 손길이라면 반갑습니다.


  스스로 넉넉하기에 스스로 웃을 줄 알아요. 스스로 따스하기에 스스로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스스로 반갑게 맞이하고 노래하니 스스로 활짝 깨어나면서 눈부십니다.



“아까는 흙탕물 막아줘서 고마워. 미노루.” (128쪽)


‘모처럼 아침 차려 준 건데. 내가 너무 심했나. 돌아가면 엄마한테 사과해야지.’ (170쪽)



  어머니는 다르면서도 같은, 닮았으나 다른, 곁님하고 아이를 마주합니다. 아이는 아버지하고 다르면서도 같은, 닮았으나 다른, 이런 두 갈래가 섞인 눈빛으로 어머니를 마주합니다.


  우리 삶은 늘 새롭게 사랑인 줄 느끼도록 흐르지 않을까요. 우리 하루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줄 알아차리도록 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 오늘은 어제를 그리고 모레를 꿈꾸는 기쁜 춤짓이 되도록 찾아오지 않을까요.


  아이가 자랍니다. 어버이도 자랍니다. 아이가 노래합니다. 어버이도 노래합니다. 다같이 한마음으로 삶을 가꿉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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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코어 걸 6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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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바른길이 아닌 사랑길을 걷자



《하이스코어 걸 6》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20.1.31.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교육. 상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 오노 재벌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앞에 두고 초조했는지도 몰라. 위에서 누르기만 해서는 자라날 것도 자랄 수 없겠지.’ (155쪽)



  사람은 어떻게 이 별에서 사람으로 살아갈까요? 이런 말을 누가 묻는다면 대번에 튀어나오는 말이란, “글쎄요, 모르겠네요.” 입니다. 이윽고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 저는 사람이란 몸을 입고서 살아가니까, 여태 살아온 대로 생각해 볼게요.” 하고 덧붙여요. “넘어지기에 일어나고, 일어났으니 또 넘어지고, 다시 넘어졌기에 새로 일어나고, 그러면서 무언가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서 한결 씩씩하면서 튼튼하게 나아가는 길을 맞아들이기에 사람으로 살지 않을까요?” 하고.


  아이를 보면 그렇습니다. 넘어져서 울다가도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다시 일어나서 걷거나 달려요. 이윽고 아이는 다릿심이 붙어 엄청 잘 걷거나 잘 달립니다.


  어른을 보면 어떤가요. 쓴맛을 보고 또 보기에 고꾸라지는 어른이 있습니다만, 쓴맛을 자꾸자꾸 보기에 더더욱 다시 부딪히고 뛰어들면서 끝끝내 해내는 어른이 있어요. 고꾸라진대서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고꾸라지는 모습도 바로 사람다운 길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안 된다고 여겨도 끝까지 해보려고 달려드는 모습도 참말로 사람스러운 길이로구나 싶습니다.



‘코하루가 승리에 집착하고 있는 반면, 저 아이는 게임 자체를 즐기면서 대결에 임하고 있어. 코하루에게는 빠져 있고, 하루오에게는 존재하는 것.’ (24쪽)


“야구치에게 진 것도 분하지만, 그렇게나 연습해 놓고 져버린 저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서.” “그 분한 마음이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야.” (59쪽)



  여기 《하이스코어 걸 6》(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이 있습니다. 여섯걸음을 지나 일곱걸음을 기다리는 만화책인데, 책이름 그대로 ‘하이스코어’를 찍는 ‘걸’은 오락실에 거의 갈 수 없는 몸입니다. 이 아이는 집안일을 물려받아야 하는 짐을 짊어지느라 동무가 하나도 없어요. 쉴틈이 아예 없어요. 갖가지 솜씨를 익혀야 해요.


  이러다가 오락실 죽돌이를 만나지요. 오락실 죽돌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오락실에만 들어서면 눈빛이 바뀐다지요. 그야말로 온마음을 쏟고 온힘을 쏟아서 스스로 이루려는 일(끝판깨기)을 해낸다지요.



‘땀흘려 벌어서 오락기에 들어간 동전들이 네게 새로운 힘을 주었을 거야.’ (50쪽)


‘후우, 평소에는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당연한 듯 게임을 즐겨 왔는데, 게임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122쪽)



  오락실 곁에 간 적이 없는 으리으리한 집 아가씨는 처음 마주하는 오락실 기계에 앉아서 처음 손잡이를 다루고 단추를 누르지만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하던 끝판깨기를 매우 가볍게 해냅니다. 오락실 죽돌이는 이 아가씨 손놀림이며 생각이며 몸짓에 무척 놀라지만 ‘도무지 질 수 없지!’ 하면서 스스로 불타오릅니다.


  둘은 앞으로 어찌될까요? 오락실 죽돌이는 으리으리집 아가씨한테 한 판이라도 이길 날이 있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는 아주 또렷이 알 만합니다. 한 달에 고작 하루쯤, 기껏 한두 시간쯤 가까스로 오락실을 기웃하며 오락기계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리고 딱 한 판만 할 수 있다면, 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몸짓으로 그 놀이를 할까요? 놀이가 꽁꽁 막힌 아이가 아주 조그마한 틈새를 찾아내어 이 틈새로 겨우 숨을 돌리려 한다면, 이 아이가 보여주는 손놀림이란 얼마나 눈부실까요?



‘나는 계속 지켜봤단 말이다. 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면서 번 급료를 절반 이상이나 어머니깨ㅔ 드리는 모습을!’ (46쪽)


‘나는 지켜봤다. 남은 급료를 절약하기 위해 굳이 먼 동네의 저렴한 오락실을 찾아다녔던 것을.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휘몰아쳐도, 50엔으로 2판을 할 수 있는 오락실에 다녔던 사실을!’ (47쪽)



  만화책 《하이스코어 걸》 여섯걸음에 나오는 죽돌이는 어느새 초등학교를 마쳤고, 바지런히 곁일을 합니다. 빈틈이 곁일을 하며 버는 돈은 거의 어머니한테 맡긴다고 해요. 오락실 죽돌이였던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거듭날 만할까요.


  놀이돌이라 할 이 아이는 학교에서 딱히 무엇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배울 길이 없는 대목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할 만해요. 집에서, 마을에서, 아이를 둘러싼 너른 터전에서 문득문득 마음으로 배우는 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배우는 길은 비록 ‘오락실 게임’으로만 보일는지 모르는데, 이 아이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배우든 스스로 착하고 튼튼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눈빛을 맞아들이려고 해요.


  으리으리집 아가씨는 바로 놀이돌이한테서 이러한 마음을 느낍니다. 놀이돌이하고 가까이 지내는 몇 안 되는 동무도 이 놀이돌이한테서 바로 이 대목이 아름답다고 느껴서 도움말을 들려준다든지 어려울 적에 돕는다든지 합니다.



“저 미묘한 표정이 안 보여? 저게 휴식을 취하는 얼굴이냐고. 그렇게 오랫동안 아키라와 함께 있었으면서 도대체 뭘 봐온 건지.” (92쪽)


“아무튼 그렇게 단단한 머리론 아키라의 기분을 헤아릴 수 없을 거야. 진심으로 그 앨 위한다면 이해할 생각부터 해야지.” (94쪽)



  으리으리집 아가씨는 학교는 학교대로 다니되, 집에서 따로 가정교사한테서 배워야 합니다. 가정교사는 매우 모집니다. 놀이돌이가 여러 달 머리를 싸매면서 손수 만든 놀이(컴퓨터게임)가 담긴 놀이기구를 멋대로 내다버리기까지 합니다.


  으리으리집 가정교사는 무엇을 바라보는 삶일까요. 다그치기만 해서 아이가 솜씨꾼이나 재주꾼이 된다고 여길까요. 막상 솜씨꾼이나 재주꾼으로 키울 수는 있되, ‘사람다운 마음이 없는 솜씨꾼’을 뽑아낸다면, 또 ‘즐겁게 놀고 어울리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눈빛이 없는 재주꾼’을 지어낸다면, 이러한 배움길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마음이 없고 생각이 없는 채, 솜씨나 재주만 있는 사람으로 길들인다면, 굳이 사람을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기계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뭣 하러 힘들게 ‘생체기계’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렇게 서슬 퍼런 아키라는 나도 처음 봤어. 또 가출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저는 오노 가 교육 담당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 “그렇지만 제자가 저렇게 마음을 닫아버렸는데 힘들 것 아냐?” “힘이 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키라 아가씨를 교육하는 게 제 역할.” “인간으로서 힘들잖아.” “글쎄요. 어떨까요. 고집 부려서 뭐 어쩌려고?” “아키라의 기분이 한번 돼 봐.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도 당신을 따라왔는데,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던 걸 한마디 말도 없이 버려버리고, 그걸 버린 장본인에게 매일 교육을 받고 있잖아. 도대체 어떤 심정이겠어? 그런데 교육만 받는다고 쟤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할 것 같아? 선생은 자기가 미움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키라가 저렇게 남을 무시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단 말야.” (143∼145쪽)



  바른길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른길은 참으로 반듯반듯하겠지요. 그렇지만 한 가지가 있어요. 바른길은 바르기는 하겠지만 따분하거나 심심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가울 수 있어요. 너무 반듯한 나머지 피 한 방울이 없기까지 합니다.


  어버이하고 아이가 어우러지는 살림집이라면, 어른하고 아이가 배우는 터전이라면, 우리가 바라볼 길이란 바른길은 아니지 싶습니다. 바른길을 안 쳐다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른길 아닌 사랑길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노래하면서 나아간다면, 저절로 반듯반듯하면서도 싱그럽고 상냥하고 넉넉하면서 아름다운데다가 신나는 길을 펼칠 만하지 싶어요.


  바른길만 갈 적에는 사랑하고 멀어지기 쉽지만, 사랑길을 갈 적에는 좀 에돌아가기는 하더라도 바른길을 고이 품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라로 보아서도, 또 이 지구라는 별을 아우르면서도, 우리가 갈 길은 언제나 사랑길일 적에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노래하며 나누기를 바라요. 사랑을 꿈꾸면서 길어올리고, 이 사랑터에서 마음껏 뛰놀고 자란다면 기쁘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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