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책읽기


 술을 많이 마셔야 술을 잘 마시거나 즐겁게 마신다고 할 수 없어요. 술을 적게 마시거나 못 마신다 해서 술맛을 모른다거나 술을 못 즐긴다고 할 수 없어요. 내가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시면서 즐길 수 있으면 되는 술이에요.

 아무리 몸에 좋은 밥일지라도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은 한 사람 몸에 따라 달라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하겠지요. 때로는 여러 그릇을 비울 사람이 있고 반 그릇 비워도 배가 부른 사람이 있을 텐데, 몸에 좋은 밥이니까 두어 그릇이나 서너 그릇씩 비워야 하지 않아요. 내 배가 받아들일 만큼 알맞게 먹어야 좋으면서 즐거운 밥먹기가 돼요.

 그런데 책읽기에서는 왜 이렇게들 더 많이 읽어야 더 좋은 줄 생각하고 말까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만들어 내놓아야 하는 줄 여기고 마나요. 더 많이 읽는다고 해서 더 좋은 책읽기가 될 수 없어요. 더 많이 만든다 해서 더 알찬 책마을 살림이 되지 않아요. 내 삶에 알맞춤하게 책을 마주하면서 읽거나 살피면 넉넉해요. 우리네 터전에 걸맞게 한 권 두 권 차분하게 가다듬어 내놓을 수 있으면 즐거워요.

 훌륭하다는 책을 더 많이 읽는다 해서 더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아요. 훌륭하다는 책을 더 많이 내놓는다 해서 이 나라가 더 훌륭한 터전으로 새로워지지 않아요. (4344.2.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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