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한테서 책읽기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알 때에 비로소 종이로 된 책을 읽을 줄 압니다.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모른다면 그 어떤 훌륭하거나 대단하다는 도서관이나 책방에 발을 들여놓았어도 막상 무슨 책을 고르거나 사야 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한테서 책을 읽을 줄 안다면, 책방이나 도서관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장만하고 싶다는 꿈을 꾸겠지요. 사람이 좋은 만큼 책이 좋고, 책이 좋은 만큼 사람이 좋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듯이 책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일구는 삶이 곧 책이고, 사람들 누구나 손수 가꾸는 나날이 바로 책입니다. 책은 노래이기도 하고 춤이기도 합니다. 책은 웃음이기도 하고 울음이기도 합니다. 책은 몸짓이기도 하고 발짓이기도 합니다. 책은 입맞춤이거나 살섞기가 되기도 합니다. 책은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흙내음이기도 하다가는 발톱에 낀 흙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꾸리는 삶에서 책을 읽기에 책에서 삶을 읽습니다. 사람이 보내는 나날에서 책을 마주하기에 책에서 사람들 하루하루를 마주합니다. 사진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은 책 한 권 또는 글 한 줄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은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 하나와 눈썹 한 올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꾸덕살 박인 손으로, 투박하거나 못생긴 발로 삶을 밝힙니다. 꾸덕살 박인 손을 어루만지며 책을 느끼고, 투박하거나 못생긴 발을 주무르면서 책을 헤아립니다. 어머니 등허리를 주무르고 아버지 발바닥을 주무르는 딸아들은 노상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에 내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롭습니다. 착하게 거듭나고 싶다면 사람을 읽고, 참다이 다시 태어나고프다면 책을 읽으며, 아리땁게 빛나고 싶다면 삶을 읽으면 됩니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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