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1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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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0



나무 한 그루와 새

― 토리빵 1

 토리노 난코 글·그림

 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펴냄, 2011.2.10.



  아침에 일어나서 뒤꼍 감나무를 살핍니다. 박새 한 마리 살포시 내려앉아서 이리저리 가지를 건너뜁니다. 작은 박새는 이쪽저쪽으로 날렵하게 옮겨 앉습니다. 감을 쪼아먹으려나, 애벌레를 찾으려나. 새빨갛게 익은 우리 집 감알은 건드리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다니며 놀다가 뽀로롱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한참 박새를 올려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감알을 하나 딸까 하다가 어제 딴 감알이 남았다고 떠오릅니다. 아이들도 곁님도 우리 집에서 딴 감알을 그 어느 감알보다 맛나게 먹습니다. 오늘은 어제 딴 감알을 먹고, 이튿날 새 감알을 따서 먹자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알은 내가 손수 딸 수 있지만, 감에서 톡 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뭇줄기 둘레로 풀밭이면서 가랑잎밭입니다. 풀을 따로 베거나 뽑지 않아서 땅바닥이 폭신합니다. 그래서 감나무에서 감알이 툭툭 떨어져도 풀바닥에서 감알이 터지지 않아요. 새빨갛게 잘 익은 감도 모양이 반듯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감나무 둘레를 살피면서 그새 떨어진 감알이 있는가 살핍니다. 모과나무 둘레에서도 모과알이 떨어졌는지 살핍니다. 사다리나 장대를 쓸까 싶다가 그만두었는데, 감알은 스스로 익어서 알맞게 떨어집니다. 때때로 바람이 불어 고맙게 손길을 덥니다.





- ‘여름에는 정원석의 작은 홈에 언제나 물을 채워 둔다. 참새들의 물놀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더 큰 접시에 물을 채워 놓아도 사용하지 않는다. 저 정도가 참새에겐 딱 맞는 크기인 것 같다.’ (8쪽)

- ‘우리 동네 주택가 뒤편에는 반짝이는 은색 잎이 나고 빨간 열매가 맺히는 멋진 덤불이 있다. 이곳은 작은 새들의 주택가가 됐다.’ (10쪽)



  낮에 마당에서 이불과 깔개를 텁니다. 대문 위로 드리운 전깃줄에 통통한 새가 앉습니다. 까치도 까마귀도 아닌 저 새는 어떤 새일까 헤아려 봅니다. 직박구리일까, 뻐꾸기일까 갸웃갸웃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통통한 배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좀처럼 모르겠습니다.


  볕이 좋은 날 이불을 말리거나 털면, 이런 새 저런 새가 전깃줄에 앉아서 우리 집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새한테는 이불이 없을 테니 재미난 구경거리일 수 있습니다. 이불 터는 사람이 전깃줄에 앉은 새를 해코지할 일도 없을 테니 서로 모여 앉아 재재거리며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불을 털면서 새를 올려다봅니다. 저 새들은 어떤 몸짓으로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가 하고 살펴봅니다. 새는 그저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눌는지 모르는데, 나는 새들이 우리 집 둘레에서 노래를 베푼다고 여깁니다.




- ‘햄 3장으로 살아났으니 이름은 햄코. 햄코는 추위로 약해져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해지니까 조는 모습은 사람이나 새나 비슷하구나.’ (25쪽)

- ‘따뜻해질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새들이지만, 겨울에는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먹는다. 그 작은 몸의 얼마 안 되는 털로 영하의 기온을 버텼다고 생각하면.’ (29쪽)



  아이들과 대나무밭에서 대나무를 베는데, 큰아이가 깃털을 하나 줍더니 보여줍니다. 어느 새 깃털이었을까요. 깃털 크기로 보건대 아주 작은 새 깃털 같았어요. 아마 대나무밭 사이사이 난 찔레알을 먹으려고 찾아왔을 수 있어요.


  지지난해에는 제비 깃털을 몇 얻었어요. 제비를 잡아서 뽑는다든지, 제비집에서 줍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제비를 풀밭으로 옮기면서 깃털이 셋 빠져서, 이 깃털을 건사했어요.


  지지난해에는 제비를 처음으로 손에 안기도 했습니다. 사람 손을 섣불리 타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막 날갯짓을 익히려던 어린 제비가 그만 구석진 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기에 살살 달래서 손으로 안아서 올려 주었습니다.


  처마 밑에서 바라볼 적에도 어미이든 새끼이든 참으로 작은 줄 알기는 했지만, 손으로 안으니 그야말로 작아요. 어미 제비가 낳은 알이 한 번 깨진 적 있어서 제비알을 본 적도 있는데, 제비알은 메추리알과 대면 반토막보다 훨씬 작아요. 아이들 새끼손톱만 한 크기인 제비알이에요.





- ‘늦봄에서 여름이 끝날 때까지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맞으며 자는 것을 좋아한다. 한밤중 두견새와 물총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새벽녘 산비둘기와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는데, 차가운 풀냄새가 들어올 때쯤,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다.’ (54쪽)

- ‘아침부터 함석지붕 위를 초등학생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은 이 소리는 까마귀의 짓이다. 작게 두드리는 소리는 참새.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녀석, 누군지 확실치 않음.’ (67쪽)



  토리노 난코 님이 빚은 만화책 《토리빵》(AK커뮤니케이션즈,2011) 첫째 권을 한참 읽었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도 함께 읽습니다.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늘 만나는 여러 새를 떠올리면서 읽습니다. 우리 집은 굳이 새한테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만, 새한테 먹이를 챙기려는 마음을 알 만합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얼마나 즐겁고 환한데요.




- ‘어느새 벌레 울음소리가 이렇게 많아졌다. 밤의 그림자는 희미하고 길다.’ (94쪽)

- ‘별의 반짝임을 보는 건, 지구를 둘러싼 바람을 보는 것이기도 하구나.’ (98쪽)

- ‘재작년에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나무를 베어냈다. 오래된 나무라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 같다. 나무가 사라진 하늘은 왠지 처량해 보였다. 그해 겨울에는 폰짱도 쇠딱따구리도 오지 않았다. 참새조차 여기까지 한 번에 날아오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중계점을 거쳐서 온다.’ (125쪽)



  우리 집에 풀밭을 이루어 풀벌레와 애벌레를 키우는 일도 어느 모로 본다면 새를 부르는 일입니다. 우리 집 나무 열매를 많이 남기는 일도 어느 모로 살피면 새를 맞이하려는 일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어 새가 깃듭니다. 새는 아주 조금만 먹어도 배가 찹니다. 새는 나무에 둥지를 틀거나 이냥저냥 풀숲에 살며시 내려앉아 새근새근 잡니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단단히 붙잡고 잠들어요.


  사람과 새는 오랜 나날 가까운 벗으로 지냈습니다. 새와 사람은 오래도록 살가운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이러다가 고작 쉰 해도 안 된 요즈막에 사람들 스스로 새를 그악스럽게 괴롭힙니다. 새가 살 만한 오래된 나무를 뭉텅뭉텅 베지요. 도시에서는 나무가 좀 자랐다 싶을 무렵 동네 재개발을 한다면서 와장창 무너뜨리지요.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고향이 없다고 할 텐데, 도시에서는 새 또한 고향이 없다고 할 터입니다. 새가 깃들 만한 데가 없으니까요.


  고향을 잊거나 잃은 사람은 즐거움이나 사랑과 차츰 멀어지고, 즐거움이나 사랑과 차츰 멀어지는 사람은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천천히 옅어집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메마르면서 쓸쓸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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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4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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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길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밥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즐겁습니다. 밥 한 그릇을 베풀 수 있으니까요. 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함께 먹고, 배고픈 이웃이 있으면 밥 한 그릇 덜어서 함께 나눕니다.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매우 즐겁습니다. 살붙이나 이웃이 지은 사랑을 고맙게 받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내 살붙이나 이웃은 사랑을 베풀 사람이 있어 즐겁고, 나는 내 살붙이나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 불립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놀고, 도란도란 오순도순 온갖 놀이를 아침부터 누리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노는 아이들은 곧 배가 고플 테며,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올 즈음 천천히 밥을 지으면, 아이들은 밥 익는 냄새를 맡고는 더 신나게 놉니다.


  밥은 입으로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밥내음을 코로 맡아도 즐겁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밥을 씹어서 먹는 한편, 코와 살갗으로 밥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는구나 싶어요. 그러니, 햇볕을 쬐면서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개운하며 기쁩니다.





- ‘나는 지금, 무척 동요하고 있다. 중증이 아니라는 설명을 그토록 듣고 왔는데도, 나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내 연구에 언젠가 끝이 온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게 아닐까?’ (13쪽)

- ‘그렇다. 수많은 인생계획을 생각했지만, 우선순위는 뻔하지 않은가. 처음에 떠올린 것은 아내의 얼굴이 아니었나. 오늘 이날도 마치 그날처럼.ㅣ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25쪽)



  아직 내 몸에 힘이 크게 솟지 않으면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너덧 살 아이가 제 신을 스스로 복복 비벼서 빨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대여섯 살 아이가 제 옷가지를 스스로 복복 비벼서 빨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무렵에는 어른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합니다.


  아이들이 차츰차츰 자라면서 몸과 손에 힘이 붙으면, 이제 스스로 신을 빨고 옷가지를 복복 비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이를 닦고, 스스로 손발을 씻습니다. 스스로 걸레를 빨아서, 스스로 방바닥을 훔칩니다.


  어른이 스스로 즐겁게 방바닥을 훔치면, 아이들은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스스로 걸레를 빨아 보고, 물을 짜 보며, ‘아이인 탓에 물을 덜 짠 물걸레’로 방바닥을 물바다로 만듭니다.


  내 어릴 적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었을 적에, 어머니는 “이리 줘 봐.” 하면서 걸레를 비틀어 물을 죽죽 짰습니다. 물기를 쪽쪽 빼낸 걸레를 건네셨어요.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다음에는 물기를 짜려고 악착같이 용을 씁니다. 어려서 물기짜기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으면, 젖은걸레로 한 차례 닦은 뒤 마른걸레로 다시 닦습니다.





- ‘그도 나쁜 뜻은 없었을 테고, 그의 개성으로서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경영자로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 그는, 실패할 만했기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나는 쿠루스 군의 실패를, 음미하고 있나?’ (52쪽)

- “아무리 우여도 아빠는 몰라. 그러니까 언니야가 엄마 해 주께. 아빤 공부할 땐 아무 쓰모가 없쪄. 엄마가 그랬거든? 아빤 언제나 ‘공부’란 놀이만 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건 다아 내 차지라고. 다아 나한테만 떠맡겨서 힘드여 주께쩌.” (71∼72쪽)



  나는 즐겁게 걷습니다. 먼 길이건 안 먼 길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두 시간이나 서너 시간이 걸리는 길도 그냥 걷습니다. 그냥 걸어 봅니다. 한참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좀 멀다 싶은 길을 걸으려 했네 하고 생각합니다. 어디 마땅한 곳을 찾아 앉습니다. 다리를 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동네를 살핍니다. 다리를 툭툭 두들긴 뒤 일어나 다시 걷습니다. 걷고 걸으며 또 걸어서 드디어 내가 가려는 곳에 닿습니다.


  여덟 살 적 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여덟 살 적부터 그예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혼자 학교까지 걸었습니다. 학교에서 다시 집까지 걸었습니다. 이무렵,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서 다닌 동무는 없습니다. 모두 버스를 타고 그만 한 길을 다녔어요. 중학교 적에도 고등학교 적에도 똑같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걸어서 학교를 다닌 동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거나 하늘바라기를 할 만한 동무는 좀처럼 못 만납니다.


  걸음동무는 사귀지 못했지만, 혼자 오랫동안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오직 내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오로지 내 생각에 젖어듭니다. 이제껏 내가 걸은 길을 헤아리고, 앞으로 내가 걸을 길을 돌아봅니다. 어제까지 내가 걸은 길을 되짚고, 오늘부터 내가 걸을 길을 톺아봅니다.





- “이츠코는 어떻게 이런 걸 잘하게 됐지?” “아빤 좀 가만 있어요.” “미안하다. 계속하거라.” (79쪽)

- ‘나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늘 눈여겨보던 이츠코는, 내가 모르는 사이 놀랄 만큼 자라 있었다. 이 순간의 감동을 기록하고 싶다. 가족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82∼83쪽)

- “당신 그럼, 밤엔 이츠코한테만 맡겼다고요?” “응?” “그런 갓난쟁이를? 애가 밤새 콜콜 잠만 자는 줄 알아요? 난쟁이 요정이 밤마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줬을 리도 없는데, 밤엔 애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88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3) 서른넷째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언제나 삶을 배웁니다. 언제나 삶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생각을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인 끝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다만, 유택 교수는 혼자 생각해서 혼자 배울 뿐, 좀처럼 이 슬기와 즐거움을 둘레에 나누어 주지 못해요.


  이러던 어느 날, 유택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줄 깨닫습니다. 그러나, ‘죽음 뒤 인생설계’는 생각하면서도 정작 ‘유택 교수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이야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고 갈고닦아서 ‘옳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이 기쁨을 이야기꽃으로 펼치지 못해요.





-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새로 사귀는 친구들 중에는, 손 한 번 잡을 일 없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구나.” (122쪽)

- “너는 참 이유도 많구나. 벚꽃을 보면, 나는 네 어머니가 생각난다. 오오, 벚꽃처럼 덧없고 아름다운 나의 추억이여. 오오, 신이여!” (168쪽)

- “유택이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아요. 나는 저 아이가 웃는 얼굴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가? 그렇다면 좋겠지만.” (185쪽)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이 대목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내 아들’이면서도 이런 모습이 참으로 못마땅하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아들인 유택 교수는 이런 아버지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유택 교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배울 것이 많다는 얘기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유택 교수는 새롭게 배울 생각을 하면서 참말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데, 새롭게 배우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이웃하고 나누는 일에서는 퍽 어리숙합니다. 어릴 적 유택 교수네 어머니가 어린 유택한테 들려주던 이야기도 ‘유택 교수가 손녀를 본 나이’가 되어서야 어렴풋하게 헤아릴 뿐입니다.



- ‘어머니와 벚꽃을 보던 시절,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벚꽃을 볼 수 있을지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봄이 매년 오는 것이 당연하던 그 시절, 벚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187쪽)



  예순 줄 나이를 한참 넘겨서야 벚꽃을 벚꽃 그대로 바라본 유택 교수입니다. 유택 교수는 아기 기저귀를 갈 줄조차 몰랐습니다. 유택 교수는 밥짓기도 못하고, 집살림은 영 할 줄 모릅니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유택 교수는 스스로 쳐다보고 생각한 것만 스스로 깨닫습니다. 스스로 쳐다보지 않은 것은 아예 유택 교수 마음에 없고, 마음에 없는 것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앞으로 유택 교수는 이녁 삶에서 무엇을 더 바라보고 새롭게 배우면 즐거울까요? 집 바깥에서 다른 삶을 바라보고 배워야 할까요? 아니면, 유택 교수 스스로 ‘맨 먼저 떠올리는 곁님 얼굴’처럼, 곁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가 하는 대목을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내 마음에서 바라볼 것’을 바라보면서 배울까요?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우리는 늘 배웁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배웁니다. 마음을 열면 다 보이고, 마음을 열 때에 다 깨닫습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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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풍경 - 이희재의 스케치여행
이희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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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8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

― 낮은 풍경, 이희재의 스케치여행

 이희재 그림·글

 애니북스 펴냄, 2013.7.26.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낮은 삶’이나 ‘높은 삶’도 따로 없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은 높지 않습니다. 의사나 판사 같은 일을 한대서 높지 않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람이 높아지지 않으며, 외국에서 배웠거나 대학원을 마치기에 사람이 높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거머쥔대서 높지 않으며, 어버이가 부자라서 높지 않습니다. 땅을 많이 거느리는 사람이 높지 않고, 이름을 드날리는 사람이 높지 않습니다.


  사람을 높이로 따지는 사람치고 바보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높이뿐 아니라 크기나 부피 따위로 재는 사람치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 7월 5일, 낮부터 비가 내리더니 저녁 집회시간이 다가오자 비가 멎었다. 날씨 따라 어둡던 마음도 개운해졌다. 많은 시민이 다시 모였다. 촛불은 밤을 밝혔고 물결처럼 거리로 휘돌며 빗나간 권력에 맞대응했다 ..  (촛불)



  그런데,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한 가지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녁한테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가 아닌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삶을 가꾸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높거나 낮다고 가를 수 없으나, 따스한가 차가운가를 놓고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돈이나 이름값 따위로 가를 수 없지만, 사랑스러운가 안 사랑스러운가를 살피며 나눌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피가 흐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 없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사랑입니다. 그저 아직 사랑에 눈을 뜨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랑이 없이 차갑구나 싶은 사람이라면, ‘아직 사랑에 눈뜨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밟거나 부수려는 사람이라면,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어떤 대상이고 처음 붓을 들면 낯설다. 사물에 익숙해지는 데는 대상이 도구와 교감하고 몸에 들어앉을 수 있는 시간의 뜸을 들여야 한다. 집과 집은 다닥다닥 옆구리를 맞대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리어카 하나 비켜설 수 없는 조밀한 곳, 집마다 삶의 내력과 세월에 배어 있을 것이다 ..  (중계동 산동네 백사마을을 가다)



  만화를 그리는 이희재 님이 《낮은 풍경, 이희재의 스케치여행》(애니북스,2013)이라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우리가 마주할 풍경 가운데 ‘낮은 풍경’이나 ‘높은 풍경’이란 따로 없으나, 이희재 님은 스스로 ‘낮은 풍경’을 찾아서 그림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낮은 곳은 어디일까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가 낮은 곳일까요? 도시에 있는 달동네가 낮은 곳일까요? 한국 정부에서 버린 윤이상 같은 사람이 낮은 곳에 있었을까요? 미얀마라는 나라가 낮은 곳에 있을까요?


  이희재 님은 굳이 “낮은 풍경”이라고 책이름을 붙입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 정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예술이 ‘어떤 사람과 마을’을 낮게 깎아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희재 님 스스로 ‘낮은 사람’이 되어 ‘낮은 이웃’을 만나려고 ‘낮은 나들이’를 즐깁니다.





.. 통영의 영산 미륵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둥둥 떠 있는 섬들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윤이상의 눈에 밟히던 고양이다. 윤이상은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랐음에도 끝내 조국은 문을 닫아버렸다 ..  (윤이상을 찾아서)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따스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은 혼자 잘났기에 굳이 어깨동무를 할 까닭을 못 느낍니다. 따스한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어깨동무를 해요.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니 어깨동무라는 낱말조차 모르리라 느낍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희재 님이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은 ‘낮은 풍경’이란, 바로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낮은 풍경’이란, 바로 따스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돌보는 모습이지 싶어요.





.. 나는 둑길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도 잊고 장터의 흥정에 홀려 사람들을 그렸다 ..  (황금의 땅 부처의 나라 미얀마)



  낮은 곳에는 입시지옥에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주식투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스포츠나 연예인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법원도 국회의사당도 청와대도 대학교도 없습니다. 아니, 이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밭이 있고 마을이 있으며 골목이나 고샅이 있습니다. 낮은 곳에는 나무와 풀과 꽃이 함께 자랍니다. 낮은 곳에서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낮은 곳이란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보금자리입니다.


  더 들여다본다면, 낮은 곳에는 돈도 이름도 힘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서는 돈도 이름도 힘도 쓸 일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책도 문화도 예술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작가도 예술가도 공무원도 교사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오직 사랑이 있고, 오로지 꿈이 크며, 그예 삶이 피어납니다. 낮은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서로서로 아재와 아지매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다 같이 언니요 동생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모두 동무이면서 이웃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저마다 다르면서 몽땅 한동아리가 되는 사람입니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습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습니다. 사랑에는 높낮이가 없습니다. 사랑은 너비나 깊이로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따스하거나 포근합니다. 사랑은 늘 즐겁거나 아름답습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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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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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7



일을 하는 까닭

― 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글·그림

 박보영 옮김

 조은세상 펴냄, 2009.5.20.



  호시 요리코 님이 빚은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둘째 권을 읽으면, ‘고양이(네코무라) 씨’가 가정부 일을 하는 까닭이 살며시 나옵니다. 다른 권에서도 이렁저렁 나오거나 어렴풋이 나오기도 하는데, ‘고양이 씨’는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며 청소도 합니다. 혼자 저잣거리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 오기도 할 뿐 아니라, 집안 사람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해요.


  고양이이면서 온갖 일을 다 하는 고양이 씨는 ‘고양이 주제’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고양이조차’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 씨는 늘 마음을 열고 이웃을 만나려 하기에, 이웃들도 슬그머니 마음을 열어 고양이 씨한테 다가옵니다.



- “그래, 괜히 공부만 많이 해 봤자 멍청이 아들놈처럼 학자나부랭이나 되기밖에 더 하겠니?”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꺼!” (29쪽)

- “만날 고양이라고 바보 취급만 하고!! 나도 이젠 ‘통장 있는 고양이’란 말야!!” (45쪽)





  고양이 씨는 누군가를 그립니다. 고양이 씨는 만나고픈 님이 있습니다. 고양이 씨가 만나고픈 님도 고양이 씨를 만나고 싶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살아가지만, 고양이 씨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기 일쑤입니다. 그리움도 사랑도 꿈도 없는 채 그저 하루를 보냅니다. 돈은 있지만 사랑이 없습니다. 이름값은 있지만 꿈은 없습니다. 힘은 있지만 그리움이 없습니다.


  가정부를 집에 두어 집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할까요?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돈만 버는 이들은 날마다 어떤 보람을 누릴까요?


  아이들한테 꼭 ‘어버이 손맛’을 물려주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아이와 사랑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하며 그리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루가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는 학교나 학원에 보내고,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몫은 가정부나 가정교사한테 맡기면, 어버이는 왜 있을까요? 어버이는 무엇을 하는 넋일까요?




- “저에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돼요. 다카시 도련님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51쪽)

- “오, 역시 오니코. 무기 중학교 히사시와 정면으로 말을 섞다니, 난 살짝 쫄았었는데.” “흥!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해 줬을 뿐이야.” (58쪽)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겨를조차 매우 짧습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기만 할 뿐 아니라, 집에서조차 방을 따로 쓰면서 저마다 따로 놉니다. 함께 하는 일이나 놀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집에 있으나 마치 한집에 없는 듯한 오늘날 사회 흐름입니다.


  오늘날로 접어들어서, 아이들이 어버이와 이야기를 안 나누는 까닭은 너무 마땅합니다. 하루 가운데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보내는 겨를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 ‘보고 대회’를 열어야 할까요? 왜 오늘날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 ‘하루를 함께 누리는 삶’을 가꾸지 않을까요?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하고,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돌보지 않으며, 왜 어버이 스스로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지 않을까요?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도 똑같습니다. 이들은 왜 다른 집 아이들만 맡아서 무엇인가 가르쳐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치더라도, 왜 교과서만 써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교과서로 가르치더라도, 왜 교실에 갇힌 채 가르쳐야 할까요?





- “하지만 참 신기해요. 노인 분들과 어린 아이들은 사이가 좋지만, 중간 정도의 나이 대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이잖아요. 그런데 오니코 아가씨는 예민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랑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에요.” (70쪽)

- “만나지 않고 메모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라면 만나서 얼굴을 보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뭐,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 (147쪽)



  참말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바깥바람을 쐬기 매우 어렵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힙니다. 스스로 교실에 갇힙니다. 학교에서도 딱히 갈 만한 데가 교실 아니고는 없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회사에 갇힙니다.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일터에 갇힙니다. 공무원도 이녁이 몸담는 공공기관 건물 바깥으로 벗어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바깥바람도 없고, 햇볕도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깥에서 놀거나 얼크러지지 못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먹구름이 깔린들 바깥 흐름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봄에 꽃내음이 흩날린들, 가을에 잎내음이 고루 퍼진들, 아이나 어른 모두 바깥에서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학교 바깥에서는 배울 수 없을까요. 집에서는 가르칠 수 없을까요. 아이와 어른한테는 무엇이 삶일까요. 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며, 왜 돈을 벌어 도시에서 아파트를 장만해야 할까요.




- “그야, 고양이가 가정부를 할 정도라면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당연한 거잖아. 그럼 잘 지내.” (173쪽)



  일을 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직업교육을 받기 앞서, 삶을 가꾸는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한테 직업교육을 시키기 앞서, 삶을 스스로 누리는 즐거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장래희망이나 취미나 소질을 헤아리기 앞서, 삶을 이루는 숨결이 무엇인지 찾을 노릇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끄고 삶을 읽을 노릇입니다. 책과 신문을 덮고 삶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벌고 삶을 배울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쓰고 삶을 나눌 노릇입니다.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를 살살 쓰다듬어 봅니다. 하루에 한 칸씩 그린 만화로 제법 도톰하게 한 권 묶습니다. 날마다 얼마나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랑을 들려주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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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사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7.6.25.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도 배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나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더 배우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야 배우고,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배울까요.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고, 학교에 다녀도 안 배울까요.


  학교가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스스로 배운다면, 학교라는 곳은 왜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가 있을 때에만 배우고 학교가 없을 때에는 안 배운다면, 우리 삶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불가사의하군. 저 둘은 그날의 운세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밤이 되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왜 검증도 하지 않고 믿을 생각부터 할까?’ (10쪽)

-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나에게 뭐가 좋은 일이고 뭐가 나쁜 일일까?’ (16쪽)

- “야단을 치지 않으면 리포트를 못 쓰나? 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가? 그러면 뭣 때문에 대학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군. 대학이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오는 거라네.” (84쪽)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고즈넉하면서 싱그럽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숲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몸을 따사롭게 감쌉니다.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릅니다. 바람은 낮밤이 다릅니다. 뭍에서 부는 바람과 섬에서 부는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모두 다릅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람을 잘 읽어서 알아야 합니다.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바람내음을 잘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은 물빛을 읽습니다. 들일을 하는 사람은 들빛을 읽습니다. 물일을 하기에 물빛을 읽을 뿐 아니라, 흙내음을 함께 읽습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은 물만 맑대서 맑지 않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나무가 우거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골짝물이나 빗물 따라 고운 흙이 냇바닥이나 갯바닥으로 찬찬히 흐를 때에 비로소 냇물과 바다가 싱그럽습니다.


  한편,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흙내음이나 풀내음뿐 아니라 빗소리와 바람결을 모두 읽습니다. 들과 숲은 풀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쬐면서 들과 숲이 푸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모든 넋과 숨결을 읽을 때에 비로소 들도 숲도 물도 바다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 불확실한 것에 왜 인간은 몇 천 년이나 좌우되고 있을까요?” “누구나 불안하니까 남의 입을 통해 보증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요?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요.” “현실감이 없어도 말입니까?” (24쪽)

- ‘당신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쁘다. 그래.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수 천 년 전부터 내가 지금 느낀 기쁨, 그런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득히 먼 별들을 서로 이어 신화를 만들어 내고, 태양이나 달, 나무나 바람, 삼라만상에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도 모른다.’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그린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7)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배움길을 멈추지 않는 유택 교수는 어릴 적부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고, 젊은이였을 적에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려는 넋이며, 나이가 들어 손녀를 보는 때에도 한결같이 새롭게 배우려는 숨결입니다.


  그런데,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삶이나 살림이나 숲이나 들은 거의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지 싶어요. 아마, 유택 교수네 아버지도 몰랐으니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을 테며, 마음이나 눈길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못 가르치거나 안 가르쳤겠지요.


  누군가 유택 교수한테 텃밭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유택 교수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쓴맛을 보거나 잘 안 될 테지만, 어느새 흐름을 깨우치고는 즐겁게 밭일과 논일을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 “어린이도 빨간 불일 땐 기다려야지. 어른들도 빨간 불일 때 건너는 사람이 있단다. 아무리 행동이 어른스러워도 겉모양이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법이야.” (39쪽)

- “나는 어른이란 논리적인 두뇌를 갖추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아버지가 전하려 했던 뜻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지금도 감정적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단다.” (62쪽)



  배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배웁니다. 공부를 해야 하거나 학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밝히고 싶기 때문에 배웁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배웁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에 배웁니다. 1등이나 2등이 되려는 뜻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따사롭게 보듬고 싶어서 배웁니다.


  배움이란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가르침도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말 한 마디를 배울 적에는 티가 없습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말 한 마디를 가르치면서 티가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오직 사랑과 믿음이 감돕니다.





- “유택이는, 유택이는 어중간한 걸 이해 못해.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 ‘뒷면’에 있는 의미를 모르는 거야. 사람의 더러운 부분을 몰라. 열등감을 이해 못해.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걸 몰라.” (136∼137쪽)

- “글쎄, 너는 영리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지만, 눈앞에 있는 문제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맞서니까, 학교 공부를 넘어서, 언제나 평생,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계속하겠지.” (142∼143쪽)



  삶을 배우는 사람은 착합니다. 늘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늘 사랑을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이에요. 그러니, 삶을 배우는 사람은 늘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하루를 지을 테니, 이녁은 늘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답겠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둘레 누구나 착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착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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