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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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7



일을 하는 까닭

― 오늘의 네코무라 씨 (둘)

 호시 요리코 글·그림

 박보영 옮김

 조은세상 펴냄, 2009.5.20.



  호시 요리코 님이 빚은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조은세상,2009) 둘째 권을 읽으면, ‘고양이(네코무라) 씨’가 가정부 일을 하는 까닭이 살며시 나옵니다. 다른 권에서도 이렁저렁 나오거나 어렴풋이 나오기도 하는데, ‘고양이 씨’는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며 청소도 합니다. 혼자 저잣거리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 오기도 할 뿐 아니라, 집안 사람들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해요.


  고양이이면서 온갖 일을 다 하는 고양이 씨는 ‘고양이 주제’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고양이조차’라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 씨는 늘 마음을 열고 이웃을 만나려 하기에, 이웃들도 슬그머니 마음을 열어 고양이 씨한테 다가옵니다.



- “그래, 괜히 공부만 많이 해 봤자 멍청이 아들놈처럼 학자나부랭이나 되기밖에 더 하겠니?”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꺼!” (29쪽)

- “만날 고양이라고 바보 취급만 하고!! 나도 이젠 ‘통장 있는 고양이’란 말야!!” (45쪽)





  고양이 씨는 누군가를 그립니다. 고양이 씨는 만나고픈 님이 있습니다. 고양이 씨가 만나고픈 님도 고양이 씨를 만나고 싶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양이 씨는 마음속에 그리움과 사랑과 꿈을 품으면서 살아가지만, 고양이 씨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기 일쑤입니다. 그리움도 사랑도 꿈도 없는 채 그저 하루를 보냅니다. 돈은 있지만 사랑이 없습니다. 이름값은 있지만 꿈은 없습니다. 힘은 있지만 그리움이 없습니다.


  가정부를 집에 두어 집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할까요?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돈만 버는 이들은 날마다 어떤 보람을 누릴까요?


  아이들한테 꼭 ‘어버이 손맛’을 물려주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버이로서 아이와 사랑을 나누고 꿈을 이야기하며 그리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루가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는 학교나 학원에 보내고,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몫은 가정부나 가정교사한테 맡기면, 어버이는 왜 있을까요? 어버이는 무엇을 하는 넋일까요?




- “저에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해야 돼요. 다카시 도련님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51쪽)

- “오, 역시 오니코. 무기 중학교 히사시와 정면으로 말을 섞다니, 난 살짝 쫄았었는데.” “흥!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해 줬을 뿐이야.” (58쪽)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겨를조차 매우 짧습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어버이는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내기만 할 뿐 아니라, 집에서조차 방을 따로 쓰면서 저마다 따로 놉니다. 함께 하는 일이나 놀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집에 있으나 마치 한집에 없는 듯한 오늘날 사회 흐름입니다.


  오늘날로 접어들어서, 아이들이 어버이와 이야기를 안 나누는 까닭은 너무 마땅합니다. 하루 가운데 함께 눈을 마주하면서 보내는 겨를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이와 어버이가 서로 ‘보고 대회’를 열어야 할까요? 왜 오늘날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 ‘하루를 함께 누리는 삶’을 가꾸지 않을까요?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하고, 왜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돌보지 않으며, 왜 어버이 스스로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지 않을까요?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도 똑같습니다. 이들은 왜 다른 집 아이들만 맡아서 무엇인가 가르쳐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치더라도, 왜 교과서만 써야 할까요? 다른 집 아이들을 맡아서 교과서로 가르치더라도, 왜 교실에 갇힌 채 가르쳐야 할까요?





- “하지만 참 신기해요. 노인 분들과 어린 아이들은 사이가 좋지만, 중간 정도의 나이 대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이잖아요. 그런데 오니코 아가씨는 예민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할머니랑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에요.” (70쪽)

- “만나지 않고 메모만으로 마음을 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라면 만나서 얼굴을 보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뭐,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 (147쪽)



  참말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바깥바람을 쐬기 매우 어렵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힙니다. 스스로 교실에 갇힙니다. 학교에서도 딱히 갈 만한 데가 교실 아니고는 없습니다.


  회사를 다니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회사에 갇힙니다.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어른이라면 하루 내내 일터에 갇힙니다. 공무원도 이녁이 몸담는 공공기관 건물 바깥으로 벗어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바깥바람도 없고, 햇볕도 없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깥에서 놀거나 얼크러지지 못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먹구름이 깔린들 바깥 흐름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봄에 꽃내음이 흩날린들, 가을에 잎내음이 고루 퍼진들, 아이나 어른 모두 바깥에서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학교 바깥에서는 배울 수 없을까요. 집에서는 가르칠 수 없을까요. 아이와 어른한테는 무엇이 삶일까요. 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며, 왜 돈을 벌어 도시에서 아파트를 장만해야 할까요.




- “그야, 고양이가 가정부를 할 정도라면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당연한 거잖아. 그럼 잘 지내.” (173쪽)



  일을 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직업교육을 받기 앞서, 삶을 가꾸는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한테 직업교육을 시키기 앞서, 삶을 스스로 누리는 즐거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장래희망이나 취미나 소질을 헤아리기 앞서, 삶을 이루는 숨결이 무엇인지 찾을 노릇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끄고 삶을 읽을 노릇입니다. 책과 신문을 덮고 삶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벌고 삶을 배울 노릇입니다. 돈은 그만 쓰고 삶을 나눌 노릇입니다.


  만화책 《오늘의 네코무라 씨》를 살살 쓰다듬어 봅니다. 하루에 한 칸씩 그린 만화로 제법 도톰하게 한 권 묶습니다. 날마다 얼마나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사랑을 들려주는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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