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풍경 - 이희재의 스케치여행
이희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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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98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

― 낮은 풍경, 이희재의 스케치여행

 이희재 그림·글

 애니북스 펴냄, 2013.7.26.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낮은 삶’이나 ‘높은 삶’도 따로 없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은 높지 않습니다. 의사나 판사 같은 일을 한대서 높지 않습니다. 대학교 졸업장으로 사람이 높아지지 않으며, 외국에서 배웠거나 대학원을 마치기에 사람이 높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거머쥔대서 높지 않으며, 어버이가 부자라서 높지 않습니다. 땅을 많이 거느리는 사람이 높지 않고, 이름을 드날리는 사람이 높지 않습니다.


  사람을 높이로 따지는 사람치고 바보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높이뿐 아니라 크기나 부피 따위로 재는 사람치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 7월 5일, 낮부터 비가 내리더니 저녁 집회시간이 다가오자 비가 멎었다. 날씨 따라 어둡던 마음도 개운해졌다. 많은 시민이 다시 모였다. 촛불은 밤을 밝혔고 물결처럼 거리로 휘돌며 빗나간 권력에 맞대응했다 ..  (촛불)



  그런데,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한 가지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녁한테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대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스러운가 아닌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삶을 가꾸는가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높거나 낮다고 가를 수 없으나, 따스한가 차가운가를 놓고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돈이나 이름값 따위로 가를 수 없지만, 사랑스러운가 안 사랑스러운가를 살피며 나눌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피가 흐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 없는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사랑입니다. 그저 아직 사랑에 눈을 뜨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랑이 없이 차갑구나 싶은 사람이라면, ‘아직 사랑에 눈뜨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밟거나 부수려는 사람이라면,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어떤 대상이고 처음 붓을 들면 낯설다. 사물에 익숙해지는 데는 대상이 도구와 교감하고 몸에 들어앉을 수 있는 시간의 뜸을 들여야 한다. 집과 집은 다닥다닥 옆구리를 맞대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리어카 하나 비켜설 수 없는 조밀한 곳, 집마다 삶의 내력과 세월에 배어 있을 것이다 ..  (중계동 산동네 백사마을을 가다)



  만화를 그리는 이희재 님이 《낮은 풍경, 이희재의 스케치여행》(애니북스,2013)이라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우리가 마주할 풍경 가운데 ‘낮은 풍경’이나 ‘높은 풍경’이란 따로 없으나, 이희재 님은 스스로 ‘낮은 풍경’을 찾아서 그림에 이야기를 담습니다.


  낮은 곳은 어디일까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가 낮은 곳일까요? 도시에 있는 달동네가 낮은 곳일까요? 한국 정부에서 버린 윤이상 같은 사람이 낮은 곳에 있었을까요? 미얀마라는 나라가 낮은 곳에 있을까요?


  이희재 님은 굳이 “낮은 풍경”이라고 책이름을 붙입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 정부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예술이 ‘어떤 사람과 마을’을 낮게 깎아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희재 님 스스로 ‘낮은 사람’이 되어 ‘낮은 이웃’을 만나려고 ‘낮은 나들이’를 즐깁니다.





.. 통영의 영산 미륵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 둥둥 떠 있는 섬들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윤이상의 눈에 밟히던 고양이다. 윤이상은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랐음에도 끝내 조국은 문을 닫아버렸다 ..  (윤이상을 찾아서)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따스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은 혼자 잘났기에 굳이 어깨동무를 할 까닭을 못 느낍니다. 따스한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어깨동무를 해요. 따스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랑을 모르니 어깨동무라는 낱말조차 모르리라 느낍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희재 님이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은 ‘낮은 풍경’이란, 바로 따스한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낮은 풍경’이란, 바로 따스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돌보는 모습이지 싶어요.





.. 나는 둑길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도 잊고 장터의 흥정에 홀려 사람들을 그렸다 ..  (황금의 땅 부처의 나라 미얀마)



  낮은 곳에는 입시지옥에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주식투자가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스포츠나 연예인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법원도 국회의사당도 청와대도 대학교도 없습니다. 아니, 이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밭이 있고 마을이 있으며 골목이나 고샅이 있습니다. 낮은 곳에는 나무와 풀과 꽃이 함께 자랍니다. 낮은 곳에서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낮은 곳이란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보금자리입니다.


  더 들여다본다면, 낮은 곳에는 돈도 이름도 힘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서는 돈도 이름도 힘도 쓸 일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책도 문화도 예술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작가도 예술가도 공무원도 교사도 없습니다.


  낮은 곳에는 오직 사랑이 있고, 오로지 꿈이 크며, 그예 삶이 피어납니다. 낮은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서로서로 아재와 아지매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다 같이 언니요 동생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모두 동무이면서 이웃입니다. 낮은 곳에서는 저마다 다르면서 몽땅 한동아리가 되는 사람입니다.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습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습니다. 사랑에는 높낮이가 없습니다. 사랑은 너비나 깊이로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따스하거나 포근합니다. 사랑은 늘 즐겁거나 아름답습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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