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날 집 비우는 어머니

 


  아이들 어머니가 오늘(3/27)부터 다음달(4/15)까지 집을 비운다. 아이들 어머니는 멀리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마음공부(시애틀 옘 람타스쿨)를 하고 오기로 한다. 아이들 어머니는 서른네 해 살아오면서 다른 나라를 밟은 적 없고, 나도 서른아홉 해 살면서 미국을 밟은 적 없다. 비행기삯은 어찌 될까. 옆지기가 카드로 긁은 비행기삯을 여섯 달이나 열두 달로 끊어서 갚을 만할까. 아무튼, 아이들 어머니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간다. 읍내에서 다시 순천으로 갈 테고, 순천부터 인천공항까지 머나먼 버스길을 달리겠지.


  길을 나서기 앞서 여러 날 짐을 꾸렸다. 짐을 꾸리는 동안 아이들이 묻고 달라붙는다. 우리 식구들 어디로 마실을 갈 적마다 짐꾸러미 잔뜩 꾸린 만큼, 아이들도 다 알았으리라. 얼마나 먼길 얼마나 오래 다녀올는 지 다 헤아렸으리라.


  마을회관 앞에서 군내버스를 타는 아이들 어머니가 손을 흔든다. 아이들도 손을 흔든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손을 흔들고, 큰아이는 삼십 미터쯤 버스 뒤를 따라가며 손을 흔든다. 잘 다녀와야지. 잘 지내야지. 바람 조용한 봄날 햇볕 먹으며 들꽃이 기지개를 켠다. 이제 들꽃 하나둘 봉오리 벌리며 봄볕 듬뿍 먹는 아침이로구나.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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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3-27 11:33   좋아요 0 | URL
저 짐 들고 인천공항까지 가시는 길도 머나머네요~

숲노래 2013-03-27 12:01   좋아요 0 | URL
네, 12시에 순천서 버스가 있으니, 저녁 늦게 공항에 닿겠지요 @.@

수이 2013-03-27 21:46   좋아요 0 | URL
와 멋진 가족의 모습입니다.

숲노래 2013-03-28 01:37   좋아요 0 | URL
식구들이 예쁘지요~
 

동백꽃밥

 


  옆지기가 동백꽃송이를 하나 딴다. 함초롬히 피어난 동백꽃송이는 동백나무에서 흐드러지게 붉게 탈 적에도 어여쁘고, 다른 풀과 함께 어우러져도 어여쁘다. 잘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밥을 지으면서 꽃잎을 톡톡 따서 넣는다. 새로 짓는 밥은 동백꽃잎으로 물들면서, 꽃밥이 된다. 동백꽃밥이다. 꽃내음과 꽃맛이 감도는 꽃밥을 먹는다. 아이들도 먹고 어른들도 먹는다. 마당에서는 동백내음 감돌고, 밥그릇에는 동백맛 어린다. 4346.3.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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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4 08:39   좋아요 0 | URL
세상에..동백꽃밥도 있군요.
동백꽃잎으로 물들면서 꽃내음과 꽃맛이 나는 동백꽃밥.
'마당에서는 동백내음 감돌고 밥그릇에는 동백맛 어린다'
정말 정말 부럽고 아름답습니다.~*^^*

숲노래 2013-03-24 08:54   좋아요 0 | URL
애기똥풀꽃이나 감자꽃 빼고는... 웬만하면 다 할 수 있어요.
매화꽃으로는 매화꽃밥 되고,
모과꽃으로는 모과꽃밥 된답니다~~
 

새 신 한 켤레

 


  큰아이한테 새 신 한 켤레 사 준다. 큰아이는 이 신 저 신 자꾸자꾸 바꾸어 신지만, 발에 꿰는 신마다 어느새 닳고 낡는다. 개구지게 뛰고 달리면서 노느라 신이 일찌감치 닳는다.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신 한 켤레 값이 그리 안 비싸다 할 테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5000원짜리 고무신을 꿰고, 큰아이는 2만 원이나 3만 원 하는 신을 꿴다. 그럴밖에 없으리라.


  볼이 조금 넓적해서 아이들 발이 덜 아프거나 안 아플 신을 고르고 싶은데, 큰아이는 볼이 조금 좁은 신을 고르고야 만다. 신고 놀다 보면 볼이 차츰 늘어나기는 하겠지. 이 신은 언제까지 갈 수 있으려나. 예쁜 신이라 하면서도 이 신을 신고 달리기를 하며 흙밭에서 뒹굴고, 비오면 빗물 찰박거리면서 노니, 올 한 해 못 넘기려나. 그래도, 얌전히 모시며 먼지를 먹기보다, 신나게 뒹굴면서 닳고 낡아 새로운 신을 다시 사는 일이 훨씬 낫다. 4346.3.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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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3 09:03   좋아요 0 | URL
아이..아버지가 사다 주신 새 신이 참 예쁘군요~*^^*
저희는 아들만 둘이라 이렇게 예쁜 신을 사준 적이 없어 서운합니다.^^;;

숲노래 2013-03-23 14:49   좋아요 0 | URL
헛. 아들만이라니!
에궁. 저도 아들로 태어나 자랐지만,
아들만 있는 집은.... 참.... 왁자지껄 재미난 소리가
나기 힘들더라구요 ㅠ,ㅜ
 

밥 주는 사람

 


  밥 주는 사람은 날마다 끼니때 되면 밥을 차린다. 하루에 한 번, 두 번, 세 번, 때로는 틈틈이 샛밥을 차린다. 밥 주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수저 드는 사람이 맛나게 밥 즐기기를 바란다. 즐겁게 먹으며 즐겁게 하루 누릴 수 있기를 빈다. 맛난 밥이 몸으로 스며들어 고운 숨결 되고, 고운 숨결이 너른 생각으로 자라, 착한 웃음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꿈꾼다.


  어른이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준다. 아이들이 자라 늙은 어버이한테 밥을 차려서 준다. 늙은 어버이가 나이든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준다. 나이든 아이들은 새롭게 어른이 되어 갓 태어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준다. 풀 한 포기 밥이 되고, 열매 한 알 밥이 된다. 물고기를 먹거나 돼지고기를 먹기도 하는데, 풀이든 열매이든 고기이든 모두, 햇살이 살찌우고 흙이 북돋우며 바람과 물이 푸르게 길러 준다.


  밥을 먹는 사람은 늘 햇살이랑 흙이랑 바람이랑 물이랑 먹는 셈이다. 밥을 차려 주는 사람은 언제나 햇살과 흙과 바람과 물을 가지런히 갈무리하면서 따사롭게 나누어 주는 셈이다. 4346.3.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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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17 14:41   좋아요 0 | URL
저도 밥 주는 사람이에요. 햇살과 흙과 바람과 물을 가지런히 갈무리하면서 따사롭게 나누어 주는 거군요.^^

숲노래 2013-03-17 15:46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밥 주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자전거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다닌다. 나 혼자 다닐 적에도 자전거를 몬다. 자전거는 즐겁게 내 두 발이 되어 준다. 자전거로 달리며 멧새 노랫소리 듣고, 바람 맞으며, 들내음 솔솔 맡는다.


  등판에 땀이 돋고 이마에서 땀줄기 흘러내린다. 빙그레 웃으며 생각한다. 좋구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니, 아이들도 자전거놀이를 한다. 큰아이 여섯 살 넘어가며 두발자전거 한 대 장만한다. 꼬마바퀴 붙은 두발자전거를 마당 빙빙 돌면서 탄다. 좋네. 너도 아버지도 나란히 좋네.


  저녁나절, 면소재지 언저리에서 모임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옆지기가 말한다. 모임자리에서 술을 마시면 자전거를 택시에 싣든지 걸어서 돌아오든지 하고, 자전거 타지 말라고. 모임자리는 면소재지 어느 밥집. 밥집 아주머니가 자전거 잘 맡을 테니 걱정 말고 두고 가란다. 이듬날 와서 찾아가란다. 고맙게 인사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내 몸이 자전거하고 하나된다. 자전거는 나와 만나며 골골샅샅 마음껏 누빈다. 내가 가는 곳에 자전거 있고 아이들 있다. 아이들 바라보는 곳에 아버지 있으며 자전거 있다. 서로서로 시골바람 쐬고 시골햇살 먹으며 시골물 즐긴다. 히뿌윰하게 동이 튼다. 구름 제법 끼었다. 동그랗고 노란 아침해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인다. 하루가 밝는구나. 4346.3.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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