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 찬가 - 언어괴물 신견식의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신견식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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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96


《콩글리시 찬가》

 신견식

 뿌리와이파리

 2016.10.4.



일상은커녕 전문 영역에서도 과연 잘 쓸까 싶은 희한한 외래어가 국어사전에 꽤 많다. (209쪽)


국제적 의사소통을 너무 영어에만 맞추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으면 한다. (231쪽)


한국어사전은 용례가 너무 모자라고 사용 시기도 거의 표시해 두지 않는다. 조선시대 어휘나 돼야 옛말이라고 나올 뿐, 이를테면 20세기 초중반과 지금은 뜻이 달라진 말에 관해 구체적으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333쪽)



《콩글리시 찬가》(신견식, 뿌리와이파리, 2016)라는 책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사람이 어설피 들여왔지만 이래저래 퍼진 한국영어를 그냥그냥 쓰자고 하는 줄거리를 다룬 책이다. 이러면서 한국영어 말밑을 찬찬히 짚어서 알려주는 구실을 한다. 글쓴이는 번역을 꽤 하는구나 싶은데, 맞춤법이나 적기법 때문에 골치를 앓지 싶다. 한국은 국립국어원이 온누리 여러 말을 영어 틀에 가두려고 하니 번역을 할 적에 늘 애먹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말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네덜란드에는 ‘반 고흐’가 없다. ‘환 호흐’가 있을 뿐이다. 한글로 적자면. ‘반 고흐’는 어디에서 뚝 떨어진 적기법일까? 한글이 엄청나게 훌륭한 글이라면 굳이 영어라는 틀에 갇혀서 온누리 여러 말을 적어야 할 까닭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영어만 배워야 하지도 않는다. 한국말도 온누리 여러 말도 모두 제대로, 즐겁게, 똑똑히, 환하게, 곱게 배워서 나눌 수 있기를 빈다. 그나저나 ‘콩글리시를 그냥 쓰든 말든’ 한국사람이라면 한국말이나 한국 말씨를 더 깊고 넓으며 제대로 배워야지 싶다. 글을 쓰거나 옮기는 일을 한다면 더더욱 한국말부터 제대로 익힐 노릇 아닐까? 글쓴이는 이 대목에서 좀 무딘 듯하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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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외롭지 않게 - 내가 만난 엄마들
김지연 지음 / 웃는돌고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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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80


《아무도 외롭지 않게》

 김지연

 웃는돌고래

 2018.3.22.


다솜 엄마는 최근에 이름을 또 한 번 고쳤다. 과거를 숨긴 채 경찰서에서 대충 지은 이름을 버리고, 사랑받고 행복한, 지금 지은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40쪽)


《아무도 외롭지 않게》(김지연, 웃는돌고래, 2018)를 읽었다. 아주 빨리 읽어냈다. 가벼운 수다로 엮은 책이다 보니 그냥 술술 읽힌다. 이 책은 술술 읽힌다는 대목에서 좋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무엇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 나는 열아홉 살에 어버이 집에서 나와 따로 살면서 집에 텔레비전을 안 키웠고, 어쩌다 어버이 집이나 다른 이웃집에서 텔레비전으로 흐르는 연속극이 나올 적에, 또 고흥에서 서울을 오가는 고속버스 텔레비전에서 연속극이 흐를 적에, 어쩜 저렇게 터무니없는 것을 끝없이 자꾸 찍고 사람들이 자꾸 쳐다볼까 아리송했는데, 사람들은 삶이 너무 따분한 나머지 가벼운 수다라도, 막나가는 연속극이라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못 견디지 싶다. 수다가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수다가 있기에 씩씩하게 일어선다면 얼마나 훌륭한가. 다만, 수다뿐이라면 굳이 책으로 안 내도 되리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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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 씨네21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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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으로 삶읽기 370


《작업실 탐닉》

 세노 갓파 글·그림

 송수진 옮김

 씨네북스

 2010.2.5.



“그림은 붓끝으로 그려서는 안 돼. 이를 위해선 우선 정신이 자유로워야 해. 자유로운 인간이 자기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림은 탄생하니까. 인간에 대해서도 사과 하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권위나 권력을 좇는 인간의 눈에는 탁한 것만 보이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도 없어. 하지만 세상은 얄궂게도 그런 놈들이 성공하게 되어 있지.” (95쪽)



《작업실 탐닉》(세노 갓파/송수진 옮김, 씨네북스, 2010)이란 책을 사 놓고도 꽤 오래, 참 오래 안 읽었다. 무엇보다 옮김말이 영 거슬려서 읽기 벅찼다. 무늬가 한글이라서 한국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책이 너무 무거워 손목이 아팠고, 펼침새가 썩 좋지 않아 그림을 찬찬히 볼 만하지 않았다. 글하고 그림에 걸맞는 지음새가 아니라고 할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는 누구를 만날 적에 ‘무겁’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나온 책은 너무 무겁고 펼침새에 옮김말까지 엉성하다.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어내고서 생각하는데 책이름하고 줄거리도 안 어울리지 싶다. ‘작업실’이 뭘까? 다들 ‘작가·작업’, 이런 말을 그냥 쓰지만 영 와닿지 않는다. 예술가는 ‘일터’라는 이름을 쓸 수 없나? 예술이란 이름보다 ‘일’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나? “예술을 한다”가 아닌 “일을 한다”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는가? “일터를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이야기 아닌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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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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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66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레디앙

 2008.8.11.



나는 ‘민중’이 평범한 시민들을 대상화하는 직업 운동가들의 용어임을 눈치챘다. 일상적인 대화나 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오로지 정치적인 선동을 위한 비장한 어조의 문장에만 장식처럼 등장하는 이 단어를… (71쪽)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레디앙, 2008)을 다 읽은 지 한 달 남짓 된다.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없다. 어쩌면 나로서는 웬만한 이야기는 다 알았으니 새삼스럽지 않았을 텐데, 이쪽에서든 저쪽에서든 울타리를 높게 쌓아서 밥그릇을 챙기는 무리가 버젓이 있다. 삶을 홀가분하게 이끌도록 가르치는 학교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매우 어렵고, 삶을 참사랑으로 가꾸도록 북돋우는 마을이나 집안도 한국에서는 좀처럼 뿌리내리기 힘들다. 그러나 틀림없이 씨앗이 있고, 생각이 자라며, 하나둘 가지를 뻗겠지. 글쓴이는 프랑스를 아주 좋아해서 프랑스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데, 문득 생각해 본다. 글쓴이가 프랑스하고 서울에서만 뛰어다니지 말고, ‘전남 고흥’에서도 좀 뛰어다니기를 말이다. 글쓴이가 나고 자란 고흥이란 시골이 엉터리 군수들하고 공무원들 때문에 얼마나 망가지는가를 좀 눈여겨보고 목소리를 내라고 말이다. 큰 목소리야 누구나 낼 수 있지 않나? 작은 목소리를, 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중’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을, 이제부터라도 바라볼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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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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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으로 삶읽기 360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열림원

 2003.8.11.



침묵을 깨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가 세도나야. 붉고 아름다운 암석들이 있는데. 낮에 왔으면 네가 보고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별이 좋지? 난 한 번도 별을 바라보는 데 질려 본 적이 없어.” (12∼13쪽)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한강, 열림원, 2003)을 다 읽고도 꽤 오래 책상맡에 쌓아 놓았다. 얼른 치우면 좋을 텐데 이 책이 책상맡에 쌓인 줄조차 잊은 채 지냈다. 아직 서른이 안 될 무렵 젊은 예술가로서 미국 어느 작은 도시로 가서 석 달 동안 제3세계 글벗하고 어울리며 겪은 나날을 작은 책으로 여미었다고 하는데, 서른이든 젊음이든 소설이든 글이든 글쓴이한테서 돌아볼 만한 이야기를 한 가지도 못 느꼈다. 어쩌면 이 대목이 한강이란 분 속모습일는지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글벗이 문득문득 들려주었다는 말마디는 때때로 이슬같은데, 이 이슬을 받아먹으면서 한글로 어떤 이야기를 엮어내는지 잘 모르겠다. 이슬을 먹으면서 이슬을 모르는 삶이요, 바람을 마시면서 바람을 모르는 삶이며, 별을 보면서 별을 모르는 삶이라면, 이때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쓸까? 땅을 디디며 땅을 모르고, 풀을 먹으면서 풀을 모르고,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아이를 모른다면, 이때에 우리는 어떤 길을 걷거나 무슨 일을 할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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