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향과 귀향 사이에서 - 농민공 문제와 중국 사회 현대중국의 중국의 사상과 이론 4
허쉐펑 지음, 김도경 옮김 / 돌베개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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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보며 도시바라기, 수억 중국 농민공
―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 농민공 문제와 중국 사회
 허쉐펑 글/김도경 옮김
 돌베개, 2017.9.29. 16000원


농촌의 젊은이들은 설사 고소득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진흙을 묻혀가며 농사를 짓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밝은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31쪽)

매달 나흘을 쉬거나 혹은 매주 이틀을 쉴 수가 없다. 이는 국가가 법으로 정한 휴일임에도 그렇다. 공장이 농민공을 채용할 때, 그들은 농민공을 염가의 노동 기계로만 볼 뿐, 농민공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48쪽)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시골살이를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푸름이나 젊은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만한지를 몸으로 느끼지 않았습니다.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돌베개, 2017)라는 책에 나오는 중국 젊은 농민공들 마음을 제 살갗으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도시살이가 어떠한가는 살갗으로 느끼거나 알아요.

  시골에서는 도시가 ‘한결 깨끗하거나 밝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작 도시는 그리 깨끗하거나 밝다고 하기 어려워요. 깨끗하거나 밝아 보이도록 하려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기계를 돌리고 시설을 지키지요. ‘공장 생산라인’은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쓰는 화학약품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물(폐수)이나 바람(매연)이 참말로 깨끗하거나 밝을까요?


허세는 3층짜리 주택이나 결혼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잉산의 농촌에서는 각종 경조사의 선물비용이 농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63∼64쪽)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하기 전에는 잉산 농민들의 소득에 큰 차이가 없었다. 마을 내 경제적 계층의 차이도 그다지 명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많은 농민들이 외지로 나가 일을 하면서부터 일부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득을 바탕으로 마을 내 상류층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들의 명성과 지위를 높여주었다. (65쪽)


  인문책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는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수천만, 아니 몇 억에 이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국은 10억을 웃도는 사람이 사는 터라 한국하고 대면 숫자부터 다릅니다. 중국에서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숫자는 제대로 통계로 잡기 힘들다지만 몇 억이라지요. 그리고 금융 위기 바람이 한 번 불면 수천만에 이르는 실업자가 생긴다 하고요.

  숫자만 보아도 깜짝 놀랄 만하지만, 숫자 하나로만 놀랄 만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많이 들어오는데, 중국은 이렇게 시골사람이 도시에 공장 노동자로 잔뜩 떠나도 ‘중국 논밭을 일구거나 지킬 사람’이 제대로 남아날 수 있을까요?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한국에서 그토록 미움을 받는 ‘중국 곡식이나 남새’가 끊어질 날은 멀지 않을 듯해요. 이러면 한국은 자급자족이 거의 안 되는 나라인 탓에 무엇보다 식량 위기를 맞이하겠지요.


도시의 삶은 청춘의 낭만으로 가득하기에 그 누구도 선뜻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TV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이 도시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혹 그런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77쪽)

중국 제조업이 이미 변곡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농민공이 그렇게 될 것이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소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온 가족이 도시로 이주한다 하더라도 편안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소득과 지출이 균형을 잃었을 때, 그 가족의 관계가 좋을 수 있을까? (84쪽)


  중국에서는 돈을 벌려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는데, 이렇게 버는 돈은 으레 시골에 으리으리한 새집을 짓거나 겉치레를 하는 데에 쓴다고 합니다. 삶을 알뜰히 가꾸거나 한결 아름답거나 느긋한 살림살이가 아닌, 남보다 잘나 보이도록 하는 데에 쓴다고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방송(텔레비전) 탓이 크다고 해요. 날이면 날마다 방송에서 ‘시골보다 훨씬 멋져 보인다는 첨단문명과 소비문화’가 흘러넘치기에 시골사람은 이 같은 도시 문명이나 문화를 시골에서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이를 한국에 대 보면, 한국은 지난 1970∼8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으로 크게 몸살을 앓았어요.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당겨서 공장을 돌렸고, 공장 노동자는 처음에는 ‘도시 빈민’이었다가 차츰 도시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면서 이 나라 시골은 텅 비는 얼거리가 되었어요. 이동안 시골은 농약하고 비료하고 비닐하고 기계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도시는 도시대로 사람으로 넘치고, 시골은 시골대로 싸늘하면서 메마른 모습이 된다고 할까요.


젊은 농민공들은 외지에서 바깥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당연히 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좋아한다. 그러나 대도시의 주택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입할 수 없다. (235쪽)

젊은 사람들도 개발 지역에 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지로 나가 일하기 때문이다. 농가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부모 세대의 장년층이 농업활동에 종사하고 자녀 세대의 청년층이 외지에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239쪽)


  중국도 한국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려면 집에서 오랫동안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중국 농민공은 노동자라기보다 ‘값싼 부속품’으로 다뤄진다고 합니다. 젊을 적에는 공장에서 쉬는 날조차 없이 한창 부리다가, 나이를 먹으면 바로 버린다지요. 새로운 젊은 농민공이 넘친다고 하니까요.

  어쩌면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이란 이런 그늘을 드리우면서 생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밟히면서, 숱한 사람들이 집을 떠나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로 굴러야 하다가 마흔쯤 이르는 나이에 쓸모없어 버려지는 발판에서,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을 이루는 셈이지 싶습니다.

  수억 농민공이나 수천만 실업자라는 숫자에 가려진 수수한 시골 중국 이웃을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 고향마을에서는 조용히 살림을 지으며 조촐히 삶을 누리던 이들이 농민공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도시바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사람다운 권리와 자리를 빼앗깁니다.

  경제성장으로 달리는 중국이 아닌, 넉넉하면서 아름다운 중국일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한국도 경제성장은 이제 그만두고, 너무 커진 도시를 줄이면서, 시골하고 서울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조촐하면서 아름다운 나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 아직 늦은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2017.11.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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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CEO - 자전거 매출 세계 1위 자이언트 이야기 CEO의 서재 8
킹 리우.여우쯔옌 지음, 오승윤 옮김 / 센시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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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9


공무원이 모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면?
― 자전거 타는 CEO
 킹 리우·여우쯔엔/오승윤 옮김
 OCEO, 2017.10.20. 13500원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어버이가 장만해 준 자전거 뒤로 제가 스스로 마련해서 타고 다닌 첫 자전거는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원으로 일하며 타던 짐자전거입니다. 신문을 돌리면서 타는 짐자전거는 짐을 싣기에도 좋고, 사람을 뒤에 앉히기에도 좋습니다. 짐자전거에는 기어가 따로 없으나 짐을 가득 싣고도 오르막을 제법 잘 오를 수 있습니다. 다만 빠르게 오르지는 못하지요.

  짐자전거로 신문배달을 여러 해 하는 동안 자전거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온몸으로 익혔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빗길에도 눈길에도, 자전거랑 늘 함께 움직이면서 이렇게 멋진 ‘새로운 두 다리’를 누릴 수 있는 하루가 기뻤어요.

  신문배달을 끝내고 다른 일자리로 옮기면서 전철에도 실을 만한 작게 접는 자전거를 마련했어요. 이즈음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꾸린 모임에 나가 보기도 했는데, 그무렵 ‘자이언트(GIANT)’ 자전거는 안 좋고, 매우 아슬아슬할 수 있다는 얘기를 둘레에서 들었어요. 얼추 스무 해 즈음 된 얘기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니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180도로 달라졌다. 처음 도전했을 때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 할 것 없이 찬성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도 때는 정반대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34쪽)

이 두 번의 경험으로 나는 사람이 때로는 바보 같아야 자신의 한계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 체력은, 혹은 능력은 이 정도라고 한정 짓는다면 잠재력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44쪽)


  《자전거 타는 CEO》(OCEO, 2017)를 읽으면서 스무 해 즈음 된 예전 일을 떠올립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자이언트라는 대만 자전거 회사 대표입니다. 킹 리우라는 분은 저를 비롯한 ‘자전거 즐김이’가 지난날 떠올리던 ‘자이언트 자전거는 매우 안 좋아’ 하는 이야기를 책에 고스란히 적기도 합니다. 자전거 회사 대표 스스로 처음에는 퍽 엉성하게 자전거를 만들어서 팔았다는 대목을 안 숨기고 적어요. 예전에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고도 밝힙니다.

  그런데 자이언트 자전거는 오늘날 어떻게 눈부시게 거듭났을까요? 자전거를 엉성하게 만들어 돈만 벌려고 하던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이 자이언트 자전거를 놓고서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란 대목을 달게 받아들여서, 그 뒤로는 ‘조금이라도 엉성하게 만든 자전거’는 그대로 땅에 파묻어서 버리고,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해요. 이렇게 한 해 두 해 흐르면서 어느덧 자이언트 자전거는 ‘안 좋은 자전거’에서 ‘좋은 자전거’로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운동이 그렇듯 일 역시 즐겁지 않으면 보람을 찾을 수 없고, 오래 버티기도 힘들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은 ‘지금의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잊지 않는 사람은, 분명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85쪽)

유바이크의 품질은 세계 다른 도시의 공용자전거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그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자전거를 보급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161쪽)


  그러면 자전거 회사 대표는 어떻게 ‘돈벌이’를 이녁 마음에서 털어낼 수 있었을까요? 바로 자전거 회사 대표 스스로 ‘자전거를 타며 출퇴근’을 하면서 달라졌고, 자전거 출퇴근을 넘어서 ‘자전거 대회 완주’까지 몸소 하면서 더욱 달라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 자전거로 산을 오르내리며, 여든을 웃도는 나이에까지 자전거 타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해요.

  많이 파는 물건으로만 자전거를 바라보았다면, 자이언트라는 자전거는 고만고만했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회사 가운데 한 곳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온누리에 손꼽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라려는 뜻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서 파는 물건이 제대로 된 것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즐겁게 타고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품으면서 찬찬히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이러면서 회사를 더욱 잘 꾸리는 길을 스스로 알아내기도 하고, 숫자로 살피는 벌이를 넘어서 지구라는 별이나 대만이라는 나라를 모두 생각하는 길까지 걸을 수 있을 테고요.


중요한 점은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단계마다 계속해서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80쪽)

나에게는 꿈이 있다. 타이완 자전거산업이 세계를 선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타이완에 와서 ‘가장 좋은 자전거’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225쪽)


  《자전거 타는 CEO》라는 책은 자전거 이야기보다는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를 잘 꾸리는 길’을 밝히는 이야기를 더 길게 다룹니다. 자전거 즐김이보다는 회사 경영자한테 어울리는 책이라고 할 만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회사를 잘 꾸리는 길’도 ‘자전거를 즐기는 수수한 삶’이 밑바탕으로 있기에 열 수 있었네 하고 느꼈습니다.

  이러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 회사 대표는 자전거 회사를 꾸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동안 몸이 매우 튼튼하게 달라졌다고 해요.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아직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떠할까요?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회의원이든 시장·군수이든, 군의회·시의회 의원이든, 또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이든, 이런 공공기관 일꾼이 모두 자가용을 내려놓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본다면? 전국 어디에서나 공공기관에서 ‘공용차’가 아닌 ‘공용자전거’를 타도록 한다면? 이렇게 할 적에 우리 사회는 얼마나 눈부시게 거듭날까 하고 한번 꿈꾸어 봅니다. 2017.11.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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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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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8


어머니만 ‘페미’? 아버지도 함께 ‘평등’으로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글/황가한 옮김
 민음사 펴냄, 2017.8.18. 9800원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선물이지만 엄마라는 말로만 자신을 정의해서는 안 돼. 충만한 사람이 되도록 해. (17쪽)


  아이를 낳아 ‘아버지’라는 이름을 비로소 받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들을까요? 우리 삶자리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까요? 사회나 마을이나 학교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어버이’로서 무엇을 새롭게 익혀서 아이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를 바랄까요?

  더 나아가서 사내랑 가시내가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일굴 적에 두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어떤 살림을 어떻게 가꿀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줄까요? 어쩌면 우리는 새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두 사람한테 ‘돈을 잘 벌어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낼 수 있도록 하고 …… 같은 말만 들려주지는 않을까요?


‘도움’이라는 표현은 거부해. (남편) 추디가 자기 아이를 돌보는 건 네 일을 ‘돕는’ 것이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아빠들이 ‘돕고 있다’고 표현하면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고 아빠는 거기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거라고 암시하는 것과 같아. (23쪽)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를 읽습니다. 104쪽짜리 얇은 이 책은 나이지리아사람이 썼습니다. 이 책을 읽기 앞서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성평등을 얼마나 이룬 곳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나이지리아라는 곳도 성평등이 그리 안 아름답구나 하고요.

  그렇다면 한국은? 남녘뿐 아니라 북녘은? 우리 겨레는 얼마나 성평등을 이루는 나라일까요? 경제나 정치나 문화 못지않게 평등이라는 대목을 살필 수 있어야 삶이 넉넉하거나 즐거울 만하지 싶어요. 평등한 자리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평화를 이루기 어렵고, 평등하고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민주나 자유도 제대로 못 서지 않나 싶습니다.


‘성 중립’은 바보 같아.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성 중립’은 별도의 범주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잖아. 왜 아기 옷을 그냥 나이로만 구분하고 모든 색깔로 만들지 않지? (29쪽)


  《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살짝 우습다 싶게 다루기도 합니다만, 분홍이라는 배롱꽃빛은 남녀 모두 얼마든지 좋아하거나 즐길 만합니다. 장미빛이나 앵두빛이라 할 만한 빨강도 여남 누구나 얼마든지 사랑하거나 누릴 만하지요.

  제 어릴 적을 돌아보면, 사내가 빨강이나 풀빛이나 분홍 같은 빛깔이 섞인 옷을 입으면 동무들이 놀렸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이었는데, 같은 사내끼리만 놀리지 않고, 가시내도 놀려요. 옷 빛깔을 두고 ‘성별 가르기’는 남녀 모두한테, 어른뿐 아니라 아이한테까지 깊게 물들었다고 할 만합니다.

  머리카락 길이도 그렇지요. 때로는 반바지 길이를 놓고서도 말이 많습니다. 아주 더디게 달라지는구나 싶으나, 사내는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눈길도 있어요.


네가 아이한테 쓰지 않을 표현들을 정해. 네가 아이한테 하는 말은 중요하니까. 치잘룸이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거든. (47쪽)


  사람한테는 성별이 있습니다. 새나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한테도 성별이 있지요. 성별에 따라 다른 모습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성별에 따라 생김새는 안 같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성별이 다르기는 하되,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말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놀이를 하고, 웃고 노래하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으로서 걷고,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책을 읽고, 학교를 다니고, 배우고 가르치고,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는 두 아이를 건사하는 살림을 열 해 남짓 가꾸는데, 저한테 부엌칼이나 도마나 행주를 선물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사내·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한테 옷을 사 준다 할 적에도 분홍이나 풀빛이나 빨강이나 노랑처럼, 환하거나 이쁜 빛깔이랑 무늬를 살피는 일도 없다시피 합니다.


아이가 존경했으면 하는 자질을 가진 여자들, 즉 이모들에게 치잘룸이 둘러싸여 자라게 해. 네가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얘기해 줘. (77쪽)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이들한테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 앞서 저부터 스스로 참다우면서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어버지·나’로 살려고 합니다.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밥살림을 지을 줄 알고, 옷을 입는 사람으로서 옷살림을 가꿀 줄 알며, 집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집살림을 건사할 줄 알려고 합니다. 딸아들인 두 아이한테 모두 밥·옷·집을 고루 다스릴 줄 알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성평등·페미니즘’ 같은 말은 안 씁니다. ‘즐거운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어깨동무하는 사람’ 같은 말을 써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모습을 아이들이 차근차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새롭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된 이웃이 있다면, 진작 아이를 낳아 어느새 스물이나 서른이 넘은 아이를 지켜보는 이웃이 있다면, 저는 이분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다 같이 살림지기가 되어 봐요, 하고. 서로 아끼면서 살림을 짓는 즐거운 사람으로 거듭나 봐요, 하고. 기저귀를 빨고 밥을 짓고 아이를 가르치면서, 어버이일 뿐 아니라 슬기로운 어른인 사람으로서, 보금자리에 평화로운 너른 바람이 불도록 꾀하는 길을 함께 걸어요, 하고. 2017.1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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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
정헌재(페리테일) 지음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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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14


다 괜찮아요, 우리는 누려도 돼요
―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
 페리테일 글·그림·사진
 예담 펴냄, 2017.6.20. 14000원


  겨울이 가면 봄이 옵니다. 겨우내 이 추위를 잘 견디었든 이 추위에 벌벌 떨었든 누구한테나 봄이 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옵니다. 봄에 새로운 철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씨앗을 심었든 씨앗을 심을 땅이 없어서 어영부영 보냈든 누구한테나 여름이 옵니다.

  그리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와요. 이 여름을 알차게 보냈든 허술하게 보냈든 참말 누구한테나 가을이 옵니다. 잘 한 이한테도 잘 하지 못한 이한테도 똑같이 가을이 와요. 이다음에는 누구한테나 고르게 겨울이 다시 찾아오고요.


나의 섬이 거대한 대륙이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조그만 섬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섬에 같은 바람이 불고 같은 비가 내리고 같은 햇살이 내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섬을 사랑하게 되었다. (22쪽)

사람이든, 자연이든, 무엇이든, 아무 일 없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을 봤을 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28쪽)


  페리테일 님이 글하고 그림하고 사진으로 엮은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예담,2017)는 이 땅에서 ‘잘 하지 못한 이웃하고 벗’한테 띄우는 글월입니다. 나도 너도 잘 하지 못했지만 봄은 우리 모두한테 새삼스레 찾아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월이에요. 나도 너도 어수룩하거나 어설프거나 어쭙잖게 하루하루 보내는데, 이런 우리한테도 따스한 봄은 고르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띄우는 글월이에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람이 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바람은 소리도 들려주고 모습도 남겨 놓습니다. (39쪽)

별거 아닌 것 같은 작디작은 일이지만 그런 한 모금 한 모금을 놓치지 않는다면 전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38쪽)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씻어낸 뒤에 이 아픔을 더 뼛속 깊이 헤아리면서 ‘튼튼한 몸’을 한껏 즐긴다고 해요.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늘 튼튼하게 살아왔어도 ‘튼튼한 몸’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고 기쁨인가를 미처 못 느낀다고 해요. 비록 튼튼한 몸 말고는 아무것이 없다 하더라도 튼튼한 몸이야말로 엄청난 선물이라고 합니다.

  페리테일 님은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라는 책에서 스스로 아파 본 일을 털어놓으면서, 아픈 몸일 적에 무엇을 바랐고 아픔을 씻어낸 뒤에는 무엇을 바라는가를 이야기해요.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적에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아픔을 씻어낸 뒤에는 다른 눈치를 보지 않고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대로 나아가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167쪽)

그저 봄을 그렸고 그 봄이 와서 내 안이 조용해졌다는 것. 그 안이 뭉클해졌고,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다는 것. 다시, 봄이다. (252쪽)


  아파 본 뒤이기 때문에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남기는 자국을 읽을 수 있는지 몰라요. 실컷 아파 보았기 때문에 작디작은 일로 기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사랑하는 나날을 보낼 수 있는지 몰라요.

  그저 봄이 오기를 바랐고, 봄이 어느새 찾아왔다고 합니다. 딱히 잘 한 일이 없어도 봄은 찾아와 주고, 아픈 사람한테도 아픔을 씻어낸 사람한테도 오래오래 튼튼한 사람한테도 고르게 찾아와 주었다고 해요.

  참말 누구나 봄을 받습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더라도 우리 누구한테나 봄이 찾아옵니다. 비록 너무 고단한 나날이라서 봄이어도 봄을 못 느낀다든지 여름이어도 여름을 못 느낄 수 있다지만, 그래도 봄이며 여름은 해마다 꾸준히 우리한테 찾아와요.

  때가 되니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 되지 않아요. 때가 되니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 되지 않아요. 그냥 흐르는 시간이 아닌, 늘 우리한테 선물처럼 스며들려고 찾아오는 아침저녁이요 봄여름이지 싶어요. 잘 하는 분도 잘 하지 못하는 분도, 다 괜찮으니 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넉넉히 누리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7.8.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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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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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4


시를 읽고서 그림을 그려요
― 詩누이
 싱고 글·그림
 창비 펴냄, 2017.6.12. 14000원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누구나 시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나 문학인이 되어야 쓰거나 읽는 시가 아니라, 온누리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이녁 삶자리에서 하루를 즐거이 열고 닫으면서 누리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기쁠 때는 기쁨을 노래하는 시예요. 슬플 때는 슬픔을 노래하는 시가 되고요. 홀로 고요히 읊는 시가 있고, 여럿이 둘러앉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나누는 시가 있어요.

  오늘 우리는 ‘시’라는 이름을 쓰고, 어느 분은 한자로 ‘詩’라 하며, 어느 분은 영어로 ‘poem’이라 해요. 이런 여러 이름을 헤아리다가 문득문득 생각해 보곤 해요. 한국말로는 시를 무어라고 하면 좋을까 하고요. 우리는 기쁨이나 슬픔 모두 노래한다고 말하는데, ‘노래’가 바로 시를 가리키는 한국말이 될 만하지 싶어요.

  가락을 붙여서 즐길 적에도 노래입니다. 새가 들려주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누구를 기리거나 받드는 말도 노래예요. 자꾸 되풀이하면서 바라는 목소리도 노래일 테고요. 여기에 우리가 글로 지어서 나누는 이야기도 노래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우리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색을 볼 수 있을까 (29쪽)

어제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어 (53쪽)


  시를 쓸 적에는 신미나라는 이름을 쓰다가, 그림을 그릴 적에는 싱고라는 이름을 쓴다는 분이 빚은 《詩누이》(창비,2017)를 읽습니다. 시인과 화가라는 두 가지 일을 한다는 분은 ‘詩누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이른바 ‘노래누이’란 뜻이로구나 싶어요.

  즐거운 삶을 노래합니다. 아픈 삶을 노래합니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어릴 적 모습을 노래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부딪히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단단히 여물지 못한 삶을 노래합니다. 단단해지고 싶은 꿈을 노래합니다. 복닥거리던 어릴 적 작은 집을 노래합니다. 언니들과 오래오래 놀고 싶던 지난날을 노래합니다.


식구가 많아서 싫었던 건
밥상 위에서의 눈치 싸움
식구가 많아서 좋았던 건
든든한 내 편이 있었다는 것 (59쪽)

언니는 색종이를 접어 주었다
언니가 나만 빼놓고
친구네 놀러갈까 봐
나는 자꾸만 종이를 접어 달라고 졸랐다 (73쪽)


  누구나 노래를 합니다. 잘 부르거나 못 부르는 소리는 없다고 느껴요. 누구나 이녁 삶결대로 노래를 한다고 느껴요. 아프거나 아쉽던 하루는 무엇이 아프거나 아쉬웠는가를 털어놓으려고 노래를 해요. 신나거나 설레는 하루는 무엇이 신나거나 설레었는가를 풀어놓으려고 노래를 합니다.

  날마다 한 뼘씩 자라면서 노래를 합니다. 나날이 한 마디씩 크고픈 꿈을 키우면서 노래를 합니다. 밥 한 술을 뜨면서 노래를 해요. 웃음 한 번 지으면서 노래를 하지요. 고단한 동무한테 손을 내밀면서 노래를 하고, 내가 고단할 적에 이웃이 내밀어 주는 손을 잡으면서 노래를 해요.


지금 내 나이 때
엄마는 막내를 낳았다
가족사항을 적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엄마는 일하느라
피부는 밤색으로 그을렸고
언제나 펑퍼짐한 옷만 입었다
언니나 나를 부를 때면
언제나 이름을 헷갈려 했는데 (183쪽)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노래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려는 길을 노래합니다. 지난날 사내가 부엌일이며 집안일에 손을 뗀 바보스럽던 모습을 노래합니다. 지난날 가시내만 부엌일에다가 집안일을 도맡아야 한 터무니없던 모습을 노래합니다. 오늘날 사내하고 가시내가 새로우면서 슬기로운 길로 걷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오늘부터 사내랑 가시내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비는 뜻을 노래합니다.

  이름난 시인이 남긴 글만 노래하지 않아도 되어요. 시집으로 나온 글만 노래하지 않아도 되어요. 수수한 어머니와 아버지 삶을 노래해 봐요. 투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삶을 노래해 봐요.

  문학상을 탄 글이기에 더 노래할 만하지 않아요. 등단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쓴 글이기에 노래를 부를 수 없지 않아요. 우리 곁에 있는 이웃하고 동무가 날마다 복닥이거나 꾸리는 살림살이를 가만히 노래로 불러요. 우리가 저마다 오늘 하루를 맞아들이는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요.


남동생은 리모컨을, 저는 뒤집개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묻거나 따지기 이전에
‘원래’ 그래 왔던 것입니다 (238쪽)

폭력을 우쭐한 것으로
강한 남자의 자랑거리로 포장하지 마세요
폭력은 흔한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처자식을 남자가 평생 먹여살려야 할
무능력한 소유물로 그리지 마세요 (246쪽)


  시 한 꼭지를 만화로 풀어내어 보여주는 《詩누이》는 싱고 님 나름대로 시 한 꼭지를 남다르게 읽어내어 나누려고 하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여러 사람이 여러 삶에 맞추어 다 다르게 쓴 글을 놓고서, 싱고 님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고 그림하고 글을 함께 묶어서 보여주지요. 이러한 그림하고 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살그마니 뒤따릅니다. 시를 너무 무겁게 읽지 않도록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슬쩍 끼어들면서 이야기꽃을 북돋아요.

  글씨로 적힌 노래를 그림으로 바꾸어 보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詩누이》일 텐데, 시를 어느 시집에서 따왔는가 하고 책끝에 밝힌 대목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해 보았어요. 《詩누이》가 창비에서 낸 책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군데 출판사에서 낸 시집에 너무 치우쳤구나 싶어요. 창비 시집 19권, 문학과지성사 시집 6권, 문학동네 시집 5권, 민음사 시집 2권, 여기에 이규보와 이병기 시 하나씩, 모두 34가지 시집을 다루는데, 19가지가 한 군데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이에요.

  조금 더 작은 시집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조금 더 너른 시집과 조금 더 열린 시집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몇 군데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을 도드라지게 다룬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아요. 한 군데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으로도 얼마든지 싱그러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요. 다만 시를 더 새롭게 읽으면서 더 새롭게 풀어내 보려는 뜻이었다면, 울타리를 좁히지 말고 울타리를 걷어내 보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감날에 쫓기는 이야기가 더러 나오는데, 어느 매체에 노래그림 이야기를 싣는 무게에 눌린 살림을 보여주고 싶은 뜻은 알겠지만, 시 한 줄에 더 마음을 쏟아서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았겠네 싶습니다. 마감날에 쫓겨 허둥지둥 그려낸 티가 보이는 이야기도 제법 있어서 아쉬워요. 처음 노래그림을 빚을 적에는 너무 바빴어도, 이렇게 책으로 묶을 적에는 살짝 허술한 이야기는 손질하거나 새롭게 그려서 담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봅니다.

  시는 바쁘게 읽거나 빨리 읽어치울 수 없는 이야기예요. 느긋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읽는 시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읽는 시입니다. 따스한 마음으로 따스하게 읽는 시입니다.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사랑스레 읽는 시입니다. 《詩누이》를 빚은 싱고 님은 마감 때문에 으레 널을 뛰는 마음이 된다고 밝히기도 하는데, 널을 뛰는 마음으로 널을 뛰듯 시를 훑어서 널을 뛰듯 그려낸 이야기가 불쑥 나오면, 이야기를 읽다가 좀 뜬금없어서 자꾸 걸리더군요. 2017.6.2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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