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설적인 제목을 붙여보았다. 현명한 백치라니. 하지만 이 책을 보신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고 공감할 것이다.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는 극단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것도 양 극단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을 내세운다. 주인공의 이름은 미쉬낀이다. 속세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이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아 스위스에서 요양하다 러시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서 펼쳐지는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하고 격렬한 이야기다.

 

 세상물정 모르는 미쉬낀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백치취급을 당한다. '저런 백치같으니' 라는 말을 면전에서 계속해서 듣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사람이 미쉬낀을 사랑하게 된다. 처음에 그를 가장 경멸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이유와 미쉬낀을 사랑하는 이유는 같은 것 같다. 순수함, 선함, 현명함. 누구에게도 피해입히지 않을 것 같은 미쉬낀은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킨다. 한편으로는 돌봐주고 싶고 한편으로는 그의 숭고함에 매료된다. 어린아이는 가끔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어른들이 생각치못한 현명함을 보여준다. 미쉬낀 또한 그렇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속세에 때묻지 않았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완전히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을 구현하려 염원해 왔다고 한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완전히 아름답고 완전히 선하고 완전히 현명한 사람은 백치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우리는 흔들릴 수 있고 좌절하거나 굴복할 수 있다. 회사에 의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명령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당사자들을 위해 자신이 위험을 무릎쓰고 회사에 반항하는 사람을 우리는 '백치'라 부른다. 현실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 아니 현실보다 자신의 이상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람. 소크라테스는 세상 사람들 눈에는 '백치'로 보였을 것이고, 예수 또한 '백치' 처럼 모든 죄지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랐다. 그후로 세상은 조금 나아졌지만 현대사회는 점점 백치가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이득을 보고 '백치'같은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백치>는 백치 미쉬낀의 사랑이야기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는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보시기 바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다. 사랑만큼 복잡하고 미묘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또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아주 잘 포착한 소설가요 심리학자다. 그가 그리는 사랑이야기는 역시나 압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