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6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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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은 충격이었다. 이토록 충격적인 결말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기 앞의 생>의 결말이 떠오른다. 슬픈 결말이었지만, 아름다웠다. <백치 하>의 결말은? 아름답지 않다. 슬프지도 않다. 처참하고 씁쓸하다. <오르부아르>의 결말도 떠오른다. 마치 한 여름밤의 축제와도 같았던 소설, 그리고 결말.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백치 미쉬낀'의 실패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행복한 결말은 나의 바람일뿐, 이미 비극의 징조는 곳곳에 있었다. 내가 외면했을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들을 차례차례 밟아나간다. 이미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사각관계.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불행해져야 한다. 백치 미쉬낀은 그럴 선택을 할 위인이 못 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구보다 착하고 현명했던 '백치' 미쉬낀 역시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구현하고 싶어했고, 이 소설을 통해서 구현했는데, 미쉬낀은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행에 빠뜨린 것은 아닌지?

 

 예수는 완벽한 인간의 형상이다. 하지만, 예수 역시 실패했고, (아주 크게 실패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린 것은 아닌지. 행복과 불행은 땔래야 땔 수 없는 한쌍일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천국이나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제로섬게임처럼 누군가 행복해진다면, 어딘가의 다른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걸까? 행복이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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