땋은머리

 


  아이 어머니가 큰아이 머리를 땋는다. 아주 짧은 동안도 가만 있지 않는 큰아이는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튼다. 도무지 참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라면 누구라도 참지 못할 테지. 이리 움직이고 저리 뛰고 싶을 테니까. 머리를 다 땋은 다음 거울로 머리 모양을 보여준다. 큰아이 스스로 예쁘다고 여겨 땋은머리를 풀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땋은머리인 채 잠든다.


  너는 몇 살쯤 되면 스스로 머리를 땋을까. 아직 네 머리를 네 스스로 줄로 묶지 못하니, 머리를 땋기까지는 더 오래 걸릴까. 줄로 묶기보다 머리 땋기가 한결 수월할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네 손은 어른들한테서 배워 빛을 내기도 할 테고, 네 스스로 오늘 네가 할 수 있는 놀이로 환하게 빛나기도 할 테지.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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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라우프 어린이

 


  부산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늦은저녁, 읍내 중국집에서 밥을 사먹고는, 읍내 문방구에서 훌라우프를 둘 샀다. 군내버스 끊긴 늦은저녁이기에 택시 타고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여느 때에는 들고 돌아오기 힘든 훌라우프를 샀는데, 택시에서 이걸 굴리며 놀겠다던 두 아이를 달래려고 그날 참 애먹었다. 이제 마당에서 마음껏 굴리든 돌리든 던지든 할 수 있다. 두 녀석한테 하나씩 장만한 훌라우프인데, 꼭 한 놈이 집은 하나한테 두 놈이 달라붙는다. 서로 따로따로 제것을 챙기지 않는다. 아무튼, 아직 허리에 꿰기만 할 뿐 빙빙 돌리지는 못한다.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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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문 밀고 혼자 놀기

 


  누나하고 문 밀고 닫고 놀다가 혼자서 문을 밀고 닫으며 논다. 누나하고 놀 적에는 누나가 여닫는 대로만 해야 했지만, 누나가 다른 데에 한눈을 파는 사이 혼자서 문을 이리 당기고 저리 민다. 문을 여닫으며 나는 쿵쿵 소리가 재미있을까. 혼자 안쪽에 숨기도 하고 벽에 착 붙기도 하며 즐겁게 한때를 보낸다.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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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손 글쓰기

 


  낮잠을 잘 자다가 갑자기 응애 우는 작은아이를 토닥이며 품에 안는다. 무릎에 누이고는 글을 쓴다. 그러다가 아직 작은아이가 깨기 앞서 불을 올린 밥이 떠오른다. 왼어깨로 작은아이를 안고는 부엌으로 가서 밥냄비를 살핀다. 아직 밥이 되려면 멀다. 불을 살짝 줄인다. 그러고는 국냄비에 물을 조금 더 붓고 물을 올린다. 아침에 먹고 남은 국이 있어, 저녁에는 물을 살짝 붓고 끓이면 말끔히 다 먹고 치울 수 있을 듯하다. 이 다음으로 아침에 먹고 남은 떡볶음에 떡을 더 넣고 볶으면 반찬이 되겠지. 냉장고를 열어 무얼 더 넣으면 맛날까 생각한다. 한 가지 밥감을 꺼낸다. 도마에 한손으로 올린다. 한손으로 칼을 쥔다. 천천히 썬다. 이윽고 물이 보글보글 끓으면 넣어야지.


  두 아이와 살아가지 않았을 적에도 이렇게 ‘한손 밥하기’를 했을까 헤아려 본다. 아마 팔이 다쳐 한손을 못 쓸 적에는 이렇게 했겠지. 그러나 한손에 아이를 안고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뭐 이런저런 일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낀다. 작은아이가 잠자며 똥을 눈다든지, 큰아이도 작은아이처럼 어릴 적에 이런 일이 흔했는데, 어린 아이들이 참말 밤잠을 자며 똥을 누면 잠에서 안 깨도록 고이 안아 고이 바지를 갈아입히고 밑을 씻겨 새 바지를 입힌 뒤 토닥토닥 재운다. 이동안 한손으로 똥바지를 애벌빨래 해서 담가 놓는다. 아이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손 살림’이나 ‘한손 일’을 하리라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한손 글쓰기’를 한다.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달래면서 다른 한손으로 천천히 글을 쓴다. ‘한손 책읽기’도 한다. 진작부터 ‘한손 사진찍기’를 했고, ‘한손 자전거 타기’도 퍽 오랫동안 했다.


  살아가니 다 된다. 살아가며 다 이룬다. 살아가는 동안 다 즐긴다. (4345.10.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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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0.2.
 : 우체국 가는 가을길

 


- 한글날을 맞이해 새로 내놓은 내 책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를 둘레 이웃한테 부치려고 우체국에 간다. 책 예닐곱 권을 봉투에 싸는데, 큰아이가 곁에서 거든다. 테이프를 집어 주고 가위를 들어 준다. 천바구니에 편지꾸러미를 담는다. 자전거수레에 싣는다.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는다. 두 아이는 자전거 태워 주려는 줄 아는지 곧장 자전거 옆에 달라붙는다. 자전거 발판을 붙잡고 빙빙 돌리느라 바쁘다.

 

- 가을 날씨이기에 수레에 앉기만 할 때에는 바람을 많이 쐴 테니까, 두 아이 겉옷을 입힌다. 무릎에는 담요를 덮는다. 나락을 말리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아직 벼를 안 벤 논둑길을 달린다. 큰아이가 꽃을 꺾어 달라 하기에 꽃이 가득 핀 논둑에 멈추어 큰아이더러 스스로 꽃을 꺾으라고 얘기한다. 작은아이도 덩달아 꽃 한 송이 꺾는다.

 

-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바깥 계단을 오르내리락거리며 논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좀 다른 길로 가자 싶어, 동호덕마을 건너편 논자락을 타기로 한다. 자전거를 세운다. 두 아이를 내린다. 큰아이는 저 앞으로 콩콩 뛰듯 날듯 달린다. 작은아이는 누나 뒤를 좇는다. 잘 익는 곡식 내음을 온몸으로 맡는다. 가을바람을 쐰다. 가을햇살을 누린다. 신기마을 언저리까지 걷고 달리고 한 다음 다시 수레에 태운다. 잘 달리며 논 뒤인지, 두 아이 모두 수레에서 또 왁자지껄 떠들며 논다. 이제 집으로 슬슬 달리며 돌아간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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