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한테 호



  저녁에 셈틀을 켜고 글을 쓰는데 거미 한 마리가 줄을 가늘게 드리우면서 죽 내려온다. 문득 입에서 “너, 뭐니?”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입김을 후 분다. 거미는 화들짝 놀라 거미줄을 거둬들이면서 위로 죽 올라간다. 아차 하고 놀란다. 참 내가 생각이 없이 산다고 느낀다. 거미는 거미대로 먹이를 찾으려고 줄을 치려는 마음에 내려오지 않았겠나. 그런 거미한테 무슨 소리를 했나.


  집 둘레로 개구리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사월이 지나고 오월을 맞이했으니까. 마당으로 내려서면 개구리 노랫소리에 먼 멧골에서 소쩍새 노랫소리가 퍼진다. 다른 새들은 잠들었지 싶다. 풀벌레는 아직 깨어나려면 멀었고,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는 새근새근 자겠지.


  거미는 어디로 갔을까. 내 셈틀 모니터 앞에 줄을 쳐서 집을 만들려 하던 거미는 어디에다가 줄을 드리우면서 집을 만들까. 우리 집은 거미한테 얼마나 즐겁고 살가운 보금자리가 될까.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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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잡지 《포토닷》 6호가 나왔구나. 이달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가운데 김지연, 오진령, 김미루 세 사람 이야기가 실린다. 서로 마음이 맞는다고 할까, 요즈음 여러모로 사랑을 받는 사진가는 함께 알아본다고 할까, 혼자서 좋아하다가 여럿이 함께 좋아할 수 있도록 사진잡지에 이야기가 실리니 무척 반갑다. 그런데, 어느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포토닷》 6호에 실린 오진령 님 이야기를 읽으니, 이녁이 2004년에 사진책 《곡마단 사람들》을 내놓고 나서 ‘초상권’ 때문에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 얼굴이나 모습’을 사진으로 잘 안 담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다른 젊은 사진가들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 그렇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얼굴이나 몸이 찍힌 사진’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질 수 있구나. 모델을 쓰지 않고 ‘이웃’을 살가이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여러모로 힘들구나.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까.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들으면서 사진잡지를 넘기면서 한참 생각에 잠긴다.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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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닷 Photo닷 2014.5- Vol.6
포토닷(월간지) 편집부 엮음 / 포토닷(월간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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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80) 존재 180 : 개성만발한 존재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의 시계를 가지고 있는 개성만발한 존재들입니다

《박은영-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 27쪽


 개성만발한 존재들입니다

→ 개성만발입니다

→ 꽃을 피웁니다

→ 빛입니다

→ 숨결입니다

→ 귀염둥이입니다

→ 귀여운 꽃을 피웁니다

→ 고운 숨결입니다

 …



  “개성만발한 존재”는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개성’이라는 한자말 뜻을 살피고, 보기글 첫머리를 돌아봅니다. “저마다 다른 속도”라는 대목이 있으니, 글 뒤쪽에 ‘개성’이라는 낱말을 안 넣어도 됩니다. 다 다른 모습을 가리키는 ‘개성’인 만큼, 글 앞뒤에 이렇게 넣으면 겹말이 돼요.


  보기글에 있는 ‘시계를 가지고’를 살린다면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계를 가지고 꽃을 피우는 넋”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아이들이 ‘시계를 가진’다고 하는 말은 ‘자란다’를 나타냅니다. 그러니, 이 대목을 덜어내면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자라며 꽃을 피우는 숨결”처럼 고쳐쓸 수 있어요. 4347.5.1.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계를 가지고 꽃을 피우는 숨결입니다


“다른 속도(速度)의 시계를 가지고 있는”은 “다르게 달리는 시계를 가진”이나 “다르게 흐르는 시계를 가진”이나 “다른 시계를 가진”으로 손봅니다. ‘개성(個性)’은 “다른 사람이나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을 뜻하고, ‘만발(滿發)’은 “꽃이 활짝 다 핌”을 뜻합니다. ‘개성만발’이란 “개성이 꽃을 피운다”는 소리이고, 이는 “다 다른 모습이 활짝 꽃피운다”를 가리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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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72) 속 40 : 흙 속


흙 속에서 지렁이가 / 옴물옴물 진흙 똥을 토해 낸다

《김환영-깜장꽃》(창비,2010) 66쪽


 흙 속에서

→ 땅속에서



  지렁이는 땅속에서 삽니다. 땅 위쪽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지렁이는 땅속에서 흙을 먹고 흙똥을 눕니다. 땅은 흙으로 이루어진 곳을 가리키니, “땅속 지렁이”가 아닌 “흙 속 지렁이”처럼 쓸 수 있을까요?


  풀과 나무는 뿌리를 땅속으로 내립니다. 땅속에 내린 풀뿌리와 나무뿌리는 흙을 단단히 붙잡습니다. 풀과 나무는 뿌리를 땅속에 두고, 땅은 흙으로 이루어지니, 풀과 나무는 “흙 속에 뿌리를 내린다”처럼 쓸 수 있을까요?


  쓰려고 한다면 쓸 수야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놓고 속과 겉을 가릅니다. 흙을 놓고 속과 겉을 가르지 않습니다. 땅은 흙으로 이루어진 덩이인 만큼, 속과 겉을 가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흙은 ‘알갱이’이지만 ‘덩이’로 여기지 않습니다. 덩이인 흙을 가리킬 적에는 ‘흙덩이’라고 따로 가리킵니다. 땅도 ‘땅덩이’로 가리키기도 해요. 그러나, 땅덩이는 한국 땅이나 아시아와 같은 덩이를 가리키면서 씁니다. ‘흙덩이’는 흙을 뭉친 덩이를 가리켜요.


  흙덩이를 손에 움켜쥐고 말할 적에는 “이 흙덩이에 풀씨가 깃들었어”처럼 말합니다. “흙덩이 속”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 흙덩이에서 지렁이가 볼볼 기어서 나온다”처럼 말합니다. “흙덩이 속에서”라 말하지 않습니다. 흙알갱이를 쪼개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려 한다면, 이때에는 “흙(알갱이) 속을 본다”고 할 수 있어요. 4347.5.1.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땅속에서 지렁이가 / 옴물옴물 진흙 똥을 뱉어 낸다


‘토(吐)해’는 ‘뱉어’로 다듬습니다. 또는 “진흙 똥을 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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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온 아이 - 치히로 아트북 2,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2



놀면서 자라는 아이

― 이웃에 온 아이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펴냄, 2002.4.10.



  온누리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공부하면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돈을 벌면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때로 일을 합니다. 어머니 일을 거들고 아버지 일을 곁듭니다. 심부름을 하고 잔일을 합니다. 동생을 돌보기도 하고, 물을 긷거나 빨래를 널거나 개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이런 일은 모두 놀이와 같습니다. 놀듯이 하는 심부름이요, 신나는 놀이가 되는 심부름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은 일을 합니다. 어른이 하는 일은 일이면서 놀이입니다. 삶을 가꾸는 놀이요, 사랑을 빛내는 놀이인 일입니다. 그래서 어른은 아무 일이나 해서는 안 됩니다. 삶을 가꾸는 놀이가 되도록 할 일이고, 삶을 사랑하는 놀이가 되도록 즐길 일입니다.



.. “와아, 세발자전거다. 아이가 있나 봐.” 토토는 친구가 궁금합니다 ..  (2쪽)



  놀지 못하는 아이는 자라지 못합니다. 아이를 놀리지 못하는 어버이는 아이가 못 자라도록 가로막는 셈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어 무엇인가 가르치려 하지 말아요. 아이는 늘 스스로 배워요. 아이를 학원이나 유치원에 보내어 무엇인가 억지로 가르치려 들지 말아요. 아이는 언제나 스스로 배웁니다.


  아이는 배울 때에 배웁니다. 놀아야 할 때를 놓치거나 잃도록 하지 말아요. 아이는 즐겁게 놀며 튼튼하게 자란 마음으로 아름답게 배웁니다. 아직 아이 마음밭이 튼튼하거나 씩씩하거나 곱게 자라지 않았는데, 억지로 지식과 정보를 밀어넣지 말아요.



.. ‘옆집에 온 아이는 어떤 애.’ ‘옆집에 사는 아이는 어떤 애.’ ..  (4∼5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빚은 그림책 《이웃에 온 아이》(프로메테우스,2002)를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이웃에 새로 들어온 아이가 궁금합니다. 함께 놀 동무인지 궁금합니다. 서로 즐겁게 아끼고 보듬을 고운 동무인지 궁금합니다.


  유치원 동무나 학교 동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놀이동무로 여깁니다. 배움동무도 나쁘지 않겠으나, 아직 이 아이들은 놀이동무요 노래동무일 때에 즐겁습니다.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야기동무일 때에 기뻐요.



.. “우리 엄마 화 많이 났지?” “괜찮아 걱정 마. 그것보다 우리 같이 놀지 않을래?” ..  (20∼21쪽)



  아름답게 놀면서 자란 아이가 아름답게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즐겁게 놀면서 자란 아이가 즐겁게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스레 놀면서 자란 아이가 사랑스럽게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웃고 노래하며 놀면서 자란 아이가 웃고 노래하며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삶은 어릴 적부터 찬찬히 자랍니다. 삶은 어릴 적부터 누구나 스스로 차근차근 가꿉니다. 4347.5.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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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5-01 15:04   좋아요 0 | URL
한번쯤 보고싶은 그림책이네요.^^
근데 품절이군요..ㅠㅠ

숲노래 2014-05-01 16:4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그림책을 알아보았을 무렵에는 벌써 절판되었기에
어렵게 어렵게 헌책으로 장만했답니다 ㅠ.ㅜ
프로메테우스 치히로 님 그림책 가운데
몇 가지는 안타깝게 절판되고 말았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