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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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줄세우기에는 마음이 없어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우리 집에서 사람 손길을 타고 싶다며 찾아온 마을고양이가 있습니다. 어느새 한두 달 남짓 지내는데, 이 아이는 스스로 사냥할 줄 압니다. 사냥할 줄 알되, 사냥을 못하면 사람이 주는 밥을 먹기를 바라더군요. 겨울바람이 매섭고 꽁꽁 얼어붙은 날이 아니고는 따로 밥을 안 줍니다. 자칫 사냥솜씨를 잃을 수 있거든요.


  우리 집에 여러 나무하고 풀이 우거지니 갖은 새가 찾아오고, 마을고양이는 곧잘 이 새 가운데 한 마리를 잡아챕니다. 고양이가 새를 잡아챌 적에는 날렵합니다. 바람처럼 뛰어올라 앞발을 확 놀려서 바로 잡더군요. 새를 못 잡을 적에는 어설퍼요. 아하, 잡을 적하고 못 잡을 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양자의 증오가 이 기회를 빌려 폭발. 연재 기회의 습득보다도 상대를 향한 살의가 우선이다. 살고 싶은 동네 넘버원, 키치조지를 향한 증오. 시부야와 신주쿠가 가까운 시모키타자와에 대한 증오. 증오와 증오가 맞부딪쳐 만들어내는 지옥도. (8∼9쪽)



  잘할 때가 있으면서, 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설플 때가 있지만, 날렵한 때가 있습니다. 같은 몸인 목숨이지만 두 모습이 나란합니다. 같은 몸이어도 마치 다른 몸이라도 되는 듯이 달라 보이곤 합니다.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늘 잘하기만 하는 사람일는지요, 넘어지다가 일어서는 사람일는지요. 일어서서 멀쩡히 달리다가 그만 넘어지기도 하는 사람일는지요.



“연재에서 잘리고, 단행본 발행도 중단.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하할, 재능 없는 자신을 원망하라고.” (21쪽)



  불꽃이 튈 뿐 아니라, 불바람이 몰아친다고 할 만한 만화밭을 다룬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2》(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가만히 읽습니다. 누가 낫고 모자라다는 금을 죽 긋고는 이 금을 못 넘으면 얼간이라 여기고, 이 금을 넘으면 우쭐거리는 판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느 금을 넘은 이라 하더라도 제 앞에 있는 이를 물리치고 싶습니다. 아직 금을 못 넘은 이들은 악다구니가 되어 발톱을 사납게 세웁니다.



“작살을 내주겠어.” “과연 잘 될까? 만화가 지망생 출신들.” “!”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이 좌절되고 마음이 꺾여 이렇게 먹고살 수밖에 없는 거겠지. 만화를 사랑했던 만큼, 그 반동으로 뒤틀려버린 걸까? 중지에 박힌 굳은살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어.” (36∼37쪽)



  어깨동무를 하는 이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내가 살려면 너를 밟아야 하고, 그냥 밟아서만 안 되고 다시는 못 일어나도록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란 왜 자꾸 불거질까요. 넘어진 이한테 손을 내밀면, 손을 내미는 사람도 진 사람이 될까요.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 이가 있으면 냅다 잡아채어 넘어뜨리고 우리만 일어서서 앞서가면 될까요.


  경제성장율이나 순위표란 모두 싸움판입니다. 다같이 넉넉한 길을 가도 될 테고, 다함께 대학교에 들어가도 될 테며, 누구나 일자리를 누리면 될 테지요.


  생각해 봐요. 왜 누구는 들어가도 되고, 누구는 들어가면 안 될까요? 왜 시험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할까요? 왜 인기투표를 하고, 왜 숫자를 매길까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삶길을 고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아요. 중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을 테고, 초등학교까지 다니며 배워도 좋겠지요. 또는 아무 학교를 다니지 않고서 스스로 배워도 좋을 테지요.


  굳이 의무교육을 떼어야 하지 않고, 애써 대학교육을 지나야 하지 않아요. 스스로 일으킬 삶을 스스로 배우면 될 뿐이며, 스스로 사랑할 하루를 스스로 깨달으면 될 뿐입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이러한 삶길이 되도록 이바지하면 되어요.



‘멸시받던 예전의 나는 죽었다. 이번엔 내가 작살낼 차례야.’ (74쪽)


‘참 잔혹한 책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는 작가들에게 랭크 따윌 붙이다니! 톱10 같은 건 상관없어. 작가는 자신의 기술을 구사해서 헤쳐나갈 뿐.’ (109쪽)



  만화책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는 줄세우기를 끝없이 따집니다. 아름다운 만화는 그저 아름다운 만화일 뿐이고, 재미난 만화는 그냥 재미난 만화일 뿐이며, 놀라운 만화는 그대로 놀라운 만화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입니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너는 네가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릴 꿈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할 꿈을 그리고, 너는 네가 사랑할 꿈을 그리지요. 더 낫지 않고, 더 나쁘지 않습니다.



“그 선으로는 내 영혼을 조각낼 수 없다. 선의 숫자만으로 승부하려는 건 잘못된 생각이야. 신념과 긍지를 불어넣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에는 꽂히지 않으니까.” (134∼135쪽)



  재주가 빼어나야 하지 않아요. 사랑이 어린 손길이면 되어요. 솜씨가 훌륭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웃는 노래를 담으면 되어요. 글을 쓸 적에 글재주는 덧없어요. 글사랑으로 빚을 적에 비로소 글이에요. 책을 솜씨있게 읽어야 잘 배우거나 깨달을까요? 아니지요. 어느 책에서든 우리 하루를 즐겁게 웃으며 노래하는 마음을 살펴서 받아들이면 넉넉해요.


  내로라하는 자리에 서야 하지 않습니다. 자랑할 만큼 해내야 하지 않습니다. 우쭐우쭐 할 만큼 올라가야 하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사랑이면 됩니다. 언제나 즐거우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꿈꾸며 피어나면 아름다워요.



“저는 그거 좀 별로라서, 40점 정도일까요.” “크윽.”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이야. 빈말은 만화를 모독하는 거니까.’ “40점, 그건 작가에 대한 모독이 아니려나?” “네? 작가세요?” (183쪽)



  줄세우기로는 줄세우기만 보여줄 뿐이에요. 줄세우기에는 상냥한 웃음도 참한 눈빛도 기쁜 춤사위도 없습니다. 내가 너보다 잘나야 하지 않고, 네가 나보다 못나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 됩니다. 다 다른 하루를 그리면서 걸어가지요. 늘 새롭게 거듭나는 발걸음이 되어 달리면 되어요.


  좁은 판에서 살아남자고 생각하니 싸우고 말아요. 자, 그 좁은 판은 그만 쳐다보기로 해요. 잘 보셔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대학입시는 ‘지옥·전쟁’ 같은 낱말로 나타냅니다. 이뿐인가요? 일삯을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는 길도 ‘지옥·전쟁’이라 하지 않나요?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시장·군수가 되려는 길도 ‘지옥·전쟁’으로 나타내지 않나요?


  싸우려 하니 불구덩이가 됩니다. 불구덩이에 뛰어들자니 싸우고 맙니다. 어떻게 하든 쳇바퀴입니다. 불구덩이로 안 뛰어들어야 사이좋게 손을 잡습니다. 싸움질을 멈출 적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에 꽃을 피우는 길이라면 오늘 어제 모레를 고요히 잇는 날갯짓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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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일각 신장판 2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동욱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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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565


《메종 일각 2》

 타카하시 루미코

 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11.30.



“남이 곤란해하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고약한 구석이 있어요.” “뭐가 곤란하다는 거죠?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게 그렇게 곤란한 건가요?” (20쪽)


“너, 꿈은 버리지 마라!” “엥?” (82쪽)


“어떡해, 가 봐야 해!” “벌써 6시 40분인데,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134쪽)


“그치만, 덕분에 저도 재미있는 추억이 생겼어요. 전 대학교에 다니질 않아서 어떤 곳인지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161쪽)



《메종 일각 2》(타카하시 루미코/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을 보면 한 사람을 사이에 놓고서 두 사람이 다르면서 같은 마음을 보내어 새로운 길을 가기를 바라는 뜻이 깊어지는 줄거리를 엿볼 만하다. 그런데 두 사람만 한 사람한테 새길을 가자고 부르지 않는다. 둘레에 있는 숱한 사람들도 다 다른 몸짓이랑 말이랑 삶으로 손을 잡아서 이끌려 한다. 머물지 말라고, 스스로 고이지 말라고, 사람을 그리거나 사랑하는 길은 ‘파묻혀서 고이는 길’ 하나만 있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툭탁거리고 넘어지고 아프지만, 그 한 사람도, 곁에 있고 싶은 두 사람도, 또 숱한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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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8.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

 이정하 글·슬리퍼 사진, 스토리닷, 2020.1.23.



지지난달에 마무리해 놓은 글꾸러미를 새로 읽으며 손질하고 조금 보탠다. 이 글꾸러미를 다시 받을 출판사에서는 ‘이제 볼만하다’고 여겨 줄까? 아침에 일어난 작은아이가 “오늘은 대나무로 배 만들래!” 하고 외친다. “아버지, 대숲에 언제 가요? 언제 가요?” 하고 조른다. 바삐 보내야 할 글을 얼른 마치고서 톱을 챙긴다. 해마다 쑥쑥 자라는 대나무는 그야말로 높고 크며 단단하다. 그러나 밑둥을 톱으로 슥슥 켜면 어느새 톡 소리를 내며 우두둑 넘어지지. 넉 그루를 베어 석 그루는 내가 들고 한 그루는 작은아이한테 맡긴다. 작은아이가 바라는 석 마디를 톱으로 켜서 건넨 뒤 지켜보니 아이 스스로 두나절쯤 걸려 끝! 훌륭하구나. 어머니이자 곁님이자 아주머니이자 딸, 여기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꾼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해를 걸어온 1인출판사 스토리닷 지기님이 《책만들기 어떻게 시작할까》를 선보이셨다. 다섯 해 책살림을 280쪽 즈음으로 단출히 여미셨네. 담은 말보다 못 담은 말이 훨씬 많지 않을까? 책길을 걷고픈 이웃, 마을책집을 가꾸는 이웃,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웃, 책읽기가 신나는 이웃, 한길을 걸어가려는 이웃 들이 이 책을 곁에 둘 만하지 싶다. 작은 출판사가 내는 목소리가 겨울 한복판을 포근히 어루만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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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도서관


 바람맛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2020.1.16.)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바람이 흐르기에 바람맛을 봅니다. 이 바람에 서린 맛을 살갗으로 느껴서 받아들입니다. 추운 날에는 차가운 결을 맞아들여 뼛속까지 시리구나 하고 느낍니다. 포근한 날에는 꽁꽁 얼어붙은 뼛속이 새삼스레 녹으며 부드러이 춤추네 하고 느낍니다. 아직 겨울 한복판이라지만, 저는 겨울 한복판에는 ‘어느덧 겨울이 저무네’ 하고 느껴요. 한복판이란 고빗사위이거든요. 여름 한복판에도 이와 같지요. 가장 후끈거리는 여름철에는 ‘어느새 여름이 저물려 하네’ 하고 느낍니다. 날마다 힘껏 추스르는 손질말 꾸러미인데 언제쯤 고빗사위를 넘어갈는지 잘 모릅니다. 하루하루 ‘이 말도 빠지고 저 말도 놓쳤네’ 하고 느끼면서 보태고 손질합니다. 이러는 동안 ‘이렇게도 새로 짓고 저렇게도 새로 엮으면 한결 재미나네’ 하고 느껴, 이 사전짓기란 일은 언제나 끝이 없이 가는 걸음걸이입니다. ㅅㄴㄹ





* 새로운 한국말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알라딘에서]

 http://blog.aladin.co.kr/hbooks/578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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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1.14.


집에서 키우는 짐승을 놓고 ‘집짐승’이라 하고, 이를 한자말로는 ‘가축’이라고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집짐승’이면 되었으나, 나날이 삶터가 달라지며 새말을 지어서 써야 했어요. 이 흐름을 맞추어 한자말로는 ‘애완동물’이라 했는데 한국말로는 새말을 안 지었어요. 이다음으로는 ‘반려동물’이란 새말을 새삶에 맞추어 짓지요. 그렇다면 한국말로는 무어라 하면 어울릴까요? 귀엽게 여긴다면 ‘귀염짐승’이라 할 만하고, 곁에서 같이 살아간다면 ‘곁짐승’이라 할 만해요. 꽃이라면 ‘곁꽃’이랄 수 있어요. 사람은 ‘곁님’이고요. 동무나 벗은 ‘곁벗’이라 하면 되겠지요. 일본에서는 풀이름을 얄궂게 붙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며느리밑씻개·며느리배꼽’ 같은 이름인데요, 이는 일본에서 가시내(며느리)를 나쁜 눈길로 보면서 지은 이름이며, 일제강점기에 식물학을 하던 이들이 이 이름을 뜬금없이 들여와서 퍼졌어요. 이 나라에서 쓰던 이름은 ‘삵’을 닮아 날카롭다는 뜻으로 ‘사광이아재비·사광이풀’입니다. 잎하고 줄기 가시가 많으니 ‘가시덩굴여뀌·참가시덩굴여뀌’라 해도 됩니다. ㅅㄴㄹ


곁님 ← 배우자, 아내, 남편, 부인(夫人), 와이프, 동반자, 동거인, 반려자, 자기(自己), 애인

곁꽃 ← 반려식물, 원예식물, 관상식물, 애인

곁짐승 ← 반려동물

곁벗·곁짝 ← 반려(伴侶), 반려자, 동반자, 반려동물, 반려식물, 소울메이트, 절친

귀염짐승 ← 애완동물

집짐승 ← 가축

사광이아재비·가시덩굴여뀌 ← 며느리밑씻개

사광이풀·참가시덩굴여뀌 ← 며느리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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