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눈 랑데부 2
카와치 하루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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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책으로 삶읽기 547


《여름눈 랑데부 2》

 카와치 하루카

 김유리 옮김

 삼양출판사

 2012.12.22.



‘내 손은 흙을 일굴 수 있다.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 씨앗을 심을 수도 있다. 점장님을 등에 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그런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을까?’ (22∼23쪽)


“죽은 사람의 동정은 받고 싶지 않아.” (60쪽)


“세상엔 수수께끼가 가득하죠.” “……라기보다 여기가 그런 거겠지.” (121쪽)


“처음엔 꽤나 자세가 곧은 남자 중학생이 있구나 싶었어. 유심히 보고 있었더니 우연히 그 주변에 무지개가 생기더라고. 그 빛에 몰두하면서 물에 흠뻑 젖는 모습이 왠지 어린애 같아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봤지.” (162∼163쪽)



《여름눈 랑데부 2》(카와치 하루카/김유리 옮김, 삼양출판사, 2012)을 읽는다. 두 사람한테서 흐르는 두 마음이 한결 깊이 얽히고, 두 사람은 바야흐로 몸을 바꿔서 지내기로 한다. 이승에서 살아가는 이가 저승에서 떠도는 이한테 몸을 내준다. 이러면서 이승 젊은이는 저승 죽은이가 떠도는 마음나라에 간다. 저승으로 가서도 이승을 잊지 못한 사내는 이승을 밟고서 ‘참인가 거짓인가’ 하고 놀라면서 하루하루 더욱 애틋하겠지. 저승에서 자꾸 이승을 넘겨다보는 사내를 알아보던 이승 젊은이는 ‘아직 산 몸’이면서 저승나라로 나아갔기에, ‘아쉬운 마음을 두고 죽은 이가 어떻게 이승살이를 놓지 못하는가’를 새삼스레 바라보고 느끼겠지. 눈물하고 웃음은 다른 듯하면서 같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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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6 : ~소설가가 되는 방법~ - S 코믹스
야나모토 미츠하루 지음, 김아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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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마음을, 오늘을, 나를, 너를 쓴다



《히비키 6》

야나모토 미츠하루

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10.25.



  글을 쓰기란 얼마나 쉬울까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니 이 하루를 그저 옮기면 되는 글입니다. 늘 새롭게 꿈을 그리니, 이제부터 이루려는 꿈길을 차곡차곡 그리면 되는 글입니다. 오순도순 짓는 살림이니, 이 살림을 고스란히 담으면 되는 글입니다. 마주하는 이웃을 마음으로 느끼니, 이웃한테서 맞아들이는 숨결을 가만히 나타내면 되는 글입니다.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울까요.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채 바쁘게 몰아치니, 숨을 쉴 기운조차 없어 어렵습니다. 앞으로 이루려는 꿈이 없으니,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즐거울는지 몰라 셈틀을 켜 놓아도 글판을 두들기지 못합니다. 손수 짓거나 누리는 살림이 없노라니 막상 글쓰기도 만만하지 않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꽉 막힙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다 다른 이웃인 줄 알아보지 않으니,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한 숨결이 없어 풀이나 나무나 돌 이야기를 글로 적더라도 싱그럽거나 생생하지 않습니다.



“난 죽지 않아. 아직 걸작을 쓴 기억은 없으니까.” (40∼41쪽)


“내 소설을 읽어 줘서 고마워. 재미있게 봐줬다면 기쁘지만, 시시했다 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소설은 또 쓸 거니까, 다음에도 읽어 주면 좋겠어.” (17쪽)



  글쓰기를 묻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를 되묻습니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분이 있으면 마음쓰기도 어렵겠네요 하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하고픈 분이 있을 적에는 언제나 마음쓰기를 하시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쓰기를 잘 다룬 책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는 마음쓰기를 다룬 책을 읽으시면 어떻겠느냐고 되묻습니다.


  글이란 말이며, 말이란 생각이고, 생각이란 우리가 오늘 펼쳐 보이는 마음이 드러난 씨앗이라고 느낍니다. 하나씩 따지면 되어요. 말이 있기에 글이 있습니다. 말이 없다면 글이 없어요. 그렇다면 말이란? 우리가 말을 하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없이 말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을 적에는 소리는 낼는지 모르나 말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생각이란? 마음이 있기에 이 마음이란 자리에 씨앗처럼 심어서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심어서 가꾼 뒤에 일으키는 생각이 없으니, 언제나 다른 사람 말을 조잘조잘 따르기만 하는 쳇바퀴나 굴레가 되곤 합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싶다면, 이 흐름을 헤아리면서 마음부터 쓸 줄 알아야겠지요. 마음을 옮기기에 마음쓰기요, 네가 어떤 마음인가를 하나하나 읽도록 헤아리기에 마음쓰기입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껴 준다면 기쁠 것이고, 아마도 그 소설은 그 사람을 위해 쓰여진 걸 거라는 생각이 들어. 10년 동안 소설을 썼으면 당신의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낀 사람이 적어도 있긴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나일지도 모르고. 안 팔린다는 둥, 졸작이라는 둥, 그래서 죽는다는 둥, 남이 재밌게 본 소설에다 작가랍시고 함부로 꼬투리 잡지 말라구.” (35∼36쪽)



  ‘소설가가 되는 방법’이란 이름이 붙은 《히비키 6》(야나모토 미츠하루/김아미 옮김, 소미미디어, 2018)을 읽으면, 어느새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문학상 두 가지를 한꺼번에 탄 히비키가 하이틴로맨스 소설도 슬쩍 써 보았는데, 이 소설도 덜컥 문학상을 받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느덧 히비키가 쓰는 소설은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 확 사로잡히는 글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만화책 《히비키》는 ‘소설을 쓰는 여자 고등학생’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길을 줄거리로 삼아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이야기로 엮습니다. 그렇다고 내로라하는 문학상을 거머쥐는 길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길’을 그립니다.


  그래서 문학상을 거머쥐지 못한 사람, 문학상을 노리지만 으레 미끄러지는 사람, 문학상을 누가 받을는지 가리는 다른 소설가, 문학상을 거머쥔 사람 책을 찍어내어 돈을 벌려고 하는 출판사 일꾼, 문학상을 둘러싼 자리에서 아옹다옹하는 사람들을 다루어 장사를 하려는 잡지사 일꾼, 이런 뭇사람하고 동떨어진 여느 사람, 소설이고 책이고 마음이 없는 사람 …… 여러 갈래 여러 사람을 찬찬히 아울러서 이야기를 엮지요.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 금액은 히비키의 소설에 대한 정당한 가치입니다.” “정당이고 나발이고 당신네들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 (63쪽)



  자동차를 잘 안다고 한다면, 자동차 이야기로 무엇을 쓸 만할까요? “잘 안다”는 무엇이고 “쓸 만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자동차를 만든 회사 이름을 늘어놓으면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어느 곳에 어느 자동차가 어울리는가를 밝히기에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값이나 값어치를 적으니 자동차 이야기일까요?


  물건으로 우리 앞에 있는 자동차라지만, 이 자동차도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어요. 입이 아닌 마음으로 자동차한테 말을 건다면, 자동차를 다루는 사람들 모습이나 눈길을 새삼스레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는 자동차는 무엇을 느끼는지, 찻길을 넓힌다면서 숲이며 들이며 마을을 밀어내는 몸짓을 자동차로서는 어떻게 느끼는지, 자동차가 달리며 내뿜는 찌꺼기를 자동차는 어떻게 헤아리는지, 이런 이야기를 자동차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쓸 수 있습니다.



‘이대로 싸워 봤자 이길 수 있을 리 없고. 그러게 얌전히 있으면 될걸. 도저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어. 난 왜 이렇게 자아가 강한 걸까. 히비키라면 어떻게 했을까.’ (101쪽)



  앞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삶길을 열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차츰 늘어납니다. 대단한 일이라고 여겨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글을 쓰는 길을 바라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태어난다니, 참말로 우리 삶터를 확 바꿀 만한 빛이 되겠구나 싶어요.


  흙을 일구거나 숲을 돌보는 길을 가겠노라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틀림없이 어디엔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 나라 터전이 터전이니만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지만, 돈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스스로 이루려는 꿈길을 생각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늡니다. 그리고 돈을 알맞게 누리면서 스스로 바라는 꿈길도 아름답게 펴고 싶은 어린이나 푸름이도 늘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돈벌이가 꿈이라면 굳이 글을 안 써도 됩니다. 돈을 잘 버는 길을 가면 되겠지요. 글쓰기로 돈을 벌 꿈이 있다면 이때에는 글로 돈을 버는 길을 새로 닦으면 돼요. 다만, 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글에도 두 가지가 있지요. 참마음을 담아서 참다이 버는 돈이 있을 테고, 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아치우고서 거둬들이는 돈이 있겠지요. 글이름이나 글치레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팔이치우고서 글빛을 뽐내는 길이 있을 테고, 오롯이 참답고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글빛을 즐기는 길이 있어요.



“난 상 받을 생각 없고, 카요코도 없는 모양이니까, 수상은 취소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뭐어! 왜? 어째서? 대상인데? 애니메이션화도 된다구?” “으음, 매일매일 책 읽거나 멍 때리면서 여러 가지로 바쁜데다, 상 같은 거 그다지 흥미없어서. 미안해.” (172쪽)



  만화책 《히비키》에 나오는 아이는 여고생입니다. 남고생이 아닌 여고생이지요. 이 여고생을 바라보는 둘레 사람 눈길이 다 다릅니다. 요즈음에도 ‘여자는 짝을 맺고서 아기 낳고 집안일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 ‘아직 제대로 깨이지 않은 이 터전에서 글을 쓰자면 사내 따위는 가까이하지 말고서 오직 글을 사랑하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어요. 꾸준히 사랑받는 글을 쓰는 분이 있고, 좀처럼 사랑받지 못하는 글만 되풀이하는 분이 있어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삶길을 걸을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몸이자 마음으로 태어나서 서로 다른 꿈하고 생각을 키우며, 이 다른 삶에서 피어난 이야기를 저마다 다른 말글로 담아낼까요?



“이제야 그 섬뜩한 웃음이 사라졌네. 농담이야. 설마 진짜로 걸겠어? 흥정하러 온 거 아냐. 선물용 과자까지 싸들고 사과하러 온 거니까. 화내도 좋으니 받아들이시라고.” (176쪽)



  소설을 쓰는 히비키는, 소설쓰기에 앞서 소설읽기를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숱한 소설을 읽으면서 ‘이쪽은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 쓰레기’라고 ‘저쪽은 내 마음을 건드린 아름다운 빛’이라고 말합니다. 두 가지로 마음에 남은 소설을 오래오래 읽다가 어느 날 생각해요. ‘아, 나도 소설을 써 볼까?’ 하고요. 그리고 찬찬히 쓰지요. 누구보다 스스로 ‘내가 썼더라도 내 마음부터 새롭게 건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무엇을 노리고 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널리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쓰지 않아요. 그리고 히비키 소설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읽은 느낌’을 꾸미지 않고 모조리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새롭게 쓸 다른 소설을 부푼 마음으로 꿈꾸면서 ‘좋았거나 아쉬웠던 모든 대목’을 받아들여서 첫걸음을 다시 떼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소설이란 글을 쓰는 길이란 이렇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사랑으로 건드리며 아름다울 글을 쓰면 되어요. 어떤 목소리이든 거스르지 않고서 스스로 녹여내어 새롭게 빛으로 밝히려는 숨결로 글을 쓰면 되지요.


  이리하여 글쓰기는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겠노라 생각을 하고 즐겁게 하루하루 걸어간다면 글쓰기이든 마음쓰기이든 쉽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지레 혀를 내두르면, 아마 죽고 다시 태어나도 글을 못 쓰겠지요. 마음을, 오늘을 씁니다. 나를, 너를 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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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2.


《끊어진 현》

 박일환 글, 삶이보이는창, 2008.12.15.



큰아이가 사람 북적이는 데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래, 그렇겠지. 북적판에서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사람이 드물기 마련이라, 이런 곳에서 너 스스로 마음을 찬찬히 건사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러나 북적판도 고요판도 따로 없단다. 어느 곳에 있든 어느 때를 맞이하든 우리는 오직 스스로 어떤 사랑이란 숨결인가를 바라보면 돼. 다른 사람이 뭘 버리고 잘못하고 흉질을 일삼든 쳐다보지 말자. 아니, 보이면 보되, 휩쓸리지 않으면 되지. 늘 스스로 차분하게 활짝 웃으면서 피어나는 꽃마음이 되어 보지 않겠니? 큰아이하고 읍내마실을 다녀온다. 이러고서 저녁을 같이 먹고 ‘예티’가 나오는 만화영화를 함께 본다. 영화 이름은 ‘Abominable’이고, 한국에는 ‘스노우몬스터’란 이름인데, ‘눈사람’인 셈이다. 눈사람이지. 눈갓에서 흰눈 같은 털빛으로 살아가는 흰마음이니까. 시골버스에서 《끊어진 현》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수수하게 쓰는 시가 마음에 든다. 다만 이 시집에도 슬쩍슬쩍 멋부리려는 글결이 보인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니 멋을 부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멋을 부리면 사랑하고 멀어진다. 그럴듯한 글은 사랑스러운 글이 아니다. 아이들한테 말한다. 얘들아, 늘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이라면 아름답단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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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1.


《피의 흔적 1》

 오시미 슈조 글·그림/나민형 옮김, 학산문화사, 2019.11.25.



밤에는 겨울답게 차가운 바람. 아침이 되면 봄처럼 따사로운 바람. 어느덧 1월에 두 가지 바람을 한껏 누린다. 곳곳에서 봄나물이, 아니 봄풀이 돋는다. 모든 봄풀은 나물이니 그냥 봄나물이라 할 수 있지만, 그저 봄풀이라 이야기하자. 올해에는 어떤 나뭇잎을 덖어서 누릴까 하고 생각한다. 작은 유리병을 하나하나 그러모아야지. 밤에는 차가운 바람이라 새벽에 풀잎을 보면 이슬이 얼어붙었다. 해가 오르면 언 이슬이 살살 녹으며 빛난다. 《피의 흔적》 첫걸음을 매우 빠르게 읽어낸다. 오시미 슈조 님 만화는 언제나 매우 빠르게 넘긴다. 숨가쁘게 읽어내도록 엮는 만화라고 할까. 휘리릭 넘기며 ‘그다음은?’ 하고 궁금하게 여기도록 몰아댄다고 할까. 이렇게 한달음에 읽어내고는 숨을 가늘게 고르고서 다시 찬찬히 넘긴다. 앞선 만화에서는 어린이·푸름이가 마음에 새기고 만 멍울을 그렸다면, 《피의 흔적》은 어른, 이 가운데 어머니가 마음에 새긴 멍울을 그리는구나 싶다. 오늘 이곳에서 ‘어머니’인 분도 어린 날이며 푸른 날을 보낸 ‘아이’였고 ‘작은 숨결’이다. 어른 몸뚱이라서 이 어른을 따사롭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오랜 멍울은 어떻게 될까? 멍울이 핏자국이다. 핏자국이 고스란히 멍에가 된다. 멍멍한 마음을 안아 줄 이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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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파운드의 복음 4 - 완결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명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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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가나요



《1파운드의 복음 4》

 타카하시 루미코

 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6.30.



  학교나 도서관에 이야기꽃을 펴러 가면 으레 물어보는 말 가운데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주셔요’입니다. 저는 이때에 곧잘 만화책을 꼽습니다. 그러나 ‘어느 작품’을 꼽는 일은 드물어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만화님 책이라면 모조리 장만해 두시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요새는 한 분이 늘어 오시기리 렌스케 님 만화책도 나란히 들어요.



“얘들아, 노력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 안 돼. 저 도시락집 점원은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사람,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쓸데없이 노력한다는 느낌이랄까.” “결코 그렇지 않아.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그건 남이 정할 게 아니란다.” (60∼61쪽)



  흔히들 테즈카 오사무 님을 놓고서 ‘만화 하느님(만화의 신)’이라고 합니다. 이녁이 살던 무렵부터 이렇게들 가리켰어요. 예나 이제나 이녁처럼 만화를 그린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습니다. 한꺼번에 열두어 가지 다 다른 만화를 잇달아 그리며 주간잡지에 월간잡지에 보내고, 만화영화까지 그렸거든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는 만화를 거드는 일꾼은 틈틈이 쉬거나 잠들기도 하지만, 테즈카 오사무 님이 잠드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지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이 땅을 떠난 만화 하느님’이라면,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이 땅에 살아 기운차게 만화를 그리는 하느님’이라고 느낍니다. 제가 느끼기로 그렇습니다. 이분이 짧게 끝맺으며 그린 만화를 놓고서 일본에서는 “루미코 극장”이란 이름으로 만화영화에 연속극에 영화까지 나오지요.



“하타나카 씨, 제가 늦었죠.” “수, 수녀님. 오셨어요? 어째서.” “그야, 오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못 만나는 줄 알았는데.” (53쪽)



  《란마 1/2》이나 《이누야샤》나 《경계의 린네》는 더없이 엄청나면서 훌륭한 만화라고 느낍니다. 어쩜 그렇게 생각힘을 끝없이 길어올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한 얼개에 재미에 눈물웃음에 이야기꽃을 지피는가 싶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만화를 사랑하기에 온마음을 만화에 바쳐서 하루를 살아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전 당신과 정반대예요. 전 당신과의 시합에서, 복싱을 계속하기 위해 싸울 겁니다.” (84쪽)



  《1파운드의 복음 4》을 반가이 읽었습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온 이 만화책은 한국에 해적판이 살짝 나왔다가 2019년에 이르러 새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줄거리를 단출히 들자면, 미련퉁이 사내하고 상냥한 가시내가 어우러지는데요, 미련퉁이 사내는 권투선수이고, 상냥한 가시내는 수녀입니다. 미련퉁이 사내는 고등학교를 집어치우고 일찌감치 권투선수가 되었고, 상냥한 가시내는 앳된 나이에 일찌감치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돈이 아깝지도 않아?” “아깝지 않아요. 그걸로 수녀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 기뻐요.” (149쪽)



  만날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납니다. 아마 하느님 뜻 아닐까요? 어울릴 길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자꾸 어울립니다. 이는 무슨 뜻일까요? 아마 꿈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사랑이 아닐까요?


  생각해 봐요. 초·중·고등학교를 착착 다니며 졸업장을 따면, 또 대학교까지 척척 다니며 졸업장을 더 모으면, 그리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차곡차곡 건사하면,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오직 몸뚱이 하나만 믿고서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하나도 안 모은다면? 그리고 오로지 마음 하나만 바라보면서 졸업장이건 자격증이건 ‘사회에서 말하는 이름이며 돈이며 힘’을 모조리 내려놓는다면?


  배움끈 없는 젊은 권투선수 사내입니다. 아무런 이름도 돈도 힘도 없이 앳된 나이에 홀로 수녀원에 깃들어 모든 끈을 잊고 싶은 수녀원 가시내입니다.



“수녀님이 행복하게 웃어만 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하타나카 씨.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뭘 위해 복싱을 하는 거죠?” “저를 위해서라느니, 돈을 위해서라느니,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신을 위해 싸워야죠!” (169∼170쪽)



  미련퉁이 권투선수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미련퉁이라서 권투선수인데 밥에 목을 매답니다. 밥먹기를 그치지 못해서 늘 몸무게가 불어요.


  상냥한 수녀라고 했어요. 이이는 그야말로 상냥해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길을 잃은 미련퉁이를 본 나머지 이이를 지나치지 못합니다. 상냥하게 말을 걸고, 상냥하게 도우며, 상냥하게 북돋웁니다.



“너, 역시 돈이냐? 그렇게 80만 엔이 아까워?” “돈이 아냐! 사랑이다!” (215∼216쪽)



  앞길이 아득하다고 여기는 푸름이를 만나면 선뜻 이 만화책 《1파운드의 복음》을 읽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고등학교라는 길에서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고, 대학입시란 짐이 벅차다고 하는 푸름이한테도 이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말합니다.


  미련퉁이하고 상냥님 사이에 흐르는 숨결을 읽어 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련퉁이입니다만 바탕이 상냥하기에 미련할 수 있어요. 상냥한 사람은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이나 예술로 보자면 ‘제 뱃속을 채우려 하지 않아 미련퉁이’처럼 보일 만합니다.


  이제 알 만할까요? 미련한 사람은 상냥합니다. 상냥한 사람은 미련합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상냥하기에 사랑을 스스로 심어서 키워요. 상냥하면서 미련하기에 사랑을 손수 돌보며 북돋웁니다.


  대수롭잖은 만화책으로 여기면서 《1파운드의 복음》을 읽지 않는다면 이 얼거리를 못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구태여 이 만화책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마음눈을 켜서 바라본다면 이 얼거리쯤이야 너끈히 알아내겠지요.


  그런데 있지요, 오늘날 이 삶터는 다들 너무 바빠요. 너무 옥죄어요. 너무 갑갑해요. 그저 쳇바퀴에 굴레요 수렁판입니다.


  만화는 머리를 식힐 뜻으로 읽지 않습니다만, 머리를 식히면서 보기에 좋기도 해요. 자,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으니 만화책 하나를 한 손에 쥐어 볼까요?



“관장님, 또?” “네, 또입니다. 지금부터 이래서야, 방어전은 무리라고.” “알겠어요. 같이 찾아보죠.” “이 시기에는 식수대보다 식당이 중요합니다.” ‘안젤라 자매님, 가시밭길을 선택한 건가?’ (222쪽)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어떤 뜻이 있는지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빛을 찾아냅니다. 우리가 서는 길에는 어떤 꿈이 있는지 스스로 되물으며 스스로 사랑을 알아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스스로 물으며 스스로 찾고, 스스로 되묻는 사이에 스스로 알아요.


  밥 한 그릇에 헤매는 미련퉁이입니다만, 상냥한 웃음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깨닫습니다. 상냥하면서 미련한 아가씨입니다만, 미련한 바탕에 감도는 포근한 숨결을 느끼면서 다시 손을 내밀고 기꺼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무래도 이 길은 서로서로 가시밭길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가시밭길이 꽃길이에요. 잘 봐요. 찔레꽃이며 장미꽃이며 그 엄청난 향긋꽃밭은 온통 가시투성이입니다. 한봄에 무르익는 딸기는 가시넝쿨입니다.


  언뜻 보자면 가시밭길이나, 깊이 보자면 꽃길이요 달콤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 길이라면 바로 이러한 길이 아름답겠지요. 서로 얼크러지면서 빛나는 이 길에 선다면 더없이 기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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